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모여 이제 갓 신인으로 등단한 사람을 축하해 주는 자리에 나갔다.
요즘은 작가들도 신경들이 여간 예민하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책이 안 팔리는 고민이 깊기는 깊은 모양이다.
한 여성 작가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요즘 소설계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요점인즉슨 너도 나도 사랑 타령만 한다는 것이다.
어느 장편소설상 심사를 했는데, 후보작으로 오른 작품들이 몽땅 사랑 얘기들뿐이더라는 것이었다.
사랑이 어때서 그러느냐, 이 시대야말로 사랑이 필요한 괴로운 때가 아니더냐, 소설이란 원래 사랑 얘기가 대부분 아니더냐.
여기저기서 반박들이 제기되는 데도 이 여성작가는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그게 다 가짜라는 것이다. 말이 사랑이지 정말 자기를 바쳐 남을 위해 자기가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사랑을 하는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말했다. 지금 얼마나 춥고들 배고프냐. 괴로운 시대니 저절로 얘기들이 사랑으로 흐르는 게 아니겠느냐. 모모 한 신문의 신춘문예 심사를 하는데, 사회가 어떠니, 제도가 어떠니 하는 작품보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은 뒤의 고통을 그린 작품이 단연 눈에 띄더라.
나는 또 이야기를 이어갔다. 모두들 불행한 느낌 속에서들 산다. 사람이 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다들 그렇지 못하다. 최근에 내가 생각한 게 있다. 오늘 우리 같은 사회에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알약을 하나씩 처방해 주는 것이다.
여기 직장을 잃은 사람이 있다. 병원에서 알약 하나를 처방해 준다. 그러면 직장이 없는 것은 조금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그는 기쁨을 느낀다.
여기 또 정치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민주시민이 계시다 치자.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 병원에 가서 알약 처방 하나면 만사 불만스러울 게 하나도 없다.
“그게 왜 현실적이냐구요? 생각해 보세요. 우리 사회가 지금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현실적 방도가 있습니까?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만 하고 나라는 없는 사람한테 세금을 걷어 있는 사람 세금 깍아준 걸 벌충하려는 마당이죠. 힘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는데 약한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니 차라리 알약 처방이 현실적이라는 거지요. 불가능하지 않아요.”
예의 그 여성작가가 내 말을 받는다. 요즘 연구에 따르면 세로토닌이라는, 행복감에 관계하는 신경전달 물질이 있단다. 이 물질이 분비되면 사람들은 마치 명상을 할 때 같은 평온한 심리상태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잘 되었네요. 병원에서 그 세로토닌을 처방해 주는 거지요. 약효가 떨어질 때쯤 한 알 삼키고 삼키고 하면 굳이 세상 바꿀 필요가 없지요. 우리가 그냥 행복하다는 감정을 가지면 되니까요.
무슨 불행한 상황이 닥쳐도 우리는 세로토닌 처방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라고나 할까. 의사 행복감으로 우리가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진짜 행복을 대체하는 것이다.
사회는 갈등도 투쟁도 없이 평온할 것이다. 전국의 병원에 세로토닌 처방을 합법화 하라. 멋진 신세계가 출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로서는 디스토피아의 완성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늘 서울은 정말 춥다. 그러나 여성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밤은 더 추웠다. 뿐만 아니라 모임이 있던 중국식당에서 나오자 고층아파트를 낀 복합 쇼핑몰에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듣자하니 설계를 잘못해서 건물 중앙부의 공간으로 찬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현재의 우리 사회의 살벌한기류를 암시하고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 추워서 우리는 2차 생각도 못하고 외투깃을 올리고 집으로들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