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바야흐로 힐링 시대다. 치유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몸도, 마음도 치유해 줘야 한다는 말이 홍수를 이룬다. 힐링을 위한 수련원이나 휴양지가 각광을 받고 이런 힐링 저런 힐링이 조수가 바뀌듯 밀려들고 밀려들고 한다.어떤 기자분이 내게 물었다. 힐링 열풍의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힐링은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힐링 열풍의 배후에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참여에 대한 실망감이 가로놓여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들은 사회를 공동체로 바꾸려는 노력을 펼쳐왔다. 민주주의, 복지, 노동 조건 개선, 생활협동조합, 새로운 교육, 시민단체, 여성 인권, 귀농…. 이런 쟁점들이 우리 사회에 물결처럼 밀려와서 밀려갔고 또 그런가 하면 밀려가지도 않고 머물러 있기도 하다.그래서, 그렇게 해서 우리들은 행복해졌는가? 삶은 나아졌는가? 삶의 보람을 찾았는가?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져야 한다.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가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모두 고통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는, 투쟁의 형태가 아니고는 이루어져 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변화를 추구하는 흐름과 본래 가치를 지키려는 입장 사이의 대립과 투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지만, 우리 사회에 깊은, 집단적인 상처를 남겼다.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바꾼다 해도 그 대가가 너무 크다. 또 그러는 사이에 숱하게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내가 소속한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이 나를 힘들게 하고 병들게 한다.힐링 열풍은 그 결과 중 하나다. 시선을 사회에서 자기로 바꾸어 주고 그럼으로써 지치고 병든 나를 구제하려는 사회적 현상이 주류화 된 것이다. 그래서 힐링 열풍은 대규모의 사회적 흐름이지만 그 실천 단위는 개별자라는 독특한 양상을 띤다.힐링은 또한 우리들의 관심을 물질적인 것, 제도적인 것, 법률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 무형의 것, 비공식적인 것 쪽으로 돌려나왔다. 물질적 조건의 개선을 위한 제도적, 법적 투쟁은 개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그들의 영혼을 짓밟고 일그러뜨렸다. 고귀한 이상이라고 믿었던 것이 자기를 망가뜨리고 흉칙하게 만들었던 경험을 우리는 수없이 겪어왔다. 이제 바뀌어야 하는 것은 그래서 사회가 아니라 자기가 되었다. 치유해야 하는 것은 자기, 나라는`사실`이 명백해졌다.힐링은 다시 멘토를 요청하게 됐다. 사회를 바꾸려는 집단적 흐름은 그 운동의 지도자를 요청한다. 이 지도자는 운동의 단위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지만 그 단위를 벗어나면 영향력은 사라진다.멘토는 그와 다르다. 멘토의 치유적인 능력이 미치는 범위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그 영향력의 정도도 불확실하다. 어떤 멘토의 지도력이 힐링을 요청하는 이의 삶에 얼마나 구체적인 힘을 행사하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 힘은 폭넓고 유연한 지도력을 가진다. 개인들은 멘토를 자신의 삶의 개선을 위한 하나의 방법적 가능성으로 승인한다.이렇게 해서 힐링의 시대, 멘토의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구원을 향한 여행을 떠난다. 자기 치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영혼은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는 없다. 그들의 진짜 자기는 그 공적 영역이 아니라 구도 여행 중인 여로 속에 있다.그러면 그가 떠나버린 사회 속엔 무엇이 남았나. 처세. 바로 처세가 남았다. 사회는, 공적 공간은 처세해야 할 곳일 뿐이다. 사회에서는 좋은 처세로 성공을, 진짜 자기는 구도자의 여행으로.지금 서점가는 힐링, 멘토, 처세가 키워드다. 이것은 어쩌면 이 사회가 겪고 있는 병의 깊이가 더 심각해졌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201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