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 사람 안색이 별로 편치 않았다. 당연히 왜 그런지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 사람 말이, 학교에서 늘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인사를 해도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더니, 일이 없지는 않았더라고 한다. 사람을 새로 들이는 일이며, 학사 일정이나 업무 처리에 관해서 상의하는 중에 의견 충돌이 꽤 자주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끼리 만나서 인사도 하지 않게 됐냐고 했더니, 그게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인사도 하고 말도 붙여 보고 해도 영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건물 복도에서 서로 마주쳤는데, 안녕하세요? 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건만 아예 쳐다도 안 보고 지나치더라는 것이었다. 그럼 당신이 잘못을 해도 크게 잘못한 게 있는 게 아니냐고 또 물었더니, 대답인즉슨 처음부터 그렇게 뻣뻣하고 매사를 늘 명령조로 처리하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한두 가지 일에 대해 의견이 다른 것을 내비쳤더니 슬슬 어긋나기 시작한 게 이 지경까지 왔노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때 그 사태의 원인이 어느 한 쪽에만 있는 경우는 없다. 어느 쪽이 더 잘못하고 있다 해도 그 잘못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잘 받아내서 원만하게 처리하거나 새로운 관계로 이끌어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이 두고두고 반복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사람의 일에는 어느 한 쪽이 더 잘못하는 경우가 확실히 많다. 지나가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경우가 있듯이 한쪽에서는 늘 자기 하던 방식대로 했건만 당하는 사람은 애꿎은 불행을 겪게 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는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심에 있는 사람과 주변부에 있는 사람, 윗사람과 아랫사람, 힘 있는 사람과 힘 부족한 사람 사이에서 벌어질 때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듣고 보니, 나도 옛날에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1990년대 초반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로 대학원에 동년배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들어가게 됐는데, 이미 들어가 있는 동기와 후배, 선배들 가운데 유달리 초심자를 박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후배가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사실은 대학 학부 생활을 할 때 같은 하숙집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대학원에 먼저 들어와 공부를 하고 있었고, 나는 늦게 들어온 게 죄라면 죄인 건지? 그러나 세상에 그런 죄는 없다. 나는 내가 그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게 없는지 곰곰 따져 보았는데, 그런 일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또 무심결에 저지른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나는 자그마치 1년을 두고 이 일을 고민했다.
사람이 이유도 모르면서 다른 이에게 그런 냉대를 받는 일은 도무지 견디기 힘든 것이고, 또 그것이 자신이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꾸 움츠러들 수 밖에 없다. 고민 끝에 나는 국어학 공부를 하는 여자 동기생에게 이 일을 대체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뭘 그걸 고민해? 너도 똑같이 해줘.”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 하나. 사람은 자기를 환대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또 그 사람을 위해서 마음을 쓰게 된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도 언제나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그러나 세상은 역시 그렇게 차가운 사람들이 아니라 남을 환대해 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