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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에 가다

등록일 2014-11-20 02:01 게재일 2014-11-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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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

졸업 30주년 동창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세월이 흘렀으니 어떻게든 만나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맞다. 벌써 그렇게나 됐나?

한 사람 당 얼마씩 내서 준비를 하자는데 좀 많다 싶기는 해도 30년만의 일이다. 그 정도는 부담해야 할 것도 같다.

그러마, 가마, 했다. 그러고도 회비도 내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늦더라도 내기는 내고 참석도 해야겠는데, 마음이 흔쾌하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떤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만나지 않은 친구들을 동창이라고 어색하게 마주 앉게 되는 것, 그러면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하는, 오래된 인연을 새로 돌아보는 데 따르는 부담감 말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언젠가부터 동창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축에 들어간 사람들이 자기 확인을 하는 공간 같은 인상을 주었다. 우정의 확인도 확인이지만, 이 확인이 각자가 사회에 나가 외면적으로 성취한 정도를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 이것이 동창회 속의 나를 늘 어정쩡한 사람으로 만들곤 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나는 꼭 참석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도 있다. 결국 회비도 가외로 조금 더 내고 못 가겠다고 했던 것을 번복해서 잠깐이라도 참석하기로 한다.

드디어 날이다. 나는 몇 시간 먼저 대전에 가 고등학교 때부터 늘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어떤 이유로 이 친구는 동창회에 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대전역 앞에서 만나 오래된 시장통 골목으로 갔다. 그곳에는 우리가 가끔씩 들르는 음식점이 있다. 우리는 늦은 점심을 대신해서 막걸리 두 통을 나누어 마셨다. 옛날 얘기부터 요즘 세상 얘기까지 안주를 삼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두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또 보자.

나는 친구와 헤어져 동창회가 열리는 호텔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동창들과 깊이 사귀어오지 못한 나는 몇 사람 되지 않는 그리운 얼굴만 찾는다. 하나는 홍성에서 못 올라왔다 하고, 한 사람은 늦게나 참석할 수 있으려나 한다. 동창들이야 다 친구지만 그래도 어디 앉아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같은 사람이 나만은 아니다. 점퍼 차림으로 회장 안을 서성거리며 좀처럼 좌정하지 못하는 한 사내가 있다. 얼굴도 본듯하고 무엇보다 동창 임은 확실한데, 선뜻 말을 붙일 수가 없다.

시간이 일러, 참석자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마주 서서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이런 순간의 곤혹스러움은 말로 딱히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어색함을 헤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무슨 농사인고 하니 인삼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인삼은 농약을 많이 써서 몸에 좋다는 홍삼도 썩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속설을 떠올리는 찰나, 자기는 유기농 인삼을 재배한다고 한다.

어느 기업에 다니던 중에 IMF가 왔고 누군가들은 회사를 나가야 했기 때문에 자기가 먼저 그만두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집안에 땅이 있기도 해서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벌써 15년이나 되었다는 이 친구는 기왕이면 좋은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이 뜻대로만은 풀리지 않은 눈치다.

농업이 참 중요해.

나는 이 말수 적은 친구가 띄엄띄엄 던지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세상에는 꼭 필요하지만 돈의 척도 때문에 경시되는 일이 많다. 나는 낮에 막걸리를 같이 마신 친구를 생각한다. 아무 법도 필요치 않은 바른 친구지만 세상은 그를 불러들이지 않는다. 그런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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