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금도 흔히들 쓰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안 왔으면 싶은 사람, 돈 벌어야 하니 받기는 받지만 안 받아도 좋겠다 싶은 사람을 진상이라 한다.
어원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 발음이며 그 말을 밖으로 낼 때 표정이 어찌나 생생한지, 이 진상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정말로 진상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금방 나간 손님을 가리켜 진상이라고`뒷다마를 까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내가 그런 험담의 주인공은 결코 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진상이라는 말에는 돈 있는 사람들을 향한 반감 같은 일종의 사회심리가 함축되어 있는 듯하다. 돈 없는 사람은 진상이 되기도 어렵다.
진상이 되려면 가장 멋없이, 유치하고도 졸렬하게 쓸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징그럽게 돈을 쓰는 사람을 가리켜, 그 돈을 대가를 치르면서 벌어야 하는 사람들은, 진상이라고 하는 혐오 섞인 어휘를 구사함으로써, 자신들의 극심한 불쾌감과 피로감을 보상받으려 한다.
이 진상이라는 말에 이어 이번에는 갑질이라는 말이 일대 유행어가 되어 있다. 모 항공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갑질은 드디어 유행어의 왕좌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고,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이 갑질 풍자가 재미있는 코너로 자리를 잡았다.
진상이 돈을 아름답지 못하게 쓰는 사람들을 겨냥하는 말이라면 갑질은 힘, 곧 권력을 추하게 남용하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이 갑질이라는 말 역시 진상이라는 말 못지 않게 발음이 아름답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그 말을 `내뱉는`사람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를 그 말소리의 수준에서부터 그야말로 리얼하게 표현해 준다.
갑질을 당한 사람들은 갑질을 하는 쪽을 향해, 어디서 갑질이야, 하는 불쾌감을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보상받고자 한다.
그래서 이 말은 우리 사회가 지금 지극히 불공정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웅변해 준다.
사회 곳곳에서 소위 갑질을 향한 원망과 증오와 한숨이 들끓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계약서 상의 갑을 관계에서 파생한 듯한 이 말은, 일정한 크기 이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단체를, 그것을 정당하게 쓰지 않는 경우를 겨냥하고 있지만, 이제는 사회 전 부문에 걸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말로 변화해 가는 중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어느 경우에는 을이지만 또 다른 어떤 경우에는 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앞에서 말한 개그코너가 보여주듯이 우리는 지금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갑이 되었다 을이 되고, 또 다시 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이 웃지만은 못할 장면들을 목도하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유명한 언설을 떠올린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국가라는 것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왜 우리는 그 국가라는 것을 가지고도 이렇게 괴로운 상태를 지속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혹시 국가가 중립과 균형을 취함에 부족해서 그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져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힘, 즉 권력은 누구나 절제할 때만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국가도, 단체도, 기업도, 개인도 모두 마찬가지다.
갑질이라는 말을 우리 사회의 일대 유행어 자리에서 밀어내려면, 우리 모두가 우리가 가진 힘을 의식하고 그것을 절제하려는 긴장감 있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