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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짠한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0-13 02:01 게재일 2014-10-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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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 해야 할 일을 비 내리는 날에 가서야 하고, 유행 지난 옷은 별 고민 없이 헌옷수거함에 잘도 던져 넣는다.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 중 하나이다. 웬만큼 게으르고 적당히 편안을 모색해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다. 오히려 너무 부지런하고 너무 완벽할 필요가 없다며, 적당히 쉬어가고 인간적으로 흐트러지라고 부추기는 책들이 나오는 세상 아닌가. 요즘은 무조건 부지런하고, 한없이 절약하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산 정약용의 경우는 어땠을까. 유배가 길어지는 동안 본가의 식구들은 곤궁한 살림을 살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누에를 치고, 아들들은 농사를 배우고 닭을 쳤다. 물려줄 재산이 없는 다산은 자식들에게 편지를 쓴다.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두 글자의 부적이라며 `근`(勤)과 `검`(儉)을 강조한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논밭보다 훨씬 나아서 평생토록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젊은이는 힘든 일을 하고 부인들은 밤 한 시 이전에는 잠자리에 들지 않는 것, 잠시도 한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 다산이 말하는 부지런할 `근`이었다. 올 고운 옷이 해져서 처량한 것보다 거친 올의 옷을 입어 흠이 되지 않는 것, 이것이 다산이 말하는 검소할 `검`이었다. 근검 두 글자는 `성실함`에서 나오니 절대 속임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딱 한 가지 속여도 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입`이란다. 상추로 쌈을 싸서 밥을 먹는 것은 `보잘것없는` 음식을 입에게 속이기 위한 방편이란다.

선생의 산문집 `다산의 마음`에는 스스로를 올곧게 다지는 선비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맘을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당신과 가족을 채찍질할 필요가 있나 하는 반발심도 인다. 짠한 연민 때문이다. 근검의 실천 항목으로 매일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부녀자들 입장이 가슴 아프고, 먹는 즐거움을 별 것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아비의 애상이 전해진다. 특히 입을 속이면 맛있게 된다는 장면에서는 당혹감이 밀려온다. 늘 덜 먹기를 고민하는 현대인들의 수많은 입 중의 하나라는 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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