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전문화를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던 딸아이가 묻는다. `고졸미`가 뭐야? 방송을 보지 않고 있던 나는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되묻는다. 시청하지 않은 핑계도 있지만 실은 나도 처음 듣는 말이니 그 되물음은 나도 모른다는 뜻과 같다. 어감만으로는 뭔가 고결하거나 고상함이 넘치는 단계를 표현하는 말 같다. 그세 딸내미는 스마트폰으로 사전 찾기를 한다.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란다. 완전히 내 생각을 벗어났다.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일까. 그쪽 방면에선 널리 쓰이는 `고졸미`라는 단어를 난생 처음 들어봤다. (어쩜 상식의 문제인데 나만 몰랐을 수도 있다!)고졸미라는 한자를 보는 순간, 헛갈리기만 했다. 오래되었다는 뜻의 `고`(古)는 그렇다 치고, `졸`(拙)의 한자를 보는 순간, 왜 이게 `소박하다`는 뜻이 되어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졸렬하다, 옹졸하다, 고 말할 때 쓰는 졸(拙)자만 떠오를 뿐, 다른 뜻으로 쓰이는 한자어 예는 한 단어도 연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사전 찾기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졸(拙)이란 말은 `옹졸하다, 졸렬하다` 라는 뜻 말고도 `둔하다, 어리석다, 질박하다, 수수하다, 서툴다, 불우하다, 곤궁하다`등의 뜻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었다. 그제야 서투루지만 빠른 것을 뜻하는 `졸속`이란 낱말도 떠올랐다.의문이 해소되고 나니 `고졸미`라는 말을 몰랐다는 부끄러움보다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어렵고 잘 쓰이지 않는 고졸미, 라는 말보다 비록 같은 한자어일지라도 흔히 쓰이는 `소박미`라고 표현해도 무리는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라의 얼굴무늬수막새나 조선의 달항아리, 나아가 김정희의 세한도를 설명하는 가장 보편적인 말 중의 하나가 `고졸미`라는 것을 깨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겠다. 남들 다 아는 말을 뒤늦게 익혔으니,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단어는 아니지만 `고졸미`의 현장 학습을 위해 이른 가을 여행이라도 떠나야겠다./김살로메(소설가)
201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