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사정이 겹쳐 책을 옮기게 되었다.
아주 여러 해 동안 한 곳에 고히 모셔두고 쌓인 책 위에 또 책을 쌓고 그래서 번연히 책이 있는 줄 알면서도 당장 급해서 또 사서 볼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 그 몇 해였는지 모른다.
돈 없이 살아도 책한테만은 유난히 욕심을 부려 공부하는 문학전집이며 옛날 잡지 영인본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 인문과학, 시집에, 소설책에, 없는 책 없다시피 쌓아두고,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노라 했다.
바로 옆에 친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참 현명하다. 연구실이며 집 서가에 딱 한정된 공간만 할당해 놓고는 절대로 그 공간을 넘어서는 책은 안 가지려고 한다. 그러니 책이 여기저기서 오기도 하고 사기도 해서 양이 넘치면 있는 책들의 가치를 매겨봐서 중량이 덜 나가는 것을 빼서 남주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시집이나 소설집이 특히 그런데, 그것들이 짐이라 생각해서 처리하려고 몇번씩이나 생각을 하다가도, 이것들이 나오느라 책 쓰고 만든 사람은 얼마나 고생하고 또 정성을 들였는가 생각하다 보면 이 자식도 저 자식도 버릴 수 없는 것 같은 심정에 젖어들고 마는 것이다.
서가가 충분해서 한 곳에 가지런히, 한 눈에 보이도록 책을 꽂아두고, 사람 써서 정리까지 해서, 가나다 순이든 분류 순이든 눈에 잘 보이게 해두면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된 것처럼 개운할 텐데,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이런 책도, 저런 책도 있으니, 어수선한 포목점, 천들 뒤엉킨 것처럼, 책 생각만 하면 마음 심란해지는 것이 한두 해가 아니었다.
이제 책을 한번 대정리하려고 보니 이른바 딱지본 고전소설까지 시렁에서 굴러나온다. 말이 굴러나온 것이지 근 마흔 권 넘는 것들로 반쯤은 값이 안 나가도 몇 권은 소장가치도 없지 않은 것들이다. 그 옛날 시간강사하며 평론`이나`쓰고 살 때, 홍대입구역 주변에 오거서라는 서점에 갔다 이 마흔 권 책에 눈을 뺐겼었다. 통장에 있는 돈 다 털어서 몇십만 원이나 주고 집에 가져 왔는데, 그 액수를 차마 밝히지 못하는 것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까봐서다.
버리고 없애려 해도 차마 그게 안되는 책은 추억이 어린 책이다. 그 책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책 표지며 페이지에서 흘러나오면 먼지 구덩이에서 살지언정 책은 버리지 않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책을 버릴 수 있게 되나.
그것은 역시 시간의 위력일 것이다. 이중책장을 15m 분을 쌓아놓고도 쌓아둘 공간을 찾지 못한 책들을 보며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재부와 공간을 생각하니 한숨이 나올밖에 도리가 없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책을 이 생긴 형태 그것으로 사랑하는 방식을 버려야 하겠다고.
책은 눈에 보아 탐이 나고 코끝에 걸려 향기롭고 손에 잡아서 촉감도 좋다. 하지만 책이 책인 것은 그 안에 쓰인 내용 때문이러니, 다른 것은 모두 장식에 지나지 않으려니.
책에 중독된 나 자신을 생각하며 중독된 원두커피 아메리카노가 몸에 좋지 않듯이 책도 그 물질에 중독되면 마음에, 정신에 좋지 못하다고 말해본다.
모든 수집이, 모아 쌓는 취미가, 기벽이 때가 흐르고 나면 피할 수 없이 버거워지는 법이다. 이제는 책을 더 쌓는 것보다는 친구의 지혜를 본받아 나도 어떻게 책을 일종의 컬렉션처럼 정리하며, 정돈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지 생각해 본다.
혹은 집도, 돈도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때가 되면 결국은 놓고 떠나야 하는 것을, 그래도 아등바등 모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역시 때가 되어야 겨우 깨닫는 미련한 짐승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