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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리즘, 민족, 그리고 한국인의 자각

등록일 2013-06-13 00:39 게재일 2013-06-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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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필자의 경우에는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애국가를 배우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국기에 대하여 맹세를 하면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몬트리올 올림픽에 나간 양정모 선수가 우리나라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도 한국인으로서의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축구를 대단히 좋아해서 박스컵이나 월드컵 예선 경기가 있는 날은 전부들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 있었다. 그땐 왜 그렇게 골을 넣기가 힘들었는지 모른다. 열렬히 응원을 해도 열에 여덟은 진땀을 흘리고 괴로워해야 하는 결말들이 많았다. 그래 전부들 열렬한 애국자였다.

나이가 들어 대학교에 들어가 현실을 비판하는 법을 배웠다. `창작과 비평`이나 `사상계`영인본 전집을 사고, 김수영 시집은 꼭 들고 다녀야 대학생 같다고들 생각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을 때였다. 나라와 민족이라는 말은 추상적이고 그 내용적 실체는 국민, 그 중에서도 민중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들어 나라를 `들먹이고` 민족을 `파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그런 추상적인 민족주의가 이 나라를 오히려 병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대학원에 가서도 비판적 지성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까닭에 공부도 기초적, 기본적인 문학이론도 다 익히지 못한 주제에 사상이나 이념, 시각에 관련된 사회과학 책, 인문학 책을 탐독하면서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비평가가 되려고 했다.

그러다가 1997년 2월 우연한 기회를 얻어 일본에 11박12일쯤 후쿠오카, 오사카, 교토, 도쿄로 연결되는 여행을 하게 됐다. 최원식 교수가 추천해 주셔서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초청을 받아 신경숙씨와 함께 일생에 두 번째 해외여행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필자는 깊은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을 모르고 일본에 가본 적도 없고 오로지 우리를 식민통치한 나라라는 생각만으로 밉게 보고 얕잡아 보고 싫어하기만 했던 일본이 자기들 전통과 역사를 얼마나 열심히 가꾸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이때의 충격은 마치 김수영 시인이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조선 여행기를 읽고 `거대한 뿌리`라는 시를 써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라고 했던 것에 비견될 만하다.

그때 필자는 우리나라는 과연 전통과 역사를 얼마나 잘 보존하고 있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필자는 비판적 지성이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아는 것, 자기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비로소 나중에 박사논문이 된 채만식 연구의 싹이 움텄다. 채만식은 `조선적 근대문학`이라는 문제를 안고 고민한 작가였다.

최근에 이숲이라는 작가가 `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이라는 책을 냈다.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영어로 운영되는 석사학위 과정에서 냈던 논문을 바탕으로 `한국인`에 대한 사유를 펼쳐놓은 것이었다. `내한민국`이라는 말이 아주 인상적이다. `나의 대한민국`이라고 풀이할 이 말은 저자가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재발견하게 된 이야기다. 그녀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한국인의 이미지를 걷고 한국인의 참모습, 진짜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녀는 386세대의 일원이다. 그런 `비판적` 지성이 우리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나라로, 우리나라 사람을 사랑받을 수 있는 덕성을 갖춘 사람들로 재발견하게 된 사연들은 감동적이다. 그래서 문화부 장관도, 조국 교수도 모두 그녀의 논의에 귀를 기울였는지 모른다.

지금은 글로벌리즘의 시대다. 그러나 이런 시대일수록 자기를 제대로 알고 진정한 자기의식을 갖는 일이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저 일본에서 왜곡된 국가주의가 발호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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