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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블랙아웃

등록일 2017-08-17 21:57 게재일 2017-08-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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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올해도 역시 방학은 주인을 잃었다. 전국이 39도로 펄펄 끓던 8월 초에도 이른 아침부터 버스정류장에는 방학 전과 똑같이 학교 버스를 가다리는 학생들로 넘쳤다. 그들의 영혼 없는 표정을 보고 당황한 건 버스였다. 마치 그들의 영혼을 빼앗은 것이 자기인 양 학교 가는 버스는 힘이 없었다.

버스는 학생들을 의미 없는 방학 보충수업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입시 경쟁이 없는, 그래서 사람 사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는 참교육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없는 지 고민했다. 버스 속도는 그 고민과 반비례했다.

영혼 없는 학생들의 표정을 읽은 신호등은 학생들의 영혼을 앗아가는 지금과 같은 교육 시스템은 멈춰야 한다고 학교와 가정, 그리고 정부에 계속 경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명문대학교에 눈이 먼 부모와 교사들은 그 메시지를 무시하고 버스를 재촉하거나 가속페달을 직접 밟았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지는 학생들의 한숨 소리는 버스를 공중부양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녀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고 믿는 어른들은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 학교 가는 버스는 학생들을 학교 앞에 내려줬다. 그러면 학교는 진공청소기처럼 학생들을 흡입했다. 그리고 친절하게 종까지 치면서 학생들의 영혼을 돈 세탁(洗濯)하듯 세탁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제아무리 좋은 이론이라도 이 나라 교육 시스템 안에만 들어가면 단거리 육상선수들이 기록 경쟁하듯 빠르게 변질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라는 공장은 지어진 지가 반세기가 넘었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너리즘에 깊이 빠져 있으며, 생산 라인은 공장설립 후 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속 새로운 것을 투입하니 공장 안은 혼돈만 가득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시스템에 맞추는 쉬운 방법을 택했기에 변질은 당연한 것이다.

이 나라 교육과 가장 거리가 먼 단어가 있다. 그것은 진화(進化)다. 그런데 동음이의어 중 진화(鎭火)는 교육과 매우 밀접하다. 교육 수장이라는 자들은 교육을 진화(進化)가 아닌 진화(鎭火)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임기 내에 뭔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수를 둔 진화(鎭火)를 하다 보니 문제는 더 꼬이기만 한다. 그것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다보니 이제 교육 문제는 진화(鎭火) 자체가 불가능하게 돼 버렸다. 그런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방법으로 진화를 하겠다니 답답할 노릇이다. 무모한 진화가 교육의 본질까지 태워버렸다는 것을 당사자들은 알기나 할까. 교육을 망치고 있는 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떠들어대는 `정치 교육인`들인데, 왜 우리 학생들이 시지프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져야 하는 걸까. 곧 개학이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데 과연 이 나라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시지프스의 바위보다 더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더 이상 희망 고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이 나라에는 참 교육 같은 것은 없다고 교육 사망 선언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시험을 위한 지식들을 외우라고, 그래서 줄 세우기 입시 경쟁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으라고, 그러면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다고.

블랙아웃(Blackout)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대규모 정전(停電) 사태, 숨을 참다가 다급해진 다이버가 의식을 잃는 현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분명한 건 지금처럼 `정치 교육인`들이 계속 교육 판을 흔들면 곧 교육 블랙아웃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전에 국민들이 `정치인 교육 접근 금지법`이라도 발의해서라도 교육에서 정치를 떼어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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