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화두는 소통이다. 소통의 괴력을 우리는 18대와 19대 정부를 통해 너무도 잘 보고 있다.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참담한 결말을 본 사람들은 소통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그 모습을 언론들은 놓치지 않고 방송으로 내 보낸다. 그것도 우리나라 방송사의 방송 철학인 세뇌의 원칙에 따라 무한 반복한다. 혹 최근 언론들이 내보내는 청와대 관련 뉴스들의 영상 또는 사진 출처를 본 사람들이 있는지. 물론 그 출처는 청와대다. 그만큼 소통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 진심은 어떨지?
소통이 부재된 사회는 곧 암전(暗轉) 사회와도 같다. 암전 상태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긴장을 넘어 민감해진다. 민감해진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벽을 만드는데, 그 벽의 이름은 불신이다. 불신은 암보다 전이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조직 파괴력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소통이 부재한 불통 사회는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만다.
소통과 불통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론 도출 과정이다. 소통은 어떤 상황에서든 결론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을 모아 최선의 결론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거기서 조직력이 생긴다. 반면 불통은 누군가에 의해 미리 결론이 나 있으며, 그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혹 그 결론에 대해 입을 대는 순간 그 사람은 인신폭격의 대상이 된다.
간혹 소통에 대해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결론에 대해 설득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들만의 착각이다.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는 상태에서, 또 그 결론이 바뀔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의 이야기 시도는 소통이 아니라 밀어붙이기 식 불통밖에 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만약 설득이 되지 않으면 다양한 무리수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우리는 정치인들의 꼴불견을 통해 너무도 잘 봐왔다. 그 꼴불견을 지금 또 볼 줄이야.
얼마 전 뉴스에서 밀어붙이기 식 불통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았다. 뉴스는 `현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가 중기중앙회를 방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정기획자문위는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중기중앙회 담당자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무엇이 소통인지 정부에 따져 묻고 싶었다. 그리고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계속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돈 많이 주는 데야 누가 뭐라고 하겠냐마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지금까지와 뭐가 다른지.
조국 산하는 말라가고, AI는 다시 창궐할 기세고,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새 정부 인사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물론 과거도 중요하다. 과거를 바로잡지 못했기에 지금이 이만큼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집착을 현재로 조금만 돌리면 어떨지. 현재가 있어야 과거도 있다는 것을 그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현재와 미래까지 잘해보려고 하는데 인사 청문회에서 발목을 잡고 있지 않느냐고. 정말 말하고 싶다. 차라리 “`공직 배제 인사 5대 원칙`은 처음부터 이 나라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이상적인 이야기고, 그냥 일하고 싶은 사람들과 일할 테니 적당히 눈 좀 감아달라”고 솔직히 말하라고.
지키지도 못할 원칙을 왜 만들어서 발목을 잡는지, 비록 지금이야 사람들이 모른 척하고 있지만 신상 털기 청문회를 시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반대를 위한 반대의 원조가 누구인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가뭄 때문에 청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 여의도에선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청개구리 소리가 너무 잘 들린다. 검찰 길들이기 개혁 등 다른 개혁은 다하면서 왜 정치 개혁은 안 하는지, 소통을 가장한 새로운 불통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지 청개구리 소리가 심상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