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시계가 다섯 시 삼십칠 분에서 삼십팔 분으로 넘어가고 있다.
한 해 마지막 날을 앞두고 연구실을 이틀째 정리했다. 어지럽게 흩어놓은 책들을 아쉬운 대로 책장들에 되돌려놓고 책상위에 아슬아슬하게 쌓아놓은 책이며 복사물들도 웬만큼 정리해서 치워놓았다. 한 해 내내 연구실에 사람을 들일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이제 겨우 한두 사람은 들어와 앉을 수 있게 됐다.
마음은 오전부터 광화문에 가 있다. 오늘부터 몹시 추워진다고들 하는데, 무슨 문화행사를 한다고 했다. 세월호에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들이 주최한다고, 팟캐스트 방송에서들 와달라고 몇번씩이나 호소를 한 것이다.
네 시 넘어서 인적 드문 학교 캠퍼스를 총총히 걸어나왔다. 나무들도 전부 헐벗었다.
시내도 차량이 많지 않다. 예년 같으면 차들 때문에 몹시 막혔어야할 도로들이다. 서울역 앞에서 시청 쪽으로 지나가는데 경찰버스들이 이미 많다. 내 생각에 오늘 광장에 사람들이 절대 많을 것 같지 않다.
행사는 행사고, 오늘 저녁에는 좋은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 광화문 가까운 경복궁옆 금촌시장에 생더덕 막걸리를 파는 집이 있다. 한병, 콜라 펫트병 만한 크기가 거금 1만원씩이나 한다. 그래도 아깝지 않은 술, 주인 아저씨가 산에 다니며 약초를 캐는 사람이다.
그 집 앞에 다 갔는데, 저쪽에 어정어정 걸어오는 사내 하나가 있다. 초저녁도 안된 이 시간에 벌써 술이 좀 된 이 사내는 올해 연말로 서울신문사를 정년 퇴직한 분이다.
반갑다. 슬쩍 다가가서 옆구리를 툭 쳤다. 누구냐 하고 바라보던 눈에 기쁨이 실린다. 어디 가야한다는 것을 극구 저쪽 통영집에 가서 한 잔 하자 하신다. 나도 싫을 것도 없다. 어지간히, 세밑이 텅 빈 허무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통영집은 생선구이를 파는 집, 우리는 낡은 탁자에 막걸리 한 병 놓고 앉아 12월 31일에 만난 인연을 자축한다. 나는 평소에도 늘 술에 절어 있는 듯한 그의 낙천적인 눈빛을 즐긴다.
새해에는 좋은 사업이 있고, 스토리를 쓰는 일이란다.
창작을 하는 건 좋은 일이예요.
나는 진심으로 그의 창작이 돈을 충분히 버는 일이 되기를 기원한다. 또 일이 잘 되면 더 신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자 나는 문득 찬스라는 영어 단어가 떠오른다. chance, 즉 찬스라고 하면 뜻이 `기회`도 될 수 있고 `우연`도 될 수 있다. 어제부터 나는 이 찬스의 사상이라는 거창한 말을 고안해 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별 것도 아니다. 찬스. 이 우연한 기회만이 우리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갑오년 한 해 내내 우리들의 삶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 이래 우리 사회는 고통의 도가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다.
찬스가 아니고는 을미년도 결코 밝아질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떤 우연한 기회라는 게 있다. 죽음 앞에 직면해서도 기가 막힌 행운으로 살아나는 사람이 있듯이.
그래서 나는 이 저녁, 그 사내와 헤어져 나온 이 순간, 찬스에 대해 생각한다. 마지막 패에 하트무늬 세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불운한 도박사의 심정, 내가 오늘 이 순간 바로 그런 절박감에 휩싸여 있다.
아, 날은 벌써 저물었다. 광화문을 밝히는 저 푸른 빛이여. 내일은 우리에게 새 삶을 주소서.
우리에게 행운을 주시고, 찬스의 사상을 믿을 수 있게 하소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어두운 저녁 광화문 앞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