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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찾아서

등록일 2014-10-16 02:01 게재일 2014-10-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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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교수·국문학

서울 서초동 국립도서관에서 근대문학 자료수집에 관한 회의를 마치고 우리는 성북동의 화봉 책박물관으로 갔다. 그곳에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문학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승구라는 분은 평생 우리의 문학유산을 수집, 정리, 보존해온 분으로, 그 분의 개인 박물관에 우리 문학의 귀중한 자산들이 포갑에 쌓인 채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몇 년 전인가 관훈동인가에 있던 화봉문고를 찾아가 서정주의 화사집을 만난 적이 있었고, 그때 우리 선배들이 책을 얼마나 멋드러지게 만들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성북동, 이태준 고가 쪽으로 올라가는 어느 언저리에 그곳은 새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막상 찾아가니 건물 전체는 외부 리모델링 공사중, 마음이 심난하다. 그러나 그 책들의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좀처럼 외부인에게 열어주지 않는 서고의 책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김재용 선배가 서가에서 임화의 시집 현해탄을 꺼내와 내게 보라고 내민다. 거기 임화가 박영희를 위해 직접 쓴 헌사가 있다는 것이다.

회월 박영희라면 카프의 서기장으로 `철부지` 임화의 기식을 못 견뎌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한 사람이고, 그렇게 해서 성장한 임화의 급진주의에 밀려 나중에는 전향에까지 이른 사람이다.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 이것이 그가 남긴 유명한 문구였으니, 내가 보기에 사실상 한번도 본격적으로 전향을 한 바 없는 임화와는 다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이다.

“회월 형게ㅡ형의 교훈과 우정에 감사하면서” 이것이 1908년생 임화가 1901년생 박영희를 위해 쓴 헌사였다. 그 시절에는 이 정도 연배 차이가 나는 사람에게도 우정을 운운할 수 있었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이 간명한 문장에서 나는 임화의 `오만불손함`과 근성을 느낀다.

나는 김재용 선배가 보여준 시집 현해탄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오른 쪽 가슴이 찌르르 아파온다. 시집을 만지는 손가락을 타고 올라온 어떤 에너지가 심장에까지 순식간에, 그리고 예리하게 파고든 것이다.

아프다. 현해탄 시집 앞뒤 표지에 넘실거리는 검은 바닷 물결 현해탄의 물갈퀴들이 내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다.

나는 안다. 1938년 동광당 서점 출간. 이 시집은 카프 해산의 1935년 시들 태반을 버리고 새로 구성한 회심의 역작이었던 것을.

이제 서가의 주인이 대형 금고를 열고 그가 정말 아끼는 보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큰 마음을 먹은 것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백석의 사슴, 서정주의 화사집,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어쩌면 그것들은 그렇게도 아름답고, 화려하고, 세련되었는지. 무슨 돈이 있어 오장환은 남만서방을 열고, 한지로 배접한 호화판 시집을 출판까지 했는지. 백석의 사슴의 표지는 어찌하여 그토록 무색, 무취, 무형한 흰빛 그대로의 몽환적 세계인지. 그 눈밭에 새가 걸어간 것 같은 외길로 찍힌 시의 어구들이여.

나는 혼잣말을 하듯 말한다. 이 책들이 여기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고.

서른두 살 나이로 현해탄을 건너갔다 온 후 나는 무슨 몽환 속을 헤매듯 우리 문학의 존재 증명을 위해 어지럽게 살아왔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가난한 집 아이처럼 나는 불쌍하도록 늘 허기져 있었다.

이런 책들을 만나면 슬픈 마음이 얼마간이라도 위안을 얻는다. 내가 위하는 것들이 마냥 헛것은 아니라는.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며 보람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만남이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비록 심장에 `기스`가 나도 오늘은 하루가 화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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