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시험대 위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를 치른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뭔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느낌은 잘 안 생긴다.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가 벌써 한 달째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데, 한편으로 언제 때 사람인데 지금까지 저렇게 큰 화제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회에서는 오늘 이석기라는 진보당 소속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가 이제 막 있을 예정이다. 필자는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체포동의안이 상정되면 통과될 것이 확실하고 이렇게 해서 문제는 일단락 될 것이다. 신문에서는 내란죄라는 것이 성립될 수 있겠는지, 과연 판결까지 여정이 순탄할 것인지에 대해서들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내일로 이석기 의원은 국회에서 모습을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시대가 오늘 같지 않고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필자만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NL(민족해방) 계열이 시민, 학생, 노동운동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멀리 1986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지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김영환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대학가에 `강철 서신`이라는 것이 떠돌았고 이것은 곧 반제해방운동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운동으로 연결되었다. 이 무렵부터 1990년대 전반기에 걸쳐 학생운동의 주류로 뿌리를 내린 NL 계열은 한국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라 간주하고, 따라서 이 땅에서 미국의 힘을 제거하는 것을 운동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다. 그런데 이 노선은 늘 시민, 학생, 노동 쪽의 민주화 운동의 흐름과 모순을 빚으며 상충되어 왔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기본적인 민주적 절차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 흐름은 그것을 문제 삼는 대신 미국을 문제 삼는 것으로 자기 존재를 과시하면서, 사회정치적인 의제를 미국과 북한, 미국과 한국 내 반미 운동의 대립축으로 뒤바꾸어 놓곤 했다.
다른 노선의 변혁운동이라는 것도 그 껍질을 깨고 보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특히, 이 NL 계열이라는 것은 그 내부에 여러 편차가 있으면서도 북한이 혁명 근거지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북한이 자본주의 너머 사회주의 사회라고 생각하는 이 `정신병`은 북한의 인권 유린, 야만적인 독재 통치, 폐쇄적 체제에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극한적 빈곤과 기아 같은 문제들을 보지 못한다.
이석기 의원 문제를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농담조로 말하기를, 국가정보원에서 내놓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내란죄로 처벌해야 한다기보다 정신병원에 보내야 할 일이라고 하는 것도 반드시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이 사태의 진실의 일면이다. 그런데 벌써 몇 달 전에 포착되었다는 내란음모가 하필 지금 사건화 된 것도 심상치만은 않다.
필자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 낡아서 더 이상 아무도 흥미로워하지 않을 문제를, 그만큼이나 식상한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관한 것이다.
화제가 새로워야 한다. 보는 눈이 새로워야 한다.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꿈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은 낡디 낡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유령들`이다. 그 힘에 국회가 들썩거리고, 신문 지상이 도배가 되고, 사람들이 우왕좌왕 한다. 서로들 진보당이 좌라느니, 좌도 못되느니, 진보라느니, 종북 세력이라느니, 호떡집에 불이 난 격이다. 한 마디로 말해 재미없다, 이 말이다. 뭔가 새로운 의제를 만나고 싶다. 얼마 전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연설이 화제가 되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그 연설은 아직도 생생한 진실을 전해주고 있다. 그런 말다운 말, 의제다운 의제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