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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눈 맞추기

마음이 아픈 아이들은 잘 웃지 않을뿐더러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아이들이 눈 맞추기를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다. 닿고 싶은 별과 오르고 싶은 나무와 맞대고 싶은 바람에 대해 그 아이들도 누군가와 눈 맞추고 싶었다.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어른들의 시선은 대체로 태생적으로 웃음이 많거나 담백한 명랑함을 지닌 아이들에게 먼저 가닿았다. 마음 깊이 앓아보지 않은 그들 그룹은 실은 누군가 애써 눈 맞춰 주지 않아도 잘 크는 나무가 될 터였다. 잘 웃지 않는 아이들은 `평온한` 그들이 부러웠다. 관심 받지 못한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상처가 되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의 눈빛에 고인 사연은 절절해졌다. 외면에 지친 아이들은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사랑 받지 못했고, 사랑 받지 못하며,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열패감이 그 아이들을 힘들게 했다. 단순한 패배감이 아니라 고착에 가까운 자기포기처럼 보였다.명랑한 아이들이 가벼운 랩 리듬처럼 슬리퍼를 끌며 지날 때 웃지 않는 아이들은 슬리퍼 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 곁을 지났다. 더욱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왼쪽 목덜미의 사마귀마저 가리느라 한껏 움츠린 자세가 되는 것이었다. 상처 받은 아이들은 이 세계야말로 모순적인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고 확신했다. 애초에 아이들에게 공정한 눈 맞추기를 할애하지 않은 어른들의 잘못이었다.그 맘을 열어주는 데는 끊임없는 눈 맞추기 말고 아무 것도 없었다. 여백조차 없는, 마음의 얼음성을 쌓는 아이들과 눈길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눈치만 웃자란 그 아이들에게 가식과 형식은 금물이었다. 그들 마음에도 빨주노초파남보 풍선은 부풀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맘속의 풍선이 맘껏 날 수 있도록 누군가의 눈 맞추기는 계속될 것이다. 눈 맞추기는 상처를 아는 자가 상처 입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일 터였다. 누군가의 상처를 안다고 말하기 전, 가만 다가가 그 아이와 눈을 맞추는 당신이라면 당신도 상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1-19

착한 사람 콤플렉스

한 친구가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칭찬이 자신더러 `착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학창시절 과 야유회를 갈 때 그 친구는 이십인 분의 김밥을 자취방에서 홀로 쌌는가 하면, 오갈 데 없는 친구들을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쌀독은 자주 비었고, 좁은 방엔 친구들이 흘리고 간 머리카락들이 뒹굴곤 했다. 잦은 방문에도 쌀 한 줌 밑반찬 하나 챙겨오는 이 없었고, 머리카락 뭉치 한 번 치워주는 이 없었다. 자신이 좋아서 베푼 호의였지만 사람이기에 갈수록 서운한 맘이 들었다. 어느 날 그런 고민을 다른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 친구의 충고는 이랬다. “걔들, 친구 아니야. 당장 끊어. 니가 베푸는 친절이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면 그건 좋은 게 아니야.” 그 이후로도 친구는 소위 `빈대붙는` 그 부류들을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친구가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가 어찌 친구일 수 있겠는가. 친구사이일수록 예의와 양심에서 멀어져서는 곤란하다.태생적 성정이 착한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착하다. 하지만 누가 자신에게 착하다고 말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착하다는 말 속에는 `너는 착하니 어지간히 만만하게 대해도 괜찮지?`라는 숨은 뜻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란다.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라 남이 원하는 나를 적절하게 연기하며 살아간다. 저마다 페르소나라는 예의의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 천성이 착한 사람은 자신이 그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착한 사람은 진짜 나와 가짜 나의 경계가 덜하다. 하지만 대중에게 착하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그 진짜와 나 사이의 싸움으로 내면의 기를 탕진한다. 착한 사람은 상처받기 쉽고 착하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에너지 낭비에 휘둘린다. 둘 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이다. 하지만 `세상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김살로메(소설가)

2013-11-18

시청률의 노예

한 방송작가를 두고 일부 시청자들이 퇴출 운동을 벌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의 임성한 작가가 50회 분의 연장 방송을 요구한 것이 발단이란다. 시청률이 좋다는 것을 볼모로 작가는 방송사를 상대로 슈퍼 갑 행세를 하고, 방송사는 광고 완판을 보장해주는 작가의 눈치만 본다. 문제는 개막장 드라마를 쓰더라도 시청률만 높으면 그만이라는 방송가의 생각들이다. 시청률에 집착한 작가는 작가정신이나 작품성은 물론 시청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도 생각지 않는다. 관심 끌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에피소드라도 적극 활용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느닷없이 중도하차 시키는가 하면, 개연성 없는 죽음으로 이끌어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만든다. 기이한 장면들과 대사들도 빈번하게 동원한다. 유체 이탈에다 귀신 출몰은 예사이고, 기괴한 시집살이 장면은 애교를 넘어 실소를 부른다. 이해할 수 없는 총체적 현상들이 드라마를 지배한다. 그래도 시청률은 높다. 아니, 그래서 시청률이 높다.대중의 심리는 묘하다. 정돈된 드라마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에 정신줄을 놓게 된다. 작가와 방송사는 그것을 십분 활용하고 시청자는 불편한 내용인 걸 알면서도 단순한 호기심에 같이 놀아난다. 이 모든 게 돈 때문이다. 시청률 높은 작가는 광고 완판을 부르고, 콧대 높아진 작가는 집필부터 캐스팅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작가 앞에서 방송사는 윤리고 양심이고 따질 겨를이 없다.품위를 버린 그들이 쌍으로 돈의 노예가 될 때 시청자가 나서면 되겠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막장 드라마 따위는 안 보면 그만이라고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라는 변명만큼 시청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말도 없다. 비상식적이고 말 안 되는 일은 도처에서 일어난다. 욕하고 분노하면서도 거기에 동조하는 게 일반대중의 역할이다. 시청률을 무기로 슈퍼갑이 된 작가는 대중을 우롱하고, 방송사는 직무유기로써 그 책임을 회피한다. 대중은 욕하면서 그 시청률을 높여준다. 이것이 삶의 속성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1-15

쓰는 순간이 비법이다

이기호 작가가 말했다. 잘 쓰는 자가 아니라 오래 쓰는 자가 결국엔 작가가 된다고. 오라는 데 많은 재주꾼들은 절실함이 사라져 쓰는 데 전력투구하지 않는다. 반면, 글재주가 덜한 이들은 불러주는 곳이 많지 않아 쓰는 것 말고는 별 달리 할 게 없다. 절치부심 그저 쓰고 또 쓸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작가가 되어 있더란다. 우직하게 쓰는 자 앞에 장사 없다. 제대로 쓴다는 전제가 붙긴 하겠지만, 쓰다 보니 빛이 보이더라는 작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제대로 쓴다는 건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묘사가 살아있는 글은 잘 된 글이다. 그걸 문학적 글쓰기에서는 `말하지 않고 보여주기` 기법이라고 한다. 그림으로 글쓰기를 하는 식이다. `글쓰기 만보`에서의 안정효 작가 식 보여주기의 예를 보자. “`더러운 남자`는 어느 정도 눈에 보인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목요일쯤이면 항상 몸에서 걸레 썩는 냄새가 나는 남자`라고 묘사하면, 일요일에 대충 목욕을 한 다음 전혀 몸을 돌보지 않는 남자를 연상하고, 그런 남자가 기거하는 방이나 집이 얼마나 지저분할지도 눈에 선하다.”설명이 아니라 묘사의 달인이 될 수 있다면 글쓰기 고지의 반을 넘은 거나 마찬가지다. 풍경과 내면이 어우러진 한 폭 그림을 나만의 글로 그릴 수 있다면 반은 성취한 셈이다. 문장 수련과 더불어 묘사하기의 습관은 글을 쓰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 중의 하나이다. 올곧은 작가정신과 더불어 이런 기본기를 갖추기만 한다면 글쓴이로서는 날개를 단 거나 마찬가지다.글쓰기에 비결은 따로 없다. 잘 쓰는 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것도, 옹골찬 자기 확신도 도움이 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책상 앞에 앉는 일이다. 자판 위에다 손을 얹고 무조건 타이핑해야 된다. 마음이 아니라 몸, 그것도 손가락을 움직여 쓰는 순간만이 글쓰기의 진정한 비결을 말해준다. 자판에 누른 글자가 늘어날수록 글쓰기 비법을 터득하는 시간은 짧아진다. 답을 알면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니 나부터 안타깝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1-14

갈고 닦아야 이르는 길

타고난 성정은 어찌할 수 없어도 인품은 얼마든지 높아질 수 있다. 훈련이나 노력 여부에 따라 자신과 세상이 원하는 인격에 가 닿을 수 있다. 다만 그 실천이 너무 어렵다는 게 문제다. 그 어려움 때문에 품격 높은 사람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링컨도 처음부터 우리가 아는 링컨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그는 비난쟁이였다. 남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을 좋아했다. 편지나 시로 남의 약점을 적어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기도 했으며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에는 신문투고로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했다. 허세 부리는 상대 정치인을 망신 주는 원고를 썼다가 결투장까지 갈 뻔한 사건도 있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링컨은 비호감 인물이었다.그런 그도 끊임없는 자기 훈련과 몇 번의 깨달음 끝에 인품자로 거듭 났다. 남북전쟁 때 강물이 불어난 틈을 타 남부군을 일망타진할 기회가 있었다. 특사를 보내 전투를 개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부하장군은 응하지 않았다. 격노한 링컨은 부하에게 엄중한 질책성 편지를 썼다. 부하장군의 비효율적 부대 통솔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링컨은 그 편지를 부치지 않았다. 그가 죽은 뒤 그의 비밀 서류함에서 편지는 발견되었다.링컨이 얻은 깨침은 `비판을 받고 싶지 않으면 다른 사람 또한 비판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그 뒤 누군가가 상대를 힐난할 때면 링컨은 그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역지사지하면 나 역시 그 비난의 대상일 뿐이니까. 비난하기 좋아했던 링컨은 경험을 통해 그 비난의 부질없음을 체화한 것이다. 자신을 변화시킨 그 덕에 그는 대통령이 되고 노예해방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완전한 인격체가 아닌 우리는 제 기준에 따라 남을 비방하거나 비판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남에게는 약점이 될 말을 뱉고 나면 하염없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일찍이 링컨이 경험에서 우러난 인격 도야를 했듯이 매사에 신중한 언행을 곁에 둘 일이다. 갈고 닦아도 어려운 게 인품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 있는 그 길을./김살로메(소설가)

2013-11-13

수능의 부작용과 후유증

시험점수 하나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고, 한 인간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이 원시적이고 해괴한 시험제도가 `수능광풍`이다. 수능 전에는 `행운 부적 열풍`이 불고, 끝나면 상인들이 학생들을 유혹한다. 어머니들은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가 부적을 산다. 점수 한 점 더 얻겠다고 거금을 날린다. 수능이 끝나면 `수능선물`로 승용차를 사주는 일도 있다. `수능성형`도 성행한다. 수능이 끝나면 소비자보호원이 바빠진다. 교활한 상인에 의한 수많은 수험생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수능이라는 괴물이 숱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수능을 앞두고 점집들은 부적값을 평소보다 10배 이상 올렸다고 한다. “목욕재계하고 치정을 드린 후에 쓴 부적”이라 선전하며 장당 100만원을 부르는 곳도 있다. 부적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블로그도 있고, `만사형통 부적`이라는 책을 만들어 비싸게 파는 자들도 있다. 백운산 역술인협회 중앙회장은 “부적의 가장 큰 효과는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인데, 돈을 많이 준다고 부적의 효과가 좋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이라 그 심리를 이용하는 상인들의 대목이다.수능이 끝나면 고생한 수험생과 학부모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할인행사를 여는 업체가 많다. 코레일은 30~50% 할인행사를 하고, 신발업계도 20% 할인해서 팔고, 어떤 업체는 장학금을 주는 이벤트까지 한다. 록음악 경연대회를 열어 1등을 한 팀에는 20만원 상당의 악기 교환권을 주는 업체도 있다. 수험생에게 주는 혜택이 이렇게 푸짐하니 수험표를 사고 파는 해괴한 현상까지 벌어진다. 한 온라인 중고매매 사이트에는 수능이 시작되기도 전에 수험표 판매 게시물이 올랐다. 5만원부터 경매를 하겠다는 것도 있고, 15만원에 판다는 게시물도 있었다. 수능이 필요치 않는 일부 수시합격자들은 수험표를 얻기 위해 시험접수만 하고, 시험을 보지 않는 해괴망측한 일까지 벌인다.수능철에는 성형외과의 선전물이 폭주한다.“자녀에게 빛나는 미래를 선물하라”는 식이다. 이것이 `수능성형`인데, 눈+코+V라인`패키지 상품`을 내놓기도 하고, 수험생+엄마 패키지도 있다. 또 여러명이 모여서 오면 단체할인도 해준다. 얼굴을 뜯어고쳐서 더 예쁘지는 경우도 있지만 버려놓는 경우도 많다. 인기 연예인의 얼굴과 판박이로 닮아 개성을 죽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다들 예뻐졌다는 착각에 빠진다.대구시 소비생활센터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길거리 화장품 판매, 어학교재 등 텔레마케팅, 대학교 방문판매, 전자상거래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순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수능 끝난 해방감이 상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013-11-13

온몸으로 그들 편에

영웅이 겸손하기는 어렵다. 영웅이란 말 속에는 약간은 거만해도 용서되는 것 같은 어감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영웅일수록 겸손하고 낮아지는 법이다. 가령 핫이슈 인물 중의 하나인 `곽은경`같은 사람이 그런 깨침을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어 줄 것이다. 그녀는 국제 NGO 활동가이다. 25년간이나 열악하고 소외된 세계 현장에서 일해 왔다. 아비규환이 넘치는 곳,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나 인도의 달리트(불가촉천민) 지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 격리 지구 등이 그가 몸담아온 일터였다. 열악하고 형편없는 그런 곳에서 그녀는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인권 유린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해왔다. 운명처럼 묵묵히 국제연대활동가의 길을 걸어왔다.그녀의 치열한 현장 기록인 `누가 그들의 편에 설 것인가`(곽은경·백창화, 남해의봄날)를 펼치면 그녀 삶의 훌륭한 이력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그녀의 겸양 때문에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다. 세계 비극의 절정지를 향해 있으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일이 영웅담으로 비칠까 저어한다. 그녀를 이끄는 정서는 자긍이나 의협심 같은 것보다 부끄러움이나 인간적인 절망감에 더 가깝다. 제 상황 앞에서 온몸으로 절규하는 그녀에게서는 물러섬 없는 진정성이 배어 난다. 약자를 위한 그녀의 몸과 입은 소통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부지런히 진격에 진격을 한다.인권과 평화를 말하는 그녀 이야기가 남다른 감동을 주는 건 우정으로 빛나는 내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녀 삶을 전적으로 응원하는 친구이자 작가 한 명이 책 속에 등장하는데 바로 백창화 작가이다. 젊은 날 같은 꿈을 꿨지만 한 명은 해외에, 한 명은 한국에 남아 각자의 행보를 만들어 갔다. 각각 특별한 삶에 동조하고 소박한 삶을 그리워하는 그들의 우정을 보면서 산다는 것의 신성함에 대해 자꾸만 되새김질하게 된다. 제 가치관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실천하는 것, 그 겸양이 세상을 움직이는 올곧은 힘이란 걸 알게 되는 것이었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1-12

박은선 사태

너무 어이없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는 `박은선`이란 유명 축구 선수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여자 축구 선수라면 여민지나 지소연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따라서 박은선이란 이름이 각종 매체에 오르내릴 때 박 선수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 줄 알 정도였다. 박은선은 국내 여자 실업 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선수이다. 개인적, 환경적인 문제로 긴 방황의 터널을 건너기도 했다. 무려 8년간 선수다운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이유라 했지만 그 방황 속에는 여자로서 당해야했던 수치심도 있었을 것이다. 180cm의 키에다 70kg이 넘는 몸무게 등 웬만한 장정 저리가라 할 정도의 외적 조건은 관계자들로 하여금 그녀의 성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구실이 되었다. 하지만 일찍이 국제대회 참가 때 확실하고도 객관적인 검증을 거친 사안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아픔을 극복하고 뒤늦게 축구에 올인한 그녀의 성적이 올해 너무 빼어난 게 문제가 되었다. 경쟁 팀 감독들은 박은선의 성별 검사를 요구하다 못해 그들 뜻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시즌을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여자축구연맹에 공문까지 발송했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타국에서가 아니라 국내 리그의 경쟁팀 감독들이 똘똘 뭉쳐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나부터 살고보자는 이기심이 이런 한심한 발상을 낳았다. 뒤늦게 변명과 사과를 했지만, 선수가 받을 마음의 상처는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자국 선수를 보호하자는 거창한 애국 차원이 아니라 기본 인권 문제로만 돌아가도 분노가 인다. 분명 그녀는 그 문제로 젊은 나이임에도 잦은 상처를 받아왔다. 남들과 다른 외적 조건 때문에 수많은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성별 검사라는 수모와 수치를 견뎌내면서 의지 하나로 성과를 냈다. 남과 다른 것은 이해의 대상이지 오해의 대상은 아니다. 이해해야할 사람을 가까운 사람들이 더 오해하는 현실이 어디 이런 경우이기만 할까./김살로메(소설가)

2013-11-11

소통의 방식

의사소통에 관한 우스개 테스트지를 보고 웃은 적이 있다. 예를 든 항목마다 소통 능력별 점수를 매겨 놓았는데 평가기준점이 몹시 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고민 많은 상대가 당신에게 상담 요청을 한다. 이때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의사소통 능력은 0점, 삼십 분 이상 들어주면 5점, 비슷한 당신의 경험담으로 연대감을 형성하면 50점, 딴 생각하다가 `알았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내가 뭐해주면 될까?` 이렇게 말하면 마이너스 100점, 상대 이야기를 자장가로 착각해서 잠이 들면 마이너스 500점이란다. 세련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꼬집는 예시이다. 제대로 된 의사소통에 이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주는 예시 같다. 인간은 예민한 동물이다. 상대가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닌지 상대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도 곧바로 알아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십분의 일초의 판단만으로도 우리는 그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한 마디 말 이상의 몸짓이 우리 자신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부지불식간의 몸짓 언어는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어린이와 부모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독 의사소통이 부자연스런 한 경우를 볼 때가 있다. 찌개를 끓이면서 아버지가 뭔가를 묻고, 곁에서 돕는 아들이 대답하는데 부자는 서로의 눈을 피한다. 눈 맞추지 않고 나누는 대화는 겉돌 수밖에 없다. 찌개가 넘칠까 걱정 되고, 파에 묻은 흙을 털어내야 한다 해도 서로의 눈을 마주보지 못할 정도로 틈이 없는 건 아니다. 본인들도 의식하지 못한, 습관처럼 굳어진 소통 방식으로 보인다. 다만 그것이 불편하다는 것을 당사자나 시청자나 느낌으로 알기는 한다.몸과 입으로 다 말하는 인간의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가 없는 그 둘을 인식하는 노력만으로도 소통에서 오는 불편함을 덜어낼 수 있다. 소통의 달인이 될 필요는 없겠지만 상대의 작은 몸짓, 하찮은 말에도 귀 기울이다 보면 신뢰할 수 있는 소통의 길은 열릴 것이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1-08

마음이 없으면

복도 끝 강좌실 앞에 이르렀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진다. 비 그친 뒤 더욱 선명해진 단풍잎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책 읽어 주는 임 선생님의 목소리이다. 조심스레 교실 뒷문으로 들어가 그 청징한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기분 좋은 숙연함이 밀려온다. 시각장애인들의 문예 활동 프로그램에서 만난 임 선생님은 그야말로 한결 같은 분이다. 약속된 시간보다 언제나 빨리 등장해 미리 온 회원들을 위해 예습 삼아 또박또박 교재를 읽어 주거나 책을 낭독해주신다. 그 모습을 가만 훔쳐보고 있노라면 공터 같았던 마음에 잔물결이 일곤 하는 것이었다.한시라도 웃지 않으면 입술에 가시가 돋는다는 마인드로 언제나 생글생글한 낯빛이다. 마주한 사람 누구든지 그 과장 없는 미소에 감염되고 만다. 각 강좌실을 오르내리는 장애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부터 화기애애한 수업 분위기를 이끄는 것까지 선생님의 활동은 차분하면서도 구체적이다. 봉사하기엔 체력적 한계가 올 수 있는 연배인데도 끄떡없이 모든 일에 적극적이다.경청하는 회원들도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점자를 더듬어 선생님이 읽어 주는 대목과 보조를 맞추는 이가 있는가 하면, 큼직한 활자를 삼킬 듯이 얼굴 가까이 대고 읽어 내리는 이도 있고, 한 구절이라도 더 듣겠다는 듯 반듯한 자세로 선생님을 향해 귀를 한껏 여는 분들도 있다. 글을 읽고 쓰고 싶다는 열의가 그들을 그렇게 집중케 했다. 선량한 그들의 집념을 위해 선생님은 당신 가진 것 최선의 마음을 그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아침 뉴스로 유럽의 고위급 신부들의 비양심적이고 허영심 많은 처세가 구설수에 올랐다는 것을 접한 뒤라 더욱 선생님의 모습이 고귀하게 보였다.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남을 위해 애쓴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무엇이든 마음에 없으면 진정성이 없고 진정성이 없으면 좋은 일을 하고도 손가락질 받는다. 임 선생님의 경우를 보면서 마음에서 우러난 모든 선한 행동들 덕에 사람들 낯빛이 환할 수 있고, 세상이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1-07

좁쌀 속 우주

창 너머로 보이는 공원에는 국화가 한창이다. 노랗거나 붉은 꽃무리는 드넓은 정원을 꽃이 불처럼 뒤덮었다. 가을꽃에 겨운 사람들의 움직임이 원경으로 보인다. 한껏 국화향에 취해도 좋을 그들의 품새가 어쩐지 느긋함과는 거리가 멀다. 성급한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처럼 일군의 무리들이 이리저리 휩쓸린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아마 `꽃보다 인증샷`에 몰두하느라 그럴 것이다. 꽃놀이가 목적이 아니라 꽃을 상대로 인증샷이 필요한 것이 그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현대인들은 이제 꽃 앞에서도 느긋할 여유가 없다. 먼 길 돌아온 `내 누님 같은 꽃` 옆에서도 맘껏 제 흥을 누리지 못하는, 빡빡하고 다급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느긋함과 평정심은 점점 우리 일상과 멀어져 가고 있다. 대신 보여주기 위한 짬, 위안이라는 말을 위로하기 위한 여유만이 우리 시간을 지배한다.자신을 들볶지 않고, 대상을 관조하는 삶이 필요하건만 쉽지가 않다. 닦달하지 않고 담백하게 제 일상을 꾸리던 황상이 떠오른다. 정약용의 제자였던 황상은 말년에 `일속산방`을 마련했다. `좁쌀 한 톨 같은 작은 집`이란 뜻의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선비의 삶을 꾸렸다. 세속이 욕망을 채우며 살라고 채근할 때 진정한 선비였던 그는 담백한 유유자적을 실천했다. 산수가 아름답다는 그의 기준은 큰 강과 산이 조화로운 곳이 아니라 좁은 시냇물과 자그마한 동산이 어우러진 곳을 말한다. 절벽이 기우뚱하고 바위 몇 점 있는데다, 눈을 환하게 열 수 있는 골짜기라면 그에겐 좋은 땅이었다. 그곳에 남향집을 지어 책꽂이 두 개에다 족할 만한 책을 꽂는 일 그것만으로도 그에겐 존재이유가 되었다.소박하고 느긋하게 산 황상의 삶에서 좁쌀 속 우주론을 발견한다. 급할 것도 아등바등할 것도 없는 세상이건만, 현실이 그것을 요구한다는 핑계로 급하게 세파에 휩쓸린다. 황상은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좁쌀 속에 우주가 있나니, 작고 소박한 것에서 여유를 찾아라. 느림과 한가로움의 미학을 마음결부터 심으라고./김살로메(소설가)

2013-11-06

다시 백석

통영 가는 길이 설레는 건 백석 시인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전에 통영을 찾았을 때는 수많은 여행 목적 중에 백석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통영 출신이 아닌 백석에게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할 만큼 다른 예술인들의 흔적과 볼거리로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통영 천희(처녀)`란`을 사랑한 시인이 통영과 관계된 시편을 여럿 남겼다는 사연을 안 이상 여행의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요즘의 아이돌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외모를 지닌 `모던 보이` 백석은 시도 잘 썼지만 로맨스 또한 다양했다. 그 중 통영에 관한 시편들에 나타난 시인의 호흡법은 애절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로서는 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백석이 `란(蘭)`을 만난 건 친구 결혼식 피로연에서였다. 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절, 통영 출신 동료 기자 신현중에게서 그녀를 소개받았다. 란을 만나러 세 번이나 통영을 방문했지만 끝내 불발되었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간 마지막 방문에서는 여자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몇 개월 뒤 란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 상대는 다름아닌 신현중이었다. 시인의 일방적 사랑의 대가치곤 잔인한 결말이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의 사랑 덕에 독자는 그의 시를 원 없이 누리게 되었다.명정골 정당샘을 향하는 길목에 충렬사 계단이 있다. 그 돌계단에 앉아 백석은 날이 저물도록 사랑하는 이를 기다렸다. 혹시나 우물가에 빨래하러 오는 천희들 가운데 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불발된 사랑의 통점으로 시인은 `통영`이란 제목의 시 세 편과 `남행시초` 연작 등을 남겼다. 못 이룬 사연으로 시인은 시를 남겼고, 훗날의 독자는 시간을 더듬어 제 맘에 단풍길을 낸다. `흰 바람벽` 앞의 시인이 되어 한없이 애잔해지는 것이다. `…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1-05

웃는 연습

멀리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중고서점에 들렀다. 말이 중고서점이지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을 만큼 품질 좋은 책들로 넘쳐났다. 드넓은 서가를 오가며 눈요기하는 재미는 밖에 나가 단풍 구경하는 것 못지않았다. 눈에 띄는 대로 우선 책 두 권을 샀다. 한 권은 임상 진료에 관한 에세이인데 평소 구하고 싶었던 분야였다. 의사, 간호사, 환자 및 그들의 보호자들이 겪은 임상 경험을 풀어놓았는데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울림이 있었다. 삶의 뿌리로 내려가고 내려가면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환자가 되었든 의사가 되었든 아니면 그 누가 되었든 그들 이야기의 본질은 삶의 진정성에 닿고자 하는 자기 고백이자 노력에 관한 것이었다. 고통과 공감에 관한 그들의 에세이에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고 있고 그 방식마다 고유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 나타나 있었다.다음 한 권은 세상을 아름다운 잣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한 남자의 일상에 관한 거였다. 일 하는 틈틈이 만나는 사람과 풍경에 관한 보고서인데 기대치 않았던 힐링을 선물로 주는 그런 책이었다. 밑줄을 그어가며 읽을 만큼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이 나를 압도했다. 그러고 보니 두 권 다 삶의 뿌리에 가닿으려는 사람들의 진정성 어린 시선에 관한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전자가 고통과 번민을 풀어놓을 때, 후자는 환희와 미소를 노래한 것이 다르다.그 둘 다 삶의 실체들이다. 말하자면 고통을 발판으로 환희를 노래하는 마음의 자세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를 볼 때면 한없이 웃어 보이려 합니다. 이 또한 역시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지요. 낯빛은 환하고, 눈매가 서글서글하며, 입 꼬리가 솟는 것은 항시 온화한 마음을 찾으려 노력하고 또 노력한 흔적입니다.` 이를테면 `통영은 깊다`에서 삶의 근간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는 저렇다. 고통이든 환희든 `노력하고 노력한 흔적`으로서 웃음을 연습한다는 그 시선에 자꾸 마음결이 가게 된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1-04

베푸는 심리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빚지는 걸 몹시 싫어한다. 여기서 빚이란 물질적, 정서적 둘 다를 말한다. 빚질 일도 있고, 베풀 일도 많고 그런 게 인지상정일 터인데 혹시라도 민폐를 끼치거나 신세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벌써 마음끝자락에서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성격 좋게 빈대 붙거나 남의 호의를 호방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익숙지 못하다. 굳이 따진다면 호의를 베푸는 쪽이 훨씬 맘이 편하다. 남이 내게 호의를 베풀면 그에 걸맞는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떻게 보면 갑갑한 부류이다. 이런 사고 형성의 배경엔 나쁘거나 아픈 기억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를 테면 청춘 시절,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주변인은 용돈이 넉넉한 친구들이었다. 학업과 관계되는 곳 말고 `사교적 목적`으로 용돈을 깜냥껏 부릴 수 있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부모의 경제력 덕에 궁핍을 모른 채 마냥 해맑을 수 있는 그들의 느긋한 천진성을 질투했다. 가난한 우리를 대신해 스스럼없이 커피값이나 술값을 낼 수 있는 그 무덤덤한 여유가 신기하게만 보였다. 저토록 찬란한 제스처라니! 꿈에서라도 내게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자문하곤 했다.시간은 흘렀다. 돈 없어 고개 처졌던 청춘들도 결혼을 하고 저마다의 일가를 이루었다. 적어도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맘만 먹으면 누구에게나 소박한 호의를 베풀 수 있게도 되었다. 누가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베풀고, 민폐를 끼치기 전에 먼저 도움 줄 수 있는 것, 그 정서적 쾌감을 만끽할 수도 있게 되었다.그랬다. 호의를 베푸는 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그것은 갑의 입장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호의를 받는 쪽이면 빚진 마음을 안게 돼 불편하지만, 호의를 베푸는 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맘의 여유를 느낀다. 수전노가 아니라면 베푸는 자의 쾌감은 그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다. 빚지는 자, 을이고, 베푸는 자, 갑이라는 심리적 경험을 거쳤기에, 그 때문에 자신의 지갑을 열겠다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지도 모르겠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1-01

만날 사람 다 만나면

박경리 선생 일대기를 읽는 밤, 뜬 눈으로 지샜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토지`는 거저 나온 게 아니었다. 작가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안녕과 평화를 친구 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위대한 작가는 될 수 없다는 걸 알겠다. 좋은 사람이 되어 무난한 한살이를 사는 것보다 행복한 것도 없다. 하지만 박경리 선생은 고뇌 가득 찬 작가로 살도록 운명 지어진 것처럼 보인다. 우뚝 선 그날까지 선생에겐 편할 날보다 험한 날이 더 많았다. 부성(父性)으로부터 내침을 당한 어린시절, 너무 짧은 결혼 생활과 남편의 사망, 어린아들의 죽음, 병마와의 싸움, 사위의 감옥생활 등등 한 여자로서 겪어야 할 온갖 고통을 선생은 친구처럼 곁에 두었다.일상인으로선 감당하기 힘겨운 시간들이었겠지만 그 고통의 총화 덕에 선생은 작가로 거듭났다. 잔인한 말이지만 그 덕에 독자들은 평생 충만하게 된 셈이다. 살아생전 선생이 즐겨하지 않은 것 세 가지는 여행, 쇼핑, 기계사용이었다. 글 쓰는 사람, 더구나 많은 노동시간을 필요로 하는 소설가는 글 이외의 것을 생각해서는 그 뜻을 이루기 어렵다. 원고지 십만매 채우기는 여행과 쇼핑에서 멀수록 가깝기 때문이다. 선생에게 유일하게 허용되는 문명의 이기는 몽블랑 만년필과 선풍기 두 대였단다. 힘들 때마다 사마천을 생각하며 썼다는 선생의 올곧은 작가정신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끌어안고 가는 불편함이 아니라 버릴 수 있는 홀가분함을 찬미할 수 있는 노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대부분 회한으로 어룽진 삶을 회고할 때 선생은 편안히 놓고 가는 삶을 노래했다. 구비 친 한 생을 꽃 피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다. 한 땀 한 땀 수놓았던 선생 행보에 아우라가 느껴지는 한 말씀, `오라는 데 다 가고 만날 사람 다 만나면 글은 언제 쓰노?` 굳건한 선생의 기상 앞에서 숙연한 아침을 맞는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0-31

작은 몸짓 큰 관심

모든 사연은 작은 우연에서 비롯된다. 거창한 성과나 큰 깨달음의 시초도 밀알 같은 소박함에서 출발한다. 삶 이래로 숱한 우연이 우리 곁을 스쳐갔다. 그것들 중 제 삶의 물줄기를 바꿀만한 순간의 경험과 환경의 영속성이 모여 그 사람의 운명을 만든다. 지나치게 소심하고 주변머리 없는 아이가 있었다. 존재감 없는 그 아이는 수업 시간에 단 한 번도 자발적으로 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선생님 눈에 띄고도 싶고 친구들에게 인정도 받고 싶었지만 몸과 마음은 따로 놀았다. 마음 같지 않은 아이의 몸 신호는 언제나 `나도 저 아이들처럼 나를 말하고 싶어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어느 한 해 다행히 아이는 어질고 인내심 많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눈에 띄게 자신감 없는 아이를 위해 부러 발표를 시키고, 틈만 나면 대화를 유도했다. 하지만 아이는 기질적, 환경적 제 한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성정이 쉽게 바뀔 리 없다는 걸 깨친 선생님은 방법을 달리했다. 의식적으로 뭔가 하도록 이끌기보다 그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우연히 만들기 시간에 아이의 손재주를 발견한 선생님은 지나치듯이 한 마디 칭찬을 했다. 손으로 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흥미를 느끼고 몰입하는 그 아이를 위해 무심함을 가장한 칭찬 세례를 이어나갔다. 우물쭈물하고, 민숭민숭하기만 한 아이에게 맞춤한 접근 방식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제게 손재주 하나는 있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아이는 훗날 전통옷 만드는 일로 일가를 이루었다.제 소심함에 겨워 떨었던 몸짓을 섬세한 눈으로 지켜봤던 선생님을 추억하는 그 아이가 말한다. 무심한 듯한 선생님의 적극적인 낯빛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여전히 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데는 재주가 없지만 여문 손끝으로 모든 걸 보여주는 그이가 강조한다. 모든 시작은 우연하고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고. 제 작은 몸짓을 눈여겨 봐주는 세상 모든 이가 스승이라고./김살로메(소설가)

2013-10-30

무좀 단상

겨울이 코앞인데 무좀이 도졌다. 엄지와 검지발가락 사이가 찢어져 따끔거린다. 오래 전부터 각질이 벗겨지는 정도의 무좀증세가 있긴 했지만 온 여름내 멀쩡하던 발이었다. 맨발에다 샌들을 신던 여름에는 통풍이 잘 되어 무좀균이 숨어 있었는데 간절기를 맞아 양말을 신는데다 신발마저 부츠로 바뀌니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제 역할을 잊고 있던 무좀균이 저 좋다고 활개를 친 것이다. 다행히 약을 발랐더니 금세 가라앉는다. 며칠 무좀약을 바르면서 이런저런 단상이 스친다. 무좀균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친구 삼아도 좋을 위안이라고. 우리네 소소한 일상 자체가 무좀 앓는 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시련은 무좀 앓는 발에 비유할 수 없겠지만 웃고, 울고, 떠들고, 마시는 가운데 생겨난, 감당할 만한 모든 고충을 무좀균에 비유하고 싶다.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비의(秘義)는 가지고 산다. 아픔이나 상처의 옷을 입은 그것은 평소에는 비활성화 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있으면 표면으로 드러난다. 통풍에 문제가 없을 땐 잠잠하던 무좀균은 바람 쐬어 주지 않고 꼭꼭 싸맬 때 스멀스멀 피어나 발가락 사이를 갉는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뭔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에 무좀균이 생긴다. 그때 위로라는 약을 발라 상처를 달래는데 금세 낫는다. 그렇다고 무좀균이 완전히 없어진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 숨어들었을 뿐인 이때의 무좀균은 발이 발로 단련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경고 장치로 기능하니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다.그 어떤 약점에도 노출되지 않는 삶이란 없다. 산다는 건 환희라는 날개옷을 걸칠 때보다 고통이라는 갑옷을 두를 때가 더 많다. 수고로운 갑옷의 시간을 무좀 앓는 발이라 쳐두자. 그 성가신 쓰라림이 가슴 한켠을 찢어대기도 하겠지만 그건 모두 견뎌낼 만한 것들이다. 따라서 박멸할 필요도 없다. 혹시라도 완전히 없애버린 평범한 상처 그 자리에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나 번민이 들어찬다면 그보다 낭패스런 일도 없을 것이니./김살로메(소설가)

2013-10-29

무급 노동

노동 시장이야말로 수요 공급의 법칙에 영향을 받는다. 일할 뜻이 있는 자는 많은데 일할 곳은 한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넘치니 노동 가치는 당연히 떨어진다. 정책적으로 아무리 일자리 창출을 활성화한다 해도 노동 시장 구조 상 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일자리 프로그램 과정을 마쳤다고 바로 원하는 곳에서 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절실한 그들이 궁여지책으로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일단`봉사자`로 관련 일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유급 노동을 원하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않으니 봉사자 또는 재능 기부자 신분으로 일을 시작하며 후일을 도모한다. 봉사하다 보면 원하는 일자리가 주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그들을 천사표 노동현장으로 내몬다. 운이 좋아 일거리를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일자리 얻기를 위한, 어찌 보면 불순한 동기의 봉사였기 때문에 그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도 깊다.봉사라는 말에는 `타자를 향한 자발적 희생 의지`가 포함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생계유지나 현실적 필요에 의해 경제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봉사가 그 일차적 목적이 될 수가 없다. 생업이 우선 목표이다. 그들에겐 남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을 미덕보다 돌봐야 할 가족을 위해 자신의 노동 가치를 보상해줄 사회가 더 절실하다. 어느 누구도 순수한 봉사를 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나무랄 자격이 없다.애석하게도 노동 공급이 넘치는 현실이다 보니 이름도 고상한 다양한 형태의 무급 노동이 넘쳐난다. 스펙과 경험을 쌓는다는 명분하의 일반 회사 무급 인턴사원에서부터 시민단체나 공익기관에서 일하는 무급 봉사자들, 나아가 개인적 차원의 관련 직종 무급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지난한 근로가 사용자들에 의해 악용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대체될 수 있는 또 다른 노동인력이 기다리고 있는 한 허울 좋은 노동 울력은 계속될 것이다. 절절하게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을 직간접적인 무급 노동의 세계로 불러들이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0-28

환기된 상처, 트라우마

예를 들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폭력에 노출된 어린 제제를 격하게 공감해 눈물을 흘리거나 자신만의 장미꽃을 위해 밤낮으로 노심초사했던 `어린왕자`의 심적 번민이 제 것인양 안타까워하는 것 등은 일종의 트라우마다. 경험의 유사도가 높은 장면에서 독자의 기억은 쉽게 파문을 일으킨다. 터진 포대에서 밀가루가 흩어지듯이 아픔의 분자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개별적으로 축적된, 이러한 통점의 체험들은 유사 경험을 통해 기어이 심적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프로이트의 상담 내방자 중에 엠마라는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광장 공포증 환자였다. 엠마는 특히 옷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를 열두 살 때 옷가게에 들렀을 때 점원들이 자신의 옷을 보고 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게를 도망쳐 나온 기억이 있는데 왜 그랬는지는 스스로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때 프로이트는 엠마의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또 다른 사건 하나를 알아낸다. 여덟 살 때 어떤 가게에 들어갔다가 주인에게 추행을 당한 경험이다. 웃으며 옷 위로 추행하던 주인의 기억을 엠마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여덟 살은 성 정체성에 대해서 신념을 갖기엔 어린 나이였기에 그녀에게 그 사건은 애매한 그 무엇으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잠재된 그 은폐 기억은 유사 사건을 만나 엠마의 의식을 괴롭혔던 것이다. 엠마에게 성추행 사건과 옷가게 사건은 유사점을 지닌다. 둘 다 옷과 관계있는데다 둘 다 사람들이 웃었다. 유사한 상황이 생기면 엠마는 최초의 나쁜 기억인 여덟 살 때 일이 저절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단순한 나쁜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는다. 최초 경험이 강렬하거나 나쁜 경험이 누적되면 잠재된 마음병이 된다. 그것은 유사 경험을 만나 뭉근한 아픔이 되어 한 영혼을 괴롭힌다. 그것이 트라우마다. 트라우마 없는 삶은 없다. 슬프거나 아픈 그것이 단단한 환희로 거듭날지 지속되는 부정의 정서로 남을지는 개별자가 처한 상황이나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0-25

알바트로스적 전환

과학사에 코페르니쿠스적 사고 전환이 있었다면 내 개인사엔 `알바트로스적 전환`이 있었다. 이 말은 내가 지어냈다. 어리바리한 나에 비해 독서로 무장한 후배는 세상을 향한 시니컬한 시선을 버리지 않았다. 그미는 랭보와 보들레르와 말라르메 등을 좋아했는데 치기로서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 그런 시인들의 성향을 좇았다. 보들레르가 그랬던 것처럼 시니컬한 눈으로 사물을 대했으며 세속적인 부르주아 근성을 혐오했다. 그미가 가장 못 견뎌 한 것은 편안한 정신이었다. 그미는 고매하고 피로한 지적 노동자를 자처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내게 세상은 무조건 아름답고, 선하고, 밝고, 맑고, 소박한 것이어야 온당했다. 추하고, 악하고, 어둡고, 흐리고, 화려한 것은 경계해야 할 대상들이었다. 이유 불문한 당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후배의 사고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 사유의 빈곤과 약점을 포착하고 세뇌하는 그미의 눈썰미가 불편하면서도 매혹적으로 보였다. 대상을 선명하고 명쾌하게 보는 그미의 통찰력이 부러웠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온 우주를 꿰뚫는 듯한 그 모습을 나는 높이 샀고 내 사유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너무 남다르고 앞서가는 존재는 외롭고 고독하기 마련이다. 보들레르의 시`알바트로스`를 원어로 읽던 그미는 그야말로 고독한 큰새였다. 거대 알바트로스도 선원에게 잡힌 신세면 고역을 면치 못한다. 성치 못한 몸으로 거대 날개를 질질 끌어야 하고 선원들의 담뱃불에 부리 지짐을 당하기도 한다. 고매한 영혼인 알바트로스는 평범한 선원들 앞에서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알바트로스의 운명을 보들레르는 시인인 자신의 운명으로 치환했겠는가. 지상으로 내몰린 남다른 생각의 소유자들은 운명적 고난자들이지만 타고난 개척자이기도 하다. 우뚝한 새가 평범함의 지상에 유배당했을 때 겪을 가혹한 정신의 웃자람을 그미는 태연히 즐겼고 나는 그것을 부러워했다.보들레르 시를 다시 꺼내 읽는 밤, 자꾸만 옛 생각이 난다./김살로메(소설가)

2013-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