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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세상이 미국 일로 떠들썩하다. 김기종이라는 이가 주한 미국대사 리퍼트 씨를 크게 다치게 했다는 것이다. 공중파 방송은 물론이고, 종편 채널들도 며칠씩 이 사건을 크게 다루고 있다. 김기종 씨는 미국의 군사훈련을 중지하라고 외쳤다고 하는데, 과연 이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런데 이는 곧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단적으로 말해 미국은 제국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중국이나 러시아를 제국으로 보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그렇다. 중국이 제국이고, 또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인 것은 자명하지 않을까? 또 러시아도?그러나 이 나라의 현실에 비판적인 이들 중에는 미국은 반통일 세력, 제국, 나아가 제국주의 국가라고 보면서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사실, 우리는 바야흐로 제국으로의 재기를 꿈꾸는 일본까지 합쳐, 제국들에 둘러싸여 있고, 이들의 이해 관계를 떠나 우리 문제를 생각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미, 중, 일, 러, 네 나라 가운데 어디 자국 이익 돌보지 않고 우리를 도와주려는 나라가 있나? 없다. 그리고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가라는 것의 생리다.그러니 어디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이 미국뿐이랴. 중국이라면 더욱 한반도 통일을 더욱 끔찍하게 여길 것(?)이며 러시아도, 일본도 속내는 다르지 않을 테다.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한반도 통일을 조금이라도 지원해 줄 제국이 있겠느냐 생각해 보면 그것은 미국일 수밖에 없다. 미국만은 한국이 정말 통일을 원한다면 도와줄 수도 있다. 그것이 그들의 국익에 맞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또, 통일을 바라지 않을 세력은 어디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당국일 것이다. 외부에서 밀려들어올 어떤 종류의 훈풍에도 화들짝 놀라 경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그네들이 아니던가.그들은 입만 벌리면 통일을 말하고 한국정부를 반통일세력이라 몰아부친다. 속이 뻔하게 들여다보이는 수작이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여기에 늘 속아 넘어가는 이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 가운데 너무 많다.요컨대, 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나 형국을 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이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해방 직후의 한국인들에게도 미국이나 소련은 어려운 화두 중의 화두였다.이 두 나라를 어떻게 봐야 하나? 당시 대부분의 좌익들은 소련을 해방자로 인식했다. 또 우익 대부분도 미국을 해방자로 인식했다.그러나 다르게 생각한 이도 있었다. 채만식이 바로 그런 유형이었다. 그의 소설 `역로`인가를 보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인물 중 하나가 소련도 제국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에 소련이 아제르바이잔 사태에 개입한 것을 두고 이런 논의가 오갔던 것인데, 당시에 소련은 바쿠 유전지대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군대를 물리지 않았던 것이다.오늘날은 어떤가? 미군은 왜 한국에 있나? 중국은 왜 북한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나? 다 그들에게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도, 북한에도 이익이 된다! 만약 미군이 없다면 한반도가 전쟁 없이 안전할까? 상상할 수 없다.내가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것, 미국이나 중국 같은 제국들을 철부지 같은 낭만적 시선으로 보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이 필요해서 지금 여기에 있으면 그뿐이다. 선거도 없는 중국보다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그래도 확실히 낫지 않은가?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은 지리적으로 너무 가깝다.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한반도에서는, 당분간은,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지만 미국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2015-03-12

포항, KTX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KTX가 처음 생겼을 때 참 좋았다. 대전까지 불과 한 시간, 멋진 주행 시간이었다. 마음이 한가롭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훌쩍 갔다 금방 올라올 수 있는 그 단축이 좋았다. 그후 시간이 많이 흘렀다. 2004년 4월 1일에 경부선을 개통했다 하니, 벌써 10년도 더 지났다. 익숙해졌다. 일상이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도, 생각도 변했다.요즘 몇 년 동안은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를 타고 대전에 간다. 부모님을 만나러, 친구를 만나러, 옛 동네를 찾으러, 생각할 여유 찾아, 시간 나면 느린 기차 타고 대전에 간다.참 그 두 시간이 좋다. 서울역에서 천원 짜리 원두커피를 사서 천천히 기차를 찾아 오른다. 무엇보다 이 느린 기차들은 좌석공간이 넓다. 기차삯이 싼 데도 자리가 넓다보니 덤을 얻는 기분이다.기차를 타면, 책을 펴거나 글을 쓰거나 창밖을 본다. 이런저런 생각에도 잠긴다. 그중에도 글을 쓰는 일이 좋다.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산문도 쓴다. 세상이 좋아지다 보니 스마트폰이라는 게 있다. 배터리만 충분하면 걱정할 게 없다. 빨리, 서둘러 쓸 필요 없는 글들, 스마트폰 글자 찍어 누르는 속도에 정확히 알맞다.한참 쓰다 머리가 무거워진 듯 해서 고개 들면 창밖이 환하다. 연푸른 하늘빛 아래 메마른 들판, 지붕 낮은 집들, 갈라진 길들, 이파리 없는 겨울 나무들, 전봇대, 날아가는 새, 행인들…. 눈이 밝아지는 것 같다. 머리가 깨끗하게 씻기는 듯하다.그런데 언제쯤이었나? 무심코 새마을호 표를 사서 탔는데, 그게 바로 새로 생긴 ITX 새마을호였다. 싸고 느려서 좋기는 한데 차량이 낡은 게 단 하나 아쉬움이었던 나는 이 새로운 새마을호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무엇보다 한결 더 넓어졌다. 기차에 올라타면 널찍한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화장실도 장애인용 시설까지 잘 갖추어져 있다. 여행짐을 올려놓는 선반도 기차 호실 안에 안전하게 설치해 놓았다. 맨 앞자리나 뒷자리에는 좌석을 덜 배치해 드나드는 데 지장이 없도록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것 하나.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는 소켓 플러그들이 앞뒤로 여럿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그렇게 해서 ITX 새마을호는 꿈의 기차가 되었다. 이 기차에도 식당칸이 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궁화호에는 확실히 있었다. 좌석표를 구할 수 없을 때는 이 식당칸에 가서 커피를 한 잔 사서 창밖을 향해 놓인 의자에 앉는다.그렇게 창밖을 보며 천천히 여행하는 한가로움은 그 어떤 사치도 부럽지 않을 정도다. 수원, 평택, 천안, 오송 같은 역을 하나하나 세며 대전으로 가다 보면 먼 옛날 비둘기호를 타고 간이역마다 서던 아련한 추억의 냄새가 난다.며칠 전, 포항에도 KTX 시대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좋은 일이다. 이제 포항도 확실한 일일생활권에 합류했다. 포항에 오가는 일이 많은 내게 반갑다면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그게 아마 4월 초였다고 했다. 두 시간 이십 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내가 무궁화호나 새마을호 타고 대전에 오가는 시간 정도 된다. 기대도 된다.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될까? 한편으로 웬지 아쉬운 이 기분은 뭘까? 포항이 그렇게 가까워진다는데 무엇이 어떻게 아쉽다는 뜻일까?해서는 안 될 말인지 모르겠다. 포항은 웬지 서울에서 멀리 있어야 할 것 같다. 영일대해수욕장 바다, 그 너머 더 파란 동해바다, 깔끔한 바다횟집, 그곳에 가서나 맛볼 수 있는 싱싱한 고래고기, 정 깊은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은 그곳에 더 멀리 있어 늘 더 많이 그리워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 모든 것들이 지켜질 것 같다.속도는 그 모든 것을 빼앗아갈 것만 같다. KTX 시대가 정말 열리기 전에 느린 기차를 타고 포항에 가야겠다. 그 바다를 보아야겠다.

2015-03-05

졸업식을 앞두고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졸업식 시즌이다. 낮에 어딘가를 가는데 때아니게 차가 하도 막혀 이상하다 했더니 바로 졸업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졸업식이기도 하다. 두 시에 학교 전체 행사가 있고 네 시에 학과에서 따로 행사가 있어 참석하기로 했던 것을 바로 전날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좋은 학교라고 들어와 열심히들 보내다 가지만 필자에게 우리 학생들처럼 안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도 없다. 다른 지역이나 학교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필자 세대나 그밖의 다른 세대와 비교하여 그렇다는 말이다.정규직! 요즘 학생들은 우리 학교나 다른 학교나 오로지 이 단어밖에는 머리 속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사회가 그만큼 문이 좁기 때문이고, 이 좁은 문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요즘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이미 장래를 결정 지은 사람들처럼 움직인다. 고시를 보거나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려면 영어를 어떻게 하고, 학점 관리는 어떻게 하고, 어떤 부전공을 선택해야 유리할 것인가를 따지곤 한다.한마디로 말해 영악한데, 이 영악함 아래에는 사회에 대한 공포심이 숨어 있다. 그러니 학생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사회도 바꾸고 만들고 했다지만 지금 학생들에게는 그런 의지도,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학생들의 심리를 짓누르고 있다.이렇게 4년이고 5년이고 보내고, 군대까지 합치면 7년 세월을 힘겹게 보낸 학생들을 어떻게 내보내야 하나? 이것이 필자의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열심히 적응해서 어딘가에라도 합격한 학생은 일순이라도 마음이 편할 수 있겠지만 갈곳 없는 학생이라면 더욱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테다.지금은 철책선에 근무하고 있는 졸업생 하나가 생각난다. 1학년 때부터 몹시 도전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이었고, 그만큼 수업에 만족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교양 국어 시간에 만났고 우리 학과에 들어온 학생도 아니었다. 그러나 문학이 그의 원대한 꿈이었고, 작가가 되어야 하니 취직해서 살 생각은 없노라고 했다. 지식의 추구가 남달라서 남들 하는 취직 공부, 고시 공부와는 다른 공부를 했다.그가 어느날 필자를 찾아왔다. 군에 입대한다는 것이었다. ROTC 장교로 소위로 임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일생에 직장 같은 것은 가지지 않을 생각이니, 이번 군 생활을 마지막 조직생활로 보고 최선을 다해 근무해 보겠노라 했다.멋진 생각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언제 학사장교를 준비했는지도 놀라웠다. 필자는 그의 씩씩하고 의젓한 새출발을 힘껏 축원해 주었다.그가 지금 생각난다. 바로 어제 이 김 중위에게 전화를 했었다. 군에 가면서 그는 낮에는 열심히 근무하고 밤에는 책을 읽겠노라 했건만, 밤 9시나 10시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 악조건이라 했다. 책은 어렵고 하루에 시 한두 편 읽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고도 했다.만 1년만에 김 중위의 목소리는 한결 차분해졌고, 또 그만큼 어떤 피로를 느끼게 했다. 필자가 전화를 해준 것이 정말 큰 위안이라고, 그 말을 두번씩이나 하는 것을 들으며 그의 외로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그러나 전화를 끊으며 필자는 생각했다. 그는 이겨낼 것이고 돌아올 것이고 마침내 작가가 될 것이라고.내일 졸업식. 필자는 진로가 확정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남들과 같이 가는 일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의지, 더 많은 사유. 우리 학생들에게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2015-02-26

훌륭한 작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지난 5일 대구에 갔다. 경북대학교에서 국제학술대회가 있었고, 거기서 필자는 작가 이상과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관련성을 이야기 했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상, 그러나 그의 명성은 그의 사후에도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혹자는 그를 가리켜 천재작가라고 한다. 하늘이 낸 사람이라 그렇게 잘 썼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가 뿌려놓은 이야기들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는 기생 금홍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비롯하여 숱한 일화들을 남겨 놓았고, 더구나 폐결핵으로 이르게 세상을 떠남으로써 하늘은 재주 많은 이를 시샘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아마도 그의 명성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치부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필자가 이상과 도스토예프스키, 특히 소설 `날개`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비교 검토하면서 얻은 생각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자신보다 앞서 있는 작품들을 단지 감상의 차원에서 읽는 이는 절대로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없다. 이래서 좋았다거나 어디가 나빴다는 식으로 작품을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볼 뿐인 작가는 언제나 자기 한계 안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진짜 작가는 그와 다르다. 그는 앞선 작가들을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문학적 현실로 받아들이고, 소화시키고, 또는 그것과 치열하게 싸운다. 말하자면 이상이 도스토예프스키를 그렇게 상대했다.`날개`의 프롤로그 부분을 보면, 이상은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19세기는 차라리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차라리 낭비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어떻게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라면 `죄와 벌`로, `까라마조프의 형제들`로, `백치`, `악령`으로 오늘 이 시각까지 세계적인 대문호의 지위에서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 아니던가.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무식하면서도 오만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덮어놓고 명성을 가진 자를 무시하려 든다. 그가 어떤 정신의 고갱이를 가지고 있었는지 헤아려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다른 하나는 충분히 숙고한 후에 초극하려는 사람이다. 이상에 있어서의 도스토예프스키로 말하면,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이 지닌 의미를 깊이 따져보려 했다.`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보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시대인 19세기를 현대로 인식했고, 그 현대의 의미를 깊이 성찰했으며, 자신이 처한 러시아적 현대성과 맞싸우려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유럽적 지성들, 또 그들의 논의를 작품에 끌어들였고, 때문에 불란서의 `앙뉘(ennui)`, 즉 권태를 자신의 소설 속에 이끌어들였다. 유럽적 현대성에 대비되는 러시아적 현대성을 자기 문제로 의식하고 싸워나갔던 것이다.이로부터 이상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처리하는 방식을 뜯어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시대인 20세기의 현대성을 강렬하게 의식했고, 그러한 맥락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19세기의 현대성을 처리한 방식을 탐구했다.그 결과가 바로 소설 `날개`였다. 이 소설에서 페테르부르크 네프스키 거리를 살아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는 식민지 시대 경성의 피로한 거리를 주유하는 백치적 지식인으로 재탄생했다. 이 소설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창녀 리자는 창녀적인 아내 `연심`으로 되살아났다.`날개`를 통해서 보는 이상의 문학은 뼈의 문학, 현실의 본질을 투시해보려는, 엑스선의 문학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마찬가지로 깊은 자의식으로 파놉티콘을 방불케 하는 20세기 초반 서울의 모더니티와 맞싸우려 했다.필자는 이상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상대하는 방식에서 문제적인 작가가 출현하는 메커니즘을 본다. 훌륭한 작가는 전통을 의식하고 그것에 합류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진 존재여야 한다.

2015-02-12

난징에서 교토로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일주일을 이렇게 잘게 쪼개 쓸 수 있다면 어떤 좋은 일도 이루어 낼 수 있겠다. 창작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명색이 지도교수가 되어 먼저 난징, 항조우, 상하이 여정을 달렸다.중국에서의 며칠은 힘겨운 나날이었다. 중국에는 중국만의 표준이 있었다. 카드도 비자니 마스터니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드물었다. 오로지 유니온 페이라는 중국제 카드만 통용되었다. 기차표를 살 때도, 음식점에 갈 때도 오로지 자국 것만을 주장하는 대국다움에 처음부터 기가 질린 여행이었다.하지만 중국은 정녕 무서운 국가다. 여행가방이 바퀴가 빠질 지경으로 달려 항조우의 기차역으로 갔을 때 우리는 그 방대한 크기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우주 항공모함이 바로 거기에 정박해 있었다. 외관은 초현대성을 지향하고 내부는 월드컵 축구 경기장 만한 항조우 기차역에서 나는 이 중국을 무시하고는 한국의 미래도 점칠 수 없음을 절감해야 했다.그리고 거기 항조우에 상하이로부터 머나먼 충칭까지 옮기고 옮겨다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옛 청사가 있었다.말이 청사다. 그곳은 상하이에 있는 작가 루쉰의 3층짜리 거처보다도 작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누옥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곳이 그 옛날 일제시대에 독립정부가 그 존재를 이어가던 곳이다. 김구, 윤봉길, 이봉창 같은 이름들을 되새기며, 그들의 머나먼 행로와 젊은 희생을 생각하며 나는 항조우 임시정부의 태극기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상하이에서 하루 자고 루쉰의 상하이 시대 십 년이 숨쉬는 루쉰 문학관과, 그가 마지막 생애를 보낸 집과, 그가 숨을 거둔 침대를 보고, 서울로 돌아왔다. 다음날 바로 교토에서 오사카로 연결되는 여행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교토라면, 마치 먼 옛날에 떠나온 곳 같은 아련함을 선사하는 곳이다. 일본 천황이 누대를 이어온 곳, 겐지모노가타리와 금당벽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윤동주와 정지용의 숨결이 일렁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이 모두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서 공부했고 그들의 시비가 그곳 교정 한 편에 세워져 있다.나는 하루는 일행들과 함께 어마어마한 불상이 있는 도다이지에도 가고, 거기서 옛날 그렇게 무섭게 보이던 사슴들도 정답게 보고, ANA 호텔 조촐한 침대에 누워 객창감을 달래기도 했다.하루는 걸었다. 오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이죠성을, 오후에는 도시샤 대학으로, 교토 타워로, 정지용이 거닐던 오리천으로, 게이샤들이 아직도 있다는 기온 거리를 쏘다녔다.일주일 사이에 이 몸은 난징에서 서울을 거쳐 교토까지 돌았다.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할 여행길에 동아시아 세 나라가 가까워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자리에 누워 팔베개하고 생각한다. 중국은 크고 무섭게 초현대화 하고 있고, 일본은 어딜 가나 정석에 깨끗하고 조용하다. 우리나라는?아침이 되자 언제 들어오셨는지 모르는 룸메이트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사람들이 밀려 있다. 순번 티켓을 주고 자리가 비고 치우고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뷔페식이지만 오늘은 일식 정식을 먹을 참이다. 너무 많이 먹고 마시고 달려온 일주일이었다.음식을 차려 가져와 앉으니 창밖이 보이는 곳이다. 눈이 내리고 있다.교토의 눈은 흔치 않다. 따뜻한 고장이라서 그런지 물기를 함뿍 머금은 눈송이가 탐스럽다. 유리창 벽면 가득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한다.갈 길이 멀다. 어디로 가든 나의 나라로 돌아가는 길, 그렇게 멀어 보일 수 없다. 멀리서 보아 더욱 애잔한 나의 나라여.

2015-02-05

`춘향전`에서 `은세계`로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춘향전`은 18세기의 국문 고전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최근에는`심청전`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춘향전` 주해서나 연구서를 꽤 탐독할 정도였다. 또 임방울 같은 20세기 초엽의 판소리꾼이 부르는 `쑥대머리` 같은 것도 아주 좋아해서 신나라 레코드에선가 내던 복각판 씨디도 즐겨 사곤 했다. 이 `춘향전`은 사랑을 주제로 삼은 대작일 뿐만 아니라 사회변동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 문제작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김태준은 이 `춘향전`에서 근대를 향한 조선사회의 이행을 보았다. 그가 쓴`조선소설사`에서`춘향전`은 아주 높은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이 작품의 흥미로운 요소 가운데 하나는 어사가 된 이도령이 변학도를 징치하는 대목이다. 변학도는 조선시대의 탐관오리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이도령은 잔칫상을 앞에 두고 그를 꾸짖는 시를 읊는다. 나는 이 시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들어 외우고 있었다. 이 칠언절구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 사람의 기름이라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 눈에 눈물이 흐르고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의 소리도 높아라”변학도의 가렴주구를 꾸짖는 시에 문자 깨나 익힌 이웃 고을 등에서 온 벼슬아치들이 허둥지둥 살 길을 찾고자 할 때, 마침내 어사출두의 높은 소리가 터져 나온다.그런데 이 호쾌한 장면은 우리가 다들 잘 알고 있듯이 해학이 넘치고 있고, 이로써 변학도를 비롯한 지배계층과 민중의 갈등은 춘향이의 재생이라는 해피엔딩으로 귀결된다.말하자면, 18세기에만 해도 이와 같은 중화 작용, 갈등의 해소가 가능했다는 말이다.19세기 말이 되면, 그러나 사정은 달라진다.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걸린 이때 친일파 이인직은 `은세계`를 썼고, 여기서 최병도라는 자작농으로 하여금 정 감사의 가혹한 고문에 항거하다 죽어가도록 설정했다.이인직의 논리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바, 조선의 지배계급이 이처럼 가혹한 학정을 일삼으니 어찌 왕조를 지탱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작중에서 이인직은 최병도로 하여금 이번에 자신이 정 감사와 타협한다고 해도 거듭 일이 계속될 것이라 하며 벼슬아치를 향한 원한을 간직한 채 죽어버리도록 한다.이인직은 조선왕조의 지배계급의 부패와 가렴주구를 들어 나라를 팔아먹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고자 한 것이다.조선의 역사,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시기를 보면 우리는 보다 현명했어야 함을 깨닫는다.나라와 사회는 어디에나 부자와 빈자가 있고 상층과 하층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은 유토피아가 아니고는 피할 수 없는 인간 삶의 근본조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회, 나라는 이 두 개의 세력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을 지양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특히 아랫사람들, 빈자들이 삶의 의미와 보람을 얻도록 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다. 왕도정치니 위민정치니 하는 것이 다 그런 것이다.패도에 치우친 시대는 그런 정치가 왜 필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공자의 고사에 등장하는, 가정맹어호, 즉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의 뜻에 귀 기울일 줄 모른다.이때 위기가 닥치게 마련이다. 옛 일을 교훈 삼는 것도 다 이런 파국을 면하기 위함이다.

2015-01-29

고지식한 사람들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전북 김제에 있는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에 다녀왔다.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은 김제평야를 무대로 삼은 대하소설 `아리랑`을 기념하는, 개인 문학관으로서는 대단한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1층, 2층에 설비된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나는 조정래라는 작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순 원고지로만 쓴 `아리랑` 원고가 자신의 키보다도 훨씬 높이 쌓여 있었고, 그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취재한 기록들, 스케치들, 수첩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놀라운 것은 그가 직접 그린 스케치들인데, 여기에는 그의 창작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그는 자신의 소설의 무대들을 직접 발로 뛰어 다니며 그 다닌 경로들, 특정한 공간의 지형들을 고등학교 때 화가가 되고자 했던 사람의 실력으로 섬세한 펜화를 남겨 놓는데, 이 과정은 곧 그의 머릿속에 자신의 소설 속의 영상을 사진을 찍어 놓듯이 인쇄해 놓는 것이기도 하다.작가가 직접 말하기를 자신은 세밀한 시놉시스를 작성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독자들이나 비평가들이 쉽게 믿기 어려운 점이지만, 대신에 그는 이 영상들을 밑그림처럼 그려놓음으로써 그 긴 소설들을 유려하게 써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아리랑 문학관 기행을 마치고 우리는 김제 시내의 한 음식점으로 갔다. 그곳은 김제평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지평선이라는 말을 붙인 음식점이었고, 호남답게 굴이며, 삼합이며, 쇠고기 육회며, 전이 싱싱하고도 맛깔스럽게 나오는 것이었다.그리고 나중에 이건식 김제 시장이 오셔서 여유롭고도 예의바르게 우리를 맞이하는 따뜻한 말씀들을 해주셨다. 한 사람의 문학인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 공적인 사회가 그를 대하는 방법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리였다.여기서 다른 일행들은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향했고 나만은 따로 떨어져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그러고 보니 김제와 전주는 버스로 4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전주에는 그리고 오수연 선배가 살고 있다. 한국일보 문학상을 탄 작가이고 나의 대학교 같은 과 선배이자 연극회 선배이기도 한 오수연, 그가 작년부터인가 전주에 내려가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의 다른 약속 때문에 빠듯하지만 다만 한 시간이라도 만나서 정담을 나눠 보면 좋을 것 같다.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 전주에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고속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나 밀린 얘기들을 한다. 그런데 일행들과 헤어질 때 박광성 `작가세계`주간이 선물을 하나 들려 보내 주었다. 그것은 잡지 여름호에 단편소설을 하나 써달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지면을 얻기 어려운 세상에서 원고료를 다 받으면서 단편소설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많지 않다.나는 제법 신이 나서 원고 청탁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 선배 왈, 쓸 수 없다고 한다.“왜요?”“쓸 수가 있어야 쓰지.”“소설을 쓸 수 없다니, 그런 법이 어딨어요? 아무거나 써도 되는 게 소설인데.”“야, 내가 그게 되냐. 생각 좀 정리하고 되겠다 싶을 때 쓸게.”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참, 답답한 사람이다. 돈도 없을 텐데. 생활은 도대체 어떻게 꾸려 나가려고 이러시나.”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이 오수연 같은 고지식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아무리 궁하고 또 급해도 자기 이상이나 성미에 안 맞는 일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마땅히 존중한다. 아니, 이 글을 쓰는데, 왜 지금 실천문학사 사장으로 있는 김남일 선배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이 `초록이 동색`인 모양이다.

2015-01-22

`진상`에서 `갑질`로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예전에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나쁜 손님을 가리켜 진상이라는 말을 썼다. 아마 지금도 흔히들 쓰고 있을 것이다.차라리 안 왔으면 싶은 사람, 돈 벌어야 하니 받기는 받지만 안 받아도 좋겠다 싶은 사람을 진상이라 한다.어원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발음이며 그 말을 밖으로 낼 때 표정이 어찌나 생생한지, 이 진상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정말로 진상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금방 나간 손님을 가리켜 진상이라고`뒷다마를 까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내가 그런 험담의 주인공은 결코 되고 싶지 않다.그런데 이 진상이라는 말에는 돈 있는 사람들을 향한 반감 같은 일종의 사회심리가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돈 없는 사람은 진상이 되기도 어렵다.진상이 되려면 가장 멋없이, 유치하고도 졸렬하게 쓸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어지간히 징그럽게 돈을 쓰는 사람을 가리켜, 그 돈을 대가를 치르면서 벌어야 하는 사람들은, 진상이라고 하는 혐오 섞인 어휘를 구사함으로써, 자신들의 극심한 불쾌감과 피로감을 보상받으려 한다.이 진상이라는 말에 이어 이번에는 갑질이라는 말이 일대 유행어가 되어 있다. 모 항공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갑질은 드디어 유행어의 왕좌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고,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이 갑질 풍자가 재미있는 코너로 자리를 잡았다.진상이 돈을 아름답지 못하게 쓰는 사람들을 겨냥하는 말이라면 갑질은 힘, 곧 권력을 추하게 남용하는 사람들을 겨냥한다.이 갑질이라는 말 역시 진상이라는 말 못지 않게 발음이 아름답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그 말을 `내뱉는`사람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를 그 말소리의 수준에서부터 그야말로 리얼하게 표현해 준다.갑질을 당한 사람들은 갑질을 하는 쪽을 향해, 어디서 갑질이야, 하는 불쾌감을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보상받고자 한다.그래서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지금 지극히 불공정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웅변해 준다.사회 곳곳에서 소위 갑질을 향한 원망과 증오와 한숨이 들끓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계약서 상의 갑을 관계에서 파생한 듯한 이 말은, 일정한 크기 이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단체를, 그것을 정당하게 쓰지 않는 경우를 겨냥하고 있지만, 이제는 사회 전 부문에 걸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말로 변화해 가는 중이다.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어느 경우에는 을이지만 또 다른 어떤 경우에는 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앞에서 말한 개그코너가 보여주듯이 우리는 지금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갑이 되었다 을이 되고, 또 다시 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나는 이 웃지만은 못할 장면들을 목도하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유명한 언설을 떠올린다.그것을 피하기 위해 국가라는 것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왜 우리는 그 국가라는 것을 가지고도 이렇게 괴로운 상태를 지속해가고 있는 것일까?나는 혹시 국가가 중립과 균형을 취함에 부족해서 그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져볼 만하다고 생각한다.힘, 즉 권력은 누구나 절제할 때만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국가도, 단체도, 기업도, 개인도 모두 마찬가지다.갑질이라는 말을 우리 사회의 일대 유행어 자리에서 밀어내려면, 우리 모두가 우리가 가진 힘을 의식하고 그것을 절제하려는 긴장감 있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15-01-15

갑오년에서 을미년으로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시계가 다섯 시 삼십칠 분에서 삼십팔 분으로 넘어가고 있다.한 해 마지막 날을 앞두고 연구실을 이틀째 정리했다. 어지럽게 흩어놓은 책들을 아쉬운 대로 책장들에 되돌려놓고 책상위에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책이며 복사물들도 웬만큼 정리해서 치워놓았다. 한 해 내내 연구실에 사람을 들일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이제 겨우 한두 사람은 들어와 앉을 수 있게 됐다.마음은 오전부터 광화문에 가 있다. 오늘부터 몹시 추워진다고들 하는데, 무슨 문화행사를 한다고 했다. 세월호에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들이 주최한다고, 팟캐스트 방송에서들 와달라고 몇번씩이나 호소를 한 것이다.네 시 넘어서 인적 드문 학교 캠퍼스를 총총히 걸어나왔다. 나무들도 전부 헐벗었다.시내도 차량이 많지 않다. 예년 같으면 차들 때문에 몹시 막혔어야할 도로들이다. 서울역 앞에서 시청 쪽으로 지나가는데 경찰버스들이 이미 많다. 내 생각에 오늘 광장에 사람들이 절대 많을 것 같지 않다.행사는 행사고, 오늘 저녁에는 좋은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 광화문 가까운 경복궁옆 금촌시장에 생더덕 막걸리를 파는 집이 있다. 한병, 콜라 펫트병 만한 크기가 거금 1만원씩이나 한다. 그래도 아깝지 않은 술, 주인 아저씨가 산에 다니며 약초를 캐는 사람이다.그 집 앞에 다 갔는데, 저쪽에 어정어정 걸어오는 사내 하나가 있다. 초저녁도 안된 이 시간에 벌써 술이 좀 된 이 사내는 올해 연말로 서울신문사를 정년 퇴직한 분이다.반갑다. 슬쩍 다가가서 옆구리를 툭 쳤다. 누구냐 하고 바라보던 눈에 기쁨이 실린다. 어디 가야한다는 것을 극구 저쪽 통영집에 가서 한 잔 하자 하신다. 나도 싫을 것도 없다. 어지간히, 세밑이 텅 빈 허무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통영집은 생선구이를 파는 집, 우리는 낡은 탁자에 막걸리 한 병 놓고 앉아 12월 31일에 만난 인연을 자축한다. 나는 평소에도 늘 술에 절어 있는 듯한 그의 낙천적인 눈빛을 즐긴다.새해에는 좋은 사업이 있고, 스토리를 쓰는 일이란다.창작을 하는 건 좋은 일이예요.나는 진심으로 그의 창작이 돈을 충분히 버는 일이 되기를 기원한다. 또 일이 잘 되면 더 신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그러자 나는 문득 찬스라는 영어 단어가 떠오른다. chance, 즉 찬스라고 하면 뜻이 `기회`도 될 수 있고 `우연`도 될 수 있다. 어제부터 나는 이 찬스의 사상이라는 거창한 말을 고안해 내고 있었다.무슨 말이냐 하면 별 것도 아니다. 찬스. 이 우연한 기회만이 우리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갑오년 한 해 내내 우리들의 삶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 이래 우리 사회는 고통의 도가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다.찬스가 아니고는 을미년도 결코 밝아질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떤 우연한 기회라는 게 있다. 죽음 앞에 직면해서도 기가 막힌 행운으로 살아나는 사람이 있듯이.그래서 나는 이 저녁, 그 사내와 헤어져 나온 이 순간, 찬스에 대해 생각한다. 마지막 패에 하트무늬 세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불운한 도박사의 심정, 내가 오늘 이 순간 바로 그런 절박감에 휩싸여 있다.아, 날은 벌써 저물었다. 광화문을 밝히는 저 푸른 빛이여. 내일은 우리에게 새 삶을 주소서.우리에게 행운을 주시고, 찬스의 사상을 믿을 수 있게 하소서.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어두운 저녁 광화문 앞을 걷는다.

2015-01-08

메리 크리스마스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사람이 시시각각 다른 사람이 돼가는 것을 보면,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일지언정 아기자기, 재미스럽다는 쓴웃음이 지어진다.마침 크리스마스 이브다. 오늘 한낮에 모처럼 종로에 나가 탑골공원을 거닐었다. 옛날에는 파고다 공원이라 했고 노인분들이 한가득 앉아 계셨는데, 오늘은 보니 어린 학생들이 무슨 모임인가를 하러 잔뜩 모여 들어 있다.날씨가 푹해지니 좋군.나는 한 학기도 마치고 처음 맞은 50대의 한해도 저물어간다는 호젓한 심정으로 이상재 선생 동상이 서 있는 공원안을 둘러본다.그리고는 3호선 종로3가역이 있는 거리를 거닌다. 예나 지금이나 이 나라에는 행상들이 많다. 호떡집, 오뎅집, 간이김밥집, 양말 행상에, 장난감 행상. 없는 가게들이 없다. 남루한 행상들의 거리를 걷는데 그 비닐로 포장 친 가게 주인들이 다들 착한 짐승들 같이 느껴진다.여름에는 얼마나 볕이 뜨거웠으랴. 비는 또 얼마나 들이쳤으랴. 어느새 겨울이다. 며칠 무섭게 추웠고, 오늘 겨우 풀렸다. 겨울 맞은 행상 주인들, 누비옷 같은 두꺼운 외투들을 쓰고 손님들을 맞고 기다리고 일들을 하고 있다.세상 소식은 아무 안중에 없는 듯하다. 통진당이 해산됐다든가? 구중궁궐에 무슨 게임인지 혈투가 있었다든가? 그네 짐승들은 아무 관심도 걱정도 비판도 마음 속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아름답다.짐승들처럼 한 생명 받아 태어났기에, 부모 자식 있어 먹고 먹이랴 쉴새 없이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아름답다.옷을 멋지게 입은 그 감춤과 치장이 그네들에게 있을 수 없다. 입은 옷은 꼭 그렇게 필요해서 입은 것이요, 손님을 기다리며 쟁반에 배달해 온 국수나 된장찌개를 후루룩 삼키고 있는 그 먹을 것은 한 생명이 오늘 하루의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먹는 것이다.모름지기 우리들 삶이 그래야 하리라. 모든 가식, 위선, 거짓, 감춤을 버리고 가장 꾸밈없는 생명의 존재 방법을 이행하며, 순명할 줄 아는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리라.산책을 하는 사이에 아버지께서 전화하신 것을 받지 못했다. 나중에 문득 보니 전화도 하시고 문자도 보내셨다. 며칠 소식 못 전한 아들이 궁금해지신 모양이다.크리스마스 이브라서 옛날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그러니까 일곱 살 때쯤, 아버지가 뒷산에서 어린 소나무를 캐오셨다. 파인 트리.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을 꾸밀 나무를 캐오신 것이다.우리들 어린 삼형제를 위하여 산 나무를 가져다 우리들 모르는 풍습을 만들어 주려 하신 것이다.소나무는 지금 생각해도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좋았다. 어린 마음을 들뜨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그러고 보니 그때쯤 몇년 동안은 큰 양말에 선물도 아침에 깨어나면 생겨나 있었다.아버지.나도 모르게 지금은 연로할 때로 연로해지신, 그러면서 경제에 더 피로해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한 마리 짐승처럼, 배울 만큼 배웠다 해도 처자식을 먹이고, 당신도 목숨을 피우려고 힘들게, 가장 자연스러운 짐승으로 살아오신 부친.세상에는 숱한 경륜가들이 있고, 지식가들이 있고, 돈과 신분의 세련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가치도 보람도 없다.어미, 아비, 새끼, 산 목숨이 살아가야 하는 이치. 메리 크리스마스.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누군가 버림받은 세상을 위해 여기에 오셨다. 나는 그것을 믿을 수 있다.

2014-12-26

행복을 찾는 불행한 시대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작가들이 모여 이제 갓 신인으로 등단한 사람을 축하해 주는 자리에 나갔다.요즘은 작가들도 신경들이 여간 예민하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책이 안 팔리는 고민이 깊기는 깊은 모양이다.한 여성 작가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요즘 소설계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요점인즉슨 너도 나도 사랑 타령만 한다는 것이다.어느 장편소설상 심사를 했는데, 후보작으로 오른 작품들이 몽땅 사랑 얘기들뿐이더라는 것이었다.사랑이 어때서 그러느냐, 이 시대야말로 사랑이 필요한 괴로운 때가 아니더냐, 소설이란 원래 사랑 얘기가 대부분 아니더냐.여기저기서 반박들이 제기되는 데도 이 여성작가는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그게 다 가짜라는 것이다. 말이 사랑이지 정말 자기를 바쳐 남을 위해 자기가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사랑을 하는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내가 말했다. 지금 얼마나 춥고들 배고프냐. 괴로운 시대니 저절로 얘기들이 사랑으로 흐르는 게 아니겠느냐. 모모 한 신문의 신춘문예 심사를 하는데, 사회가 어떠니, 제도가 어떠니 하는 작품보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은 뒤의 고통을 그린 작품이 단연 눈에 띄더라.나는 또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두들 불행한 느낌 속에서들 산다. 사람이 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다들 그렇지 못하다. 최근에 내가 생각한 게 있다. 오늘 우리 같은 사회에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알약을 하나씩 처방해 주는 것이다.여기 직장을 잃은 사람이 있다. 병원에서 알약 하나를 처방해 준다. 그러면 직장이 없는 것은 조금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그는 기쁨을 느낀다.여기 또 정치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민주시민이 계시다 치자.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병원에 가서 알약 처방 하나면 만사 불만스러울 게 하나도 없다.“그게 왜 현실적이냐구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사회가 지금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현실적 방도가 있습니까?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하고 나라는 없는 사람한테 세금을 걷어 있는 사람 세금 깍아준 걸 벌충하려는 마당이죠. 힘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데 약한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니 차라리 알약 처방이 현실적이라는 거지요. 불가능하지 않아요.”예의 그 여성작가가 내 말을 받는다. 요즘 연구에 따르면 세로토닌이라는, 행복감에 관계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있단다. 이 물질이 분비되면 사람들은 마치 명상을 할 때 같은 평온한 심리상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잘 되었네요. 병원에서 그 세로토닌을 처방해 주는 거지요. 약효가 떨어질 때쯤 한 알 삼키고 삼키고 하면 굳이 세상 바꿀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그냥 행복하다는 감정을 가지면 되니까요.무슨 불행한 상황이 닥쳐도 우리는 세로토닌 처방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라고나 할까. 의사 행복감으로 우리가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진짜 행복을 대체하는 것이다.사회는 갈등도 투쟁도 없이 평온할 것이다. 전국의 병원에 세로토닌 처방을 합법화 하라. 멋진 신세계가 출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로서는 디스토피아의 완성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오늘 서울은 정말 춥다. 그러나 여성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밤은 더 추웠다. 뿐만 아니라 모임이 있던 중국식당에서 나오자 고층아파트를 낀 복합 쇼핑몰에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듣자하니 설계를 잘못해서 건물 중앙부의 공간으로 찬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현재의 우리 사회의 살벌한기류를 암시하고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너무 추워서 우리는 2차 생각도 못하고 외투깃을 올리고 집으로들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2014-12-18

잔설이 있는 풍경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기차를 타고 보니 며칠 전 내린 눈이 상처 난 살갗에 연고를 발라 놓은 듯 여기저기 얇게 깔려 있다. 꼭 옛날 어렸을 적 삼월 초순 같다. 옛날에는 그때서야 비로소 눈이 녹기 시작했다. 이월까지도 땅이 꽝꽝 얼어붙어 있다 삼월에야 눈도 녹고 흙도 제법 부드러워졌다. 이 잔설들은 꼭 한국의 산야 그대로 같다. 우리 한국의 산야는 하늘에서 보면 숲도 푸른 숲만이 아니요, 군데군데 황토빛으로 얼룩져 있다. 눈이 내린 산하도 온 천지가 하얀 법은 적고 이곳저곳 흙빛이 묻어나 있다. 잔설은 누추하면서도 생생한 삶의 치부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올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가나 했는데 벌써 겨울이다. 한 번 몹시 추웠다 따뜻해졌고 또 추웠다 눈도 많이 내리고 도로 따뜻해지는 중이다. 덕분에 들과 산의 눈들은 많이 녹아 사라졌고 남은 눈들은 눈의 흔적들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뜬금없이 며칠 전에 세상 떠난 박남철 시인 생각이 난다. 새벽 가까워서 누군가 내게 부고를 전했다. 박남철 시인 본인이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포항 사람이고 경희대학교에서 공부했고 남들이 말하는 해체시를 썼고 내가 아는 바, 그는 기행과 악행으로 점철된 인생 후반기를 살았다.그런데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생각, 이것은 착각일까. 적어도 나만은 그라는 존재가 다른 아무 것도 아닌 세상 떠난 시인 한 사람으로 이 순간 기억된다.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를 받고 나도 아주 오래 전에 그와 주먹다짐을 벌였던 시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당신이 그 옛날에 때린 그 사람이 오늘에서야 죽었다고. 그가 답신을 보내왔다. 제 주먹이 잠복기가 십 년인 걸 이제 알았습니다. 싱거운, 그러나 씁쓸한 농담.프리드리히 니체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비극의 탄생`이 생각난다. 그리스인들은 개별화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개별화의 고통이란 무엇이냐. 그것을 나는 인간이 이 세상에 하나의 개체로 태어나 살다 죽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 자연과 우주의 본체로부터 우리는 떨어져 나와 고독한 개체가 되었다. 우리는`나`라는 존재의 경계가 지극히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개체로서 인생을 살아간다.이 삶의 고통을 우리는 두 가지 예술적 방법으로 지양하려 한다. 아폴론적인 것, 그것은 이성과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 그것은 황홀과 도취, 개체 이전으로의 존재의 환원의 경험을 의미한다.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다. 시인들은 술을 참 많이도 마시는 사람이 많다.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을 지경이 되어 어떤`행복한`시인들은 인사불성이 되어 개별화의 고통이라는 것을 완전히 잊은 채 평온한 망각 속에서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우리는 결국은 이 지구상에서는 영원히 방랑자일 뿐이고 여객일 뿐이다. 우리가 올 때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 것도 지니지 못하고 떠나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빈손으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면 어느 분이 말씀하셨듯이 죽는 날이 인생의 모든 짐을 덜어버리는 날이므로 기쁜 날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신경주역에서 떠난 기차가 김천에서 한 번 서고 대전에 섰다 천안에서도 한 번 쉰다.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좁은 남쪽에서 KTX는 너무 빠르다. 황토 들판에 이곳저곳 바람의 흔적 따라 남아 있는 잔설들을 감상하며 완만히, 천천히 서울에 가고 싶다. 잔설들 위로 드러난 상처 난 들판 같은 우리네, 빛날 것도 화려할 것도 없는 인생을 생각하면서.

2014-12-11

옛날 사람을 만나는 때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12월인데도 견딜 만 하다고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저께는 비가 내리고 어제는 눈이 내리는 듯했고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니 서울 바닥에 눈이 조금 쌓였다. 눈이라고 해야 지금 서울에 내리는 눈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 어렸을 적 충청남도 덕산 고향에 한 번 눈이 내리면 무릎까지 눈이 쌓이곤 했다. 몇 살 안 될 때여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그때는 정말 떡덩이 같은 눈이 펑펑 쏟아지고 그 눈이 쌓여 외할아버지가 가래로 눈길을 만드는데 고생께나 하셨다.그래도 창밖을 보니 눈이 와서 좋기는 좋다. 눈을 따라 옛날 생각이 난다. 그때 학력고사 시험을 보고 난 12월, 독서 서클 지도교사 선생님 댁에 놀러 갔다. 그때는 동아리라 하지 않고 서클이라 했다. 또 그때는 수능시험이 아니라 학력고사였다.나 혼자 간 게 아니라 나보다 한 학년 아래 여학생과 같이. 왜냐? 그때 나는 대전시 고등학교 연합 서클에 들어 있었고 거기서 문제의 여학생을 만났던 것이었다. 그게 나 3학년 그 여학생 2학년이었으니, 공부고 뭐고 생각이 없던 나다.선생님 댁을 찾아갈 때 대전 세상에 눈이 쌓여 있었다. 눈길을 걸어 하숙인가 자취인가를 하고 계시던 우리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댁에 둘이서 놀러갔다. 바로 나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우리의 서클 지도교사셨다.그랬다. 그녀와 나는 대전에 `이름난`고등학교 연합 독서 서클의 회원들이었다. 거기서 까뮈를 읽고 사르트르를 읽고 이어령의 소설 `장군의 수염`을 읽었다. 그리고 그때 서로 소위 `밀당`들을 했다.그날의 그 눈길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만났던 국어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슨 얘기냐고 물어들 보시겠다. 사연인즉 이렇다.그 여학생과 무려 근 삼십 년 만에 연락이 된 것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우연히 내가 어디서 뭐하는지 알고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내가 고등학교 30주년 기념 모임에 갔다 간발의 차이로 국어 선생님을 뵙지 못한 이야기를 했더니 단숨에 그분을 찾아뵙기로 약조가 된 것이다.그 여학생이 국어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약속을 잡자 우리는 드디어 삼자대면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척 용의주도한 나다. 30년만의 삼자대면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 고통을 어떻게 다 견디란 말이냐. 나는 전광석화 같이 머리를 돌려 나의 가장 사랑하는 고등학교 동창 최병수 군을 대동하기로 했다. 거기에 나의 가장 무뚝뚝한 친구 노영수 군도 함께 하기로 했다. 오자대면이라면 우리는 무척이나 즐겁지 않겠는가?드디어 그날은 닥쳤다. 일요일. 비가 내렸다. 오후 1시. 서대전 사거리 예지원이라는 한정식 음식점. 항상 계획대로, 의도대로 되는 법은 없다. 노영수 군이 시골에 문상을 갈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음. 하는 수 없군.우리는 마침내 사자대면을 한다. 약속 장소 한쪽에서는 돌맞이 잔치가 시끌벅적하다. 그래도 우리는 꿋꿋이 앉아 해후를 자축들 한다. 그런데, 어럽쇼? 아니, 이 여학생께서 국어 선생님 손을 덥석 잡는 게 아니냐.맙소사. 그 옛날의 부끄러움 타는 소녀 다 어디로 갔나. 그때 그 눈길 속에서 손 한 번 잡지 못하던 우리. 아니, 그녀와 나. 그뿐인가. 여름날의 밤 9시 넘어서 등화관제가 펼쳐진 비오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우산을 각각 따로 썼건만.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이래도 되느냔 말이냐. 속으로 혀를 끌끌, 고개를 절래절래. 그런데, 반갑다. 기쁘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국어 선생님이 좋다. 옆에서 장단 열심히 맞추는 최병수가 좋다.그 여학생은 나쁘다. 그래도 또 한 해가 저무는 이때 옛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시 좋다.

2014-12-04

마음 속에 보리의 새싹을 틔우며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새벽에 문득 눈을 떠서 몇 시나 되었나 한다. 다섯 시 십 분쯤 되었다. 다섯 시에 맞춰 둔 휴대폰 알람이 벽에 걸린 외투 속에서 벌써 십 분씩이나 목이 터져라, 꼬끼요, 하고 앓는 닭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잠결에 이 소리를 무슨 자장가 듣듯이 듣다가 마침내 깨어나 새벽 세상을 마주한 것이다.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나는 통증이라는 한 마디 말을 떠올린다. 어젯밤에 끊어진 의식이 다시 이어지면서 생각의 꼬리가 머리에 와 닿았다.과연 내 몸은 통증 투성이다. 허리와 목에 디스크는 만성이 되었고, 이제는 오른쪽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길게 뻗을 수가 없다. 두통에 만성식도염은 나로 하여금 불쾌감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몸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다. 어떻게든 일어나 움직일 수 있고 밤늦게까지 견딜 수 있는 체력도 있다.마음은 그렇지 않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몇 년 전에 텔레비전에서 불행하게 죽은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을 사후에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연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후의 영혼의 세계라는 것은 오늘날의 과학으로는 충분히 다룰 수 없고, 진실 여부도 판정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요즈음 내가 바로 그 사령들처럼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되풀이하여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 고통을 자꾸 맛보아야만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 것도 같다.학대받는데 익숙한 사람은 그 학대가 있어야 자기 안정을 찾을 수 있다던가? 그것은 돼먹지 못한 이론일 것이다. 병자만이, 이미 병에 중독된 사람만이 그런 병적 상태를 자기 존재의 일부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나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원 투 파이브, 새벽 한 시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 늦은 밤마다 통증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통증과 함께 눈을 뜬다.오늘은 새로운 단어도 의식의 망막 위에 떠올랐다. 단념이라는 말이 생각 난 것이다. 다들 잊어가는데, 내가 뭐라고 자꾸 돌이켜 생각하느냐 말이다. 아니, 사실은 이런 생각은 솜털만큼도 생기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태의 원인자가 너무 크고, 그것을 가로막고 선 벽이 너무 높아서, 과연 무슨 보람을 얻을 수 있겠느냐는 괴로운 마음이 솟아나곤 한다.이틀 전인가, 비가 내렸다. 가을이 바야흐로 끝이 났고 겨울이 본격적으로 찾아들리라는 신호다. 비가 오고 나서도 날씨는 갑자기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상 난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더 깊은 추위가 이 세상에 겨울이 왔음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통증, 그리고 단념. 과연 마음을 끊으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새벽빛 여명 속에서, 나는 언제 빚을 다 갚을 수 있는지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막막한 심정으로 내가 어떻게 이 겨울을 건너갈 수 있는지 생각한다.이 막막한 눈길을 언제 다 걸어 저편 언덕에 다다를 수 있는지?측량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게 마련이므로 나는 통증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겠다고.자유보다 복종을 사랑한다고 했던 만해 선사처럼 나 또한 통증의 슬픔을 무통의 기쁨보다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리라고.따뜻한 봄을 가슴에 품고 보리 새싹을 마음 속에 틔우며 살아가야 한다. 내가 바라는 손님이 청포를 입고 찾아오실 것이라고 했다. 곧 올 것이어서 식탁에 은쟁반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선인들은 현실을 비현재화 하고 미래를 이미 임재한 것으로 의식하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 또한 이 지혜를 배워야 한다.

2014-11-27

동창회에 가다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졸업 30주년 동창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세월이 흘렀으니 어떻게든 만나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맞다. 벌써 그렇게나 됐나?한 사람 당 얼마씩 내서 준비를 하자는데 좀 많다 싶기는 해도 30년만의 일이다. 그 정도는 부담해야 할 것도 같다.그러마, 가마, 했다. 그러고도 회비도 내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늦더라도 내기는 내고 참석도 해야겠는데, 마음이 흔쾌하게 움직여지지 않았다.어떤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만나지 않은 친구들을 동창이라고 어색하게 마주 앉게 되는 것, 그러면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는, 오래된 인연을 새로 돌아보는 데 따르는 부담감 말이다.더 큰 이유가 있다. 언젠가부터 동창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축에 들어간 사람들이 자기 확인을 하는 공간 같은 인상을 주었다. 우정의 확인도 확인이지만, 이 확인이 각자가 사회에 나가 외면적으로 성취한 정도를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 이것이 동창회 속의 나를 늘 어정쩡한 사람으로 만들곤 했다.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나는 꼭 참석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도 있다. 결국 회비도 가외로 조금 더 내고 못 가겠다고 했던 것을 번복해서 잠깐이라도 참석하기로 한다.드디어 날이다. 나는 몇 시간 먼저 대전에 가 고등학교 때부터 늘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어떤 이유로 이 친구는 동창회에 가지 못하겠다고 한다.우리는 대전역 앞에서 만나 오래된 시장통 골목으로 갔다. 그곳에는 우리가 가끔씩 들르는 음식점이 있다. 우리는 늦은 점심을 대신해서 막걸리 두 통을 나누어 마셨다. 옛날 얘기부터 요즘 세상 얘기까지 안주를 삼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두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또 보자.나는 친구와 헤어져 동창회가 열리는 호텔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동창들과 깊이 사귀어오지 못한 나는 몇 사람 되지 않는 그리운 얼굴만 찾는다. 하나는 홍성에서 못 올라왔다 하고, 한 사람은 늦게나 참석할 수 있으려나 한다. 동창들이야 다 친구지만 그래도 어디 앉아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그런데 나같은 사람이 나만은 아니다. 점퍼 차림으로 회장 안을 서성거리며 좀처럼 좌정하지 못하는 한 사내가 있다. 얼굴도 본듯하고 무엇보다 동창 임은 확실한데, 선뜻 말을 붙일 수가 없다.시간이 일러, 참석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마주 서서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이런 순간의 곤혹스러움은 말로 딱히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어색함을 헤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무슨 농사인고 하니 인삼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인삼은 농약을 많이 써서 몸에 좋다는 홍삼도 썩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속설을 떠올리는 찰나, 자기는 유기농 인삼을 재배한다고 한다.어느 기업에 다니던 중에 IMF가 왔고 누군가들은 회사를 나가야 했기 때문에 자기가 먼저 그만두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집안에 땅이 있기도 해서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벌써 15년이나 되었다는 이 친구는 기왕이면 좋은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뜻대로만은 풀리지 않은 눈치다.농업이 참 중요해.나는 이 말수 적은 친구가 띄엄띄엄 던지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세상에는 꼭 필요하지만 돈의 척도 때문에 경시되는 일이 많다. 나는 낮에 막걸리를 같이 마신 친구를 생각한다. 아무 법도 필요치 않은 바른 친구지만 세상은 그를 불러들이지 않는다. 그런 세상이다.

2014-11-20

하와이에서 돌아오기 어려운 이유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국제한국학대회가 지난 주에 하와이대학에서 열렸다. 나는 그 대회의 한 패널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고 발표논문을 준비해 건너갔다. 현재 하와이대학의 한국학센터 소장인 이상협 교수와 김영희 교수가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11월의 하와이는 아름다웠다. 하와이 주의 주도는 호놀룰루, 하와이 여러 섬중에 가장 번화한 오아후 섬에 있다. 대회 개막식과 리셉션이 저녁에 열리는 관계로 우리 패널은 아마도 제주도보다 작을 오아후 섬을 해안도로를 따라 둘러보기로 했다.다이아몬드 헤드는 바닷가에 돌출해 있고, 생긴 모양이 같은 분화구인 성산 일출봉을 꼭 빼닮았다. 아름다운 만 하나우마 베이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작년 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낭독회를 들으러 가서 이 해변을 구경할 수 있었다.블로우 홀이라는 곳에서는 까만 용암석에 뚫려 있는 작은 틈으로 파도가 칠 때마다 수증기 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태평양 파도는 투명하고도 거칠었다. 우리는 더 돌아서 와이마날로 비치파크라는 곳으로 갔다. 안내를 해주시는 밴 택시 기사분이 여기서 쉬어 가자고 했다.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가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구두를 벗고 양말도 버리고 고운 모래 해변을 걸었다.바다는 언젠가 제주에서 보았던 것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 제주 바다가 옥빛이라면 이 바다는 에메럴드 빛. 나는 눈부신 태양빛 아래 푸른 빛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바다에 발목을 적시고 망연히 서 있었다.우리는 또 바람산이라는 곳으로도 갔다.지형 때문에 바람이 소용돌이치듯 세차게 흐르는 곳, 카메하메하 왕이 하와이 왕조를 열 때 비극적인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카메하메하 왕은 빅 아일랜드의 대추장으로 오아후 섬까지 마저 정복해서 하와이 100년 왕조를 열었다.하와이에서의 체류는 즐거웠다. 우리 패널의 발표가 있던 날, 우리들은 나의 발의로 따로 국제유머학회를 창립했다. 이것은 물론 내가 즉석에서 만들어낸 장난이었다. 나는 오하이오에서 오신 박찬응이라는 중견 여성 학자에게 가입을 권유하기까지 했는데, 이것이 일종의 유희라는 것을 알고는 기꺼이 호응해 주셨다.이제 우리 패널은 국제 유머학회 일로 더 바빠졌다. 발표를 전후로 하여 나는 우리 패널의 한 사람인 박현수 선생을 통하여 열정과 매력을 겸비한 존 프랭클 선생을 만났다. 우리는 즉각 한 패가 되어 유머학회 활동에 돌입했다. 각자가 알고 있는 우스개 소리나 즉각적으로 생각해낸 말들을 평가해서 우리 학회지 등재 여부를 결정을 내렸다.사실, 이제서야 밝히지만 우리 학회의 정식 명칭은 국제 유머 등재학회였다.요즘 학자들은 국제 학술지나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데 목말라한다. 때문에 우리 학회지에 유머를 실으면 자동적으로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셈이 되도록 배려한 것이다.마지막 날 밤, 나는 자리에 누워 태평양 바다 멀리에서 들려오는 아우성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바위에 바스러지는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성난 외침 소리가 뒤섞인 것 같기도 했다.아름다운 곳에서 며칠 지내고 나니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것이 무서웠다. 이곳은 춥고 메마르고 자유가 없다. 내가 아닌 다른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프고 돈에 시달린다. 아름다운 영혼은 싸움에 소진된다. 눈 있는 분들께서는 이 나라를 좀 보시지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2014-11-13

제3극 공화국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남극에 공화국을 세우기로 하고 글을 써낸 지 며칠 지나서다. 서울 경복궁옆에 있는 시장 골목에서 어느 일간신문 기자분을 만났다.내가 남극에 나라 세우는 허황된 얘기를 자랑 삼아 꺼내들자 이 분께서, 이건 농담이 아니라, 이 세상에는 남극도 북극도 아닌 제3극이라는 게 있단다. 맙소사. 제3극이라니. 내가 허공에 뜬 얘길 하니 이분도 나를 놀리시려는 건가?하지만 아니란다. 이건 정말 세상에 정말로 존재하는 곳에 관한 얘기란다.그분은 당신이 그 제3극을 횡단했다는 분을 인터뷰한 기사를 인터넷에서 찾아내서 내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 기사에는 정말로 이런 문장이 나와 있다.“무인구(無人區)라는 말을 들어봤을까. 티베트 장북고원(藏北高原) 해발 5천m 지점에 있다. 인류 문명의 모든 기기가 정지되는 곳이다. 잘 가던 시곗바늘이 멈춰버린다. 나침반도 작동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발사된 총알도 날아가지 않는`수수께끼의 땅`이다.”아. 이런 땅이 있다니. 하늘이 이 사람의 염원을 저버리지 않으사 남북극 공화국에 이어 제3극 공화국마저 구상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구나.과연 그럴 일이다. 왜 세상에 꼭 남북극밖에, 남자 여자밖에, 오른쪽 왼쪽밖에 없을소냐. 극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들을 중화시키고 화해시키고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 있을지니.옳다. 제3극이로구나. 제3극 공화국이로구나. 나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것이로구나를 되풀이하며 신이 나 했던 것이었으니.하지만 흥분도 그뿐이다. 그동안 어찌나 공사에 일이 다망한지 구체적인 방법을 고안해낼 짬을 낼 수 없었다.역시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더니.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더니. 죽이는 건 쉽고 살리는 건 어렵다더니.급기야 일주일여를 허송세월한 끝에 오늘 출국일이 닥치고야 말았다. 오늘 이 시간 내로 비행기가 뜨기 전 한 시간 동안 제3극 공화국이라는 멋진 나라를 구상할 수 있을까.손에 땀이 난다. 하지만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리라 했다던가. 어디 급한 마음을 가다듬고 그분, 그러니까 그 김문이라는, 술도 잘하고 인터뷰도 잘하고, 공상소설까지 쓰는 그분이 정말로 만났다는, 그 박철암이라는 구순 바라본다는 노선생 이야기를 찾아보도록 하자.있다. 있어. 그 제3극 땅이라는 곳은, 넓이는 우리 한반도 크기에 가까운 22만 제곱킬로미터, 하지만 그 넓다면 넓은 곳에 태고적부터 사람이 안 산단다. 국가에서 지정한 금구라고도 한단다. 어디라고 지명을 얘기해 봤자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티벳 땅 무슨 무슨 산맥 사이에, 또 무슨 무슨 산맥들이 둘러처진 곳에 그 무인구는 있어, 그곳 “장서깡르산(藏色崗日山)과 서우깡르산(色烏崗日山)의 중간 지역에 이르면” 모든 기계가 작동을 멈춘다. 시계도 안 가고 라디오도 안 들리고 차도 엔진이 죽어버리고 총을 쏴도 나가지를 않는단다.그것 참, 그런 곳이 다 있다니. 그야말로 나라 세우기 적당한 곳이 아니더냐. 신이 서로 괴롭히기 좋아하는 인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복지가 아니더냐. 그곳에는 응당 총칼 부리는 사람들은 살지 않으렸다. 사람이 안 사니 사람 부리기 도가 튼 사람도 응당 없으렸다. 엔진이 작동을 하지 않으니 교통사고도 전복사고도 애시당초 없으렸다.“대신 스라소니, 곰, 늑대, 황양, 야생 당나귀 등이 천국처럼 살고 있다.”천국처럼 살고 있다, 살고 있다, 있다, 다, 다ㅡ 하는, 김문 씨의 문장이 내내 내 귓가에 바다 물결처럼 속삭이는 듯하다.나는 그곳에 나라 만들 자격이 있을까. 그것부터 곰곰히 따져 보아야겠다.저 정지용 시 `백록담`에서처럼 먼저 마소가 되지 않으면 천국 같은 땅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하물며 나라는 말하여 무엇하리.

2014-11-06

북극공화국 구상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우리나라가 어떻게 해도 빠르게 나아질 것 같은 징후는 없기 때문에 이번에는 북극공화국 창설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러나 북극에도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뜻이 있는데 어찌 길이 없으랴만 북극에 나라 세우기는 남극에서보다 몇 배는 더 힘들 것이 뻔하다. 마치 북한에서 사는 게 이 남쪽 나라에서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어려움이 어느 정도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상대적 크기에는 무관심해진다.일단 쇠가 쇳물이 되고나면 1천600도면 어떻고 2천도면 어떠랴. 어차피 데어 죽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또 춥기로 말한다면 영하 50도나 80도나 별다를 리 없다. 이 남쪽 나라가 북한같이 끔찍한 세상은 되지않기를 바라야겠다.북극에 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거기에 땅이 없다는 것이다. 남극은 호주 대륙의 두 배나 되는 땅이 있지만 북극은 정작 그곳에 가면 그냥 바다다. 바다가 얼어붙은 얼음덩어리다. 이 얼음덩어리가 여름과 겨울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기를 제멋대로 한다.설상가상으로 요즘에는 온난화다 뭐다 해서 얼음이 자꾸 준다. 하기는 작년에는 해마다 줄어들던 얼음덩어리가 엄청 늘었다고는 한다. 비록 얼음덩어리라도 굳은 얼음이 늘어 북극곰들이 바다에 덜 빠져 죽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큰 다행이다.하지만 도대체 누가 그런 얼음덩어리를 믿고 이주해 가려 하겠느냐 말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 같으면 여기에 땅 없고 집 없는 사람도 거기 가면 그런 것을 누구나 가질 수 있다고나 해야 눈을 번쩍 뜰 테다. 지번도 주소도 등록이라고 해봤자 올해 없어질지 내년에 없어질지 모를 것을 누가 사고 팔려 하겠느냐 이 말이다.그렇다고,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땅이라고 함부로 무상으로, 또는 반에반값 할인을 해서 나누어 주었다가는 당장 모국의 거센 비난에 직면할 게 뻔하다. 빨갱이 나라 세운다고 말이다. 우리나라는 애국자가 너무 많다.어떻게 하면 믿을 만한 땅 한 뙈기 없는 그곳에 카인의 후예들인 우리나라 사람들을 데려가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대단한 기술을 가진 기업의 찬조를 얻어 언제 바다가 될지 모르는 빙하 위에 수륙양용의 거대한 돔을 건설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만사 오케이다. 겨울에는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여름에는 살랑살랑 물결 치는 바닷물 보트놀이를 하는 것이다.그런데, 참, 북극이 일년에 비가 평균 100mm도 오지 않는 한랭사막이라는 건 아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는 바다며 얼음뿐이니 석탄이 있을 리 없고 저 바다 밑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나 퍼내서 때워야 한다. 얼음을 물로 만들 연료를 구하는데도 남극과는 달리 삽이나 곡괭이 같은 원시적 장비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그뿐 아니다. 남극공화국을 구상할 때는 여기서 함께 갈 사람들을 구하지 못하면 펭귄이라도 국민을 삼겠다 했건만 북극에는 그마저도 없다.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이나 북극여우, 북극늑대를 국민으로 삼아 언제 인구를 늘릴 수 있겠느냐 말이다.단 한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북극해에 그나마 흔한 바다코끼리나 바다사자도 국민으로 편입해 들이는 것이고, 그러자면 또 첨단 유전학의 도움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얼음덩어리 위에서 한 해 내내 살 수 있도록 유전자 변형을 꾀해 주는 것이다.결국, 여러가지 문제를 고려해 보건데 북극에서 나라를 세우려면 이 고상한 이상에 공명해서 적극 협력, 기술도 자본도 제공해 줄 국내 굴지 기업의 참여가 절실하다 하겠다. 혹시 그런 기업이 없는지, 아시는 독자 제위께서는 하시라도 제게 연락 주시면 크게 후사할 것임을 약조 드리는 바다.

2014-10-30

회색은 가장 투명한 빛

▲ 방민호 서울대교수·국문학이 세상은 원색을 좋아한다. 빨강이냐 파랑이냐, 흰 빛이냐 검정 빛이냐. 무엇이냐 하고, 상대방에게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는 코발트블루 빛을 사랑했었노라고. 그랬다. 어려서부터 왜 그렇게 코발트블루 빚이 좋았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바다 빛깔, 코발트블루 빛이 좋다. 그러나 얼마 전에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회색빛이야말로 가장 투명한 빛깔이라는 사실. 회색은 투명하다. 흰빛보다 검은 빛보다 투명하다. 오로지 회색 빛깔만이 진실을 투명하게 비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흰빛은 세상을 흰빛으로 칠한다. 검정빛은 세상을 검정빛으로 칠한다. 진실은 빛깔들을 혼합한 곳에 있는데, 원색적인 색깔을 덧씌워놓고 순수한 빛깔이라 한다. 그러나 그 가린 빛깔 밑에 다른 빛깔들이 숨어 있음을 눌려 있음을 생각하는 이는 안다. 투명해지려면, 솔직해지려면 원색의 가면을 벗겨내고 회색빛 세상을, 그 본바닥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그러니 빨강과 파랑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진짜 빨강인가? 휘장을 빨강빛을 두르고 있기는 한데 정말 당신은 빨강을 좋아하는가? 혹시 다른 뜻으로 빨강을 표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은 진짜 파랑인가? 당신은 파랑 깃발을 올리고 있는데, 그것은 정녕 당신이 그 빛깔을 사랑해서인가?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남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진짜 빛나는 빛은 원색으로 빛나는 빨강과 파랑이 아니다. 우리는 차라리 청록빛깔을 사랑해야 한다. 여름날 깊은 산빛깔 청록빛은 우리들의 슬픔과 우울을 전부 드러낸다. 우리는 빨강과 파랑이 아니다. 청록빛이요, 아니면 보랏빛이다. 우리는 뒤섞인 존재, 진실에 가까우려면 더럽혀져야 한다.더 생각해 본다. 가장 강한 것은 물이다. 쇠가 아니다. 물처럼 이리저리 흐르는 것이요, 쇠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견고한 것은 공기 속으로 모두 녹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정녕 강한 것은 쇠가 아니라 물처럼 이리저리 흐르며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원치 않는 것들과 뒤섞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강철은 녹아내리고 모든 물은 타자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알기 때문이다.나는 우리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투명하다고 선언하기를 좋아함을 한탄한다. 가장 선명한 깃발 아래 자신을 숨길 줄 아는 재주를 너무 많이 가진 것을 안타까워 한다. 선명한 빛깔 아래 모든 진실에 대한 열의와 모든 의문에 대한 성실을 버리고 동류의 빛깔에 소속된 안전함만을 능사로 여기는 풍조를 혐오한다.모든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은 서로 서로 감응하게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파동을 가진 존재들은 자기에게서 자기 아닌 것으로 튀어오르며 자기 아닌 타자 속으로 스며든다. 남을 자기 안에 가진 존재만이 공감하고 감응하고 스며들고 넓어진다.그리고 이렇게 이질적인 것을 품을 줄 아는 존재만이 미래를 향해, 세계를 향해 팔을 벌릴 수 있다.나는 어찌하여 회색빛의, 투명한 운명 속으로 걸어들어 왔는지 알 수 없다. 이곳은 인구 밀도가 적고, 말없는 풍경들의 연속이다. 모두들 사려 깊은 표정, 철학자나 고고학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좁고 두꺼운 문을 어렵게 밀고 통과해 온 까닭에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그러나 이곳에는 사고의 위압이 없다. 모두들 원색을 버리고 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서로가 다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홍 빛깔은 어떻게 만드나? 아마도 빨강에 흰색을 섞어야 할 것 같다. 다행이다. 내 가슴에 새긴 글씨가 혼합색이라는 것이.

2014-10-23

책을 찾아서

▲ 방민호 서울대교수·국문학서울 서초동 국립도서관에서 근대문학 자료수집에 관한 회의를 마치고 우리는 성북동의 화봉 책박물관으로 갔다. 그곳에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문학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승구라는 분은 평생 우리의 문학유산을 수집, 정리, 보존해온 분으로, 그 분의 개인 박물관에 우리 문학의 귀중한 자산들이 포갑에 쌓인 채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나는 몇 년 전인가 관훈동인가에 있던 화봉문고를 찾아가 서정주의 화사집을 만난 적이 있었고, 그때 우리 선배들이 책을 얼마나 멋드러지게 만들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성북동, 이태준 고가 쪽으로 올라가는 어느 언저리에 그곳은 새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막상 찾아가니 건물 전체는 외부 리모델링 공사중, 마음이 심난하다. 그러나 그 책들의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좀처럼 외부인에게 열어주지 않는 서고의 책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김재용 선배가 서가에서 임화의 시집 현해탄을 꺼내와 내게 보라고 내민다. 거기 임화가 박영희를 위해 직접 쓴 헌사가 있다는 것이다.회월 박영희라면 카프의 서기장으로 `철부지` 임화의 기식을 못 견뎌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한 사람이고, 그렇게 해서 성장한 임화의 급진주의에 밀려 나중에는 전향에까지 이른 사람이다.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 이것이 그가 남긴 유명한 문구였으니, 내가 보기에 사실상 한번도 본격적으로 전향을 한 바 없는 임화와는 다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이다.“회월 형게ㅡ형의 교훈과 우정에 감사하면서” 이것이 1908년생 임화가 1901년생 박영희를 위해 쓴 헌사였다. 그 시절에는 이 정도 연배 차이가 나는 사람에게도 우정을 운운할 수 있었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이 간명한 문장에서 나는 임화의 `오만불손함`과 근성을 느낀다.나는 김재용 선배가 보여준 시집 현해탄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오른 쪽 가슴이 찌르르 아파온다. 시집을 만지는 손가락을 타고 올라온 어떤 에너지가 심장에까지 순식간에, 그리고 예리하게 파고든 것이다.아프다. 현해탄 시집 앞뒤 표지에 넘실거리는 검은 바닷 물결 현해탄의 물갈퀴들이 내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다.나는 안다. 1938년 동광당 서점 출간. 이 시집은 카프 해산의 1935년 시들 태반을 버리고 새로 구성한 회심의 역작이었던 것을.이제 서가의 주인이 대형 금고를 열고 그가 정말 아끼는 보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큰 마음을 먹은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백석의 사슴, 서정주의 화사집,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어쩌면 그것들은 그렇게도 아름답고, 화려하고, 세련되었는지. 무슨 돈이 있어 오장환은 남만서방을 열고, 한지로 배접한 호화판 시집을 출판까지 했는지. 백석의 사슴의 표지는 어찌하여 그토록 무색, 무취, 무형한 흰빛 그대로의 몽환적 세계인지. 그 눈밭에 새가 걸어간 것 같은 외길로 찍힌 시의 어구들이여.나는 혼잣말을 하듯 말한다. 이 책들이 여기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고.서른두 살 나이로 현해탄을 건너갔다 온 후 나는 무슨 몽환 속을 헤매듯 우리 문학의 존재 증명을 위해 어지럽게 살아왔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가난한 집 아이처럼 나는 불쌍하도록 늘 허기져 있었다.이런 책들을 만나면 슬픈 마음이 얼마간이라도 위안을 얻는다. 내가 위하는 것들이 마냥 헛것은 아니라는.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며 보람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만남이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비록 심장에 `기스`가 나도 오늘은 하루가 화창한 것이다.

2014-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