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둘도 없던 친구가 곤경에 빠지고 그 때문에 나 또한 힘들어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옛날에 덕으로 사람을 대하는 재상이 있었다. 상하귀천을 따지지 않아 종들과 비슷한 일상을 꾸리기를 좋아했다. 자신이 고기를 먹으면 종들에게도 고기를 주었고, 종들이 김치를 먹으면 자신도 김치를 기꺼이 즐겼다.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 예의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모종의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당하고 설상가상으로 빈털터리가 되었다. 고기와 김치를 가리지 않고 함께 먹었던, 식구라고 여겼던 종들부터 모두 떠나가 버렸다. 몹시 야속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복권이 되어 다시 재상 자리에 올랐다. 종들이 가장 먼저 돌아와 같이 일하기를 청했다. 재상은 배신감에 고래고래 고함부터 질렀다. 그러자 한 종이 말했다. “주인님, 어찌 사람의 본성을 모르십니까. 어른께서 우리와 고기를 나눠 먹든, 김치를 같이 먹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려워지면 제 살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어른께서 덕을 베풀지 않았다면 이 많은 종들이 다시 재상님을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매번 도덕적·이성적 판단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게 정답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저렇게 행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이다. 그 모든 것에 앞서 `내가 살아야 하는 실존`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낭패가 뒤따르고 부덕의 자괴에 몸서리치더라도 인간이 인간이려면 덕성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제 것을 지키는 지극히 인간적인 본성 속에서도 타자의 덕성이라는 후의는 결코 잊히지 않으리라는 선한 믿음. 그 믿음이 주는 밝음 때문에 덕을 짓는 사람들의 행보는 오늘도 이어진다는 것.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