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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은 가장 투명한 빛

등록일 2014-10-23 02:01 게재일 2014-10-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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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교수·국문학

이 세상은 원색을 좋아한다. 빨강이냐 파랑이냐, 흰 빛이냐 검정 빛이냐. 무엇이냐 하고, 상대방에게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는 코발트블루 빛을 사랑했었노라고. 그랬다. 어려서부터 왜 그렇게 코발트블루 빚이 좋았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바다 빛깔, 코발트블루 빛이 좋다.

그러나 얼마 전에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회색빛이야말로 가장 투명한 빛깔이라는 사실. 회색은 투명하다. 흰빛보다 검은 빛보다 투명하다. 오로지 회색 빛깔만이 진실을 투명하게 비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흰빛은 세상을 흰빛으로 칠한다. 검정빛은 세상을 검정빛으로 칠한다. 진실은 빛깔들을 혼합한 곳에 있는데, 원색적인 색깔을 덧씌워놓고 순수한 빛깔이라 한다. 그러나 그 가린 빛깔 밑에 다른 빛깔들이 숨어 있음을 눌려 있음을 생각하는 이는 안다. 투명해지려면, 솔직해지려면 원색의 가면을 벗겨내고 회색빛 세상을, 그 본바닥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빨강과 파랑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진짜 빨강인가? 휘장을 빨강빛을 두르고 있기는 한데 정말 당신은 빨강을 좋아하는가? 혹시 다른 뜻으로 빨강을 표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은 진짜 파랑인가? 당신은 파랑 깃발을 올리고 있는데, 그것은 정녕 당신이 그 빛깔을 사랑해서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남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진짜 빛나는 빛은 원색으로 빛나는 빨강과 파랑이 아니다. 우리는 차라리 청록빛깔을 사랑해야 한다. 여름날 깊은 산빛깔 청록빛은 우리들의 슬픔과 우울을 전부 드러낸다. 우리는 빨강과 파랑이 아니다. 청록빛이요, 아니면 보랏빛이다. 우리는 뒤섞인 존재, 진실에 가까우려면 더럽혀져야 한다.

더 생각해 본다. 가장 강한 것은 물이다. 쇠가 아니다. 물처럼 이리저리 흐르는 것이요, 쇠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견고한 것은 공기 속으로 모두 녹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정녕 강한 것은 쇠가 아니라 물처럼 이리저리 흐르며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원치 않는 것들과 뒤섞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강철은 녹아내리고 모든 물은 타자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투명하다고 선언하기를 좋아함을 한탄한다. 가장 선명한 깃발 아래 자신을 숨길 줄 아는 재주를 너무 많이 가진 것을 안타까워 한다. 선명한 빛깔 아래 모든 진실에 대한 열의와 모든 의문에 대한 성실을 버리고 동류의 빛깔에 소속된 안전함만을 능사로 여기는 풍조를 혐오한다.

모든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은 서로 서로 감응하게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파동을 가진 존재들은 자기에게서 자기 아닌 것으로 튀어오르며 자기 아닌 타자 속으로 스며든다. 남을 자기 안에 가진 존재만이 공감하고 감응하고 스며들고 넓어진다.그리고 이렇게 이질적인 것을 품을 줄 아는 존재만이 미래를 향해, 세계를 향해 팔을 벌릴 수 있다.

나는 어찌하여 회색빛의, 투명한 운명 속으로 걸어들어 왔는지 알 수 없다. 이곳은 인구 밀도가 적고, 말없는 풍경들의 연속이다. 모두들 사려 깊은 표정, 철학자나 고고학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모두 좁고 두꺼운 문을 어렵게 밀고 통과해 온 까닭에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사고의 위압이 없다. 모두들 원색을 버리고 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서로가 다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홍 빛깔은 어떻게 만드나? 아마도 빨강에 흰색을 섞어야 할 것 같다. 다행이다. 내 가슴에 새긴 글씨가 혼합색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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