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문학 번역서 단상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4-11 08:48 게재일 2014-04-11 19면
스크랩버튼
잘 번역된 문학서는 창작품 못지않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다고 그 번역이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른 문화, 다른 환경에서 생산된 문학작품이 우리 정서나 문투에 꼭 맞게 옮겨지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들 문법으로는 허용되는 말이 우리말에 와서는 막히는 부분이 있고, 그들 풍습과 일상이 우리와 미묘하게 달라 텍스트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안나 카레니나`, `롤리타`, `위대한 개츠비` 등은 번역자에 따라 책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담백한 문체에 경제적인 문투를 담은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산문체에다 설명적인 문투로 되어 있다. 또 어떤 책은 의역이 심해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번역서마다 개성이 있고 독자로서 호불호를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그 번역서가 엉터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전문 번역가 그 누구도 크고 작은 오류는 범한다. 문화와 언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인정한다면 같은 작품을 두고 번역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는 것은 나무랄 일은 아니다.

`이방인` 번역을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새로운 번역서를 낸 출판사의 선전문구가 도발적이어서 수상쩍다. “지금까지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나. 기존의 김화영 작품이 엉터리라는 논리에는 전혀 수긍할 수 없다. 부분적인 문장, 상황의 의미 해석, 특히 등장인물의 캐릭터 등이 잘못되었다고 새 번역자는 격앙된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가 지적하는 오류는 그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이건 누구 번역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기존 번역이 낫고, 어떤 상황에서는 새로운 번역자의 의미 해석에 타당성이 있는 정도이다. 싸잡아 기존 번역이 공격당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새로운 번역서를 만나는 건 독자로서 유쾌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해당될 실수를 엉터리라고 매도하는데 동참하면서까지 새 작품을 응원하고 싶지는 않다. 번역서의 호불호를 견주는 건 독자의 몫이다. 출판사가 설레발 칠 일은 아니다.

/김살로메(소설가)

팔면경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