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한국학대회가 지난 주에 하와이대학에서 열렸다. 나는 그 대회의 한 패널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고 발표논문을 준비해 건너갔다.
현재 하와이대학의 한국학센터 소장인 이상협 교수와 김영희 교수가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11월의 하와이는 아름다웠다. 하와이 주의 주도는 호놀룰루, 하와이 여러 섬중에 가장 번화한 오아후 섬에 있다. 대회 개막식과 리셉션이 저녁에 열리는 관계로 우리 패널은 아마도 제주도보다 작을 오아후 섬을 해안도로를 따라 둘러보기로 했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바닷가에 돌출해 있고, 생긴 모양이 같은 분화구인 성산 일출봉을 꼭 빼닮았다. 아름다운 만 하나우마 베이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작년 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낭독회를 들으러 가서 이 해변을 구경할 수 있었다.
블로우 홀이라는 곳에서는 까만 용암석에 뚫려 있는 작은 틈으로 파도가 칠 때마다 수증기 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태평양 파도는 투명하고도 거칠었다. 우리는 더 돌아서 와이마날로 비치파크라는 곳으로 갔다. 안내를 해주시는 밴 택시 기사분이 여기서 쉬어 가자고 했다.
바닷물에 발이라도 담가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구두를 벗고 양말도 버리고 고운 모래 해변을 걸었다.
바다는 언젠가 제주에서 보았던 것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 제주 바다가 옥빛이라면 이 바다는 에메럴드 빛. 나는 눈부신 태양빛 아래 푸른 빛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는 바다에 발목을 적시고 망연히 서 있었다.
우리는 또 바람산이라는 곳으로도 갔다.
지형 때문에 바람이 소용돌이치듯 세차게 흐르는 곳, 카메하메하 왕이 하와이 왕조를 열 때 비극적인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카메하메하 왕은 빅 아일랜드의 대추장으로 오아후 섬까지 마저 정복해서 하와이 100년 왕조를 열었다.
하와이에서의 체류는 즐거웠다. 우리 패널의 발표가 있던 날, 우리들은 나의 발의로 따로 국제유머학회를 창립했다. 이것은 물론 내가 즉석에서 만들어낸 장난이었다. 나는 오하이오에서 오신 박찬응이라는 중견 여성 학자에게 가입을 권유하기까지 했는데, 이것이 일종의 유희라는 것을 알고는 기꺼이 호응해 주셨다.
이제 우리 패널은 국제 유머학회 일로 더 바빠졌다. 발표를 전후로 하여 나는 우리 패널의 한 사람인 박현수 선생을 통하여 열정과 매력을 겸비한 존 프랭클 선생을 만났다. 우리는 즉각 한 패가 되어 유머학회 활동에 돌입했다. 각자가 알고 있는 우스개 소리나 즉각적으로 생각해낸 말들을 평가해서 우리 학회지 등재 여부를 결정을 내렸다.
사실, 이제서야 밝히지만 우리 학회의 정식 명칭은 국제 유머 등재학회였다.
요즘 학자들은 국제 학술지나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데 목말라한다. 때문에 우리 학회지에 유머를 실으면 자동적으로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셈이 되도록 배려한 것이다.
마지막 날 밤, 나는 자리에 누워 태평양 바다 멀리에서 들려오는 아우성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바위에 바스러지는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성난 외침 소리가 뒤섞인 것 같기도 했다.
아름다운 곳에서 며칠 지내고 나니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것이 무서웠다. 이곳은 춥고 메마르고 자유가 없다. 내가 아닌 다른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프고 돈에 시달린다. 아름다운 영혼은 싸움에 소진된다. 눈 있는 분들께서는 이 나라를 좀 보시지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