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의 상처는 물론 타인과의 그것에 비하면 오래 가지는 않는다. 가족이 주는 위안이 상처보다 더 큰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대개 아무리 친한 타자라도 가족만큼 큰 위안을 주지는 못한다. 한마디로 가족은 한 구성원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리 나쁘지 않은 요물이다. 상처와 위안의 근원인 가족은 보듬어 함께 갈 동지이다. 따라서 가족은 사랑의 대상은 될지언정 존경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연민이자 나를 비추는 거울인 가족을 존경한다고 말하면 어쩐지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덜 편한 사이라서 아직 그만큼의 거리감이 있다는 뜻으로 들리니.
한 노부인이 인도 여행을 하고 싶어 했다. 여행사에서는 노구를 이끌고 인도까지 가는 건 무리라고 말렸다. 그래도 고집을 피워 여행길에 올랐다. 아스람에서 위대한 스승을 알현하려니 줄이 너무 길었다. 사흘이나 걸리는 그 시간을 부인은 기다리겠다고 했다. 드디어 성스러운 문 앞에 도달했다. 스승과는 세 마디 이상을 나눌 수는 없다고 했다. 노부인도 그러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스승 앞에 엎드리는 동안 노부인은 가장 성스러운 자에게 팔짱을 낀 채 말했다.“여보, 그만 집에 가자.”
가족과 존경과는 생래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다. 밖에서 카리스마 넘치고 근엄한 사람도 집안에 들어오면 인간적인 가족 구성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몽테뉴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인과 가족에게 존경 받는 주인은 거의 없다고. 가족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연민과 사랑의 대상이어야 온당하다. 가족에게 존경을 바라는 건 어리석거나 우둔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