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싸개 매미들이 소금 동냥을 떠나고 있다. 한 여름 나무의 멱살을 잡고 밤낮없이 울어대던 매미들이 인간 세상을 향해 오줌 한 번 걸판지게 갈기고는 미련 없이 나무를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떠날 때는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속을 비운 매미들은 가벼이 날아오른다. 매미들이 떠난 자리에서 귀뚜라미들은 풀보다 더 시퍼렇게 울면서 철이 바뀌고 있음을 천하에 알리고 있다. 그 소리에 여름과 가을은 조용하게 자리바꿈을 준비한다.
하지만 철없는 인간 세상은 자리바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끄럽다. 지난 정부와 현 정부의 공통점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은 대동소이(大同小異)이다. 자기만 잘 났고, 자기만 옳다고 떠들어 대는 떠버리 측면에서 보면 말이다. 넥타이만 풀면 뭐하나, 수첩만 없애면 뭐하나, 비록 겉모습은 변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보고 배운 습관은 그대로인데. 한 사람의 지시(指示)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지금 정부의 모습은 북쪽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과연 이 정부에는 회의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아, 잊었다. 지금 정부의 인사원칙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것을. 스스로 정한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막무가내 식으로 사람을 뽑을 때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간다.
촛불 정부의 다른 이름은 이벤트 정부다. 이벤트는 준비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처음에는 즐겁다. 청혼을 위한 이벤트, 축하와 감사를 위한 이벤트 등 이벤트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렌다. 그래서 이벤트는 우리 삶에서 간혹 감동의 전환점 역할을 한다. 이벤트는 중독성이 강해 받는 사람들의 기대감과 만족도는 그 횟수에 비례한다. 그래서 준비하는 사람은 더 자극적인 이벤트를 준비하게 되고 결국 그런 이벤트는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적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 순간부터 이벤트는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과 불행으로 전락한다.
지금 정부는 힘든 국민들을 위해 이벤트를 꽤 잘 했다. 시민들은 여론과 지지율로 이벤트에 답했다. 첫 이벤트가 언제나 그렇듯 이벤트 주최인 촛불 정부와 이벤트에 참가한 광장 안 시민들은 서로가 즐거웠다. 그것을 지켜보던 광장 밖 국민들 또한 덩달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 행복감이 오래 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이벤트 다음이다. 보상 받기를 열망하는 마음이 큰 사람들일수록 이벤트 후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조건 이벤트에 몰입하여 즐긴다. 그 순간 이벤트의 목적이나 의도는 사라지고 만다. 주최 측은 그것을 최대한 이용한다.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들의 기분이 최고일 때 슬쩍 자신들의 생각을 흘린다. 그러면 이벤트에 취한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따져보지도 않고 OK를 외친다. 그리고 더 자극적인 이벤트를 열어 줄 것을 요구한다.
촛불 정부의 대표적인 이벤트는 `비정규직 제로`다. 정말 이상적인 정책이다. 필자 또한 10년 넘게 비정규직 생활을 했기에 말만 들어도 설렌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상(理想)에 집착하는 순간 이상(理想)은 이상(異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 정부의 이상한 이벤트 때문에 교육계의 약자들이 아프다. 학령기 인구 절벽 시대라는 말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희망 고문으로 취업 약자들을 절대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내년 총선을 위한 이벤트 정책은 제발 그만 남발하고 이 나라를 위한 현실성 있는 비전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야구 용어 중에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한 투수가 동점이나 역전당할 때” 사용하는 `블론(Blown) 세이브`라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북쪽에만 목을 맨다면 내년에 매미가 돌아왔을 때 지금처럼 웃으면서 이벤트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부디 이번 정부는 블론 세이브의 오명을 쓰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