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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YES 시대

등록일 2017-05-18 02:01 게재일 2017-05-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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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모든 것이 YES다. 대한민국이, 또 이 나라 언론이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을 향한 해바라기가 되어 무조건 YES를 외치고 있다. 그가 하는 것은 어떤 것도 다 용납된다. 아니 용납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된다고 언론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외친다. 자유 국가에서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걱정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또 하나의 절대가 되지 않을까 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절대의 폐단(弊端)에 빠져 허덕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의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다 된다. 폐지(廢止)하라면 폐지해야 하고, 불러라 하면 불러야 한다. 그리고 오라고 하면 와야 하고, 가라고 하면 가야 한다.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언론을 비롯해 그의 추종자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댓글을 보기가 무섭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데 왜 딴지냐고, 그것도 이해 못 하느냐고, 혹시 적폐세력 아니냐고 비아냥거린다. 웃기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는 절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뉴스, 포털사이트를 보면 노골적으로 한 사람 띄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느 뉴스 채널은 광고 시간에도 화면 좌측 상단에 `○○○ 정부 출범`이라는 제목을 달고 노골적으로 정부 행사를 광고 하고 있다. 또 모 라디오 방송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 지난 정부 출범 때는 핵실험을 했다 식으로 현 정부를 미화하고 있다.

뭔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는 노력에는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시작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달라 보인다. 또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일방적이고 인위적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지금 청와대 모습을 보면 왜 최근 임기를 마친 미국 대통령이 데자뷔(deja vu) 되는지. 대통령들의 모습은 조금 닮아 보이는데, 그들의 모습을 보도하는 언론들의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창조의 시작은 모작(模作), 즉 따라하기부터이다. 처음부터 자신의 완벽한 색깔을 가진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은 없다. 창작하는 사람은 창작에 앞서 먼저 자신이 롤 모델로 삼을 작품을 정한다. 그리고 수없는 필사를 통해 규범을 익힌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대로 수학한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의 것만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인정과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같이 발전한다.

지금 이 나라도 거리마다 도배된 “새로운 대한민국, 함께 갑시다”라는 현수막 아래 창조에 가까운 새 집 짓기가 한창이다. 그 집은 한 사람을 위한 크고 화려한 성과 같은 집이다. 공사 감독은 언론사이고, 자재는 말이다.

공사에 사용되는 자재는 무제한이다. 자재가 무한대이다 보니 시공자들은 무조건 최고로 화려한 자재들을 최대한 사용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 지어지는 성은 입주자 보다 시공사의 입맛에 맞춰진 것 같다는 것이다. 시공사인 언론들은 공중파라는 최고로 막강한 조직을 이용해 국민들을 비롯하여 입주자까지 세뇌시키고 있다. 세뇌의 답은 무조건 YES다.

오죽했으면 초등학교 4학년 나경이가 말할까. “아빠, 우리 선생님에게 선물 드릴 수 있도록 김영란 법 고쳐달라고 대통령께 말해봐. 그럼 고쳐 주실 거야.”

`벌거벗은 임금` 이야기를 다 알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까지 우리에겐 벌거벗은 임금과 그를 그렇게 만든 신하들 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만큼 힘들었는지도, 또 이만큼 힘든지도 모른다. 부디 지금부터라도 더 이상 벌거벗은 임금이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과 같은 “무조건 YES”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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