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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을 만나는 때

등록일 2014-12-04 02:01 게재일 2014-12-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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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

12월인데도 견딜 만 하다고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저께는 비가 내리고 어제는 눈이 내리는 듯했고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니 서울 바닥에 눈이 조금 쌓였다.

눈이라고 해야 지금 서울에 내리는 눈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 어렸을 적 충청남도 덕산 고향에 한 번 눈이 내리면 무릎까지 눈이 쌓이곤 했다. 몇 살 안 될 때여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그때는 정말 떡덩이 같은 눈이 펑펑 쏟아지고 그 눈이 쌓여 외할아버지가 가래로 눈길을 만드는데 고생께나 하셨다.

그래도 창밖을 보니 눈이 와서 좋기는 좋다. 눈을 따라 옛날 생각이 난다. 그때 학력고사 시험을 보고 난 12월, 독서 서클 지도교사 선생님 댁에 놀러 갔다. 그때는 동아리라 하지 않고 서클이라 했다. 또 그때는 수능시험이 아니라 학력고사였다.

나 혼자 간 게 아니라 나보다 한 학년 아래 여학생과 같이. 왜냐? 그때 나는 대전시 고등학교 연합 서클에 들어 있었고 거기서 문제의 여학생을 만났던 것이었다. 그게 나 3학년 그 여학생 2학년이었으니, 공부고 뭐고 생각이 없던 나다.

선생님 댁을 찾아갈 때 대전 세상에 눈이 쌓여 있었다. 눈길을 걸어 하숙인가 자취인가를 하고 계시던 우리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댁에 둘이서 놀러갔다. 바로 나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우리의 서클 지도교사셨다.

그랬다. 그녀와 나는 대전에 `이름난`고등학교 연합 독서 서클의 회원들이었다. 거기서 까뮈를 읽고 사르트르를 읽고 이어령의 소설 `장군의 수염`을 읽었다. 그리고 그때 서로 소위 `밀당`들을 했다.

그날의 그 눈길이 지금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만났던 국어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슨 얘기냐고 물어들 보시겠다. 사연인즉 이렇다.

그 여학생과 무려 근 삼십 년 만에 연락이 된 것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우연히 내가 어디서 뭐하는지 알고 전화를 한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내가 고등학교 30주년 기념 모임에 갔다 간발의 차이로 국어 선생님을 뵙지 못한 이야기를 했더니 단숨에 그분을 찾아뵙기로 약조가 된 것이다.

그 여학생이 국어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약속을 잡자 우리는 드디어 삼자대면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무척 용의주도한 나다. 30년만의 삼자대면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 고통을 어떻게 다 견디란 말이냐. 나는 전광석화 같이 머리를 돌려 나의 가장 사랑하는 고등학교 동창 최병수 군을 대동하기로 했다. 거기에 나의 가장 무뚝뚝한 친구 노영수 군도 함께 하기로 했다. 오자대면이라면 우리는 무척이나 즐겁지 않겠는가?

드디어 그날은 닥쳤다. 일요일. 비가 내렸다. 오후 1시. 서대전 사거리 예지원이라는 한정식 음식점. 항상 계획대로, 의도대로 되는 법은 없다. 노영수 군이 시골에 문상을 갈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음. 하는 수 없군.

우리는 마침내 사자대면을 한다. 약속 장소 한쪽에서는 돌맞이 잔치가 시끌벅적하다. 그래도 우리는 꿋꿋이 앉아 해후를 자축들 한다. 그런데, 어럽쇼? 아니, 이 여학생께서 국어 선생님 손을 덥석 잡는 게 아니냐.

맙소사. 그 옛날의 부끄러움 타는 소녀 다 어디로 갔나. 그때 그 눈길 속에서 손 한 번 잡지 못하던 우리. 아니, 그녀와 나. 그뿐인가. 여름날의 밤 9시 넘어서 등화관제가 펼쳐진 비오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우산을 각각 따로 썼건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이래도 되느냔 말이냐. 속으로 혀를 끌끌, 고개를 절래절래. 그런데, 반갑다. 기쁘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국어 선생님이 좋다. 옆에서 장단 열심히 맞추는 최병수가 좋다.

그 여학생은 나쁘다. 그래도 또 한 해가 저무는 이때 옛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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