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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사람, 우직한 사람

등록일 2013-08-22 00:24 게재일 2013-08-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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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요즘 참 행사를 많이도 치렀다. 얼마 전에는 박인환과 1950년대문학이라는 학술행사를 했다. 최근 한국불교와 한국현대문학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만해축전에 가서는 만해 한용운과 타고르에 관한 학술대회를 치렀다.

뜨거운 여름이 이렇게 가나 하지만 아직도 더 남은 일이 있다.

하지만 공부 얘기가 아니다. 사람 얘기다. 모임이 많았던 만큼 사람도 참 많이도 만났다.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유명한 사람도, 무명의 인사도, 남자도, 여자도, 잘 생긴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까지, 각종 인간 셋트 가운데 나도 한 사람으로 끼어 어지럽고 숨 가쁘게 일을 치렀다.

이런 유형 분류 가운데 영리한 사람, 우직한 사람이라는 한 셋트를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리한 사람, 우직한 사람 하니, 말은 영리한 사람을 먼저 꺼냈는데, 생각나기는 우직한 사람 쪽이 더 먼저다.

지금도 만해마을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고 있는 한 여성 시인이 떠오른다. 이 불볕 더위에 운전하고 있는 친구 정 모 시인도 떠오른다. 몇 번 만나보지 못했지만 인상 분명한 저쪽 진주에서 교편 잡고 있는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누구보다 친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박 모 후배, 이 모 선배 같은 사람들, 지금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어 있는 방모 선배, 시 쓰는 여성 시인 이 모씨 등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자꾸 생각나는 사람들이다.

우직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머리까지 가졌다면 금상첨화이겠고, 또 금방 열거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만, 머리야 좋든 나쁘든 성품이 우직한 사람들은 남을 안심시킨다. 설혹 내가 그를 속일 수 있을지언정 그에게서 속임 받지는 않을 것 같은 심정이야말로 그런 사람들을 남들이 즐겨 찾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쪽에 영리한 사람들이 있다. 영리한 사람들은 좀처럼 불행해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말로 하는 것과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달라서 좀처럼 그 사람의 진심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당자만큼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고, 또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경로를 설계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남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이 반드시 나쁘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우리는 옆에서 어떤 사람이 대놓고, 저 사람, 참 영리해, 하고 감탄어린 칭찬을 하는 것을 종종 목도하기도 한다. 이런 때 영리함은 칭송 받을 만한 덕목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바로 곁에 영악한 사람들이 있다. 영리하다는 것은 눈치 빠르고 똑똑하다는 것이고, 영악하다는 것은 이해가 밝고 약다는 것이다. 비슷한 말들 같고, 특히 어린애한테 영악하다는 말을 쓸 때는 감탄조의 칭찬 의도를 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에 대해서 이 말을 쓰면 그 어감이 별로 좋지 않다. 옆에 있으면 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뜻이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다.

이 해 여름 유난히 우직한 사람들만큼이나 영리한 사람, 영악한 사람을 많이 만났다.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직한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값진 존재인가 더 절실히 생각하게 된다. 자기에게 이익이 있으면 찾고 그렇지 못하면 돌아선다. 그것만으로도 족한데 다시 이익이 생길 것 같으면 또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담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기가 질리는 느낌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손해를 보는 것은 우직한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우직한 친구들이 이 여름을 힘들게 나고 있는 것을 본다. 마음이 늘 한결 같은 사람들이 이 세계를 그 넉넉한 마음만큼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나는 이 친구들을 마음으로 깊이 성원해 본다. 친구들아. 너희들에게는 진짜 날개가 있다. 이 세상의 오탁에 물들지 않고 저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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