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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겨울에 추운 이들에게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겨울 날씨는 변덕스러울 때가 있다. 따뜻해졌는가 하면 금방 다시 추워진다. 눈비가 오면 더욱 그렇다. 오늘 새벽에는 서울에 눈이 꽤 내렸지만 낮이 되자 다 녹고 없다. 하지만 일기예보에 내일은 더 추우리라 한다. 오늘 밤 눈이라도 오면 세상이 꽁꽁 얼 것 같다.문학잡지 일을 같이 하던 후배가 며칠 있으면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1년을 동고동락했는데, 잡지 운영이 어렵다 보니 출판사에서 인건비부터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요즘 출판사 경기야 말할 것도 없으니 출판사를 탓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일로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마음 아픈 일도 없다. 좀더 버젓하게 일을 만들어가지 못하는 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뭔가 일을 정식으로 하고 싶어도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의욕도 있고 능력도 있고 애도 쓰는데 그에 걸맞은 자리가 주어지지 못한 사람을 보면 세상은 왜 이렇게 부조리한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어제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를 만났다. 작년에 하와이에 가서 알게 된 사람, 좋은 후배님이다. 모처럼 한국에 왔다고 이렇게 저렇게 연락이 되어 학교 앞 식당 비슷한 곳에 셋이서 만났다. 인생이 어느 정도 깊어가면 너댓 살 차이는 묻어가는 법이다. 그 자리는 딴 사람이 밥을 사고, 뒤이어 내가 맥주를 사겠다고 독일 맥주를 파는 곳으로 데려 갔다.셋이서 노란 조명 불빛 아래서 노란 밀맥주를 시켜 놓고 이야기를 나누자니 바깥 날씨와 달리 몸도 마음도 풀어지는 것 같다. 그때 이 후배님이 배낭 가지고 온 것에서 두 번 접힌 흰 8절지를 주섬주섬 꺼낸다. 웬 성명서냐는 듯 궁금해 하는 두 사람에게 이것은 오랜만에 서울로 자기를 찾아오신 아버지께서 직접 써서 주신 것이라 한다.그러면서 보여준 그 8절지에는 싸인펜으로 먼저 한문이 씌어 있고, 그 아래에 볼펜으로 해석 문장이 씌어 있다.우리는 노란 불빛에 이 글발을 비추어보며 읽었다. 이는 어느 고전에서 인용해 온 것인데, 그 뜻풀이를 그 어른이 쓰신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갈다.“사람이 이 사람에게 대임을 내리고자 할 때에는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고달프게 하며그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그 몸과 살을 주리게 하고그 몸을 텅 비고 모자라게 하여행함과 하는 바를 어지럽히지 않는 게 없이 하나니참는 성질을 충동하여더욱 못하는 바가 없게 하려는 것이다.”나는 이 여덟 줄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 하마트면 내 고질병을 노출할 뻔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간신히 추스르고 감출 수 있었던 것이다.한 문장 한 문장이 읽고 있는 내 폐부를 찔러 마음을 아프게, 그러나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아버지가 공부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찌 이보다 더 절실하게 표현할 수 있으련지?요즘 세상은 가치 있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들이 제값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다. 십 년, 십 오 년 공부를 해도 쓰이지 못할 때 그 쓰린 마음을 어디에 비길 수 있겠는지?하지만 문제는 공부하는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삶에 겨운 이들이 많다.내가 과연 이 사람들의 사정을, 심경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성원한다. 마음과 뜻이 고달픈 사람들, 몸과 살을 주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 죄 많은 세상을 위하여 시련을 앞서서 겪어가는 이들이다. 이 추운 겨울, 우리는 서로 기대어 견딜 수 있어야 한다.

2013-12-12

철과 구리로 만든 세상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김기덕 영화 중에 큰 상을 받아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피에타`다. `피에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로서는 아주 이례적인데 그것은 세상의 그로테스크를 그리는 감독이 이 영화에서는 그로테스크 이상의 의미를 추구했기 때문이다.그로테스크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이한 것,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세상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어떻게 보면 삶 자체가 이상한가. 불합리한 것 투성이다. 노력해도 결실이 따르지 않고 왕후장상은 따로 타고 난다는 이치도 옛날과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인간 삶의 기이한 국면들을 그리는 김기덕의 영화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만큼 구제와 구원의 전망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어 왔다.그런데 `피에타`는 달랐다. 이 영화는 철공장 지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철공장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돈이고 자본이다. 철공장지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대세계의 냉정한 운영 논리를 대표한다. 이런 상징적 지시 작용을 통해 피에타는 이전의 김기덕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보편적 전달력을 확보했다.피에타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지극한 슬픔을 말하는 것이 아니던가.철공장 지대에서 빌려준 돈을 추심하는 심부름으로 남을 죽게 만든 젊은이의 비정한 심정세계에 어떻게 사랑이라는 따뜻한 피가 돌도록 할 것인가?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조민수는 자신을 그 젊은이의 어머니라 믿도록 만들고, 그 어머니 `된` 자기의 죽음을 체험하도록 함으로써, 얼어붙은 젊은이의 마음에 슬픔의 싹이 돋아 나무가 되어 잎이 나도록 한다.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세상이 따뜻해질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그것은 남도 자기처럼 슬플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며, 그리하여 남의 고난과 고통에 자기 자신도 감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좋은 영화다. 그러고 나서 최근에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읽었다. 거기 실린 다섯 편의 단편 전기소설 중에 `남염부주지`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여기가 철과 구리로 만들어진 세계다.그 작품에 나오는 나라는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한다. 없다. 모래도 자갈도 없다. 있는 것은 철과 구리뿐인데, 그것이 모두 녹아 끈적끈적하게 흘러 넘친다. 사람들은 그러니까 살 수 없는 곳인데, 하지만 그곳이 바로 지옥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지도 못한다. 사람들은 살갗이 다 타버리고 뼈가 녹아도 다시 살아나 고통을 반복하며 살아가야 한다.생각해 보면 이 남염부주지의 세상이 바로 김기덕 영화 `피에타`의 철공장 세상이다. 김시습은 그 수백 년 전에 지금의 영화감독이 배경으로 내세운 철과 구리의 세상을 제시했던 것이다. 참으로 감탄스러운 일이다.생각해 보면, 뜨거운 여름과 싸늘한 겨울의 쇠는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가. 이 쇠와 구리의 세상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용광로 속에서 소용돌이치며 흘러나오는 쇳물은 얼마나 뜨거운가. 이 뜨거움을 식혀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이냐.지금껏 말해왔듯이 그것은 타인의 고통에 자기 자신도 아파할 수 있는 마음,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러니 세상은 슬픔이 넘치도록 흘러야 살 만 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쁨이 넘치게 하지 말고 슬픔이 넘치게 하라. 이 흐름이 세상을 구제, 또 구원해 주리라.

2013-12-05

문학상 시상식 뒤풀이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문학상은 옛날에는 아주 없거나 적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다 싶을 정도다. 하지만 빈익빈부익부라, 문학상에도 이 원리가 작동한다. 타는 사람은 이 상도 타고 저 상도 탄다. 차례가 안 오는 사람은 영 오지 않는다. 문학상을 타는 방법이 있다. 열심히, 잘 쓰면 된다. 최고의 가치를 가진 작품을 쓴다면 문학상이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문제는 그 평가의 시각이라는 게 문학 같은 예술에서는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잘 써도 문학상 차례가 안 오는 경우가 생긴다.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열심히는 좋은데 잘 쓰는 사람은 아주 적고 그런데도 문학상은 아주 많은 데 있다. 여기서 상을 수여하는 사람 주변에 문학인들이 우우 모여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문학계에서는 이 시상 주체 역시 독점화 되어 있어 특정한 사람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은 더욱 흉하게 드러난다.문학상 문제와 관련해서라면 나는 한국이 아메리카 대륙만큼이나 커서 누가 상을 받든 웬만해서는 비행기삯 때문에 시상식장에는 가볼 엄두가 안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요즘 우리 문학계의 시상식 풍경은 그야말로 동네 잔치다. 문학상의 계보나 상을 받는 사람의 계열이 확연하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 상을 둘러싼 역학 관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모여든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이 무슨 뜻을 품고 왔는지가 말하지 않고 표정을 감추어도 드러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한 이십년 전에는 누가 받든 잔치집 가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 먹어 볼까 하는 순진한 하객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실없고 순진한 하객은 찾아보기 어렵고 상을 중심으로 근접 관계자들, 심사자, 수상자, 수상 대기자, 야심가, 초조한 관망파 같은 사람들이 화려하지만 무표정해 보이는 샹젤리제 밑에 서서 의식을 거행한다. 뜻 있는 사람이 보면 음, 이게 그렇군, 하고, 차가운 눈초리를 보내기 딱 알맞다.시상식 뒤풀이장은 더욱 가관이다. 시상식에 참여한 것만으로는 눈도장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그리고 평소에는 그런 역학적 관계에 대한 고려를 충분히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에, 시상식 뒤풀이장 같은 주연이 그들에게는 좋은 기회의 장이 된다. 힘 있는 아저씨, 왕 언니 주변에 스스로 권력의 지근 거리에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런데 이 사람보다는 내가 높고, 혹은 가깝고, 저 사람보다는 낮거나 멀다는 의식을 은연중에 작동시키면서, 그러나 그것이 문학이라는 것을 빌미 삼은 이 허울 좋은 자리에서 티나게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경계심까지 기술적으로 발휘하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또는 양보한다.이제 본격적으로 기술을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술을 마시는 것도, 잔을 부딪히는 것도, 찬사를 늘어놓는 것도, 누군가에 대한 소문을 험담 삼아, 마치 무의식중인 듯 늘어놓는 것도, 다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종목들이다.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나마 서투른 기술자들은 조심조심 연기를 하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그날의 행사를 치러낼 수 있지만, 그날 따라 무슨 일로 기분이 특별히 나쁘거나 좋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또 그날 따라 어떤 특별한 목적이나 동기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각별한 연기를 해야 할 필요를 가진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또 무엇인가를 과시해야 할 사람도, 누군가의 눈에 들어야 할 사람도 있다.이런 사람들이 모여 뒤풀이의 곡예까지 다 치러내고 어떤 작가는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한다. 내년에는 내 차례야. 또 어떤 재주도 없으면서 과분하게도 문학상을 타왔고 심사까지 하게 된 작가도 생각한다. 그 놈을 죽여 놓았어야 되는데. 이쯤 되면 문학상이 적은 곳에서 살고, 차비를 비싸게 치르지 않고는 시상식에 가기 힘든 곳에 사는 게, 아닌 게 아니라 그나마 문학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좋은 여건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 할 것이다.

2013-11-28

나는 험한 말이 싫다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옛날에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에 나타날 때 사회진화론이라고 해서 생물학적 진화론과 유사한 것 같은 사회학설이 맹위를 떨친 적이 있다. 사회가 진화해 가는데, 즉 앞으로 나아가는데 인간 종들 사이의 생존 경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고 해서 생존을 위한 투쟁보다 상호 부조가 진보를 위해서도 핵심적이라고 설파했다. 하지만 많은 학설가들은 그런 것보다는 싸움과 상극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를 좋아한다. 사실, 그런 문제는 진리를 향한 성실성의 문제라기보다도 인간 타입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그것이 옳기 때문에 믿는다기 보다는 그런 쪽이 마음에 들어서 믿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누구나 진실에 대한 의욕이 있겠다.그 무렵에, 사회진화론자들은 인류를 구성하는 제 민족들을 문명한 인류니, 더 문화적인 인류니, 하등 인류에 야만한 인류니 하고 등급을 매기길 즐겼다. 그때 한국 사람들은 꽤 낮은 등급으로 분류되었다. 일본 사람들은 물론 그보다 꽤나 높았다. 영남 사람은 호남 사람보다 높다든가 낮다든가 하는 것을 외국 학자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조선 인종이라는 것 자체였다.요즘 인터넷을 보면 댓글이 정말 무섭다고 느끼게 된다. 실명제 없다고 그렇게 해도 될까? 사람이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드는 글이 많다.왜 이렇게 말과 글이 각박해졌을까? 삶이 힘들어져서일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삶이 더 나빠지면 더 나쁜 일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나는 노무현 정부 시대에 말이 험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런 험악함에는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어른이니 아이니, 하는 구분이 다 소용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은 옳고 남은 틀렸고, 나는 그런 말을 해도 되는 자격이 있고, 남은 그 말을 들어도 싸다는, 지극히 자기 본위적이고 우월적, 차별적인 사고법,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격이 문제일 뿐임을 절감했었다.지난 10년이 그러했는데, 11년째가 되어서도 사태가 나아지기는 커녕 더 나빠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나만의 감각일까?20대 후반에 무슨 일로 마산에 가서 택시를 탔다 어세가 어찌나 강하게 느껴지는지 적응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영남으로는 별로 가본적이 없어서 일 것이다.나중에 문학 일로 10여년을 해마다 한 번씩 마산에 가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예의바르고도 다정다감할 수가 없다. 그런가 하면 부드러운 줄 알았다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본래 사람은 멀다고, 낯설다고 생각하면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법이다. 독일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은 낯선 것을 향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가리켜 미소니즘(Misoneism)이라고 했다. 이 원초적인 감정을 조금만 지긋이 눌러두면 진짜 인간을 만나게 된다.나는 문학이나 정치나 종교나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본다. 그것은 두 글자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이 허다한 문제들의 정답임은 1+1이 2인 것과 같이 쉬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번연히 옆에 모자를 두고 먼 곳에 가 찾는다. 눈이 어둡듯이 마음이 어둡기 때문이다.사실, 그래서 문학도, 정치도, 종교도, 우리들의 말과 글도 어렵다. 그 정답을 옆에 뻔히 두고도, 나는 남보다 낫고, 남은 때려 상처를 줘도 좋다 한다. 내 마음 속 투쟁론적 진화론을 버리고 나면 세상에 이 좁은 땅에서 무슨 험한 말을 하랴.

2013-11-21

이광수란 누구인가?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이광수란 누구인가? 이것은 지난 11월9일에 메이지학원대학의 시로가네 캠퍼스 본관 10층에서 열린 심포지엄의 제목이다. 메이지학원대학의 전신은 메이지중학, 올해로 15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국제 심포지엄을 마련한 것이 바로 이광수를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 학교는 이광수, 주요한, 김동리가 차례로 거쳐간 학교로서, 한국의 학계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이광수를 단일 주제로 삼아 학술대회를 열기는 이번이 일본에서도 처음이다.아침 9시에 심포지엄에 관계된 주요 발표자와 토론자가 본관 911호 회의실에 모여 준비 모임을 가졌다. 기조 발제자인 가와무라 미나토 선생이 늦은 외에 모든 관계자가 거의 정시에 참석했다.상견례를 하고, 행사를 주관한 메이지학원대학 측에서 시마다 사이시 교수가 나와 행사 전반의 구성과 운영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하나의 학술행사가 내실있게 진행되려면, 무엇보다 주최측의 행사 준비가 철저해야 하고, 또 발표자의 준비가 새롭고도 철저해야 한다.메이지학원대학에서는 이번 행사를 위해 벌써 몇 달 전부터 원고를 받아 번역을 하고, 여러 번 확인을 하고, 행사 이틀 전까지도 메일을 보내 재삼 , 재사 진행 상황을 알려오는 성의를 보였다.김진아 교수의 사회로 가와무라 교수가 이광수를 일본의 `일그러진 거울`로 묘사하는 기조 강연을 했다. 다음으로는 문학, 종교, 역사에 걸쳐 이광수를 논의하는 주제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한국에서 건너간 나, 이 심포지엄 성사에 깊이 관여한 메이지학원대학의 서정민 교수, 재일한국인인 혜천여자대학원의 이성전 교수가 차례로 발표했다.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을 새로 조명한 내 발표는 가와무라 선생과는 논지가 아주 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내가 `일그러진`이라든가, `콤플렉스` 같은 것보다, 어떻게 해서 이광수가 새로운 타입의 소설을 `창조`할 수 있었는가를 밝히고자 했기 때문이다.나는 일본이나 서양 것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모방, 이식하지 않고, 당대의 조선이든, 유학해 공부한 일본이든, 그 자신이 몰두한 유럽, 러시아, 미국의 문학이든, 자신의 문화적 배경들을 골고루 흡수하면서 새로운 문학,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가는 이광수의 모습을 조명했다.나는 이러한 이광수 이미지가 오늘날의 우리들, 곧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고 있는 이광수란 일제말기에 특히 대일 협력에 몰두한 이광수다. 사람들은 그를 잘 알지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가 진부하고, 혐오할 만한 `친일파`이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많은 이들은 반제국주의적인 양식을 가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향이 있다.반면에 나는 이광수가 일제 총독부 지배 체제와 도산 안창호의 민족 사상 사이에서 젊을 때부터 스윙해 온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며, 적어도 장편소설 `무정`의 단계, 그 젊은 시절에는 일제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에 새롭고도 보편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고심했다고 보았다.행사가 정리된 후 3차의 뒤풀이 자리에는 나와, 서정민 교수, 이성전 교수, 토론을 해주신 서강대학교의 최기영 교수, 그리고 시마다 사이시 교수, 통역의 마쓰모토 켄사쿠씨가 남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이광수가 공부한 도쿄의 시로카네의 조그마한 술집이 이렇게 시간의 격절을 뛰어넘어 한 인간을 탐구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문학의 힘이자 매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밤이었다.나라면, 지금이라면, 이광수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지금 나는 이광수 문제를 내 문제로 본다.

2013-11-14

삶의 방법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동물로 치면 톰슨 가젤은 풀을 뜯어 먹고 사자는 버팔로를 사냥하고 하이에나는 사자가 남긴 것을 먹거나 집단으로 사자한테 뺏어 먹고 살아간다.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다 유전자가 시킨 일이니 사자라 해서 탓할 일이 아니요 하이에나라 해서 나무랄 일이 아니다.사람은 어떤가. 어떤 사람은 초등학교부터 대학 나올 때까지 노심초사하면서 하루 하루 주어진 과제에 최선을 다해도 항상 입에 풀칠이요,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 중학교 건성 건성 다녀도 호주머니에 돈을 기백만원씩 넣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아예 학교라고는 겨우 졸업장 받앗을까 일찍부터 일선에 뛰어들어 공사판 일하다 건축에 눈 뜨고, 단란주점 웨이터를 하다 술집을 해서 돈을 벌고 또 그 돈을 흥청망청 쓰다 불경기를 잘못 만나 부도를 내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서울 근방에 신도시가 많은데 그중에 일산이라고 있어 1980년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곳이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어 거기 집 하나라도 가진 사람은 그래도 살 만하다는 세상이 되었는데, 정작 그 땅이 때를 만나 도시계획에 따라 땅을 `불하`받아 시행사를 하고 돈을 굴리면서 꽤나 큰 손 행세를 하던 사람도 인생살이의 유전을 견디지 못해 이제는 남의 회사 자가용에 운전을 해주며 살기도 한다.사람이 사는 방법들을 향해 함부로 탓할 일이 아닌 것은 이 인간이라는 것이 참 묘해서 어떤 인간은 물질적으로만은 절대 살지 못해 멀쩡한 시간을 참선을 하고 요가를 하고 기 수련을 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하루 풀칠의 업이 무겁디 무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변화무쌍함이 있기 때문이다.나는 오늘 인생을 저윽이나 풍운아처럼 헤쳐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또 얼마나 기이하고 곤궁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냐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느냐 생각한다.대저 남의 말을 들어주는 위치에 있지 않고 자기 얘기를 들어 달라고 하는 사람은 속되게 표현하여 을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지식과 담론의 세계에도 확실한 태도라는 것이 필요해서, 누군가 이쪽이냐 저쪽이냐하고 물을 때 나는 이렇소, 라고 간단히, 명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갑이다. 지식이나 담론 세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이 세계의 어느 진영에 안전한 거처를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지식인은 당신은 누구냐 하고 물을 때 답을 하기 어렵다. 누구 편이냐 하면 답을 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이청준 소설에 단골로 나오는 얘기중에 전짓불 앞의 방백이라는 것이 있다. 옛날 6·25 때 밤에 캄캄한 곳에 숨어 있는데 갑자기 전짓불이 자기를 비춘다. 전짓불을 든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자기만 그 불빛 아래 표정이 다 드러난다.너는 누구냐.국군 편이냐, 인민군 편이냐.그때 대답을 자칫 잘못 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세상이 이와 같을 때 지식인 노릇 하기는 아주 힘들다. 사는 방법에는 여러 길이 있으나 이와 같이 살지 않고 저와 같이 사는 알리바이를 제대로 제시하기도 힘들다.사람의 삶이 외줄타기처럼 힘들어지면 사람은 착해지게 마련이다. 수구초심이라 하지 않던가. 육신의 배고픔을 채우는 일도,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모두 힘든 때다. 사는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나날.다들 안녕하시라. 외로워들 마시라. 누구나 애쓰고 있더이다. 오늘만 그러하지 않았더이다. 그 때가 언제일지 몰라도 아비와 아들이 손을 맞잡고 웃고 딸이 어미를 위해 밥을 지을 때가 오리다.가을이 깊으면 겨울이 오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봄이 또 오오. 저마다 능히 사는 기예를 익혀 보오.

2013-11-07

올해의 노벨문학상 잡감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얼마 전에 올해의 노벨문학상이 캐나다의 여성 작가 엘리스 먼로에게 돌아갔다. 소식을 접하고서 비평가로 이름을 내놓은 사람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서점에 가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라는 책을 사서 들고 다니며 읽었다. 그녀는 단편소설 하나에 세상을 다 남아낸다고 하는 광고 문구인지 심사평인지가 있었다. 본래 나는 그런 과장법을 믿지 않게 된 지 오래여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읽었다. 그러나, 그래도 노벨문학상인데, 하는 다른 한편에서의 기대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맨 첫 번 작품부터 세 번째 작품까지 읽고 네 번째 작품을 읽어 가다 그만 심드렁해져 버렸다. 여성 작가의 소설로서 이만하면 단편소설답게 꾸며놓았다고 평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대목에서 이건 노벨문학상이라는 아우라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야 한다.만약 엘리스 먼로의 단편소설 같은 것들이 노벨문학상에 값하는 것이라면 한국문학도 이제는 어엿한 세계문학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해도 별로 과장된 표현일 수 없겠다는 일종의 `반감` 같은 것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엘리스 먼로의 소설이 나쁜 것이 아니라 꽤 좋은 단편소설들이지만, 이 정도 수준의 단편소설을 한국문학은 어지간히도 많이 가지고 있노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지금 나는 최인훈의 `구운몽`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로 넘어 왔고, 이게 끝나면 손창섭의 `부부`를 읽을 것이며, 그 다음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소문 요란한 책을 읽을 것이다. 과연 이 작품들 중에 어떤 소설이 내게 진정한 영감을 줄 수 있을까.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과연 도스토예프스키다,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는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다.도스토예프스키가 살던 시대에 러시아는 전제적인 제정과 농노제와 저개발과 사회주의가 혼란스럽게 소용돌이치는 세계였다. 그때 러시아인들은 물질적으로 궁핍했고, 그보다 격심한 영혼의 갈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죄와 벌`이나 `까라마조프의 형제`같은 소설은 그러한 사회상황에 대한 본격적인 작가적 반응이었다.왜 하필 `까라마조프의 형제`를 꺼내들었는가. 물론 어떤 평론의 과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 소설에 대한 내 갈증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소설은 소설의 사회학의 수준에서 더 깊어지지 못하고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 왔다. 그것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어느 날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니, 네 사람인가 다섯 사람이 앉아서 좌담을 하고 있다. 우리도 남들처럼 잘 살아보자고 한 그 생각은 위대한 것이었다는 이구동성이었다. 그때 나는 마침 `까라마조프의 형제`를 베갯머리에 놓고 잠들어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세 사람의 인간형을 제시했다. 큰형 드미트리 까라마조프, 둘째 이반 까라마조프, 셋째 알렉세이 까라마조프가 그들이다. 무엇으로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미학 또는 사랑인가? 세속적 삶의 개선인가? 종교적 초월인가?우리 소설은 늘 가난을 말하고, 사회적 부조리를 말하고, 또는 여자와 남자의 갈등을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부와 빈의 문제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이분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러면 당신은 먹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이냐. 먹는 문제가 해결 안 되고도 인간적인 품위를 지킬 수 있다고 보느냐. 나는 우리 소설이 이런 우문들을 물리치고 진정한 구원의 문제에 직입하기를 바란다.

2013-10-31

`여울물소리` 단상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오랜만에 요즘 나오는 장편소설이라도 섭렵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황석영의 작년 장편소설 `여울물소리`를 집어 들었다. 황석영이 직접 사인해서 보내준 책을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서가에 꽂아두었던 것을 이번에는 꼭 읽어봐야겠다고 펼쳐든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이른바 사재기 파동으로 출판계를 어지간히 시끄럽게 만들었던 작품이니만큼 어쩌면 읽으려다 말고 그냥 꽂아두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황석영이라면 그의 작풍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문학연구자라면, 또 비평가라면 함부로 홀대할 수는 없는 작가라고 생각한다.읽어 보았더니 이 소설은 몇 가지 점에서 음미해 볼 만한 점이 있다. 우선 이 소설은 동학혁명 때의 이야기이고, 또 그 시대를 풍운아처럼 살아간 이신통이라는, 이야기꾼이자 동학적인 개혁사상을 가졌던 사람의 이야기다. 황석영은`장길산`이라는 긴 역사소설을 썼던 작가이기는 하지만 첫 장을 열면서부터 참 문장 수월하게 나가면서도 온갖 역사 속의 어휘들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품이 과연 이야기꾼 황석영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최제우, 최시형, 손병희로 이어지는 동학에서 천도교로의 전개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해 놓은 사람은 `천도교 창건사`의 이돈화다. 이 책은 한자가 아주 많이 섞여 있는 책이고 지금은 아마 중간되지도 않았을 테지만 천도교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고자 할 때는 빼놓을 수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손병희의 뜻이 교단에서`친일파`들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이돈화의 저서 가운데에는 인내천의 사상을 근대철학 사상 체계들과 접합시켜 논의한`인내천의 연구`, 곧 `신인철학`이라는 것도 있어, 천도교 사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이 책은 없어서는 안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독하면서 동학, 곧 천도교에서 말하는 인내천, 즉`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이 얼마나 깊은 인간주의적 함의를 띠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 동학의 가르침이야말로 한국의 근대 사상 가운데 가장 빛나는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여울물소리`에서 이 동학을 이끌어 들인 황석영의 생각은 아주 야심적인 것이어서 그는 높은 가르침을 한글로 인쇄, 출판하고자 했던, 그러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남겨두고자 했던 이야기꾼의 존재를 작중에 깊이 각인해 놓았다. 이것은 아마도 `이야기`가 역사를, 근대적 전환기에 처한 인간들의 이상과 수난을 어떻게 수용하려 했는가를 보여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이는 `여울물소리`가 황석영이 지난 몇 년에 걸쳐 실험해 온 작품들, 예컨대,`손님`이나`심청`이나`바리데기`같은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냐. 그것은 이 소설들이 우리 한국인들의 이야기, 즉 신화나 전설이나 민담이나 고전소설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 새롭게 활성화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심청`은 이러한 맥락에서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본래`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들어 성립된 고전소설이지만 작가는 이 심청이라는 존재를 근대 격변기를 동아시아를 주유하며 살아간 여인으로 만들어 서세동점의 시대적 난국에 처한 동아시아 사회를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일본에까지 두루 떠돌아다니게 만들었다.이러한 작가의 의식적인 창작방법이`바리데기`에 이르러서는 다소 약화된 게 아니냐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여울물소리`는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생각해 본 것이 하나 있는데 이런 작가는 어찌 되었든 귀하다는 것이다. 그가 언론에 노출된 모습은 지난 몇 년 동안 다소 어지러웠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그는 작품을 꾸준히 구상하고 써왔다고 생각해 보면, 사람에 대해서는 역시 어떤 총체적 판단이 필요한 게 아니냐 하고 반문하게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013-10-24

귀의를 생각하는 마음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갑자기 사위가 고요해지고 적막해지는 때가 있다. 온갖 일들로 부산하게 움직이다가도 그 모든 게 부질 없이 느껴지고 내가 지금 무엇하고 있나 하는 상념에 잠겨들 때가 있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시월이 되면 이것 쓰고 저것도 쓰고 책도 편집하고 번역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막상 이 달이 되자 이렇게 작은 바퀴를 여러 개씩 굴려가며 잔재주 피우는데 재미 들이다가는 또 부질없이 가을 보내겠다는 후회로운 심정에 빠져들고 말았다.온갖 일들을 젖혀 놓은 가운데 몇날 며칠 이광수의 소설`흙`만 읽었다. 그것도 왜 그렇게 진도가 안 나가는지 읽다가는 덮고 덮고 한 탓에 가방에서 구른 소설책이 때가 묻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겨우 3/1이나 읽었을까.마지막 이틀은 단단히 맘 먹고 다른 글은 읽지도 쓰지도 않고`흙`만 읽었다. 그러자 진도가 점점 빨라져서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만나게 되었다.`흙`은 내게는 아주 인연 깊은 책이다. 이광수 소설을 무척 좋아하셨던 어머니 이야기에 끌려 중학생 때 이 소설을 문고판으로 읽었는데 아주 재미 있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도 나는 이광수 소설 중에 무엇이 좋으냐 하면`무정`과 더불어 아니 그보다 먼저`유정`과 `재생`과 `사랑`과 `단종애사`를 꼽고 그와 함께 이 `흙`을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그런데 이번에 읽은`흙`의 감상은 확실히 옛날과도, 대학원 때와도 달랐다. 흙에의 귀의라는 것,`흙`을 읽어가며 나는 귀의라는 한 단어를 떠올렸다.예전에는 이 소설을 농촌 계몽 소설로나 읽었던 것 같다. 주인공 허숭이가 고향인 살개울에 내려가는 행위를 농촌운동 하러가는 정도로 이해했고, 그렇게 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그랬던 것이 이번에는 갑자기 내 머리 속에 귀의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허숭은 평안도 궁벽한 농촌 태생으로 서울에 와서 보성전문에서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고, 부잣집 딸까지 아내로 얻었다. 소설에 나타난 일제시대 당대에 이만하면 조선 천지에 몇 안 가는 행운아요, 인텔리요, 미래가 단단히 보장된 사람이다.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허숭은 서울에서 얻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이 대목에서 이광수는 농사 일을 하는 사람들과 흙이 접촉하는 방식을 다채롭게 표현해 놓고 있다.그중의 하나로 허숭의 고향에서 논에 모를 내는 사람들은“물에서 오르는 진흙 냄새 섞인 김, 볏모의 향긋한 냄새, 발과 손에 닿는 흙의 보드라움, 이마로부터 흘러내려서 눈과 입으로 들어오는 찝찔한 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제 땀 냄새, 남의 땀냄새, 쉬지근한 냄새, 굵은 베옷을 새어서 살을 지지는 햇빛, 배고픔에서 오는 명치 끝의 쓰림, 오래 꾸부리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허리 아픔” 같은 것들을 생생하게 감지하며 일을 해나간다.나는 혹시`흙`은 작가인 이광수 자신이 도시에서의 잡답한 삶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근원적인 삶의 기억을 더듬어 간 소설이 아니겠냐고 생각해 본다. 도시 세속의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욕망에서 떠나 삶의 근원, 본질, 토대 같은 것을 만나고 또 그 속에서 병든 삶의 회복을 꿈꾼 것이 바로`흙`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이다.아무리 많은 일을 벌이고 아무리 많은 성공을 거두어도 사람은 결국 실패자가 될 수 있다. 그 많은 획득은 가장 큰 상실을 위한 한갓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을 수가 있다.어느덧 올해도 눈부신 봄은 아득히 멀어졌고 가을이 점점 더 깊어가고 있다. 오늘 서울의 아침은 8도, 설악산 단풍이 이제 절정에 오르리라고 한다.글자와 숫자와 인조 영상들에 둘러싸인 삶을 되돌아보고 돌아가 의지해야 할 근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지금 이 순간 이 까페의 디지털 소음들도 사방 2m쯤은 뒤로 물러선 것 같다. 바야흐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자문해 보아야 할 때인 듯하다.

2013-10-17

유구한 삶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우리가 사는 인생이라는 것은 100년을 넘기면 그나마 오래 살았다고 자족할 수 있을 만큼이나 짧디나 짧은 것이다. 아무리 자랑스러운 일도 100년이 다 못 가서 흔적 없이 되는 것이 많고, 그 반대로 아무리 부끄럽고 괴로운 일도 30년을 넘어가지 못하는 법이다.그렇게 짧고 덧없는 것이 인생사인 것을 우리는 무엇을 그토록 애닯아 하며 살아들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은 또 얼마나 유구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을 세 개의 층위로 구분해서 의식, 전의식, 무의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무의식은 주로 리비도, 즉 성적 욕망과 같은 근원적인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이 이론이 현대 인문학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프로이트를 생각할 때마다 그 논리의 간명하고도 투명한 체계에 놀라는 한편 이것은 또 얼마나 인간의 정신의 복잡함을 단순화 한 것이냐고 깊이 회의하게 된다.불교의 유식철학 같은 것을 보면 인간의 마음을 여러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단순히 세 차원이 아니라 여덟 가지 차원으로까지 나누어 본다. 나는 어느 책에서 옛날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세분해서 보았다는 이야기도 보았으니 동양에서는 서양에서보다 인간 정신에 대해 일찍부터 더 깊은 이해를 시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 팔식 가운데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을 가리켜 전5식이라고 하고 여섯번째의 의를 가리켜 제6식이라고 한다. 전5식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판단하거나 분석하거나 종합하는 능력은 갖고 있지 않다. 여섯번째에 해당하는 의가 바로 이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나`라는 존재를 이루게 된다. 우리가 통상 마음이라 지칭하는 것은 바로 이`의식`의 단계에서부터 시작한다.그러나 유식철학에서는 제7식으로 말나식을, 제8식으로 아뢰야식을 설정해 두고 있다.말라식은 설명하기가 아주 어렵지만 일단 아뢰야식과 앞의 여섯 가지 작용을 연결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내가 정작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뢰야식이다.아뢰야식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모든 가능성의 바다라고 하며 마음의 가장 근원적인 밑바닥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나는 이 아뢰야식을 생각할 때 항상 바다를 떠올리곤 한다. 모든 생명은 바다로부터 왔으며 아뢰야식이란 이 바다 때로부터의 생명의 모든 기억이 수장되어 있는 기억의 창고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에 가깝지만 그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이다.나중에 프로이트의 제자였다가 결별한 융은 무의식이 단지 성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그가 불교에서의 아뢰야식의 존재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이렇듯 인도나 중국에서는 근대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마음 세계에 대해 아주 깊이 탐구하고 있었던 것이다.나는 이 아뢰야식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라는 존재가 단순히 현재의 내가 아님을 깨닫곤 한다. 나는 나만의 내가 아니요, 나를 지금 하나의 생명체로 성립하게 한 모든 전사들의 총합이자 귀결점으로서의 나다. 이런 생각을 더 멀리 전개시켜 가다 보면 내 몸과 마음으로 나 혼자만, 길어야 한 백 년 살다 가는 하나의 개체로서의 삶이 아니라 어제에서 오늘로, 그리고 내일로 연결되는 초시간적 무한 진화과정 상의 나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그러므로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유구한 삶을, 그 유구한 삶의 일부를 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지금 이 현재가 아무리 여러 문제들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에만 반응하는 삶은 지양해야 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유구한 삶을 살아가는 숭고한 존재들인 때문이다.

2013-10-10

심훈의 시를 읽다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이근배 시인이 편집한 한국대표 명시선 100을 두고 말들이 많았는데, 이 책 한 질을 얻어들게 되었다.얻기는 서울 아리랑 고개에서 삼각산 쪽으로 올라간 곳에 있는 흥천사에서 였는데, 이 책을 들고 서울역에 보관해 두고는 급히 대구에 왔다 갈 일이 생겼다.추석 뒤끝이라 코인로커들이 전부 만원이고 달랑 하나 가장 작은 함이 남았다. 시집 전질이 그대로는 다 들어가지를 않아 그 자리에서 박스를 버리고, 책을 차곡차곡 넣고 떠나려 할 참이다.그때 흥천사에서 이근배 시인이 만든 시전집에 대한 품평 생각이 났다. 무난히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 안 할 사람들도 문단에 많겠지만, 그래도 균형 감각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러자 듣고 있던 이근배 시인이 심훈 시를 자기 아니면 누가 100선에 넣겠느냐고 했었다. 나는 평소에 공초 오상순이나 노산 이은상에 대한 이 분의 높은 식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었다.100권 책 가운데 심훈 시집을 뽑아들고 기차를 탔다. 가방안에는 스피노자 평전 한 권이 더 들어 있었지만, 도대체 심훈의 시가 100선에 들만 한지 살펴보자는 심산이었다.선배의 척도를 다시 재보자는 뜻이 아니라 마침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관해서 써야 할 일이 있다. 나는 연구자로서는 아무래도 소설 쪽인지라 심훈을 소설가라고만 여겼는데, 시인이라니 그 정도를 한번 가늠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무거운 100권 책을 들고 광화문, 공덕역, 서울역을 오르락내리락 했더니, 허리가 몹시 고장이 났다. 최근에 유난히 몸이 안 좋아진 것은 글 욕심 때문이려니 해서, 줄이려 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작업량이다. 정말로 화끈거리는 허리에 제일파프를 붙이고 아침에 대구에서 일어나니 겨우 진정이 되는가도 싶어 볼일보고 돌아올 때는 무궁화 호를 탔다.무궁화 호가 좋다. 두 시간 서울에 빨리 가면 뭘 하겠나 싶고, 가면서 무궁화 호 넓은 좌석에 앉아 심훈 시집이나 읽어볼 심산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결코 좋다 할 수 없는 허리를 애써 지탱하여 시집을 펼쳐보니, 심훈은 1901년 10월23일에 나서 1936년 9월 16일에 죽었더라. 서울 노량진 태생이고, 1919년에 3·1운동에 가담해서 투옥되었고, 중국에 유학했으며, 충남 당진으로 낙향해서 `상록수`를 썼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라.장티푸스에 걸려 치료를 받다가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오랜 세월 흘러 약력을 살피는 사람 마음에도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시들을 한 편 한 편 읽어가니, 그는 민족의 현실에 가슴으로 괴로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노래를 부르랴면 카루소처럼 높은 음역을 다스릴 줄 알고 살랴핀처럼 베이스의 저음까지, 자신과 우리의 설움을 버무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그는 겨울에 얼어죽지 않고 봄에 자기 눈에 모습을 보인 늙은 거지를 가리켜, “죽지만 않으면 팔다리 뻗어 볼 시절이 올 것을 점 쳐 아는 늙은 거지여 그대는 이 땅의 선지자로다”라고 노래했다.지금 무궁화 호는 영동 역을 지나칠 참이다. 잠시 시집을 덮고 생각한다.이 사람의 시에는 슬픔과 분노와 의지가 담겼구나. 그가 100선에 들어야 할 사람인가를 따져 묻기 전에, 이 사람은 적어도 설경작이나 하지는 않았다고 말해 주어야 하겠구나.참된 시는 정신도 음률도 빼어난데서 나온다. 둘 다 충분해야 진짜 시라고 할 것이다. 무뚝뚝한 시도, 간살스러운 시도, 무엇이 낫고 못하고가 없다.그날이 오기를 그토록 염원하던 심훈. 그는 비록 그 날을 못 보고 요절하고 말았으나, 그의 염원은 멀지 않은 미래에 이루어졌으니, 그는 시인이기 이전에 선지자였다. 모든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있다.

2013-09-26

시장의 참맛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친구는 인생 저 밑바닥까지 갔다 와서는 산사람이 되었다. 밤과 낮 2교대로 일하는 운전 일을 하다 보니 운동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데, 그러고 보면 등산처럼 좋은 운동이 없다는 것이다.주위 사람들은 이 친구가 과연 얼마나 버티겠냐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지만, 어느덧 5년이나 되었고 보면, 이 친구의 인내심도 시험은 벌써 통과한 셈이 됐다. 나도 글을 쓰고 이 친구도 글을 쓰지만, 평소의 직업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고 또 그러면서도 차 안에서 꼼짝없이 열 두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라서, 보통 마음이 아니고서는 견뎌내기 힘들다.휴일을 앞둔 어느 날이면 휴대폰으로 문자가 온다.ㅡ친구, 산에 안 가나?하지만 나는 산이라면 도통 적응이 안 되는 마음 바쁜 사람이라, 대개 혼자 다녀오라고, 미안하다고 답신하게 마련인데, 이도 한두 번이고, 쥐도 낯짝이 있는 법이다. 며칠 전에는 하는 수 없이 산에는 못 올라가고, 내려 와서 보자고 하게 되어 북한산에서 멀지 않은 연신내라는 곳까지 막걸리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친구는 연신내 역에 내리면 무슨 무슨 이름을 가진 재래시장이 있다고 거기로 오라고 했다. 시장통에 있는 먹자골목집에서 한 잔 하자는 것이다. 아무렴. 추석도 가까웠고 사내 둘이서 오랜만에 만나 한 잔 걸치는 데는 시장통 선술집이 제격이라 할 만했다.연신내가 그런데 이렇게 멀었나? 나는 이웃집 놀러오듯이 오라는 친구 말만 믿고 쉽게 생각을 했건만 신촌 집에서 가려니 삼십 분도 넘게 걸리는 곳이다.흥. 자기 다니는 산 가까운 곳으로 호출을 하셨겠다. 나쁠 거야 없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서 쉬어 보려던 예산이 깨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시장통이라 했겠다. 2번이었나, 5번이었나 하는 지하철역 출구 쪽에 가보니 과연 시장이, 재래시장이 하나 있다. 입구에 간판도 있는 시장 골목 안으로 이십 미터나 들어갔을까. 바로 먹자통이 나오고 저만치에 벌써 혼자 막걸리병 마주 대하고 있는 친구 모습이 보인다. 나를 보더니 손을 번쩍 치켜든다.뭘 드시고 계신가, 하고 보니 코다리찜 먹는다더니 그건 아니고 노가리찜이라나 하는 처음 먹어보는 종목이다.ㅡ여기가 싸고 맛도좋아.친구가 나를 탁 맞이해서는,ㅡ아주머니, 여기 얼음 막걸리 한 통 주세요.하고 아주머니를 불러 젖힌다.ㅡ얼음 막걸리?내가 그건 뭐냐는 듯이 의문을 표명하는 표정을 짓자,ㅡ살얼음 살짝 뜬 막걸리 죽여. 그거 한 통 들고 산에 올라가서 한 잔 딱 걸치면, 캬.친구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말 뒷부분을 감탄사로 때운다.살얼음 뜬 막걸리를 둘이서 턱 하니 나눠 마시고 한 통을 더 시켜 마시고 우리는 어스름 뒤 어둠이 내린 시장통을 빠져나왔다. 내가 술값을 내고 뭔가 성의를 표현한 게 마음에 걸리는지 친구는 시장통 입구에 있는 족발집 앞에 딱 서더니, 방금 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족발을 가리키며,ㅡ아저씨. 그거 두 개 싸주세요.하고는, 나를 돌아보며,ㅡ싸. 하나에 만원이야.한다.만원이라. 과연 싸기는 싸다. 우리 둘은 족발집 주인 아저씨가 신바람 나게 썰어주는 그 큰 족발을 한 꾸러미씩 나눠 들고, 빠이빠이를 했다.그리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시장이 좋군.한가위가 다가오고 있다. 시장의 인정이 다시 그리워지는 계절인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시장같이 정겨운 곳이 또 없다. 우리들 주머니 생각까지 해서 이렇게 하나에 만원씩밖에 안 하지 않느냐. 한가위 가까우면 이 친구와 함께 한 번 더 시장에 가야겠다.

2013-09-12

의제다운 의제는 어디에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시험대 위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뭔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느낌은 잘 안 생긴다.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가 벌써 한 달째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데, 한편으로 언제 때 사람인데 지금까지 저렇게 큰 화제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회에서는 오늘 이석기라는 진보당 소속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가 이제 막 있을 예정이다. 필자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체포동의안이 상정되면 통과될 것이 확실하고 이렇게 해서 문제는 일단락 될 것이다. 신문에서는 내란죄라는 것이 성립될 수 있겠는지, 과연 판결까지 여정이 순탄할 것인지에 대해서들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내일로 이석기 의원은 국회에서 모습을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시대가 오늘 같지 않고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필자만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NL(민족해방) 계열이 시민, 학생, 노동운동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멀리 1986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때 지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김영환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대학가에 `강철 서신`이라는 것이 떠돌았고 이것은 곧 반제해방운동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이 무렵부터 1990년대 전반기에 걸쳐 학생운동의 주류로 뿌리를 내린 NL 계열은 한국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라 간주하고, 따라서 이 땅에서 미국의 힘을 제거하는 것을 운동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다. 그런데 이 노선은 늘 시민, 학생, 노동 쪽의 민주화 운동의 흐름과 모순을 빚으며 상충되어 왔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기본적인 민주적 절차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 흐름은 그것을 문제 삼는 대신 미국을 문제 삼는 것으로 자기 존재를 과시하면서, 사회정치적인 의제를 미국과 북한, 미국과 한국 내 반미 운동의 대립축으로 뒤바꾸어 놓곤 했다.다른 노선의 변혁운동이라는 것도 그 껍질을 깨고 보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특히, 이 NL 계열이라는 것은 그 내부에 여러 편차가 있으면서도 북한이 혁명 근거지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이 자본주의 너머 사회주의 사회라고 생각하는 이 `정신병`은 북한의 인권 유린, 야만적인 독재 통치, 폐쇄적 체제에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극한적 빈곤과 기아 같은 문제들을 보지 못한다.이석기 의원 문제를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농담조로 말하기를, 국가정보원에서 내놓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내란죄로 처벌해야 한다기보다 정신병원에 보내야 할 일이라고 하는 것도 반드시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이 사태의 진실의 일면이다. 그런데 벌써 몇 달 전에 포착되었다는 내란음모가 하필 지금 사건화 된 것도 심상치만은 않다.필자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 낡아서 더 이상 아무도 흥미로워하지 않을 문제를, 그만큼이나 식상한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관한 것이다.화제가 새로워야 한다. 보는 눈이 새로워야 한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꿈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은 낡디 낡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유령들`이다. 그 힘에 국회가 들썩거리고, 신문 지상이 도배가 되고, 사람들이 우왕좌왕 한다. 서로들 진보당이 좌라느니, 좌도 못되느니, 진보라느니, 종북 세력이라느니, 호떡집에 불이 난 격이다. 한 마디로 말해 재미없다, 이 말이다. 뭔가 새로운 의제를 만나고 싶다. 얼마 전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연설이 화제가 되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그 연설은 아직도 생생한 진실을 전해주고 있다. 그런 말다운 말, 의제다운 의제를 만나고 싶다.

2013-09-05

하얼빈의 사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나는 하얼빈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것은 하얼빈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나는 또 중국인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것은 중국에 관한 얘기도 아니다. 이것은 그냥 사과에 관한 얘기다. 빨간 먹음직스럽게 생긴 사과에 관한 얘기다. 나는 이 사과를 하얼빈 의대병원 앞에서 샀다. 어느 행상 아주머니였는데 아주 순진하게 생겼고 길에서 과일을 파는 일에 십 년은 족히 바쳐온 것 같았다. 나는 그 여자에게 홍옥 한 알, 이도 저도 아닌 사과 한 알, 그리고 사과배 한 알을 샀다. 15위안이라고 했다.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괘이치 않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잔돈푼을 받지 않거나 적당히 바가지를 쓰고 샀을 때의 쾌감이 있는 것이다. 그보다도 그때 나는 정말 과일이 먹고 싶었다. 그런 때가 있다. 못 견디게 탐스러운 과일을 입에 물고 싶을 때. 나는 그중의 한 알을 그 자리에서 먼지를 바지에 썩썩 씻어내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은 그만그만했다. 더구나 사과는 냉장된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만족했다. 아삭아삭 씹는 맛을 느껴가며 하나를 그런 대로 다 먹어버렸다.나머지 두 알은 호텔로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그중에 아주 빨갛고 잘 생긴 녀석을 아무래도 무척 아꼈는지도 모르겠다. 이틀 동안 그대로 냉장고 안에 넣어 두었으니 말이다. 나머지 하나도 냉장고에 넣어 두기는 했지만 있는지 없는지 생각이 안날 지경이었다.계속해서 녀석의 존재가 머리 한 쪽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드디어 그놈을 냉장고에서 꺼내서 오늘은 먹어 치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놓고도 나는 낮 동안에는 거리의 경물들에 관심을 빼앗겨 가방속에 넣어둔 사과는 잊어버리고 말았다.밤이 되자 나는 문득 사과를 떠올렸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메모도 했더니 몹시 힘들었고, 뭔가 신선한 것을 먹고 싶었다. 그때 바로 사과가 생각났다. 이때 나는 이미 호텔로 돌아온 후였다. 하루종일 가방속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나는 다 식어버린 사과를 먹어치워야 할지 꾹 참고 냉장고에 집어넣어 차갑게 만들어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내 마음은 나중의 보람을 찾는 쪽으로 움직였다. 지금의 갈증은 하얼빈 생수로 달래기로 하고 냉장고에 그 탐스러운 사과를 집어 넣으며 내일 아침을 다시 기약했다. 그날 밤 나는 또 거리로 나가 혼자서 중국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를 만끽하며 늦게까지 거리의 하얼빈 맥주를 파는광장에 앉아 있었다.중국은 몹시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하얼빈의 물가는 서울 뺨치게 비싸서, 도대체 이 물가를 어떻게들 감당하며 사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그러나 하얼빈에는 낭만이 있었다. 옛날 러시아 사람들이 개척한 도시답게 이곳에는 러시아 요리와 러시아 가수와 러시아풍 건물들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다.호텔로 돌아와서, 나는 조만간 하얼빈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며 곱게 잠들었다. 그 소설은 엉뚱하게도 괴기소설 같은 것이었고 그 때문인지 나는 밤 사이에 안 좋은 꿈을 꾸었다. 그래서 그런지 또 일찍 깨어났다. 새벽 다섯 시 반. 호텔 커튼을 열고 박명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나는 또 사과를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냉장고를 열고 사과를 꺼냈다. 차가운 빨간 사과. 나는 이 탐스러운 사과를 잠깐 쳐다보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그런데 입 안에 가득 퍼져야 할, 내가 기대했던 향취와는 다른 맛이 느껴졌다.맙소사. 입을 떼고 보니 속살을 드러낸 사과는 끔찍하게 썩어 있었다. 겉은 그렇게 멀쩡한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사과는 한 겹 얇은 껍질 속에 흉칙한 본색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그 실망스러움이란. 하지만 세상에는 이 사과 같은 것이 많음을 알기에, 나는 역겨움을 참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이 사과보다 더 한 것이 많음을 알기에.

2013-08-29

영리한 사람, 우직한 사람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요즘 참 행사를 많이도 치렀다. 얼마 전에는 박인환과 1950년대문학이라는 학술행사를 했다. 최근 한국불교와 한국현대문학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만해축전에 가서는 만해 한용운과 타고르에 관한 학술대회를 치렀다. 뜨거운 여름이 이렇게 가나 하지만 아직도 더 남은 일이 있다.하지만 공부 얘기가 아니다. 사람 얘기다. 모임이 많았던 만큼 사람도 참 많이도 만났다.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유명한 사람도, 무명의 인사도, 남자도, 여자도, 잘 생긴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까지, 각종 인간 셋트 가운데 나도 한 사람으로 끼어 어지럽고 숨 가쁘게 일을 치렀다.이런 유형 분류 가운데 영리한 사람, 우직한 사람이라는 한 셋트를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리한 사람, 우직한 사람 하니, 말은 영리한 사람을 먼저 꺼냈는데, 생각나기는 우직한 사람 쪽이 더 먼저다.지금도 만해마을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고 있는 한 여성 시인이 떠오른다. 이 불볕 더위에 운전하고 있는 친구 정 모 시인도 떠오른다. 몇 번 만나보지 못했지만 인상 분명한 저쪽 진주에서 교편 잡고 있는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누구보다 친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박 모 후배, 이 모 선배 같은 사람들, 지금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어 있는 방모 선배, 시 쓰는 여성 시인 이 모씨 등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자꾸 생각나는 사람들이다.우직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머리까지 가졌다면 금상첨화이겠고, 또 금방 열거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만, 머리야 좋든 나쁘든 성품이 우직한 사람들은 남을 안심시킨다. 설혹 내가 그를 속일 수 있을지언정 그에게서 속임 받지는 않을 것 같은 심정이야말로 그런 사람들을 남들이 즐겨 찾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다른 쪽에 영리한 사람들이 있다. 영리한 사람들은 좀처럼 불행해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말로 하는 것과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달라서 좀처럼 그 사람의 진심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당자만큼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또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경로를 설계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남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이 부류의 사람들이 반드시 나쁘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우리는 옆에서 어떤 사람이 대놓고, 저 사람, 참 영리해, 하고 감탄어린 칭찬을 하는 것을 종종 목도하기도 한다. 이런 때 영리함은 칭송 받을 만한 덕목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바로 곁에 영악한 사람들이 있다. 영리하다는 것은 눈치 빠르고 똑똑하다는 것이고, 영악하다는 것은 이해가 밝고 약다는 것이다. 비슷한 말들 같고, 특히 어린애한테 영악하다는 말을 쓸 때는 감탄조의 칭찬 의도를 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에 대해서 이 말을 쓰면 그 어감이 별로 좋지 않다. 옆에 있으면 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뜻이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다.이 해 여름 유난히 우직한 사람들만큼이나 영리한 사람, 영악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직한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값진 존재인가 더 절실히 생각하게 된다. 자기에게 이익이 있으면 찾고 그렇지 못하면 돌아선다. 그것만으로도 족한데 다시 이익이 생길 것 같으면 또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담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기가 질리는 느낌이 생긴다.그러다 보니 손해를 보는 것은 우직한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우직한 친구들이 이 여름을 힘들게 나고 있는 것을 본다. 마음이 늘 한결 같은 사람들이 이 세계를 그 넉넉한 마음만큼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나는 이 친구들을 마음으로 깊이 성원해 본다. 친구들아. 너희들에게는 진짜 날개가 있다. 이 세상의 오탁에 물들지 않고 저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는.

2013-08-22

강을 어떻게 하나?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무릇 국민의 마음은 딱히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 듯 보일 때조차 함부로 여길 수 없는 일이라 본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 과연 이 국민의 뜻을 정치하는 분들, 나라 다스리는 분들이 어찌 여기고 계신 것인지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시대를 거듭해 살다보면 내가 늘 옳을 수 없음이 분명해져서, 정치도 올바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실용적 목적이나 목표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바꾸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하지만 그런 때도 국민들과 약속한 것을 성의껏 지켜나가려 하고, 부득이 그러지 못할 때는 그 상황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위정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 가운데 하나라 할 것이다.겉으로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속으로 딴 마음을 먹고 국민들의 시선과 생각을 피해 나가면서 안 보이는 곳에서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그것이 진보의 것이든 보수의 것이든, 야당의 것이든 여당의 것이든, 그런 방식으로 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증대시켜 나가야 하는 사회적 준칙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다.처음에 운하를 파겠다고 했을 때 국민 다수가 그것을 반대하자 운하는 하지 않고 강을 정비하는 일만 하겠다고 했다. 국민들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그러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하니 그것을 믿고자 했다. 그 사이에 나라 예산을 헛되이 땅 파는 데 쓴다느니, 멀쩡한 강을 더 나쁘게 만든다느니 하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지만 국민들은 무던히 참았던 것으로 안다.그런데 이제 와서 감사를 해보고 없어진 서류 같은 것을 복원해 보니, 겉으로는 강만 정비한다고 하고 뒤에서는 계속 운하를 파는 쪽으로 일을 움직여 왔다고 한다. 비록 일부 보나 다리에 국한된 것일지 모르나, 지금 여러 곳에서 급하게 추진한 사업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나는 지난 정부가 왜 그렇게 일했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국민에게 어떤 말을 하고 공표를 할 때는 사실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해도 총체적으로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세월은 흘러가게 마련이고 잘한 것, 잘못한 것은 다 드러나지는 않아도 일부라도 드러나게 마련이다.최근에 나라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슨 문제를 그런 식으로 풀어가나 하는 답답한 마음이 생긴다. 선거 때 무엇이 잘못 되었다면 그것에 대해 성의껏 듣고 말해서 풀 것을 풀고 넘어가면 되는 것 아닐까. 나는 개인적으로 NLL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노무현 정부가 슬기롭게 대처했으리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주관이 뚜렷한 분이었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긴 토론을 해서라도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태도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니 북한과 NLL을 가지고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불필요한 말, 해서는 안 될 표현까지 다 섬세하게 가리지 못하고 의견을 표명했을 가능성이 있다.그런데 문제는 왜 우리가 지금 이 문제를 가지고 이토록 소모적인 논쟁과 대립을 일삼아야 하느냐 말이다.새 정부가 들어선지 벌써 오래 됐고, 이제는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묵은 문제, 잘못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더 오래된 문제로 뒤덮으면 언제 앞으로 나갈 수 있나?국민들이 의사 표현을 잘 안 하고 때로 못한다고 해도 생각할 것은 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들의 기본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정치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무더운 여름이다. 오늘 날씨가 38도를 넘어선 때가 있었다. 국민들이 시원하게 생각할 정치를 펼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3-08-08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여러가지 사정이 겹쳐 책을 옮기게 되었다. 아주 여러 해 동안 한 곳에 고히 모셔두고 쌓인 책 위에 또 책을 쌓고 그래서 번연히 책이 있는 줄 알면서도 당장 급해서 또 사서 볼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 그 몇 해였는지 모른다.돈 없이 살아도 책한테만은 유난히 욕심을 부려 공부하는 문학전집이며 옛날 잡지 영인본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 인문과학, 시집에, 소설책에, 없는 책 없다시피 쌓아두고,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노라 했다.바로 옆에 친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참 현명하다. 연구실이며 집 서가에 딱 한정된 공간만 할당해 놓고는 절대로 그 공간을 넘어서는 책은 안 가지려고 한다. 그러니 책이 여기저기서 오기도 하고 사기도 해서 양이 넘치면 있는 책들의 가치를 매겨봐서 중량이 덜 나가는 것을 빼서 남주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나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시집이나 소설집이 특히 그런데, 그것들이 짐이라 생각해서 처리하려고 몇번씩이나 생각을 하다가도, 이것들이 나오느라 책 쓰고 만든 사람은 얼마나 고생하고 또 정성을 들였는가 생각하다 보면 이 자식도 저 자식도 버릴 수 없는 것 같은 심정에 젖어들고 마는 것이다.서가가 충분해서 한 곳에 가지런히, 한 눈에 보이도록 책을 꽂아두고, 사람 써서 정리까지 해서, 가나다 순이든 분류 순이든 눈에 잘 보이게 해두면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된 것처럼 개운할 텐데,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이런 책도, 저런 책도 있으니, 어수선한 포목점, 천들 뒤엉킨 것처럼, 책 생각만 하면 마음 심란해지는 것이 한두 해가 아니었다.이제 책을 한번 대정리하려고 보니 이른바 딱지본 고전소설까지 시렁에서 굴러나온다. 말이 굴러나온 것이지 근 마흔 권 넘는 것들로 반쯤은 값이 안 나가도 몇 권은 소장가치도 없지 않은 것들이다. 그 옛날 시간강사하며 평론`이나`쓰고 살 때, 홍대입구역 주변에 오거서라는 서점에 갔다 이 마흔 권 책에 눈을 뺐겼었다. 통장에 있는 돈 다 털어서 몇십만 원이나 주고 집에 가져 왔는데, 그 액수를 차마 밝히지 못하는 것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까봐서다.버리고 없애려 해도 차마 그게 안되는 책은 추억이 어린 책이다. 그 책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책 표지며 페이지에서 흘러나오면 먼지 구덩이에서 살지언정 책은 버리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된다.그럼 어떻게 책을 버릴 수 있게 되나.그것은 역시 시간의 위력일 것이다. 이중책장을 15m 분을 쌓아놓고도 쌓아둘 공간을 찾지 못한 책들을 보며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재부와 공간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올밖에 도리가 없다.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이 생긴 형태 그것으로 사랑하는 방식을 버려야 하겠다고.책은 눈에 보아 탐이 나고 코끝에 걸려 향기롭고 손에 잡아서 촉감도 좋다. 하지만 책이 책인 것은 그 안에 쓰인 내용 때문이러니, 다른 것은 모두 장식에 지나지 않으려니.책에 중독된 나 자신을 생각하며 중독된 원두커피 아메리카노가 몸에 좋지 않듯이 책도 그 물질에 중독되면 마음에, 정신에 좋지 못하다고 말해본다.모든 수집이, 모아 쌓는 취미가, 기벽이 때가 흐르고 나면 피할 수 없이 버거워지는 법이다. 이제는 책을 더 쌓는 것보다는 친구의 지혜를 본받아 나도 어떻게 책을 일종의 컬렉션처럼 정리하며, 정돈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지 생각해 본다.혹은 집도, 돈도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때가 되면 결국은 놓고 떠나야 하는 것을, 그래도 아등바등 모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역시 때가 되어야 겨우 깨닫는 미련한 짐승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2013-08-01

일본에서 나도향의 이불을 생각하다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고국을 떠나 있으면 내가 왜 한국 사람이 되었나 생각하게 된다. 순전히 우연일 뿐, 우연에 필연이 깃들어 있었을 뿐 나는 한국인이 아니 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일본에 와서 나도향 소설을 읽는다. 나도향이 남긴 작품들 가운데, ‘벙어리 삼룡’과‘뽕과 물레방아’를 읽고, 나도향은 얼마나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가 생각한다. 1902년생인 그가 1925년에 벌써 이런 소설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 스물네 살에 그는 삼룡이나 안협댁이나 이방원의 처 같은 인물들을 낳을 수 있었다. 그만큼 삶에 대한 인식이 확고했다.하지만 나는 나도향이 말한 이불을 내가 어떻게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자꾸 이불을 보고 싶은데, 정작 그 이불의 실쳬는 보이지 않는다.이불이란 어떤 사람이 믿는 바 신앙을 가리킨다. 석가모니를 믿고 따르는 이는 불교라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며, 예수를 믿고 복종하는 이는 기독교라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다.각자 캄캄한 자기 이불속 세상에서 하늘을 보고 저것이 세상의 끝이려니 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그 하늘을 찢어야 새 세상, 새 하늘이 보이지 않겠는가?나는 아무래도 내 자신이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한국인이라 믿고, 어떤 거대한 힘이 나를 ‘브라질’이나 ‘아이슬란드’로 영영 보내버리지 않는 한 그렇게 살다 죽을 것이다.디오게네스는, 당신은 어느 폴리스의 사람이냐고 묻자 자기는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진정한 세계시민 사상의 연원은 이 디오게네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누가 내게 당신은 코스모폴리탄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옛날에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되기 어려울 것 같이 생각된다고 말할 것이다.한때 여행을 좋아하고, 낯선 곳에 앉아 있는 나를 보기를 즐겨해서 이곳 저곳 멀리 떠돌아다니고자 했다. 하지만 늙어서까지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는 자,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자는 고독하다 못해 추방된 자의 저주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일본은 참 특이한 곳이다. 하얼빈에 있을 때만 해도, 동아시아가 지금 얼마나 격동하고 있는지 아느냐,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뒤섞여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호기롭게 생각했던 것이, 이곳에 와서는 사람에게는 고국이 있어야 하고, 내가 의존할 만한 전통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이불을 쓰고 있어도 좋으니 그 이불이 나쁘지 않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불을 수선해서라도 이불속 세상이나마 좋게 만들어가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한다.일본에서는 며칠 전 참의원 의석을 조정하는 선거가 있었다. 자민당이 압승을 했다. 아베 신조 수상이 6년전의 설욕을 했노라고 일갈을 했다. 6년전에 자민당이 정권을 내줬던기? 이로써 일본은 다시 전후 체제로 돌아가버렸다. 한때 집권당이기도 했던 민주당은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하시모토인지 하는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유신회라는 고색창연한 이름의 정당도 그리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한국이나 일본이나 지금 바야흐로 2차대전 직후 체제로 귀환했다고 할 수 있다. 시대가 잠시 ‘반동’이 있기는 했으나 역사를 움직이는 큰 물결에 합류한 것이다.나는 지금 이런 시대에 무엇을 생각하고 추구하며 살아야 하나를 생각한다. 부질없는 정치 투쟁도 싫다. 세계시민 운운 하는 포즈도 싫다. 이불을 찢어버리는 것도, 이불 속에 누워 있는 것도 싫다. 나도향 소설의 인물들처럼 이불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도에 대해 생각한다.일본에 와서 우리 한국을 생각하면,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내 이불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게 된다.

2013-07-25

동북아시아를 새 눈으로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며칠 동안 창춘에서 연길로, 거기서 다시 하얼빈으로 가는 만주 여행을 했다.창춘은 중국 동북삼성의 하나인 길림성의 성도다. 또한 그곳은 옛날 일본이 세운 만주국의 서울이기도 했다.만주국은 이른바 오족 협화, 즉 일본인, 조선인, 만주인, 중국인, 몽고인이 힘을 합쳐 호혜, 평등하게 살아간다는 이념을 내건 일종의 `의사` 국가였다. 황제도 있고, 내각도 있지만, 이 나라가 독자적인 국가 몫을 해냈다고는 평가되지 못한다.그러나 오족협화라는 구호를 보면 만주가 얼마나 복합적인 민족 구성을 가진 곳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연길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도시다. 연변과 바로 이웃한 용정에 가서 보니, 땅은 비록 중국 땅일지언정 조선족이 중요한 존재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단박에 실감할 수 있었다.연길에 조선족은 전체 인구의 약 60퍼센트, 용정에는 70퍼센트 정도가 된다고 한다. 만족이나 그밖의 민족들의 인구는 몇 퍼센트도 안되므로 현재의 연길이나 용정은 조선인 다수의 이중도시인 셈이다.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전체 인구에서 조선족 비율은 약 40퍼센트라고 하는데, 그것만 해도 자치주 내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구 비율이다. 이를 반영하듯 연길이나 용정에서 상점 간판들은 한글이 위에 써 있고 한자가 아래에 써있다. 이른바 소수 민족 우대일 것이다.하얼빈은 그런 다민족 동거의 역사가 훨씬 더 길다. 내가 알기로 이 하얼빈은 러시아가 개척한 도시다. 지금은 중국땅이 되어 있지만 키타이스카야 거리라고, 러시아인들이 건설한 거리가 지금 국제적인 관광명소가 되어 있다.나는 며칠전 바로 그 키타이스카야 거리에 서 있었다. 지금은 그 이름이 중앙대가라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중국의 문화 역사 보존 정책에 따라 거리도, 상당수 건물도 잘 남아 있다.옛날에 작가 이효석은 이 하얼빈을 사랑해서 1930년대 말 1940년대 초에는 거의 해마다 이곳을 찾았다. 그때 이효석은 아마도 이 거리어 아직도 남아있는 호텔에 머물렀던 듯하다.나는 그 모데른 호텔 3층에 올라가 거리를 내려다보며 바로 이효석이 이렇게 동양인과 서양인이 혼거하고 있는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겠다는 상념에 잠겼었다.지금 북한은 외톨이 고립국가가 되어 있지만 한국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이민족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북한까지 아우르게 될 동북아 민족지도를 새로 그려본다. 우리가 의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동북아시아 한반도와 중국 동북 삼성 지역은 제 민족들이 혼거하는 역동적인 무대가 되어 있고 경제나 정치, 국제 관계가 발전할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소용돌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우리는 이렇듯 언어와 습속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시대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동거, 혼거, 공동생존은 단순히 의식의 증진만으로 이룩되지 못한다.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고 뒤섞여 사는 것이 힘든만큼 여기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런 민족 동거와 혼거, 교류의 경험이 적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당면한 제 민족 동거의 국제화 현상을 단순히 예외적인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나는 지금까지보다 더 전격적이고 전향적이며, 판을 크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북아시아는 바야흐로 새로운 공존방식을 찾아나가야 한다. 북한도 이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2013-07-18

북한 인권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나는 첫 눈에 장기표 선생을 알아보았다. 그는 나를 알 리 없지만 나는 그를 텔레비전에서 너무 많이 접했고, 어떤 공식석상에서도 몇 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뵙고서 세월이 꽤 지났지만 단번에 장기표 선생이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 깊은 곳 어느 한 모퉁이에 장기표라는 이름 석 자가 늘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기표와 김근태. 이 이름들은 486세대인 내게 잊힐 수 없는 기억들과 함께 살아간다. 늙지도 않는다. 김근태 의원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이름은 늙지 않았다. 내 안에 1980년대라는 과거가 늘 살아 있는 현재로 각인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기표 선생과 나는 어떤 이유로 그날 같이 점심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장기표 선생을 선생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가 별달리 떠오를 만한 다른 직책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 별다른 까닭은 없다. 여기에서 내가 대뜸 장기표씨라고 하면 이상하고 무례할 것이고, 무슨 공식 직함을 붙여봤자 지금 상황에서는 별 예의가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우리는 공통의 화제를 이리저리 찾다가 이야기가 마침내 북한 문제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북한 인권이야말로 문학인이 고민해야 할 가장 심각한 현실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남북 관계가 어떻게 되든, NLL이 어떻게 되고, 개성 공단이 어떻게 되든, 문학하는 사람들, 세상 고민하는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기본권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채, 부자유와 궁핍에 시달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이것이 내가 지난 10여년 동안 남북한 작가 회담이 어떠니, 평양 방문이 어떠니 하는 흐름들을 지극히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나는 이런 움직임을 접하면서, 참 이 나라 민주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이쪽의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이 만나려고 한 북한의 문학인들이라는 것은 십중팔구는 어용 문학인들이다. 시대가 독재 세상이니까 그 세상에 적응하여 적당히 월급을 받고, 안 써야 할 글들, 이른바 수령 부자와 손자를 찬양하고, 지도자 말씀을 따라 열심히 뛰었더니 안 되는 일 없이 다 되더라 하는 식의, 겉만 번지르르 한 허위, 가공 사례담을 소설이라고 써내고, 밤에 사석에서나 나도 생각은 있는 사람이라는 듯이 얼굴에 초조한 빛을 띄우는 사람들을 북한 작가들이라고 만나서 무슨 합의를 한다는 둥, 공동 성명을 낸다는 둥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이냐.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벌이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인간적으로는 서로 친분이 있다 해도 공공의 일을 두고 판단하는 데서는 도저히 합치를 이룰 수 없는 것이, 북한 인권 문제를 가장 심각한 현실 문제라고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은 말한다. 인권 같은 문제로 북한을 너무 자극하면 남북 관계에 좋지 않다.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도 적절치 못하다. 자꾸 만나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이런 식의 말씀들을 듣다 보면 참, 대단한 착각들을 하신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그렇게 북한 작가들을 만나서 뭔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이 그것이요, 두 번째는 북한 독재 정권이 이렇게 원만한 관계 증진을 통해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천만에다. 최근에 5공화국 때의 추징금이 해결 안 되어 문제가 되는 것을 본다. 과거는 좋은 소리와 웃는 얼굴로 극복되지 않는다. 장기표 선생은 내 말씀을 듣고 오랜만에 의견이 같은 `젊은이`를 만났노라고 했다. 나 또한 그가 민주화 운동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문제, 북한 정권 문제, 인권 문제 같은 것을 정시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남북한이 다시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문학하는 사람들, 이 시대를 고민하는 이들은 북한 땅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해방 되는 날을 기다리고 또 그 날을 앞당겨야 한다.

2013-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