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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束脩)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4-03-31 02:01 게재일 2014-03-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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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처음 뵈올 때 존경의 뜻을 표하는 예를 `속수례((束脩禮)`라 한단다. “저희가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고자 뵙기를 청합니다.” “내 학식이 부족하여 그대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저어하네.” 학생은 스승에게 낮은 자세로 열심히 배울 것을 다짐하고, 스승은 제자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깨우침을 전할 것을 결심한다. 몇몇 초등학교에서 인성 교육 및 전통 문화 계승 차원에서 이런 속수례 의식을 경험케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봄꽃 소식만큼이나 반갑다.

`속수`는 스승을 만나러 갈 때 인사 차 들고 가는 소박한 입학금 정도가 된다. 옛날 스승들에게 제도화된 수업료가 있었을 리 없다. 사마천의 `사기`의 `공자세가`에 의하면 공자는 제자를 가리지 않았다. 제자가 거의 삼천 명에 달했는데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는 않았다. 배우려고 하는 누구에게나 속수를 받는 것으로서 대신했다. 속수는 말린 고기 열 개를 묶은 것을 말한다. 가르침을 청하는 최소한의 예의로 육포 한 묶음을 삼은 셈이다.

유교 문화를 계승한 우리 선조들도 당연히 배우고 가르칠 때 속수례를 행했다. 속수의 예를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여겼다. 성균관에 입학하는 왕세자도 속수례를 엄격히 지켰다고 선조 때의 기록에 나와 있다. 실제 육포의 형식을 취하고 아니고를 떠나 서로의 예를 행하는 자체에는 진정성이 짙게 배어 있었을 것이다.

현대는 스승과 제자가 오롯이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가기는 어려운 시대이다. 안회를 비롯한 여러 제자처럼 스승만 바라보며 한 길을 갈 여건도 못 된다. 다사로워야 할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입시다, 스펙이다, 자격증이다 등등의 현실 앞에서 딱딱한 교육자와 학습자의 관계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스승을 찬미하고 존경하는 일조차 쑥스럽고 어색한 시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살면서 존경심이 드는 스승을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되던가. 나이와 연륜에 상관없이 도처에서 스승을 만난다. 따뜻한 밥 한 그릇, 향긋한 차 한 잔의 현대판 속수로 내 맘을 전하고픈 스승들이 생각나는 봄이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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