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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소리` 단상

등록일 2013-10-24 02:01 게재일 2013-10-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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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오랜만에 요즘 나오는 장편소설이라도 섭렵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황석영의 작년 장편소설 `여울물소리`를 집어 들었다. 황석영이 직접 사인해서 보내준 책을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서가에 꽂아두었던 것을 이번에는 꼭 읽어봐야겠다고 펼쳐든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이른바 사재기 파동으로 출판계를 어지간히 시끄럽게 만들었던 작품이니만큼 어쩌면 읽으려다 말고 그냥 꽂아두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황석영이라면 그의 작풍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문학연구자라면, 또 비평가라면 함부로 홀대할 수는 없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읽어 보았더니 이 소설은 몇 가지 점에서 음미해 볼 만한 점이 있다. 우선 이 소설은 동학혁명 때의 이야기이고, 또 그 시대를 풍운아처럼 살아간 이신통이라는, 이야기꾼이자 동학적인 개혁사상을 가졌던 사람의 이야기다. 황석영은`장길산`이라는 긴 역사소설을 썼던 작가이기는 하지만 첫 장을 열면서부터 참 문장 수월하게 나가면서도 온갖 역사 속의 어휘들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품이 과연 이야기꾼 황석영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로 이어지는 동학에서 천도교로의 전개 과정을 역사적으로 서술해 놓은 사람은 `천도교 창건사`의 이돈화다. 이 책은 한자가 아주 많이 섞여 있는 책이고 지금은 아마 중간되지도 않았을 테지만 천도교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고자 할 때는 빼놓을 수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손병희의 뜻이 교단에서`친일파`들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돈화의 저서 가운데에는 인내천의 사상을 근대철학 사상 체계들과 접합시켜 논의한`인내천의 연구`, 곧 `신인철학`이라는 것도 있어, 천도교 사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이 책은 없어서는 안되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독하면서 동학, 곧 천도교에서 말하는 인내천, 즉`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이 얼마나 깊은 인간주의적 함의를 띠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 동학의 가르침이야말로 한국의 근대 사상 가운데 가장 빛나는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울물소리`에서 이 동학을 이끌어 들인 황석영의 생각은 아주 야심적인 것이어서 그는 높은 가르침을 한글로 인쇄, 출판하고자 했던, 그러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남겨두고자 했던 이야기꾼의 존재를 작중에 깊이 각인해 놓았다. 이것은 아마도 `이야기`가 역사를, 근대적 전환기에 처한 인간들의 이상과 수난을 어떻게 수용하려 했는가를 보여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여울물소리`가 황석영이 지난 몇 년에 걸쳐 실험해 온 작품들, 예컨대,`손님`이나`심청`이나`바리데기`같은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냐. 그것은 이 소설들이 우리 한국인들의 이야기, 즉 신화나 전설이나 민담이나 고전소설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 새롭게 활성화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심청`은 이러한 맥락에서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본래`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들어 성립된 고전소설이지만 작가는 이 심청이라는 존재를 근대 격변기를 동아시아를 주유하며 살아간 여인으로 만들어 서세동점의 시대적 난국에 처한 동아시아 사회를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일본에까지 두루 떠돌아다니게 만들었다.

이러한 작가의 의식적인 창작방법이`바리데기`에 이르러서는 다소 약화된 게 아니냐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여울물소리`는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생각해 본 것이 하나 있는데 이런 작가는 어찌 되었든 귀하다는 것이다. 그가 언론에 노출된 모습은 지난 몇 년 동안 다소 어지러웠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그는 작품을 꾸준히 구상하고 써왔다고 생각해 보면, 사람에 대해서는 역시 어떤 총체적 판단이 필요한 게 아니냐 하고 반문하게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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