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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사람들

등록일 2015-01-22 02:01 게재일 2015-01-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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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전북 김제에 있는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에 다녀왔다.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은 김제평야를 무대로 삼은 대하소설 `아리랑`을 기념하는, 개인 문학관으로서는 대단한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1층, 2층에 설비된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나는 조정래라는 작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순 원고지로만 쓴 `아리랑` 원고가 자신의 키보다도 훨씬 높이 쌓여 있었고, 그가 작품을 구상하면서 취재한 기록들, 스케치들, 수첩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놀라운 것은 그가 직접 그린 스케치들인데, 여기에는 그의 창작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의 무대들을 직접 발로 뛰어 다니며 그 다닌 경로들, 특정한 공간의 지형들을 고등학교 때 화가가 되고자 했던 사람의 실력으로 섬세한 펜화를 남겨 놓는데, 이 과정은 곧 그의 머릿속에 자신의 소설 속의 영상을 사진을 찍어 놓듯이 인쇄해 놓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가 직접 말하기를 자신은 세밀한 시놉시스를 작성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독자들이나 비평가들이 쉽게 믿기 어려운 점이지만, 대신에 그는 이 영상들을 밑그림처럼 그려놓음으로써 그 긴 소설들을 유려하게 써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리랑 문학관 기행을 마치고 우리는 김제 시내의 한 음식점으로 갔다. 그곳은 김제평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지평선이라는 말을 붙인 음식점이었고, 호남답게 굴이며, 삼합이며, 쇠고기 육회며, 전이 싱싱하고도 맛깔스럽게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건식 김제 시장이 오셔서 여유롭고도 예의바르게 우리를 맞이하는 따뜻한 말씀들을 해주셨다. 한 사람의 문학인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또 공적인 사회가 그를 대하는 방법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리였다.

여기서 다른 일행들은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향했고 나만은 따로 떨어져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그러고 보니 김제와 전주는 버스로 4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전주에는 그리고 오수연 선배가 살고 있다. 한국일보 문학상을 탄 작가이고 나의 대학교 같은 과 선배이자 연극회 선배이기도 한 오수연, 그가 작년부터인가 전주에 내려가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의 다른 약속 때문에 빠듯하지만 다만 한 시간이라도 만나서 정담을 나눠 보면 좋을 것 같다.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 전주에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고속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나 밀린 얘기들을 한다. 그런데 일행들과 헤어질 때 박광성 `작가세계`주간이 선물을 하나 들려 보내 주었다. 그것은 잡지 여름호에 단편소설을 하나 써달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지면을 얻기 어려운 세상에서 원고료를 다 받으면서 단편소설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많지 않다.

나는 제법 신이 나서 원고 청탁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 선배 왈, 쓸 수 없다고 한다.

“왜요?”

“쓸 수가 있어야 쓰지.”

“소설을 쓸 수 없다니, 그런 법이 어딨어요? 아무거나 써도 되는 게 소설인데.”

“야, 내가 그게 되냐. 생각 좀 정리하고 되겠다 싶을 때 쓸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참, 답답한 사람이다. 돈도 없을 텐데. 생활은 도대체 어떻게 꾸려 나가려고 이러시나.”

그러고 보니 세상에는 이 오수연 같은 고지식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아무리 궁하고 또 급해도 자기 이상이나 성미에 안 맞는 일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마땅히 존중한다. 아니, 이 글을 쓰는데, 왜 지금 실천문학사 사장으로 있는 김남일 선배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이 `초록이 동색`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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