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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란 누구인가?

등록일 2013-11-14 02:01 게재일 2013-11-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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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이광수란 누구인가? 이것은 지난 11월9일에 메이지학원대학의 시로가네 캠퍼스 본관 10층에서 열린 심포지엄의 제목이다. 메이지학원대학의 전신은 메이지중학, 올해로 15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국제 심포지엄을 마련한 것이 바로 이광수를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 학교는 이광수, 주요한, 김동리가 차례로 거쳐간 학교로서, 한국의 학계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이광수를 단일 주제로 삼아 학술대회를 열기는 이번이 일본에서도 처음이다.

아침 9시에 심포지엄에 관계된 주요 발표자와 토론자가 본관 911호 회의실에 모여 준비 모임을 가졌다. 기조 발제자인 가와무라 미나토 선생이 늦은 외에 모든 관계자가 거의 정시에 참석했다.

상견례를 하고, 행사를 주관한 메이지학원대학 측에서 시마다 사이시 교수가 나와 행사 전반의 구성과 운영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하나의 학술행사가 내실있게 진행되려면, 무엇보다 주최측의 행사 준비가 철저해야 하고, 또 발표자의 준비가 새롭고도 철저해야 한다.

메이지학원대학에서는 이번 행사를 위해 벌써 몇 달 전부터 원고를 받아 번역을 하고, 여러 번 확인을 하고, 행사 이틀 전까지도 메일을 보내 재삼 , 재사 진행 상황을 알려오는 성의를 보였다.

김진아 교수의 사회로 가와무라 교수가 이광수를 일본의 `일그러진 거울`로 묘사하는 기조 강연을 했다. 다음으로는 문학, 종교, 역사에 걸쳐 이광수를 논의하는 주제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한국에서 건너간 나, 이 심포지엄 성사에 깊이 관여한 메이지학원대학의 서정민 교수, 재일한국인인 혜천여자대학원의 이성전 교수가 차례로 발표했다.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을 새로 조명한 내 발표는 가와무라 선생과는 논지가 아주 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내가 `일그러진`이라든가, `콤플렉스` 같은 것보다, 어떻게 해서 이광수가 새로운 타입의 소설을 `창조`할 수 있었는가를 밝히고자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이나 서양 것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모방, 이식하지 않고, 당대의 조선이든, 유학해 공부한 일본이든, 그 자신이 몰두한 유럽, 러시아, 미국의 문학이든, 자신의 문화적 배경들을 골고루 흡수하면서 새로운 문학,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가는 이광수의 모습을 조명했다.

나는 이러한 이광수 이미지가 오늘날의 우리들, 곧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고 있는 이광수란 일제말기에 특히 대일 협력에 몰두한 이광수다. 사람들은 그를 잘 알지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가 진부하고, 혐오할 만한 `친일파`이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많은 이들은 반제국주의적인 양식을 가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나는 이광수가 일제 총독부 지배 체제와 도산 안창호의 민족 사상 사이에서 젊을 때부터 스윙해 온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며, 적어도 장편소설 `무정`의 단계, 그 젊은 시절에는 일제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에 새롭고도 보편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고심했다고 보았다.

행사가 정리된 후 3차의 뒤풀이 자리에는 나와, 서정민 교수, 이성전 교수, 토론을 해주신 서강대학교의 최기영 교수, 그리고 시마다 사이시 교수, 통역의 마쓰모토 켄사쿠씨가 남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광수가 공부한 도쿄의 시로카네의 조그마한 술집이 이렇게 시간의 격절을 뛰어넘어 한 인간을 탐구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이 문학의 힘이자 매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밤이었다.

나라면, 지금이라면, 이광수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지금 나는 이광수 문제를 내 문제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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