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은 메이 데이다. 쉬는 날이다. 하지만 쉬지 않는 사람들, 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답사여행을 떠난다. 늘 먼 곳으로 떠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가까운 곳으로 간다. 경기도 양주 봉선사와 광릉을 비롯해서 경기도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닌다.
아름다운 봄이다. 봄도 지금이 제일 아름다운 때다. 서울은 지금 벚꽃이 이제 막 한창이고, 나무도 가장 싱싱한 초록빛을 띠고 있다. 여기서 더하면 짙어질 것이요, 그러면 봄은 쇠어지고 늙어지게 된다.
이 아름다운 때에 나는 가장 좋은 여행을 떠난다. 내 가방 속에는 김윤식 선생의 이상 연구가 들어 있고, 노트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이라는 희유한 단편소설의 초고가 담겼으며, 너무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어 방향 모르는 현재 속에 꿈을 가진 학생들이 동행하게 된다.
이런 날 아침, 나는 다섯 시 사십 분쯤 깨어나 이것저것 준비를 한다. 그런데 잠시 새벽바람에 출판사에 들러야 한다. 급히 처리할 일이 있고, 이때문에 동교동 로터리라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시간에 맞춰 모이는 곳까지 가려면 멀지 않은 거리라도 택시를 타야 한다. 집에서 나와 신촌 연세병원 앞으로 가 택시를 기다린다. 온다. 마을버스 뒤를 따라 손님을 발견한 택시 한 대가 내 앞에 와 선다.
“기사님, 동교동 로터리 가주세요.”“예.” 기사님은 50대쯤 되어 보인다. 대답은 시원스럽지만 어감은 그렇지 않다. 경상도 말에 와, 하면 오라는 말인지 왜, 라고 묻는 말인지 어세를 들어봐야 한다. 예, 라는 말에 담긴 감정은 더 미묘하다.
단 한 마디 말인데도 그것이 기꺼운 감정을 담은 말인지 마지 못해 내놓는 긍정의 말인지가 그 어세에서 단박에 드러나는 것이다.
택시로 가기에는 가까운 곳이라서 타고 있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앞에 붙여놓은 기사 신분증을 보니 회사택시다.
서울의 택시 기본료는 2400원이다. 커피 체인점들의 기본 아메리카노 커피는 싸면 전철역에서 파는 990원 짜리도 있지만 대부분 3500원 이상이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택시 기본료 거리를 가자는 게 떳떳할 수 없다.
더구나 아침 일찍이다. 평소 출퇴근 시간에 사오십 분 걸릴 거리도 20분 이내에 주파할 수 있다. 장거리 손님이 타야 한다. 주야간 12시간 교대하는 택시들이 대부분인 서울에서 주간 근무조는 사납금 채워넣기도 빠듯하다. 주간 근무 때는 겨우 사납금 채워넣고 야간 근무 때 가욋돈을 벌어 얄팍한 월급봉투를 보충해 가야 한다. 짧은 주행 끝에 나는 내렸다.
“저 지하철역 4번 출구 앞에 내려 주세요.”“예.”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 다니는 스마트카드 회사에서 만든 티머니로 값을 지불하고 내린다. 내리면서 보니 이 4번 출구, 동교동 로타리에는 사람들이 없다. 왕래하는 사람들 없는 곳에 손님을 내려주고, 이 택시는 또 어디 있을지 모르는 손님을 찾아 막막한 운행을 해야 한다.
출판사를 향해 걸어가며 생각하니 일하는 사람에게 돈을 버는 일은 막막한 행로와 같다. 돈은 그냥 돈이 아니고 생활, 생명 영위의 매개 수단이다. 나는 이른 아침 기사분에게 남겨놓은 막막함을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 절친한 친구, 시를 쓰는 택시 기사 하나는 메이데이 `덕분에` 주간 일을 쉬고, 강원도 인제로 선배를 만나러 가고 있다. 전화 통화나 한 번 해볼까. 돈을 버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친구가 오늘 같은 하루 봄빛을 받으며 하루치기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마음이 기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