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용 그림인데다 쉬운 글씨마저 거의 없다고 어린이용 그림책은 아니다. 그런 책일수록 어른에게 맞춤한 경우가 많다. 가슴이 먹먹하고, 명치끝이 아려 도리어 어린 아이는 읽지 말았으면 하는 그림책 중의 하나가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내가 라면을 먹을 때`이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하다. 내가 라면 국물을 마시며 예능 프로그램 앞에서 희희낙락할 때 먼 이웃나라 허기진 어린이는 한길에 쓰러져 있다. 웃음소리에 취하는 그 순간에는 아픈 이웃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멀리 이웃나라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떠들고 마시는 동안 누군가는 약을 못 사, 방값을 못 내, 라면 한 봉지를 못 구해 생을 마감한다. 혼자가 아니라 온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꿈을 먹고 살기에도 모자랄 어린이들에게 가슴 아픈 현실을 알리는 건 불편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영원히 몰라야 하는 현실도 없다. 부조리한 세계를 먼저 경험한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조심스레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모두 나와 같지 않다는 사실, 평범한 행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게 점진적으로 말해줄 필요가 있다. 충분히 교감이 된 후라면 이 책은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이웃 이해의 마당이 되어 준다.
`그 맞은편 나라의 산 너머 나라 남자아이는 쓰러져 있다. 바람이 분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화룡점정의 이 짧은 몇 마디가 여운을 남긴다. 그림 속 쓰러진 검은 나무 같은 아이를 가만 들여다본다. 세상은 기쁨과 슬픔이, 행과 불행이 함께 하는 자리인 것을. 바람이 분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