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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몽롱한 사유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10-20 02:01 게재일 2014-10-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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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노벨 문학상은 프랑스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가 받게 되었다. 노벨문학상 작가라고 그 작품을 다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상을 탔다니 예의로라도(?) 일단 책을 산다.

모디아노의 작품은 읽어 본 적이 없어 은근히 기대를 했다. 대표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도착했다. 첫 문장부터 맘에 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가 죽었다` 의 `이방인` 이나 `나를 이스마엘이라고 불러줘`의 `모비 딕` 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 있는 첫 문장이다.

잃어버린 과거 찾기가 주 내용이고, 나의 정체성 확인하기가 주제처럼 보인다. 부담 없는 두께라 시간적으로는 금세 읽힌다. 그렇다고 쉬운 책은 아니다. 뭔가 몽롱해진다. `나` 롤랑은 과거 찾기에 성공한 것인가, 거듭되는 자아 발견의 고민은 해결된 것인가. 결말 없이 책을 덮고 나면 머리만 무거워진다. 한참 멍하게 있다 정신을 차린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 어찌할 수 없는 `몽환의 자아 상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억하는 내 과거는 온전히 내 것일 리 없고, 타자 기억 속의 내 과거 역시 타자가 기억하는 내 모습일 뿐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딘가에 실존하되 어디에서도 진실로 발견되지 않고, 그 누구도 실체를 알 수 없는 자아라는 수수께끼. 그 근원적 모호함에 대한 서술 방식이 참으로 프랑스 소설답다. 페드로가 잠시 살았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독자로 하여금 자신 또한 그런 거리를 찾아 배회하게 하는 힘, 그것이 모디아노를 놓지 못하게 하는 원천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확실한 것은 “어느 날 무(無)에서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버”리는 게 우리 삶이란 것. 인파로 붐비는 백사장 사진 속, 모래알 같은 배경이 되었다가 한순간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는 `해변의 사나이` 같은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

이 가을, 몽롱한 사유의 거리에서 자아 찾기에 골몰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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