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궁핍함과 미래의 기대를 함께 검정색 교복 양쪽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넣고 다니던 고교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암담하였으나 돌아보면 참 그리운 시절인 1970년대 까까머리 중·고교 시절, 그 당시 나를 매료시켰던 것으로 서부영화와 권투중계를 빼놓을 수 없다.
광활한 서부에 석양을 등지고 흙먼지를 날리며 말을 달려 온 사나이가 번개 같은 총 솜씨로 무법자들을 응징하고 마을의 평화를 회복한 후 유유히 평원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환호하였고, 화질 나쁜 흑백TV로 중계된 권투중계에 열광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복싱영웅들을 뚜렷이 기억함은 물론이거니와 어려운 이름의 상대선수들까지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니노 벤베누티며 헥토르 카라스키야 등.
서부영화의 총잡이들은 상대방을 등 뒤에서 쏘지 않고, 권투시합에서는 가드를 내리고 뒤돌아서는 상대를 가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래서 함부로 뒷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할 일이다.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다워야 한다던가? 아마 더 이상 스스로를 방어할 기회가 없는, 그것이 마지막 모습인 까닭일 것이다.
현대는 외모도 스펙이 되는 시대라 나름대로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관리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는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모습으로 개조하기 위하여 성형수술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대학 입시나 취업시험에서는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니 합격을 위해서는 자신을 스토리텔링 하는 `자기제품설명서`도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자기를 돋보이게 설명하기 위하여 혼신을 다하는 것이다. 직장을 은퇴한 이들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 홀가분한 한편, 혹시 세상에서 쓸모가 없어진 건 아닐까하는 염려로 자꾸 스스로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된다.
그들의 모습은 과연 어떤가? 그들의 몸은 그 자체가 이미 스토리텔링이 되어있다. 지난한 삶을 살아온 만큼의 무게를 짊어진 휘인 어깨와 희끗한 머리카락, 얼마나 숭고한 모습인가!
한 생을 온전히 살아낸 경험자들은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자연의 일부이며, 모든 일은 자연의 섭리대로 돌아간다는 자명한 이치를 안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빛난다는 불교경전 금강경은 아상을 버리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내 것이라 착각하고 살아온 우리의 몸 역시 허상일 뿐이며, 보잘 것 없는 늙은 육신에는 그 사람의 세월이 담겨있어 가릴 수도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급급해 진실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삶에서 껍데기에 불과한 몸뚱이라는 물질이 진실한 세월을 담고 있으니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몸을 혹사하며 살았던가? 그 몸이 정녕 내 것이었던가? 몸이 늙고 아픈 곳이 늘어나니 비로소 내 것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함부로 했다는 미안함이 생긴다.
나의 존재가 생물학적 생명의 탄생이었건 종교적 신의 창조물이었건 간에 나는 내 몸을 만들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던가?
한 평생 고생한 내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여 이제라도 위하고 가꾸어 곱게 벗어 놓고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떠나는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새 정부의 인선에 하마평이 무성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정기 인사를 단행하였다는 소식이다.
떠나는 자들과 언젠가는 떠나야할 자들 모두의 뒷모습이 아름다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