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친구의 메일 주소를 물어왔다. 그 누군가도 친구를 잘 아는 터라 별 생각 없이 친구의 메일 주소를 가르쳐줬다. 하지만 친구에게 그 누군가가 불편한 메시지를 보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당연히 일차적 책임은 메일 주소를 가르쳐준 내게 있다. 한 번만 돌려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누군가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아니까 직접 메일 주소를 물어 볼 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의심하는 여유만 가졌어도 타인의 메일 주소를 함부로 가르쳐주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떻게든 알게 되었으리라는 문제는 부차적이다. 그런 변명은 그야말로 자기 위안용에 지나지 않는다.
위의 예처럼 급하다 보니 실수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느긋한 사람들이 부러운 것도 아니다. 이게 더 스스로를 화나게 한다. 느긋하거나 여유 있는 모습을 보면 본받고 싶은 게 아니라 답답하다는 생각이 먼저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아마 급한 성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급한 성격의 특징은 약속을 잘 지키는데다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한다. 게다가 추진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도 급해서 낭패를 부르는 경우 앞에서는 자랑거리조차 못 된다. 역지사지하면 느긋하거나 차분한 사람들은 급한 사람들이 얼마나 성가시게 보일 것인가.
물론 급하거나 느긋하거나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각자 장단점이 있다. 다만 내 가진 약점이 도드라진 순간에는 그 성정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다. 급한 그 특징조차 제 정체성의 한 일면이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성정이라면 달래가며 인정하는 수밖에.
/김살로메(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