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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성에 근거한 교류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0-16 02:01 게재일 2014-10-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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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나만의 새로운 통찰을 발견한 건가 싶어 나름대로 정리해보지만 늘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모든 희로애락의 성찰들은 이미 오래 전에 선각자들이 완벽하게 정리해놓았다. 후세대인 우리는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을 취할 뿐이다. 가령 이런 문장은 어떤가.

“사랑을 구하는 사람은 즐거움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유익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한다. 이런 근거로 성립하는 친교는 그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이 얻어지지 않으면 해체된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상대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것이었는데, 그 소유물은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품성에 근거한 친교는 사랑 자체로 성립하기 때문에 지속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친교에 있어서 교환의 원칙`을 얘기하는 부분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몇 번이나 맞장구를 치게 된다.

남녀 간의 사랑이 성립하는 데는 품성적 근거가 주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미모나 미소나 손발짓 등 자신만이 느끼는 감각적 코드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다. 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처럼 사랑을 구하는 사람이든 사랑을 받는 쪽이든 그 중심에는 `자신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관계의 객관성과는 무관하며 사랑의 근원적 개념과도 거리가 멀다. 따라서 구하는 자, 받는 자 어느 한 쪽이 그것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해체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얻을 게 없으면 만남을 지속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품성에 바탕을 둔 만남(물론 남녀 간의 사랑에도 이런 사례는 흔하다)은 사랑 자체로 성립한다. 서로간의 품성이란 매력에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감성적 코드에만 머문 필요에 의한 만남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고, 서로를 신뢰하는 높이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일방적으로 구하려고 하거나 받으려고 하는 건 진정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서로가 주려고 하는 품성의 합일점 그곳에 완벽한 사랑이 있음을 알겠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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