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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

방민호 기자
등록일 2013-07-11 00:04 게재일 2013-07-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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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나는 첫 눈에 장기표 선생을 알아보았다. 그는 나를 알 리 없지만 나는 그를 텔레비전에서 너무 많이 접했고, 어떤 공식석상에서도 몇 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렇게 뵙고서 세월이 꽤 지났지만 단번에 장기표 선생이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 깊은 곳 어느 한 모퉁이에 장기표라는 이름 석 자가 늘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기표와 김근태. 이 이름들은 486세대인 내게 잊힐 수 없는 기억들과 함께 살아간다. 늙지도 않는다. 김근태 의원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이름은 늙지 않았다. 내 안에 1980년대라는 과거가 늘 살아 있는 현재로 각인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기표 선생과 나는 어떤 이유로 그날 같이 점심을 하게 되었다. 내가 장기표 선생을 선생이라 부르는 까닭은 그가 별달리 떠오를 만한 다른 직책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 별다른 까닭은 없다. 여기에서 내가 대뜸 장기표씨라고 하면 이상하고 무례할 것이고, 무슨 공식 직함을 붙여봤자 지금 상황에서는 별 예의가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공통의 화제를 이리저리 찾다가 이야기가 마침내 북한 문제에 다다르게 되었다. 나는 북한 인권이야말로 문학인이 고민해야 할 가장 심각한 현실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남북 관계가 어떻게 되든, NLL이 어떻게 되고, 개성 공단이 어떻게 되든, 문학하는 사람들, 세상 고민하는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기본권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채, 부자유와 궁핍에 시달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지난 10여년 동안 남북한 작가 회담이 어떠니, 평양 방문이 어떠니 하는 흐름들을 지극히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나는 이런 움직임을 접하면서, 참 이 나라 민주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이쪽의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이 만나려고 한 북한의 문학인들이라는 것은 십중팔구는 어용 문학인들이다. 시대가 독재 세상이니까 그 세상에 적응하여 적당히 월급을 받고, 안 써야 할 글들, 이른바 수령 부자와 손자를 찬양하고, 지도자 말씀을 따라 열심히 뛰었더니 안 되는 일 없이 다 되더라 하는 식의, 겉만 번지르르 한 허위, 가공 사례담을 소설이라고 써내고, 밤에 사석에서나 나도 생각은 있는 사람이라는 듯이 얼굴에 초조한 빛을 띄우는 사람들을 북한 작가들이라고 만나서 무슨 합의를 한다는 둥, 공동 성명을 낸다는 둥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이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벌이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인간적으로는 서로 친분이 있다 해도 공공의 일을 두고 판단하는 데서는 도저히 합치를 이룰 수 없는 것이, 북한 인권 문제를 가장 심각한 현실 문제라고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은 말한다. 인권 같은 문제로 북한을 너무 자극하면 남북 관계에 좋지 않다.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도 적절치 못하다. 자꾸 만나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이런 식의 말씀들을 듣다 보면 참, 대단한 착각들을 하신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그렇게 북한 작가들을 만나서 뭔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이 그것이요, 두 번째는 북한 독재 정권이 이렇게 원만한 관계 증진을 통해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천만에다. 최근에 5공화국 때의 추징금이 해결 안 되어 문제가 되는 것을 본다. 과거는 좋은 소리와 웃는 얼굴로 극복되지 않는다. 장기표 선생은 내 말씀을 듣고 오랜만에 의견이 같은 `젊은이`를 만났노라고 했다. 나 또한 그가 민주화 운동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문제, 북한 정권 문제, 인권 문제 같은 것을 정시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남북한이 다시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문학하는 사람들, 이 시대를 고민하는 이들은 북한 땅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해방 되는 날을 기다리고 또 그 날을 앞당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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