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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을 앞두고

등록일 2015-02-26 02:01 게재일 2015-02-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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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졸업식 시즌이다. 낮에 어딘가를 가는데 때아니게 차가 하도 막혀 이상하다 했더니 바로 졸업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졸업식이기도 하다. 두 시에 학교 전체 행사가 있고 네 시에 학과에서 따로 행사가 있어 참석하기로 했던 것을 바로 전날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학교라고 들어와 열심히들 보내다 가지만 필자에게 우리 학생들처럼 안 되어 보이는 젊은이들도 없다. 다른 지역이나 학교와 비교해서가 아니라 필자 세대나 그밖의 다른 세대와 비교하여 그렇다는 말이다.

정규직! 요즘 학생들은 우리 학교나 다른 학교나 오로지 이 단어밖에는 머리 속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사회가 그만큼 문이 좁기 때문이고, 이 좁은 문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이미 장래를 결정 지은 사람들처럼 움직인다. 고시를 보거나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려면 영어를 어떻게 하고, 학점 관리는 어떻게 하고, 어떤 부전공을 선택해야 유리할 것인가를 따지곤 한다.

한마디로 말해 영악한데, 이 영악함 아래에는 사회에 대한 공포심이 숨어 있다. 그러니 학생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사회도 바꾸고 만들고 했다지만 지금 학생들에게는 그런 의지도,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학생들의 심리를 짓누르고 있다.

이렇게 4년이고 5년이고 보내고, 군대까지 합치면 7년 세월을 힘겹게 보낸 학생들을 어떻게 내보내야 하나? 이것이 필자의 고민이라면 고민이다. 열심히 적응해서 어딘가에라도 합격한 학생은 일순이라도 마음이 편할 수 있겠지만 갈곳 없는 학생이라면 더욱 고민이 클 수밖에 없을 테다.

지금은 철책선에 근무하고 있는 졸업생 하나가 생각난다. 1학년 때부터 몹시 도전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이었고, 그만큼 수업에 만족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교양 국어 시간에 만났고 우리 학과에 들어온 학생도 아니었다. 그러나 문학이 그의 원대한 꿈이었고, 작가가 되어야 하니 취직해서 살 생각은 없노라고 했다. 지식의 추구가 남달라서 남들 하는 취직 공부, 고시 공부와는 다른 공부를 했다.

그가 어느날 필자를 찾아왔다. 군에 입대한다는 것이었다. ROTC 장교로 소위로 임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일생에 직장 같은 것은 가지지 않을 생각이니, 이번 군 생활을 마지막 조직생활로 보고 최선을 다해 근무해 보겠노라 했다.

멋진 생각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언제 학사장교를 준비했는지도 놀라웠다. 필자는 그의 씩씩하고 의젓한 새출발을 힘껏 축원해 주었다.

그가 지금 생각난다. 바로 어제 이 김 중위에게 전화를 했었다. 군에 가면서 그는 낮에는 열심히 근무하고 밤에는 책을 읽겠노라 했건만, 밤 9시나 10시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 악조건이라 했다. 책은 어렵고 하루에 시 한두 편 읽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고도 했다.

만 1년만에 김 중위의 목소리는 한결 차분해졌고, 또 그만큼 어떤 피로를 느끼게 했다. 필자가 전화를 해준 것이 정말 큰 위안이라고, 그 말을 두번씩이나 하는 것을 들으며 그의 외로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으며 필자는 생각했다. 그는 이겨낼 것이고 돌아올 것이고 마침내 작가가 될 것이라고.

내일 졸업식. 필자는 진로가 확정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남들과 같이 가는 일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의지, 더 많은 사유. 우리 학생들에게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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