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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에서 교토로

등록일 2015-02-05 02:01 게재일 2015-02-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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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일주일을 이렇게 잘게 쪼개 쓸 수 있다면 어떤 좋은 일도 이루어 낼 수 있겠다.

창작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명색이 지도교수가 되어 먼저 난징, 항조우, 상하이 여정을 달렸다.

중국에서의 며칠은 힘겨운 나날이었다. 중국에는 중국만의 표준이 있었다. 카드도 비자니 마스터니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드물었다. 오로지 유니온 페이라는 중국제 카드만 통용되었다. 기차표를 살 때도, 음식점에 갈 때도 오로지 자국 것만을 주장하는 대국다움에 처음부터 기가 질린 여행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정녕 무서운 국가다. 여행가방이 바퀴가 빠질 지경으로 달려 항조우의 기차역으로 갔을 때 우리는 그 방대한 크기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우주 항공모함이 바로 거기에 정박해 있었다. 외관은 초현대성을 지향하고 내부는 월드컵 축구 경기장 만한 항조우 기차역에서 나는 이 중국을 무시하고는 한국의 미래도 점칠 수 없음을 절감해야 했다.

그리고 거기 항조우에 상하이로부터 머나먼 충칭까지 옮기고 옮겨다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옛 청사가 있었다.

말이 청사다. 그곳은 상하이에 있는 작가 루쉰의 3층짜리 거처보다도 작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누옥일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곳이 그 옛날 일제시대에 독립정부가 그 존재를 이어가던 곳이다. 김구, 윤봉길, 이봉창 같은 이름들을 되새기며, 그들의 머나먼 행로와 젊은 희생을 생각하며 나는 항조우 임시정부의 태극기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상하이에서 하루 자고 루쉰의 상하이 시대 십 년이 숨쉬는 루쉰 문학관과, 그가 마지막 생애를 보낸 집과, 그가 숨을 거둔 침대를 보고, 서울로 돌아왔다. 다음날 바로 교토에서 오사카로 연결되는 여행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교토라면, 마치 먼 옛날에 떠나온 곳 같은 아련함을 선사하는 곳이다. 일본 천황이 누대를 이어온 곳, 겐지모노가타리와 금당벽화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윤동주와 정지용의 숨결이 일렁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이 모두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서 공부했고 그들의 시비가 그곳 교정 한 편에 세워져 있다.

나는 하루는 일행들과 함께 어마어마한 불상이 있는 도다이지에도 가고, 거기서 옛날 그렇게 무섭게 보이던 사슴들도 정답게 보고, ANA 호텔 조촐한 침대에 누워 객창감을 달래기도 했다.

하루는 걸었다. 오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이죠성을, 오후에는 도시샤 대학으로, 교토 타워로, 정지용이 거닐던 오리천으로, 게이샤들이 아직도 있다는 기온 거리를 쏘다녔다.

일주일 사이에 이 몸은 난징에서 서울을 거쳐 교토까지 돌았다.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할 여행길에 동아시아 세 나라가 가까워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자리에 누워 팔베개하고 생각한다. 중국은 크고 무섭게 초현대화 하고 있고, 일본은 어딜 가나 정석에 깨끗하고 조용하다. 우리나라는?

아침이 되자 언제 들어오셨는지 모르는 룸메이트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사람들이 밀려 있다. 순번 티켓을 주고 자리가 비고 치우고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뷔페식이지만 오늘은 일식 정식을 먹을 참이다. 너무 많이 먹고 마시고 달려온 일주일이었다.

음식을 차려 가져와 앉으니 창밖이 보이는 곳이다. 눈이 내리고 있다.

교토의 눈은 흔치 않다. 따뜻한 고장이라서 그런지 물기를 함뿍 머금은 눈송이가 탐스럽다. 유리창 벽면 가득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한다.

갈 길이 멀다. 어디로 가든 나의 나라로 돌아가는 길, 그렇게 멀어 보일 수 없다. 멀리서 보아 더욱 애잔한 나의 나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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