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역, 니은, 디귿….` 표기의 뿌리는 한글 창제 백 년 쯤 뒤에 발간된 최세진의 `훈몽자회`이다. 세종 당시 자음 발음은 여러 정황 상 `기, 니, 디, 리…`였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한다.
기역, 니은, 디귿 등과 달리 `훈몽자회`에서도 `ㅋ, ㅊ, ㅍ….`은 세종 당시의 발음인 `箕(키), 治(치), 피(皮)….`로 읽는다.
최세진 당시 초성과 종성에 함께 쓸 수 있는 여덟 글자의 활용 예를 보여주기 위해 `기` 대신 `기역`, `니` 대신 `니은`, `디` 대신 `디귿` 으로 표기했다. `ㅋ, ㅊ, ㅍ….` 등은 당시 종성으로는 활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두 글자로 표기할 이유가 없었다.
기역(其役), 디귿(池末), 시옷(時衣)으로 어렵게 발음하는 이유? 괄호 안처럼 한자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기윽`, `디??, `시읏`에 해당하는 한자 발음이 없어서 `훈몽자회`에서는 가장 비슷한 소리의 한자로 표기했다.
후대 사람들이 문헌에 충실하다 보니 차츰 그렇게 굳어져 버렸다. 한자로 표기만 빌렸을 뿐, 당시에는 기윽, 디?? 시읏으로 발음했을 것을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에서는 `기윽, 디?? 시읏`으로 제대로(?) 읽는단다.
작년부터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한글 사랑을 실천하려는 입장에서는 반갑기만 한 일이다. 이참에`기윽, 니은, 디?? 표기법까지 되찾을 수 있다면. 아니, 기왕이면 세종 당시처럼 `기, 니, 디, 리`로 자음 표기법을 바꾼다면. 그렇게 되면 상징적으로라도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한글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