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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불감증

등록일 2013-04-25 00:24 게재일 2013-04-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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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부산 옆에 기장군에 문학 강연을 하게 되어 아침 일찍 떠났다. 전날 회식이 있어 열두시 넘어서까지 무리를 했지만 일은 해야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서울 역으로 나가 다섯 시 삼십 분 KTX를 탔다. 어디를 가도 가볍게 다니지 못하는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이번에도 트렁크에 책을 잔뜩 구겨넣고 떠났다. 오가면서 책이라도 읽고 글이라도 쓰겠다는 욕심을 부린 것이다. 하지만 전날 무리한 때문인지 눈이 감겨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대전까지 그냥 잠만 자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강연 때 쓸 원고를 정리하려고 스마트폰을 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분명 이메일로 발표 원고를 부쳐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메일 받은메일함에는 한 페이지 남짓한 분량밖에 없는 미완성 원고가 첨부돼있다. A4 용지 4~5페이지 분량을 써놓았는데, 이럴 수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해 봐야 소용 없다. 결국 나는 다시 써나가기로 했다. 다행히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세세한 주를 붙이지는 못할지 언정 다시 빨리 쓰면 될 것 같다. 노트북 컴퓨터를 열고, 제목부터 단 뒤 대전에서 부산까지 두 시간 반 동안 원고 쓰는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일은 기차가 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끝나지 않는다. 도시철도로 갈아타서 서면 역까지 계속 노트북을 두드려서야 원고 작업이 겨우 끝났다.

노트북에서 아래아 한글로 작성한 원고를 블루투스를 사용해 스마트폰에 보내고, 다시 이 원고를 스마트폰에 설치된 학교 메일을 통해 부치고 나니 겨우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원고가 잘 당도했는지 담당자와 전화까지 하고 나서 비로소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검색해 본다.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정지돼 전력 준비령인가가 발동되었다는 소식이 메인으로 떠있었다. 사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기장군이라는 곳이 고리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곳이라고 했었다. 사고가 난 원자력 발전소는 경주 쪽에 있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원자력 발전소 고장이다, 가동 정지다 하는 뉴스가 요즘 심심찮게 기사로 올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원자력발전소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마음이 심히 불안해졌다.

기장군청은 군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군민대학이라는 것을 운영하면서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전문가들을 초청해 군민들과 만나도록 한 것이 그 하나다. 기장군이 이렇듯 재정적인 힘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것도 다 원자력발전소 덕분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원자력이라는 것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원리원칙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지극히 위험한 문명의 이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나라가 안전 문제에 아주 둔감하고, 준비가 잘 안돼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육해공부터, 지하에까지 수많은 대형 안전사고가 일어나 아까운 인명들이 희생됐다. 그 후 많은 노력과 정비가 이루어져 그와 같은 참사들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지만 원자력 발전소나 핵은 우리 삶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로 남아 있다. 최근 북한에서 핵실험 운운 하면서 남쪽을 위협하고 있다. 원자력이나 핵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잘 알고 있는 인류 사회를 향한 북한 정권의 도발에 우리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내부에서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들은 훨씬 더 엄정한 관리체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나는 1년 전에도 원자력 발전소 관리 문제를 논의에 올린 바 있는데, 그 무렵 상당한 문제 제기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소 관리를 둘러싼 크고 작은 문제들이 부각되는 것을 다시 보게 된다.

기장군청에 강의를 하러 가면서 궂은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편치 못했다. 원자력이 돈이 되고 문화적 혜택이 되는 것을 홍보하고, 그것을 누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안전하지 못한 원자력은 재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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