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하지만 가뭄 해갈에는 어림도 없다. 지난주까지 전국은 물과의 전쟁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잘 보여주지 않던 학교 앞 오산천 바닥이 드러났다. 지하수까지 말랐다며 한숨지으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주름 깊은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하늘은 물론 절대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지금 내린 단비는 극심한 가뭄에도 서로 물을 나누는 농민들을 위한 하늘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하늘이 완전히 마음을 연 것은 아니다. 지금 돌아가는 나라꼴을 보면 언제 하늘이 다시 비를 거둘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하늘은 아직 멀었다며 더 독해질 수도 있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말이면 다 된다. 그의 말은 업무 지시 형태로 하달되는데, 그것은 법보다 더 위에 있다. 만약 지금의 법으로 업무 지시를 이행할 수 없으면 법을 바꾸어 버린다. 이에 대해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할라치면 언론들은 99% 지지율이라는 통계의 마법으로 방어막이 되어준다. 이왕 띄워 줄 거면 차라리 100%라고 하지 왜 1%를 뺐을까. 99%보다 1%의 의미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또 뭘까.
“국민의 여론상 이미 검증이 끝났다고 본다”라는 청와대 어느 수석의 말에서 99%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사전에는 여론(輿論)을 “사회적인 쟁점이나 문제에 대한 대다수의 의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99%라는 숫자만 본다면 분명 국민의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아전인수의 달인인 꼼수 정치인들은 그것이 전부인 양 포장하기 바쁘다.
올해 산자연중학교는 사이버폭력예방 선도학교로 선정됐다. 그래서 학생들과 다양한 사이버 폭력 예방 수업을 하고 있다. 첫 시간에 네티켓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전에서는 네티켓을 “네트워크(network)와 에티켓(etiquette)의 합성어로, 네티즌이 네트워크 상에서 지켜야 할 상식적인 예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학생들의 수업 자료를 준비하면서 필자는 몇 번이고 수업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정치와 관련한 댓글을 제발 클릭하지 않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정치 관련 댓글들을 보면 무슨 신흥 종교 집단이 출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내용이 섬뜩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찬성과 반대, 반대편에 대한 테러에 가까운 인신공격, 그리고 맹목(盲目)적인 추종! 그것은 이단적인 종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모습이다.
맹목적 세력에 의해 눈귀가 가려진 어느 대통령의 비참한 나날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맹목은 자기는 물론 상대의 눈귀를 멀게 한다. 맹목적인 사람의 눈은 마치 바늘귀와 같다. 아니 바늘귀보다 더 작다. 그래서 거의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본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양 착각한다.
또 맹목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성이 마비된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말초적 감성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극적으로 변한다. 자극은 내성이 강해 직전 자극보다 훨씬 더 큰 자극이 주어질 때만 만족된다. 그래서 어쩌면 99% 여론이 가능한 지도 모른다. 99%는 분명 벌거벗은 임금을 만드는 숫자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언론이 제공하는 여론은 여론(輿論)이 아니라, 여당(與黨)의 의견인 여론(與論)일지도?
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다는 민심무상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들의 진짜 마음인 여론(輿論)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진짜든 아니든 언론이 말하는 99%의 지지율이 계속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실패한 과거 정부들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과대망상 업무지시는 더 이상 없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