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인생 저 밑바닥까지 갔다 와서는 산사람이 되었다. 밤과 낮 2교대로 일하는 운전 일을 하다 보니 운동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데, 그러고 보면 등산처럼 좋은 운동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이 친구가 과연 얼마나 버티겠냐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지만, 어느덧 5년이나 되었고 보면, 이 친구의 인내심도 시험은 벌써 통과한 셈이 됐다. 나도 글을 쓰고 이 친구도 글을 쓰지만, 평소의 직업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고 또 그러면서도 차 안에서 꼼짝없이 열 두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라서, 보통 마음이 아니고서는 견뎌내기 힘들다.
휴일을 앞둔 어느 날이면 휴대폰으로 문자가 온다.
ㅡ친구, 산에 안 가나?
하지만 나는 산이라면 도통 적응이 안 되는 마음 바쁜 사람이라, 대개 혼자 다녀오라고, 미안하다고 답신하게 마련인데, 이도 한두 번이고, 쥐도 낯짝이 있는 법이다. 며칠 전에는 하는 수 없이 산에는 못 올라가고, 내려 와서 보자고 하게 되어 북한산에서 멀지 않은 연신내라는 곳까지 막걸리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친구는 연신내 역에 내리면 무슨 무슨 이름을 가진 재래시장이 있다고 거기로 오라고 했다. 시장통에 있는 먹자골목집에서 한 잔 하자는 것이다. 아무렴. 추석도 가까웠고 사내 둘이서 오랜만에 만나 한 잔 걸치는 데는 시장통 선술집이 제격이라 할 만했다.
연신내가 그런데 이렇게 멀었나? 나는 이웃집 놀러오듯이 오라는 친구 말만 믿고 쉽게 생각을 했건만 신촌 집에서 가려니 삼십 분도 넘게 걸리는 곳이다.
흥. 자기 다니는 산 가까운 곳으로 호출을 하셨겠다. 나쁠 거야 없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서 쉬어 보려던 예산이 깨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시장통이라 했겠다. 2번이었나, 5번이었나 하는 지하철역 출구 쪽에 가보니 과연 시장이, 재래시장이 하나 있다. 입구에 간판도 있는 시장 골목 안으로 이십 미터나 들어갔을까. 바로 먹자통이 나오고 저만치에 벌써 혼자 막걸리병 마주 대하고 있는 친구 모습이 보인다. 나를 보더니 손을 번쩍 치켜든다.
뭘 드시고 계신가, 하고 보니 코다리찜 먹는다더니 그건 아니고 노가리찜이라나 하는 처음 먹어보는 종목이다.
ㅡ여기가 싸고 맛도좋아.
친구가 나를 탁 맞이해서는,
ㅡ아주머니, 여기 얼음 막걸리 한 통 주세요.
하고 아주머니를 불러 젖힌다.
ㅡ얼음 막걸리?
내가 그건 뭐냐는 듯이 의문을 표명하는 표정을 짓자,
ㅡ살얼음 살짝 뜬 막걸리 죽여. 그거 한 통 들고 산에 올라가서 한 잔 딱 걸치면, 캬.
친구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말 뒷부분을 감탄사로 때운다.
살얼음 뜬 막걸리를 둘이서 턱 하니 나눠 마시고 한 통을 더 시켜 마시고 우리는 어스름 뒤 어둠이 내린 시장통을 빠져나왔다. 내가 술값을 내고 뭔가 성의를 표현한 게 마음에 걸리는지 친구는 시장통 입구에 있는 족발집 앞에 딱 서더니, 방금 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족발을 가리키며,
ㅡ아저씨. 그거 두 개 싸주세요.
하고는, 나를 돌아보며,
ㅡ싸. 하나에 만원이야.
한다.
만원이라. 과연 싸기는 싸다. 우리 둘은 족발집 주인 아저씨가 신바람 나게 썰어주는 그 큰 족발을 한 꾸러미씩 나눠 들고, 빠이빠이를 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시장이 좋군.
한가위가 다가오고 있다. 시장의 인정이 다시 그리워지는 계절인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시장같이 정겨운 곳이 또 없다. 우리들 주머니 생각까지 해서 이렇게 하나에 만원씩밖에 안 하지 않느냐. 한가위 가까우면 이 친구와 함께 한 번 더 시장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