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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

등록일 2017-07-13 02:01 게재일 2017-07-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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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나경이 번호였다. 바로 받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최대한 빨리 연락을 했는데, 다행히 첫 울림에 받았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부터 부렸을 텐데, 한껏 들뜬 목소리로 필자를 불렀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 바탕 쏟아냈다.

“아빠, 나 시험 정말 잘 봤다. 아빠랑 약속 지켰어. 아빠도 나랑 한 약속 꼭 지켜야 해.” 필자의 대답은 처음부터 들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말 추임새뿐이었다. 아이는 완창을 하는 소리꾼처럼 흥이 나서 얼마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창 하듯 늘어놓았다.

“아빠, 나 모두 70점 넘었다. 40점이나 올랐다. 정말 잘했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이의 한숨 섞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근데 아빠, 내 친구 정말 불쌍하다. 시험 못 쳤다고 울어. 엄마한테 혼난대.” “나경아, 친구는 몇 점 맞았니?” “94점! 친구 엄마가 100점 맞지 않으면 혼낸다고 했대.” “그럼 너도 혼 좀 나야겠네?” “우리 아빠가 왜 이러실까? 이래 봐도 78점 맞은 사람이야.”

다른 것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전화기에서는 이미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 친구의 엄마처럼 100점을 맞지 못한 것에 대해 혼을 내야 할지! 집에서 본 아이는 목표 점수인 70점을 넘겼으니 더 이상 공부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선언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인 스케치 노트를 들고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아이의 흥얼거림에 잠시 멀미가 났다. 그리고 폭풍 같은 질문들이 머리를 아프게 했다. 정부가 특권 교육을 없애겠다고 야단이다. 도대체 뭐가 특권 교육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 교육 개혁이라는 것이 `교육 날개 자르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학과 사회 서열화가 공고한데 어떻게 “서열화 된 고교 체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인지. “교육 사다리를 복원해 공평한 학습사회를 구현해 나가겠다.”라는 외침이 왜 공허한 메아리로밖에 안 들리는지. 또 “공평한 학습사회”라는 말이 필자에게는 `99%의 평범한 삶`으로밖에 들리지 않는지. 특권을 없애고, 공평하게 한다면서 또 사다리는 뭔지.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 사다리는 이미 걷어 차인지 오래다. 그 사다리를 걷어 찬 것이 적폐세력보다 무서운 기득 세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의사 집안에서 의사 나고, 판검사 집안에서 판검사가 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만약 멘델이 살아 있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자신의 “우열의 법칙(優劣 法則)”이 적중했다며 좋아했을까. 그는 `우성 절대 우위의 법칙`을 발표 했을지도 모르겠다. 우성 직업군 가계의 자손과 열성 직업군 가계의 자손이 경쟁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되는지 현 정부의 사람들은 정녕 모를까. 한 때는 열성이었던 그들이 지금의 우성이 되어 자신들의 세상을 만난 듯 행세하고 있으니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성이 된 이들의 노래가 들린다. “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아이 참 재미있구나!”

특권 교육을 받아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특권 교육을 없애겠다고 하니 웃길 노릇이다. 왜 중고등학교 교육만 가지고 야단인지, 정녕 이 나라 교육을 망치고 있는 `SKY 병`의 근원인 서열화 된 대학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안 하는지. 고등학교의 특권 교육이 아니라 명문대학교에서 명문만 떼어내도, 그래서 어느 대학을 가도 주눅 들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만 있어도 이 나라 교육이 이만큼 병들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안다, 100점과 일류병에 빠져 있는 학부모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은 “교육은 희망이다!”라는 말이라는 것을. 과연 나경이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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