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사고가 많은 요즘 포토라인에 선 유명 인사들은 예외 없이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라 말한다. 당연한 말이고, 당연히 그래야하므로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말이 되풀이되고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한 말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성실`이나 `겸허` 등을 입에 담는 게 가증스럽다고 느끼기도 한다.
“삶을 받아들인다”, “겸허하게 받아들인다”와 같은 말들은 사실 깊은 성찰로 도의 경지에 다다른 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것은 포기나 체념 같은 말들과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은 천양지차이며 참으로 명쾌하고 멋진 말이다. 인간들은 스스로가 미약함을 알면서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고, 그것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미약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린 시절엔 어른들이 무섭고 자신의 힘이 부족하니 사회적 통념을 따랐고, 가난한 시절엔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더러 비굴하기도 했으며, 열정이 분출하는 용암처럼 뜨겁던 청년시절에도 미래의 성취를 위해서는 못마땅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처럼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되풀이 했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 그런 과정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들과 마주하곤 하는데, 그때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뜻밖의 파문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날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초개같이 버리던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구조의 시대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시대를 초월하여 매우 명쾌한 삶의 태도이다.
`멋`의 개념도 진화하여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보다 모자란 자신을 솔직하게 피력하는 것이 더욱 멋짐으로 인정되는 세상으로 변하였다. 문명의 발달이 이러한 변화를 견인하였으니 그 또한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SNS의 발달로 원하지 않는 곳까지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너무나 투명해진 이 세상에는 자기도 모르는 자기가 수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게 되고 말았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말이 현실에는 불가능한 옛말로 존재할 뿐, 이 세상은 적어도 팩트에 대해서는 비밀이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겸허하게 받아들이다`는 자신을 낮추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남보다 나은 삶을 위해 더 좋은 학교를 다니고,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세상이 인정하는 명예를 가지려 밤잠을 자지 않고 경쟁하던 전장이 아니었던가? 결코 겸허할 수 없었던 전장에서 자식 하나 잘 되면 집 안 전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오랜 세월동안 통용되었고, 정권이 바뀌면 어느 정권도 예외 없이 친인척 비리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미개함은 OECD회원국이라는 위상으로 보았을 때 치욕스럽기 그지없다. 지독한 이기심의 덫임을 인식하지도 못한 체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는 어김없이 화를 부르고, 언론 앞에 서면 예외 없이 겸허하게 받아들임을 약속하는데, 과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새삼 말의 허허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는 말뿐인 겸허함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 잘난 사람들은 그 넘쳐나는 잘남을 자신과 제 가족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자신보다 부족한 곳으로 가뭄에 감로수가 되어 그곳이 어디여도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하고, 사회에서 그 잘남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감사하며 진정한 인간애를 통해 함께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은 물이 넘쳐 부족한 곳을 채우며 흘러가는 강물과 같으니 도도하고 유유하며 평화로울 것이니 거기에는 오만도 겸허도 없는 그저 함께 해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섭리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