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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르네상스 회화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마사초의 프레스코화 ‘성 삼위일체’.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북쪽 벽면에는 ‘성 삼위일체(The Holy Trinity)’를 주제로 하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를 그린 화가는 15세기 초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마사초(Masaccio)라는 사람인데 스물 여섯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남기진 못했지만 실력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마사초가 ‘성 삼위일체’를 그린 것은 대략 1426년에서 1428년 사이로 피렌체의 노련하고 쟁쟁한 미술가들과의 경쟁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던 것 같다.‘성 삼위일체’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교리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거룩한 영 성령은 삼위(三位), 세 개의 다른 위격으로 존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하나의 하나님’이라는 종교적 가르침이다. 마사초의 벽화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성자 그리스도가 중앙에 그려져 있고, 그 뒤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성부 하나님 그리고 이들 사이에 성령을 상징하는 흰색 비둘기가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로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제자 요한이 나타난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시선을 그림 밖 감상자에게 던지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맞은 편 붉은 망토를 두른 사도 요한은 잠잠히 두 손을 모은 채 그리스도의 죽음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마사초의 벽화 가장 아래 부분에는 성 삼위일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인물이 무릎을 꿇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당시의 회화적 관례상 마사초가 이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했던 기증자 부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림에 묘사된 이런 내용들을 종합하면 마사초의 벽화에는 세 가지 다른 층위의 시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의 시간과 공간, 성 삼위일체의 시공간적 초월성 그리고 마사초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시간과 공간이 하나의 벽화에 공존하고 있다.서양미술사에서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는 최초로 수학적으로 계산된 ‘선 원근법(linear pespective)이 적용된 작품이라는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근법은 2차원의 평면에 공간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미술기법이다. 중세까지만 하더라도 그림들은 거의 대부분 평면적이었다. 중세미술의 주류는 기독교미술이었고 종교적 기능과 목적을 위해 제작되었다. 중세미술은 종교적 가르침을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거나 기도와 묵상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인물이나 대상 혹은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자연의 시공간을 넘어선 신적인 세계를 상징하기 위해서 찬란한 금빛을 배경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혹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화면 가운데 위치시키고 주변 인물들 보다 크게 그려 넣었다.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이런 표현법도 공간감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원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이 지닌 종교적 중요도에 따라 위치와 크기가 달리 표현되면서 발생되는 이런 공간감을 ‘의미적 원근법(Hierarchical proportion)’이라고 부른다.르네상스의 여명이 밝아오면서 미술가들은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으려는 시도를 했고 이 때 처음으로 부딪혔던 문제가 공간표현이었다. 화면 위에 가상의 소실점을 찍고 이 점으로 수렴되는 선들을 긋는다. 그리고 그 위에 그리려는 대상의 크기를 일정한 비율로 축소시키면 2차원의 평면에 공간감이 만들어진다. 르네상스가 발명한 선 원근법은 19세기 중반 현대미술이 태동하기 이전까지 수 백년 동안 서양미술의 화면구성을 지배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2024-01-09

방언이라는 다양성의 질서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갑진년 새해다. 우리가 알아야 할 매우 중요한 시대의 변화를 요약하면 인간의 인지능력에 기대어 살던 시대가 저물어가는 대신에 기계가 우리의 인지를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인류 문명의 변화의 단층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매개물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지식정보의 전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문자의 발견은 고대에서 중세라는 시대로 이행하는 촉매역할을 하였고 이 문자를 통한 지식 정보가 소리, 그림, 사진 이미지로 전달되면서 르네상스라는 인간 중심 사회로 이행되었다. 이때까지는 인간의 인지 폭 안에서 모든 사물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변종들을 단순화시켜 표준화하는 일에 몰두하였다.예를 들면 ‘잠자리’라는 표준어에 대응되는 변이형은 엄청나게 많이 나타난다. 특히 지리적인 차이에 따라 잠자리의 음성적 변이형으로 ‘잠바리’, ‘잔자리’, ‘짠자리’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이다. 한편 형태적인 변이형으로 ‘철겡이’, ‘철벵이’, ‘철기’, ‘처리’ 등 단일한 의미를 담은 언어의 변종이 많이 나타나므로 이를 표준화하여 모두 ‘잠자리’로 표준화하였다. 그리고 학교 교육에서나 모든 국가적 제도의 틀 속에서 표준어만을 존중하는 시대를 거쳐 왔다. 이러한 시대에서는 지역의 정보가 표준어인 서울에 비해 열등한 것처럼 없애버리는 혹은 잊혀지는, 잊혀야 하는 시대를 거쳐왔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하였다.필자가 왜 평생 방언 연구를 위해 정성을 쏟았는지 그 내력을 조금 소개해 드릴까 한다. 1979년 무렵 우리나라 국가적인 방언조사 계획에 참여하여 경상북도 전역의 방언조사를 수행하였다. 엄청난 방언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엑셀이나 메모장을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다음 이를 어떻게 판독할 것인지 큰 과제였다. ‘잠자리’라는 방언 어휘의 예를 들어 ‘잠자리’형과 ‘철기’형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얼개를 만들면 음성적 변이형과 형태적 변이형들의 갈래가 지워진다. 그러한 방언 분화가 왜 생겨났는지 언어학적인 설명이 더욱 용이해진다. 그러나 수천 항목을 이처럼 하나하나 해석하기란 너무나 벅찬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기계적 처리가 가능할까?이러한 기술이 일본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었다. 2003년 일본 동경대학교에 컴퓨터를 활용한 언어지도 작성에 대한 연구를 위해 떠났다. 언어지도 제작 시스템 SIL을 개발한 니가타대학에 후쿠시마 교수와 동경에서 그리고 니가타대학 연구실로 옮겨 가면서 SIL시스템을 한국방언자료에 적용하여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자동으로 한반도 지도상에 채록된 방언형을 해당 지도 위에 멋진 상징부호로 전환하여 채색 상징부호 언어지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문부성 국어연구원에서와 동경대학교 대학원생들 대상으로 한 한·중·일 언어지도 제작에 대한 특강 등을 통해 방언 자료의 기계적 처리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불러 일으켰다.유학을 하고 돌아온 후 우리 독자적인 방언지도제작시스템 구축을 위해 경북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협조를 받아 드디어 K-Map이라는 한국언어지도 제작시스템을 완성하였다.한국방언학회지에 방언자료 처리와 언어지도 제작에 관한 논문을 계속 발표하였다. 정년퇴임을 할 무렵 내 연구실 제자들과 함께 ‘방언을 지도에 입히다’(민속원, 2019)를 연구의 총체적인 결실물로 간행하였다. 마침 20세기를 넘기면서 점점 소멸하는 변두리의 생태와 붕괴되는 지식체계의 복원을 주장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보존하자는 논의들이 활발했던 시기였다.그와 함께 컴퓨터의 기술이 놀랍게 발전하면서 웹에서 앱으로 휴대전화 속에서 모든 정보를 교환하고 검색하여 공유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텍스트, 음성, 이미지 정보들을 대량으로 모아서 빅-데이터를 구축함으로서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기계가 필요한 정보들을 신속하게 검색하여 정화한 정보를 알려주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앞에서 말한 방언, 사투리, 지역말씨가 이젠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황금의 알이 되었다.앞으로 어떤 황금알을 만들 것인지 풀어나갈 것이다.

2024-01-08

낭만과 현실의 무대 홋카이도 <1>

일제강점기라는 지난 세기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경제·사회·문화의 우호적 파트너로 변화한 21세기 한·일 관계. 이경재 숭실대 교수는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일본을 30차례 이상 다녀온 학자다. 올봄엔 도쿄대학에 교환교수로 간다. 그간 이 교수가 면밀하게 살펴온 일본 문화·예술의 어제와 오늘을 독자들에게 들려줄 ‘이경재의 일본을 읽다’는 2024년 본지가 준비한 주요한 기획연재 중 하나다.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주홋카이도(北海道)가 떠오른 것은 연일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오랜만의 강추위가 계속되어서일까요? 어린 애들도 알다시피 일본은 네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요.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남한 면적의 80%에 이르는 아주 큰 섬입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설원의 롱테이크 영상으로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생사를 뛰어넘는 순백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무대가 바로 홋카이도였던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의 “오겡끼데스까”라는 외침이 울려퍼질 듯한, 홋카이도는 눈과 벌판과 추위와 이국적인 정서로 가득한 낭만과 꿈의 무대임에 분명합니다.홋카이도는 근대 일본의 역사적 상흔이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하게 남겨진 곳이기도 합니다.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가 즐겨 보던 세계지도에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까지 표시돼 있지만, 오늘날의 홋카이도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메이지 이전까지 홋카이도는 일본과는 무관한 아이누의 땅이었던 것인데요.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일본은, 홋카이도를 일본의 지방으로 편입시켜 버립니다. 이후 제국 일본은 오키나와를, 타이완을, 조선을, 만주를 자신의 일부로 먹어치우는 침략적 야욕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요. 그렇기에 홋카이도는 근대 일본제국주의가 시작된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또한 홋카이도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혹한 노동 착취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일본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작인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의 ‘게공선’(1929)의 배경이 홋카이도인 것에서도 잘 드러나는 사실이지요. 고바야시 다키지는 홋카이도에서 성장하였으며,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다쿠쇼쿠은행 오타루 지점에서입니다. 그가 노동운동과 프롤레타리아문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홋카이도에서였고,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 그 유명한 ‘게공선’인 것입니다.게공선 하쿠코마루호는 홋카이도 북쪽의 거친 바다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일종의 공장선입니다. 게공선에 승선한 이들은 가난과 자본의 핍박에 몰리고 몰려 마지막 선택지로 일종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배에 오른 처지입니다. 이 게공선은 당시 자본주의 일본의 온갖 문제를 통조림처럼 꽉꽉 눌러 담은 공간이기도 하네요. 게공선은 일반 선박이 아닌 공장선이기에 항해법의 적용도 받지 않고, 순수한 공장이 아니기 때문에 공장법의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일종의 무법지대인 이곳에서는 오직 성과만을 절대시하는 자본의 논리만이 힘을 발휘하는군요. 감독인 아사카와는 자본가를 대리하며 온갖 폭력을 행사합니다. 폭언이나 폭행은 애교에 가깝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고문도 서슴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사카와는 근처에 있는 게공선 자치부마루호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이익을 위해 400여 명의 생명을 외면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젊은이 야마다가 죽었을 때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바다에 던져질 야마다를 새 마대 자루가 아닌 헌 마대 자루에 싸서 버리게 지시할 정도입니다.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자본의 폭력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자본가를 대리하여 게공선에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아사카와 감독은 게를 잡아 통조림을 만드는 일이 “국가적인 일”이라 강조합니다. “대일본제국의 대장부”가 되기를 강요받는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일본군 구축함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하며, “일본제국을 위해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게공선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파업에 나섰을 때, 게공선에 오른 일본군들은 노동자들을 도와주기는커녕 그들을 폭행하고 파업의 지도부를 끌고 갈 뿐입니다. 이를 통해 게공선의 노동자들은 ‘일본제국의 해군도 결국 자본가들과 한통속’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본래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분리 불가능한 근대의 핵심적인 두 기둥이기도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게공선’은 프로소설의 일반적인 문법에 걸맞게 낙관적인 전망으로 끝납니다. 한번 실패를 맛본 게공선의 노동자들은 더욱 강한 단결력과 투쟁력으로 기어이 파업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은 특별고등경찰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요절한 고바야시 다키지의 강렬한 사회의식이 반영된 결과겠지요. 지금도 시립 오타루문학관에 가면 이념과 문학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고바야시 다키지의 삶과 문학의 향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2008년 신초사에서 문고본으로 재발행한 ‘게공선’이 무려 50만 부 이상 팔리고 2009년에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지는 등 21세기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입니다.이것은 아마도 현재의 일본이 100여 년 전의 홋카이도 바다를 다시 떠올리게 할 만큼 만만치 않은 것과 관련된 것이겠지요. 일본인조차 최고의 관광지로 꼽는 눈과 낭만의 홋카이도에서 한번쯤 근대 일본의 역사적 상흔을 떠올리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본체험이 될 것입니다.

2024-01-08

내 몸에 흐르는 여러 차원의 시간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학과 사람은 살면서 신비체험을 할 때가 있다. 마음이 환하고 깨끗한 사람은 세상을 상세히 알지 않고도 꿰뚫어 보고, 이 세상을 하나로 삼고 그 하나 너머의 빛을 맞아들일 수 있다. 세속 잡사에 휘둘리기 쉬운 체질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의 이런저런 일들에 마음을 빼앗긴 채 짧은 인생을 덧없이 보낸다.나는 후자 쪽의 유형에 가까운 사람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정치적인 사건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학생 시절은 제5공화국 시절이었다. 신문마다 목소리가 하나로 다르지 않은 것을 가판대에서 이 신문도 사보고 저 신문도 사보며 같은 기사를 혹시 조금이라도 다른 어조가 있을세라 반복해서 읽곤 했다.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나는 여전히 뉴스에 목말라 있다. 정치적 진실이 언론들이 전달하는 것에서 늘 멀리 있음을 알기에 홍수같이 밀려드는 뉴스의 숲속을 헤매며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제대로 전하는 곳을 찾아 헤맨다.그런데 최근 어느 날이다. 늘 늦게 자는 버릇에, 몇 번씩 깨는 습벽으로 나의 잠은 아주 저질스럽다 하겠는데, 그날 새벽 문득 깨어나니 머릿속이 한없이 깨끗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아무런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좀 더 시간이 흘러 정신이 돌아오면서, 이제는 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흘러들었다. 일간신문의 정치면에 거리를 두고 내 몸속에 흐르는 삼십 년 단위, 백 년 단위, 천 년 단위, 만년 단위의 시간의 흐름에 귀를 기울여야겠었다.그러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세속적인 차원의, 인간학적인 차원의, 생물학적인 차원의, 그리고 우주적인 차원의 삶, 생명이 흘러가는 전도체와도 같은 것을, 저 칼 융의 ‘원형 상징’에 관한 책을 읽고 그토록 깊은 감화를 받고도 나는 여전히 풍진 속을 헤매며 살아가고 있다.젊은 날 칼 융의 ‘무의식’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국문과 대학원생 연구실을 내려와 저녁 어스름 빛을 받으며 학교를 내려가는데, 갑자기 세상이 ‘블루’하게 보였다. 마음속의 무의식이 세상에 마치 블루한 필터를 끼워 놓은 것처럼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신비스러운 푸른 빛을 발산하는 것이었다.그 융은 그때 책에서 말했다. 무의식은 어둠만 아니라 빛으로도 이루어져 있다고. 우리들 무의식에는 저 인류의 시원으로부터 쌓여 온 삶의 온갖 기억과 자혜가 저장되어 있다고. 이제는 정말 그 모든 시간들을 함께, 아울러 의식해야겠다고 생각한다.새해를 앞뒤로 하여 이 나라에는 사람들 마음을 흔드는 큰 사건들이 많았다. 너무나 잘 알려진 스님의 돌연한 입적, ‘기생충’과 ‘나의 아저씨’로 사람들 심중에 깊이 들어온 연기인의 죽음, 또 갑작스러운 정치인 피습 사건. 모두 삶의 덧없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삶의 더 깊은 차원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차원 다른 여러 시간들이 내 몸에 흐르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며, 더 여유 있게, 더 정갈하게, 더 고요하게 살아가고 싶다. 사람의 삶은 찰나의 빛과 같으니 말이다.

2024-01-08

대학등록금 인상

홍석봉 대구지사장 대학들이 올해 등록금을 지난해보다 최대 5.64% 올릴 전망이다. 지난해보다 1.79%p 올랐다.대학 등록금 인상한도가 5%대가 된 것은 2012학년도(5.0%) 이후 12년 만이다. 또 정부가 등록금 인상 상한을 공고한 2011학년도의 5.1%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다. 그러면서 정부는 대학에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등록금을 동결해달라”고 요청했다. 국가 장학금 지원 등 당근책까지 제시했다.대학은 죽을 맛이다. 등록금 동결은 대학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 15년째 계속된 등록금 동결과 입학정원 감소로 대학의 수입이 줄었다. 대학은 인건비와 관리비 충당에 급급하다. 첨단 설비 도입은 아예 엄두를 못낸다. 노후 건물의 개·보수 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정부의 재정 지원이 크게 는 것도 아니다. 국가장학금을 제외하면 되레 줄었다.한국의 대학 경쟁력은 세계 수준에 못 미친다. 2022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 발표한 대학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63개국 중 46위다. 선진국들이 산업 고도화를 위한 고등교육 투자를 늘리는 동안 우리는 거꾸로 갔다.지난해 일부 대학은 정부 제재에도 불구, 등록금을 인상했다. 올해는 등록금 인상에 가세하는 대학이 더욱 늘 전망이다.교육 개혁은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다. 대학 자체적으로 개혁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등록금의 완전 자율화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성이 높다. 대신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장학금을 대폭 늘려 주는 것이 맞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근 대학의 등록금 동결·인하 유도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개선을 요구했다.언제까지 교육부가 대학의 목을 틀어쥐고 있을 것인가./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1-08

마중물 소명

강길수 수필가 ‘마중물’이란 말을 가슴에 품고, 2024년 새해를 맞았다. 구랍 27일 오후였다. ‘만시지탄이지만, 천만다행이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쳤다. 이어, ‘마중물이 부어졌으니 맑은 물을 퍼내야 할 텐데….’ 하는 바람이 마음 가득 차올랐다. 대한민국의 공영방송 KBS가 드디어, 부정선거 문제를 26일 밤 9시 톱뉴스로 방송했단다. 그것도, 4꼭지나 할애하였다는 낭보였다. 당장 인터넷에서 그 톱뉴스를 찾아 시청했다. 비록 완곡했지만, 우리나라 부정선거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어, 보는 가슴이 뜨거워졌다.마음에서 시청료에 대한 거부감이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 시청료 자동 납부를 박절하게 끊지 못하고 놔두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20대 4·15 총선 후, 많은 이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을 때 이런 방송이 곧바로 나왔어야 했다. 126건이나 되는 선거 소송이 제기된 선거였으니 말이다. 그때 주류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다했더라면, 부정선거 문제는 진즉 다루어졌을 것이다.선거 소송은 대법원 단심제로, 법정 기간이 180일로 짧다. 사회 영향 최소화를 위함이다. 이번 KBS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은 126건 소송 중에서 5건만 재판 과정을 거쳤고 나머지는 작년 9월에 일괄 기각하였다. 법정 소송 기간을 4~6배 미루어 기각, 종결했다. 국회의원 임기 4년 중 2~3년 반을 지난 때였다. 대법원이 법정기일을 대놓고 깔아뭉개는 기막힌 현실을, 국민은 눈뜬장님처럼 쳐다봐야만 했다.지난 4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정선거 척결을 외치며, 대한민국의 선거 공정성 회복을 위해 밤낮없이 애썼던 선지자적 애국시민들이 많다. 그들의 진실과 정의에 대한 갈망과 나라에 대한 사랑이 마중물로 되어, 대한민국호란 펌프에 부어지기를 열망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 사회의 주류언론들은 이 국가적 거악, 나라 내부침략 행위를 그냥 강 건너 불 보듯 했다.선거가 어떤 세력에게 불법으로 장악당한다는 것은, 그 거짓세력이 나라의 지배층이 된다는 뜻이다. 즉, 국민을 수탈대상으로 삼는 전체주의 체제로 변하는 것이다. 선거를 장악당한 다른 나라들의 예에서 보듯, 부정선거는 나라에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미칠 것이다. 전체주의가 된 후, 땅을 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시지탄이지만 천만다행으로, 공영방송 KBS가 부정선거 공론화의 마중물을 부었다. 다른 언론들도 잇달아 심층 보도 등으로 마중물을 더 부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 법조계, 학계, 정치권, 국민이 함께 펌프질하여 맑은 물을 퍼올릴 것이다. 마중물은 대한민국언론에 하늘이 내리는 소명(召命)이라 본다. 이 ‘마중물 소명’ 수행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길일 것이기 때문이다.올 4·10총선이 100일도 못 남았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천부의 지성으로 계획, 실천, 점검, 조치하는 데 있을 터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부정선거를 막는 특단의 대책을 짜, 나라의 전 기관과 온 국민이 함께 실천해 마중물 소명의 목표, 맑은 물을 퍼내야만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는 피해야 하므로….

2024-01-08

새해에는 ‘시각’을 전환하자!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앞두고 다이어리를 구매해서 새해 목표를 꾹꾹 눌러쓰던 시기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목표를 정하지 않았다. 새해가 되고 한 살을 더 먹는 행위가 그다지 특별하지 않게 느껴진 까닭이다. 달력이 바뀌는 차이보다는 어제와 내일의 연속성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하지만 5년 전, 지역에서의 삶을 시작하고부터는 자연스럽게 수도권·지역의 격차를 느끼게 되었다.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고 지역 대학에서 일을 하는 나에게 지역은 삶의 터전이다. 거의 모든 학술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기에 왕복 8시간을 들여서 힘겹게 다녀오는 기간이 5년을 넘었다. 그동안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이제는 서울의 높은 건물과 복잡함에 머리가 아파서 학술대회가 끝나고 집에 가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나의 힘겨운 상경을 알지 못하는 수도권 연구자의 말에서 받은 상처도 포함된다. 도시의 마천루를 벗어난 공간에서 살아가며 공간의 위계성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가 최근 몇 년 새해 목표가 된 것도 이런 맥락에 놓인다.새해에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정부 정책이 ‘글로컬 대학 30’이다. 이 사업은 ‘선택과 집중’을 내세우며 혁신 의지가 있는 지역 대학 30개 학교를 지원한다. 지방 정부와 지역 대학이 함께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라는 방향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혁신과 자율, 지역 중심이라는 멋진 말에 지역 대학 소멸론, 출생률 감소까지 더해지면서 지역의 모든 대학이 사활을 걸었고 1차로 10개 대학이 선정되었다. 이 대학들은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변화를 위한 구체적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지역의 미래에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어떤 영향을 줄까? 최근 내가 편집위원장으로 있는 웹진의 글로컬 대학 특집을 기획하고 원고를 받았다. 그중 지역에서 나고 자라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의 글에 감탄했다. 글의 요지는 이랬다. 1980년대 거제는 조선소가 본격적인 가동을 하며 지-산-학이 일치되는 도시가 되었지만, 조선업의 몰락이 곧 도시의 황폐화로 이어졌다. 1980년대에 거제에서 산업은 발전했지만, 문화는 삭제되었고 이것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지-산-학을 내세우며 시작한 ‘글로컬 대학 30’의 미래는 과거와 얼마나 다를까? 그래서 저자는 진정한 ‘글로컬 대학’을 위해서 ‘인서울’의 ‘학벌순’으로 정원을 줄이거나, 서울에 있는 대학이 지역으로 옮겨야 지원금을 주는 정책을 제안한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그저 상상에 불과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학벌주의와 지역 대학의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인 것은 분명하다.뭐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새해지만, 특별함이란 반복되는 일상을 자명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뒤집어 볼 때 생긴다. 자조나 냉소가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공유하고 함께 협력할 때 특별한 한 해가 될 수 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어느 연구자의 상상력이 널리 공유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2024-01-08

갈치를 주니까 중매가 온다

중매라는 선물을 받게 해줄지도 모를 갈치. 층간소음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다. 바닥과 천장이, 벽과 벽이 맞붙은 아파트나 연립주택에서는 이웃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사르트르가 말한대로 ‘지옥’으로서의 타인만 남는다. 소음은 보복소음을 불러오고, 소음의 나비효과는 주먹과 발길질, 흉기가 되어 피를 보게까지 한다. 인터넷에 층간소음 복수법을 검색하면 온갖 방법들이 나온다. 천장에 설치하는 층간소음 보복 스피커가 품절 현상을 빚을 만큼 잘 팔린다. 스피커로 귀신 흐느끼는 소리, 불경, 찬송가, 아기 울음소리, 심지어 음란물 소리를 틀어두라는 조언이 넘쳐난다. 천장이나 벽을 두드리는 고무망치도 인기 상품이다. 이웃들을 마주칠 때마다 조현병 환자인 척했더니 층간소음이 사라졌다는 경험담까지 있다.나는 연립주택 4층에 사는데 5층의 생활소음이 잘 들린다. 샤워할 때마다 음정 박자가 엉망인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는 윗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새 거주자가 이사 온 뒤론 그쪽은 평화롭다. 최근엔 층간소음보다 벽간소음이 문제다. 옆집 402호에 새로 이사 온 아주머니 아저씨께서 현관문을 너무 세게 닫는다. 문돌쩌귀가 잘 안 맞는 데가 있는지 여러 번 열었다가 닫았다가 한다. 하루에도 열댓 번, 늦은 밤에도 그 소리가 들리면 짜증이 나고 욕설이 뱉어진다. 가서 따져야지 하고 단단히 벼르는 와중에 복도에서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인사하자 “저거 저렇게 두면 누가 안 가져가요?” 문 앞에 쌓여 있는 소포꾸러미를 걱정하신다. 집으로 책이 너무 많이 와 둘 곳이 없어 현관문 앞 구석에다 놓은 것들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와는 서로 한 번씩 도운 일이 있다.하루는 거실서 음악 들으며 쉬는데 창밖에서 누가 큰소리로 “401호 아저씨! 도와줘요!” 외쳤다. 창을 열어보니 옆집 베란다에서 아주머니가 자동방범창이 잠기는 바람에 안으로 못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알려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402호에 들어가 방범창을 열어 아주머니를 구출했다. 옆집이 이사 온 지 며칠 안됐을 때다.지난 가을엔 제주 바다 위에서 열심히 낚시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양동 지구대 경찰이었다. 집 문은 열려 있고, 택배는 잔뜩 쌓여 있고, 혹시 무슨 변고가 생긴 건 아닌지 싶어 옆집에서 신고했단다. 낚시 가는 길이 얼마나 설렜으면 칠칠맞게 문단속도 안하고 헤벌레 나섰을까. 다행히 사라진 물건도 없고, 누가 들어온 흔적도 없다. 옆집서 대신 문단속을 해준 게 참 고마웠다.도움을 주고받으며 피어난 작은 따스함 따위는 쿵쿵거리는 소음에 묻혀 기억도 나지 않았나보다. 복도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는 “총각이 잘생겼네. 장가 안 갔어요?” 살갑게 말을 걸었다. 두세 마디 대화 나누자 문 닫는 소리 시끄럽다고 따지려던 마음이 사그라졌다. 널찍한 테라스가 있는 우리 집 내부 구조가 궁금하다기에 들어와 구경하시라 했다. 그리고 지난번 문단속해준 보답으로 그때 제주에서 잡아온 갈치를 몇 토막 드렸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말한다. “이방인에게 말 걸지 말라는 말은 정상적 삶을 사는 성인들의 전략적 교훈이 되어버렸다. 이 교훈은 이방인이 말 걸기의 거부 대상이 되는 삶의 현실을 하나의 신중한 규칙으로 만든다”라고. 말을 거는 순간 관계가 시작되고, 관계는 성가시고 불필요한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므로 지옥의 문을 굳이 열 이유는 없다. 혼밥과 혼술이 편하고, 타인의 곤경을 봐도 섣불리 도와선 안 된다. 코로나 시절 타인은 병균 덩어리였고, 전염병이 종식된 지금은 경쟁자, 귀찮은 오지랖쟁이, 또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 사물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웃’이라는 이름을 잃어간다. 언젠가는 사전에서 단어가 사라질 것이다.“이렇게 잘생기고 훤칠한 총각이 왜 혼자 살아. 내가 주변에 좋은 아가씨 있으면 중매 서줄까?” 갈치를 주니까 중매가 온다. 이건 꽤나 남는 장사가 아닌가. 중매보다 더 값진 건 이웃의 탄생이다.이제 지옥으로서의 타인은 없다. 갈등을 갈치로 바꾸고 적대감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한 건 그저 “안녕하세요” 한마디로 시작된 소소한 대화다. 갈등과 혐오가 넘쳐나는 우리 사회에 지금 절실한 건 안녕을 묻는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이 한마디인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옆집서 갈치 굽는 냄새가 스멀스멀 흘러들어왔다. 이웃이 저녁밥을 짓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2024-01-08

가장 바깥쪽에 놓인 서점의 책처럼

근사한 삶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언스플래쉬 지난 12월 31일엔 광화문 교보문고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광화문과 덕수궁 그리고 서촌을 말할 수 있다. 그곳의 주변엔 취향을 가득 담은 카페와 음식점, 동네 서점, 각 종 소품을 파는 가게 그리고 특정 장소들이 있다. 세 곳 모두 많은 이야기와 사람과 감정이 얽혀 있다. 어느 계절에 누구와 가도 좋은, 애정이 가득 담긴 곳이다.2024년을 정말 잘 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지난해의 마지막엔 아침이 되자마자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공들여 책을 골랐고 읽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도 했다.그리고 베스트셀러 매대 앞에 서서 그곳에 반듯하게 세워져 있는 책의 모습을 바라봤다.매대위 같은 책일지라도 제일 바깥쪽에 있는 책과 가장 안쪽에 책은 컨디션 차이가 꽤 난다. 제일 바깥에 있는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탓인지 책 표지가 더 물렁물렁하고 모서리가 약간 닳아 있다. 종이를 넘길 때의 질감과 촉감도 다르다. 새 종이책 특유의 빳빳함을 잃고 훌렁훌렁 가볍게 넘어가며, 종이를 넘기며 생기는 미세한 자국이 새겨져 있다.반대로 가장 안쪽인 끝에 위치한 책은 진열된 지 얼마 안 된 듯 상처 없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새 책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어딘가 모서리는 더 날카로워 보이고 빳빳하며 유연해 보이지 못한다. 읽는 이의 손아귀에 잡혀 꼿꼿하게 서있는 모습이 왠지 근래의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달까.나는 사람이 어렵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선 그들이 말을 모두 경청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내가 느끼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보단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상대를 존중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이 말이 무례하진 않은지 조금은 생각해보고 단어와 문장을 골라 말을 건네는 편이다. 그러니 대화의 흐름은 무언가 매끄럽지 못하고 어색하다. 만약 누군가 나와의 대화가 어색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날 유독 더 공을 들였기 때문이고 아마 집에 가자마자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 놓고 잠에 들기 바빴을 것이다.처음 보거나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어도 자신의 아픈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가 겪은 상처나 아픔을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게 감정이 동요되고 전이되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롭다.하지만 의무적으로 그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제스처와 뉘앙스를 충분히 드러낸다. 너무 반응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무안해질테고, 또 너무 지나치게 반응하면 그에게 가식이라는 무례를 범할 수 있으니까. 너무 과하지 않고 지나치지도 않도록, 나보다는 상대를 위한 너무 많은 고려와 생각에 빠진다.더 큰 문제인 건,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행동을 미덕으로 여기며 경청과 조언을 할 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내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닌, 상대에게 좋은 사람임을 인정받기 위해 타인의 의사를 의존했고 지나치게 수용했다. 상대가 평상시 자주 쓰는 말과 표현, 관심사를 익히 파악하여 주로 상대에 맞춰 주기 바빴을 정도였으니까.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은 판단이며, 판단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타인의 의사를 수용하지 않는 것이 인간 정신의 정점이라 말했다.또한 인간의 나약한 정신은 자신의 이해와 통찰을 동원하기보단 타인이 떨어트린 몇 마디 말을 빠르게 주워 담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몰래 삼킨 후 배설하길 즐겨한다고도 했다. 스스로 통찰을 통해 독립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닌, 손쉽게 타인의 그럴듯한 판단을 마치 제 것인양 행한다는 것이다.그간 내가 생각했던 ‘좋은 사람’은 애매했다. 그래서 올해엔 서점 매대의 가장 바깥에 놓인 책처럼 자유롭고 유연한 형태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보려 한다. 타인의 인정과 판단보단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 더 근사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니까.

2024-01-08

주가 조작이 아니라 명품백이 문제다

김진국 고문 ‘김건희 특검법’이 총선 쟁점으로 등장했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부터 상대 당의 표적이었다. 정치판에서 가족은 좋은 공격 소재다. 역대 대통령들도 가족이 공격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버킷 리스트’ 의혹으로 비난받았다. 옷과 장신구도 구설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에 대한 수사는 참담한 비극으로 끝났다.부인이 근신해도 다른 가족이 표적이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은 ‘소통령’으로 불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세 아들이 모두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권력자 가족의 사생활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가끔 드러난 단편적인 언행이 갖은 추측과 왜곡으로 부풀려져 전파된다. 그렇다고 국민을 탓할 수는 없다. 권력자 가족의 멍에다. 더구나 그들의 언행은 자칫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김건희 특검법’의 첫 번째 쟁점은 ‘선거용’이냐, 아니냐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반대해 늦어졌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특검 기간은 4·10 총선 선거운동 기간과 정확하게 겹친다. 법안대로 야당이 추천한 특검이 수사하고, 공개 브리핑을 계속하면, 특검이 선거판을 압도할 게 뻔하다.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야당 후보 정치자금 수사를 중단시켰다. 공권력의 개입이 국민 선택을 왜곡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민감한 수사 내용을 연일 발표하면 후보는 보이지 않고, 피의자만 보이게 된다. 정책은 뒷전이고, 수사에서 드러난 가십이 술안주가 될 게 뻔하다. 공정한 선거라 말하기 어렵다.더구나 민주당은 재표결을 2월 이후에 하자고 한다. 공천에서 탈락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의 동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의힘이 물갈이 공천을 방해하는 것이고,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그러면 특검 수사를 받을 만한 일인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윤 대통령이 결혼(2012년 3월)하기 전에 일어났다. 문 정부에서 2년간 수사했다. 윤 대통령이 ‘식물 검찰총장’으로 손발이 묶인 상태라 일방적으로 봐줬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조금의 의심마저 털어내려면 특검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선거 직전이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특검 찬성 여론이 높은 건 김 여사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그렇지만 주가조작에 큰 관심이 없다. 문제는 김 여사에 대한 불신이다. 언행이 너무 가볍다. 김 여사는 대선을 앞두고 2021년 9월 서울의 소리 기자와 전화로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대통령 선거 직전인 22년 1월 그 녹취록이 보도돼 윤 후보와 선거캠프를 당혹하게 했다. 21년 12월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마저 무색해졌다.김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라고 약속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4개월만인 22년 9월 또다시 서울의 소리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었다. 비열한 함정 취재다. 그렇다고 김 여사의 언행이 용서되는 건 아니다. 조작이건 아니건, 왜 명품 가방을 받았나. 더 기가 막힌 건 그자리에서 한 이야기다. “통일사업을 같이 하자”니. 영부인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다. 더구나 정체도 의심스러운 사람과 사담(私談)으로 할 이야기인가.‘쥴리’라는 모욕적인 공격까지 받은 김 여사는 억울한 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김 여사의 언행은 국민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겼다. 앞으로 어떤 언행이 갑자기 튀어나올지 불안하다. 김 여사는 이미 사인이 아니다. 잘못하면 개인이나 집권당뿐만 아니라 국가에 부담을 준다. 제2부속실을 당장 만들어, 김 여사가 공적 영역에서 투명하게 움직이게 도와야 한다.특검이 선거용이라고 의심하면, 선거 뒤에 하면 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언급했다 거둬들였지만 하나의 대안이다. 그래야 거부권 행사를 변명할 수 있다. 특별감찰관 임명도 미룰 이유가 없다. 대통령 가족을 통제하지 못하면 심각한 재난이 된다. 특히 김 여사가 스스로 자신을 던져야 길이 생긴다. 진심을 담아 사과부터 해야 한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1-07

영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선에 서다

박남서영주시장 2024년 청룡의 해를 맞아 굳은 의지와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갖고 영주의 빛나는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가자는 뜻으로 신년 화두를 금석위개(金石爲開)로 정하고 시민과의 소통과 화합을 바탕으로 한단계 도약하는 해로 성장시키는데 모든 힘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우리 시는 멈춤 없는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7가지 중점 전략으로 세계로 도약하는 첨단 미래산업도시, 소비자 중심, 기술 중심, 환경 중심의 혁신농업도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특색있는 문화관광도시, 삶의 질이 높은 행복도시, 품격 있는 복지 도시, 더 안전하고, 더 행복한 삶을 약속하는 도시, 시민 중심의 열린 도시 건설을 선정했다.2023년은 무수한 어려움을 극복해 낸 영주시에는 또 하나의 선명한 나이테가 새겨졌다.지역 최대의 관심사였던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지정 승인, 영주댐 준공, SK스페셜티의 대규모 투자 양해각서 체결에 이어 KTX-이음 서울역 운행이 확정돼 올 연말부터 운행을 시작하는 등 지역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커다란 사업들이 성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그동안 영주에서 서울을 가기 위해서는 청량리 역에서 하차해 도보와 지하철로 이동해야 했지만, 서원주역에서 강릉선 KTX 와 결합해 서울역까지 연장 운행하게돼 소요 시간이 20분 이상 줄어드는 것은 물론, 갈아타지 않고 직행하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됐다.현재 하루 16회(주중 14회, 주말 16회) 운행중이지만, 18회(주중 16회, 주말 18회)로 2회 증편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시간대로 편성될 예정이다.중앙선 KTX-이음 서울역 운행으로 영주를 비롯한 경북북부지역의 서울 중심부 접근성이 개선되는 것은 물론, 서울역과 인천국제공항을 연결하는 공항철도에도 바로 접근할 수 있어 인천국제공항 이용도 한결 용이해 질 것으로 보인다.이번에 연장 운행된 중앙선과 더불어 현재 추진 중인 동서 횡단철도가 건설되면 영주에서 서울까지 1시간대, 서해안과 동해안까지 2시간대 교통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되어 지역 산업 성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석사와 소수서원, K-문화를 체험하는 테마파크 선비세상, 무섬마을 등 전통 문화관광 도시로서의 역할도 더욱 커져 철도 도시로서의 옛 명성을 회복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철도뿐만 아니라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영주지역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올해 8월 25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최종 지정·승인을 얻어냈다. 경북 북부권 최초의 국가산업단지가 탄생한 순간이다.2024년 상반기 착공, 2027년 준공 계획인 영주 첨단베어링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 연간 경제 유발 효과 760억 원, 직·간접 고용 4천700여명 등 1만 300여 명의 인구 증가 효과를 얻게 돼 인구 소멸지역 위기 극복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올해 7월 28일에는 SK스페셜티(주)와 경상북도, 영주시가 반도체 디스플레이용 신소재 제조 공장 신·증설 투자에 대한 5천억 규모의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투자가 완료되면 200명의 신규 채용과 총 57만㎡에 달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용 특수 소재 생산 기반을 확보해 단일기업으로 산업 클러스터에 준하는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영주시의 관광지도 또한 변신을 시작했다.2016년 본댐이 완공된 후 준공 승인이 나지 않아 지역의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 온 댐 준공도 드디어 해법을 찾은 것이다.지난 1년간 그 어떤 현안보다 우선해 영주댐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 결과, 준공의 걸림돌이 되어온 문화재 이전 문제가 해결되며 9월 최종 준공됐다.영주댐은 앞으로 치수시설 외에 대규모 관광단지로 개발해 건강과 관광, 스포츠를 아우르는 명품 관광지로 거듭나게 된다.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영주시의 모든 도전이 선명하고 확실한 성과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다가오는 새해, 푸르고 넉넉한 영주라는 나무 아래에서 모든 시민들이 활짝 웃는 모습을 그려본다.

2024-01-07

고요를 마법처럼

이희정시인 노래하지 않고노래할 것을더 생각하는 빛.눈을 뜨지 않고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빛.사랑하기보다사랑을 간직하며,허물을 묻지 않고허물을 가리워 주는 빛.모든 빛과 빛들이반짝이다 지치면,숨기어 편히 쉬게 하는 빛,그러나 붉음보다도 더 붉고아픔보다도 더 아픈,빛을 넘어빛을 닿은단 하나의 빛.―김현승, ‘검은빛’ 전문 (김현승 시전집, 2005.)검정이 색이 아니라고요? 인상주의 선구자였던 르누아르는 검정은 색의 여왕이라고 반격했다. 검정은 모든 색의 부재, 그래서 색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던 때가 있었기에.겨울의 감성은 무채색에 가깝다. 한 해를 마치는 것도, 새해가 시작되는 것도 겨울이 하는 일이다. 겨울 속에는 마침과 시작, 어둠과 환희의 빛이 모두 있으므로. 모든 시가 신과 사랑, 혹은 우울을 다루듯이 검은색 또한 혼돈, 신비, 미지, 죽음, 무의식을 품고 있다.밝음을 나타내기에 검정만큼 역설적인 색이 있을까. 우리의 겨울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색으로 캄캄해서 외려 환하다.빛의 색인 무지개의 색을 모두 합하면 흰색이 나온다. 검정에는 빛이 전혀 없으며 모든 것은 검정으로 끝난다. 부패한 고기가 검게 변하고 식물이나 치아가 썩어 검게 되는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을 때가 ‘블랙아웃(blackout)’이라면, 김현승 시인(1913~1975)의 검은빛은 “모든 빛깔에 지친 통일의 빛”이다.시에서 검은빛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재생과 자성의 생명력을 내포하는 긍정적 이미지로 미지의 색이다. 시 ‘검은빛’은 시인의 세계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노래하지 않고,/노래할 것을/더 생각하는 빛”, “눈을 뜨지 않고/ 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빛”으로 묵상함으로써 고도의 정신적 가치를 지닌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도는 언제나 ‘무위’하면서도 하지 않는 일도 없다. 김현승은 꽃마다 색깔을 말할 수도 있고 이름을 물을 수도 있지만 하나로 수렴하여 근원적인 의미를 찾고자 한다. 빛을 넘어 빛에 닿은 단 하나의 빛으로.김현승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상황을 지나며 시대적 현실을 긍정적으로 변환시킨시인이다. 검은빛은 희망으로 찬란하고 넘치도록 낡은 그림자를 밀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때 검정은 검은빛으로 치환된다. 무표정한 검은빛에는 마음속에서 활동하지 못하거나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치가 절하된 것들을 일으키려는 시인의 선한 의지가 잠잠히 괴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하기 보다/사랑을 간직하며,/허물을 묻지 않고/허물을 가리워 주는 빛”으로.지치고 상처 입은 영혼들아 모두 내게 오라는 위안의 주문처럼 시인의 검은빛이 감싸는 그늘이 평온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보이지 않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깊은 내면이 모인 힘이라고, 그림자처럼 말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매우 넓고 깊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무채색 마법은 힘이 세다. 꿈틀거리는 새해가 빛을 물고 오고 있다.“붉음보다도 더 붉고 아픔보다도 더 아픈, 빛을 넘어 빛을 닿은 단 하나의 빛”

2024-01-07

공공도서관의 독서동아리를 위하여

유영희 작가 새해가 되니 새로 시작하는 것이 많다. 동네 도서관에서도 독서동아리를 새로 신청받는다고 한다. 그동안 H 생협에서 꾸준히 독서 모임을 하다가 작년에는 동네 도서관에 ‘감정과 뇌과학’이라는 주제로 독서동아리를 신청하여 운영했다. 올해도 ‘감각과 장과 뇌’라는 주제로 동아리를 만들어 인간의 감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장이 뇌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공부할 예정이다. 작년처럼 전문가 초청까지 계획하고 있다. 동아리 초청이라 강사비가 너무 적었지만 모두 기꺼이 달려와 주셨는데, 올해 초청한 분도 흔쾌히 수락하셨다. 며칠 전 사서에게서 들으니, 올해 동아리 신청이 작년보다 두 개 더 많아질 것 같다고 한다. 이웃 어느 도서관은 동아리가 너무 많아 공간이 부족하여 기준을 정해 선별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이런 소식에 독서동아리 증가가 당연히 전국적인 현상일 것이라 생각하고 실증 자료를 찾기 위해 통계를 찾아보니, 아쉽게도 우리 지역의 특수한 상황일 뿐, 전국적인 추세는 아닌 것 같다. 인구 많은 서울시가 독서동아리 숫자는 가장 많지만, 최근 3년간 독서동아리와 참여 인원은 오히려 감소 추세이고, 전국 독서동아리 상황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2013년에 나온 독서동아리 실태 조사에서 언급된 문학 편중 현상이 최근 조사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2020년 이은주, 정하영, 윤유라의 연구 ‘독서동아리 운영 현황과 과제’와 2023년 심효정의 ‘공공도서관 독서프로그램 운영 현황 및 정책 제안’을 보면, 독서동아리에서 읽는 도서가 문학 등 4개 분야로 한정되어 있고 다른 분야는 미미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많은 예산을 쓰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독서 대전’이 지속적인 독서 문화를 만드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눈여겨볼 만했다. 연구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공공도서관의 독서프로그램에 1회성 행사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황도 아쉬운 부분이다.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이 도서관 탓은 아니다. 실제로 유명 작가나 와야 겨우 도서관에 발걸음하는 주민이 많고, 소설 같은 문학 분야가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책을 읽는 것도 우리 사회의 베스트셀러 중심의 독서 편식의 반영이기도 하다.그럼에도 일부 지역만이라도 독서동아리가 증가하고 있고, 독서동아리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는 상황은 고무적인 일이다. 어느 도서관에서는 인지력이 떨어진 고령층을 위해 책놀이 활동 동아리가 올해 출범했다고 하고, 책을 수선하는 책구조대라는 동아리도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작년에 EBS에서 ‘당신의 문해력’이나 ‘책맹인류’를 통해 진단했다시피, 독서 재난 시대를 헤쳐갈 방법은 행사나 이벤트가 아니라 독서동아리뿐이다. 새해 공공도서관 정책을 입안하는 관계자들은 다양한 독서동아리가 내실 있게 운영되기 위해서 도서관이 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해 주면 좋겠다. 이와 함께 독서동아리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도 하루빨리 정비되기를 바란다.

2024-01-07

사람 마음을 얻는 혁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역린’은 1776년 만 24세의 나이로 임금 자리에 오른 조선 22대 왕 정조의 암살을 다룬 영화이다.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노론과 정순왕후 세력에 홀로 맞서 싸우는 정조의 인간적인 면과 군주로서의 면모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 왕의 시중을 드는 상책 갑수는 어려서부터 암살을 목적으로 길러져 정조 곁에 있으면서 암살을 시도하다가 정조의 인간적인 모습에 마음을 바꿔 오히려 양 아버지인 상선을 죽이고 정조를 구한다.정조는 경연장에서 왕을 허수아비처럼 대하고 사서오경만을 반복하는 신하들에게 문자를 넘어 실제를 논하고 그 근거와 대안을 논해야 진정한 경연이고 학습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자 중용 23장을 인용하여 대신들을 나무란다. 개인적으로 이 대목이 정조라는 군주가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했다.필자 역시 혁신활동을 국내는 물론 해외 다수의 국가에 전파하면서 느낀 것은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중용 23장의 교훈이야 말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혁신활동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직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P사의 현장 혁신 활동은 4개월간 현업에서 Off되어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개선리더 과정과 일상업무 중에 발생하는 불합리한 부분을 해결하는 일상개선활동이 있다. 이 모두를 경험한 직원들 중 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여 인재창조원 6개월 간의 교육을 이수하고 인증을 통해 현장 활동을 지도하는 QSS FT(퍼실리테이터)자격을 부여한다.QSS FT로 임명된 후 2년간 활동을 하는데 초기에 현장 직원들을 찾아가면 냉대하거나 가끔 전화를 통해 ‘이런걸 뭐 하러 하느냐!’하면서 언성을 높이는 직원이 있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현장에 자주 찾아가서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도와주라고 조언한다.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도와주다 보면 은연중에 본인의 말이나 태도에 묻어 나오게 되며 직원들은 실제 그렇게 해서 1년 정도가 지나면 ‘조언해준 대로 하니 직원들이 고마워하고 찾는 사람이 많아 졌습니다’라고 하는 QSS FT가 많다. 심지어 2년간 활동 후 현업에 복귀하여 협의회 대표가 된 경우도 있고 부서장에게 인정 받아 복귀하면서 바로 직책을 맡아 가기도 한다. 영화 ‘역린’의 중용 23장 말 그대로이다.‘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되고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게 된다. 밝아지게 되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공간적으로는 나와 동료, 시간적으로 지금과 나중 모두가 좋아지는 진리와도 같은 것이다.

2024-01-07

22대 총선 관전을 위한 기본 변수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총선 90여 일을 앞둔 이 시점에서 총선결과를 예측하기는 무척 어렵다. 아직 여야는 선거구도 확정하지 않았고 비례대표 선거 방식도 합의되지 못했다.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극한 대결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강서 보권선거의 집권 여당의 참패는 집권 여당의 당대표 교체로 이어졌다. 야당의 어느 원로는 민주당이 총선에서 200석을 얻을 것으로 낙관했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오는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총선은 누가 승리할까. 일반적으로 총선 결과를 예측하는데는 선거의 구도, 인물, 정책이라는 3개 변수를 활용한다. 그중 선거의 대결구도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변수이다. 여기에 더하여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이라는 인물 변수, 나아가 정치적 이슈나 공약 등 정책 변수도 빼놓을 수 없는 변수이다. 이런 3개의 변수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표심을 유도하고 그것이 후보의 당락으로 연결된다.이번 4월 총선의 선거 구도부터 살펴보자. 현재의 소선거구제하에서 양자구도와 다자 대결 구도는 우선 검토해야 할 상항이다. 선거구별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하에서는 1등만 당선되고 많은 사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현행 비례대표 47석은 이를 보충 보완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의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원래의 목표와 달리 수많은 위성 정당을 출현시켰다. 그 결과 거대 양당의 갈라 먹기 식 독점체제는 더욱 굳어져 버렸다. 위성 정당의 출현은 제3당의 의회 진출은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이 되었다.대통령제와 소선거구 제하에서 신당의 약진에는 한계가 따른다. 여권의 금태섭·이준석, 야권의 이낙연 대표 등은 신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이들 제3 신당이 빅 텐트와 스몰 텐트를 통해 어느 정도 지지를 획득할지도 관심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당이나 사회당 등 진보 정당의 위상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제3당의 세력 규합 여부가 이번 총선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어느 선거에서나 유능한 후보의 공천은 선거 승패를 좌우할 변수다. 그러나 지역적 정서가 선거판을 좌우하는 TK나 호남에서는 정당의 공천여부가 후보의 당락을 결정한다. 그렇지만 수도권과 충청권 선거에서는 아직 후보의 인물 변수가 선거 결과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집권 여당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선거전을 진두지휘하고, 야당은 이재명 대표 체제로 선거를 치를 전망이 우세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참신성을 내세워 당 조직을 정비하고, 민주당은 친명 중심의 선거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여야는 공히 공천관리 위원장을 임명하고 후보 공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이번 총선에서 여야는 참신하고 유능한 후보의 공천을 통해 선거의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여야의 경쟁적인 인재의 영입은 기득권 세력의 물갈이와 연관되어 있다.여당에서는 검찰 출신인사나 용산 대통령실이나 행정부출신 인사의 공천 여부, 야당에서는 비리 연루 의원이나 기득권 세력의 교체 문제가 유권자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선거의 공약이나 정치적 이슈 등 정책변수도 선거의 중요 변수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3년째 총선에서 야당은 ‘정권 심판론’을, 집권 여당은 ‘국정안정론’을 기본 쟁점으로 부각할 것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주가조작 특검법과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는 그 연장선상에서 제기된 선거 쟁점이다.대통령의 30%대의 낮은 지지율이나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여야 공히 선거 시의 불리한 쟁점이다. 이재명 당대표의 피격 사건은 극단적 대결정치가 초래한 비극이다. 한국사회의 인구 절벽, 기후위기, 에너지 문제는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의 쟁점으로 부각되기는 어렵다. 절박한 민생문제와 정치개혁 과제도 선거과정에서 여야의 공방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에서도 집권 여당은 포퓰리즘적 공약을 남발할 것이고, 야권의 대정부 비판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유권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출 것인가.여야의 공천 일정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국회에서는 특검 거부 재의결 문제로 또다시 격돌할 조짐이다. 선거판이 과열될수록 여야의 마타도어나 네거티브 공세는 더욱 커질 것이다.이 와중에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선거판을 크게 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거 승리를 위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독자 노선 선언, 민주당 이재명 당대표의 전격사임, 선거 전야의 음모론적 마타도어, 제 3 신당의 선거 연대의 합의, 휴전선 상의 남북 무력 충돌 등 돌발변수는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이러한 돌발사건은 수습할 겨를도 없이 끝나 버리는 경우가 많다.현재로서는 이번 총선에서 어느 일방의 압도적 승리는 예상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이번 선거에 압승하여 국정운영의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야당 역시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하여 검찰 독재국가를 견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총선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 진행 과정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2024-01-07

나라와 기업이 살길 ‘농지 태양광 농사’가 답이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인 마을을 그려보라고 하면 북향에 야트막한 산과 중간에 햇볕이 가득한 마을과 남향에 개천과 들판이 있는 남향받이 마을이 그려질 것이다.우리는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사람 사는 마을의 최적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옛날부터 사람 사는 곳과 농사 잘 되는 곳은 산과 강과 들이 잘 어우러지고 햇빛과 바람이 풍부한 곳이다. 이런 곳은 사람 살기도 좋고 농사짓기도 좋아서 작게는 마을이 들어서고 크게는 도읍이 들어섰던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도시도 규모만 다를 뿐 모양은 대동소이하다.기후 위기를 맞아 탄소중립을 달성하고자 태양광과 풍력 등 무한 재생이 가능한 에너지원을 찾아 재생에너지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농지를 제외하고 태양광 발전 부지를 찾고 있다. 농지를 제외하니 주택, 공장, 축사의 지붕, 주차장 옥상 등을 빼고는 태양광을 설치할 곳이 없어서 태양광 발전이 한계에 부딪혀 우리나라는 태양광 하기에 땅이 좁다는 말까지 나온다.하지만 햇빛이 가장 풍부한 농지를 제외하고 태양광 설치할 땅을 구하기는 힘들다.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등 태양광 선진국에서도 태양광 발전은 주로 도시 주변 농지에서 한다. 그리고 아무리 햇볕이 좋아도 재생에너지가 쓰이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송전선로 문제로 인해 득보다 실이 많다.우리나라는 국토의 67%가 산지이고 농지는 15%이며 나머지는 도시, 마을, 도로 기타 산업시설이 차지한다. 따라서 농지를 빼고는 태양광을 설치하기에 적당한 대규모 땅을 찾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태양광이 필요한 곳은 대도시와 대규모 산업단지인데, 이런 곳들은 대부분 넓은 평야지대에서 농지에 둘러싸여 있다.그렇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즉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가 필요한 도시와 산업단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산업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농지(대부분 절대농지)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절대농지에 건축시설물을 설치할 경우 8년 만에 원상복구 시켜야 하는 농지법 규정으로 인하여 수명이 최소한 25년에서 거의 무한대에 가깝고, 원가 회수에 5·6년 정도 걸리는 태양광발전 시설을 할 수가 없다.도시와 산업단지에 인접한 농지에서 태양광 발전을 해서 바로 전기를 공급한다면 부족한 송전선로 문제도 해결될뿐더러 버려지고 방치된 농지가 재생에너지 생산의 주역으로써 에너지 안보를 책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명목으로 농촌, 농민에게 뿌려지는 연간 10조를 넘어서는 지원예산도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현재 우리나라 농지는 150만ha로 농가 한 가구당 1ha 약간 상회하고 있다. 이 농지 중 24% 즉 36만 ha에 해당하는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한다면 1억 2천만kWh 이상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서 원자력 발전을 기저전력으로 30% 가량 사용할 경우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은 달성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되는 태양광은 15년쯤 지나면 효율이 두 배로 높아져서 앞으로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농지 태양광과 함께 소형 풍력발전을 농지 주변에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킨다면 혹여나 부족한 재생에너지 조달 또한 가능할 것이다.소형 풍력발전은 아침, 저녁이나 날씨가 흐린 날 산바람, 골바람, 비바람으로 태양광 발전을 보완할 수 있다. 하루 동안 발전량도 태양광의 2·3배에 달하며 소요 부지도 태양광의 10%면 된다. 우리나라는 지역에 따라 하루 8시간 이상 15시간 정도 바람이 분다.인건비 건지기도 힘든 농업을 바탕으로 매년 정부 보조금 10조 원 정도에 매달려 살아가는 농민들에게 매년 20조 원 이상(첨단 스마트팜 융복합산업인 경우 60조 원 내외 소득 창출)의 태양광 발전 소득을 통해 농촌이 살아나고 소멸해 가는 지방이 소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산업단지는 농지 태양광 발전으로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받아 RE100을 달성하고,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립’을 달성함으로써 새로운 미래가 열리게 될 것이다.2022년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는 472억 달러인데, 한 해 동안 에너지 수입액은 1천908억 달러로 총 수입액 7천312달러 중 26%에 달한다. 농지 태양광 발전을 통해 에너지 수입의 50%만 줄여도 우리나라는 무역흑자 국가로 돌아선다. 농지 태양광으로 에너지 자립도 이루고 무역흑자 국가로 돌아설 수 있다. 농지 태양광이 무역적자 해결책이며 미래 우리나라 발전의 신성장 동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새해에는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농지가 나라를 살리고 지방도 되살리고 농촌과 농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도록 ‘농지 태양광 농사’를 적극 살려나가야 하겠다. 농지 태양광 발전을 통해서 농촌과 농지가 RE100이 시급한 수출 기업들에게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해 주고 기업들이 RE100 경쟁력을 바탕으로 쑥쑥 커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원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4-01-07

꿈의 도돌이표?!

김규종 경북대 교수 연말연시를 맞으면 찾아오는 생각이 있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에 관한 상념이다. 연초에는 누구나 야심 있게 몇 가지 기획을 구상한다. 건강과 부 혹은 명예를 향한 갈망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다.‘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허망한 생각이지만, 기획안을 구상할 때 우리는 웅대한 기획자로 거듭나는 순간을 경험한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혹자는 신년 기획을 아예 일정표에서 제외해버린다. 훗날 찾아드는 허망함과 무기력증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게 나의 소감이다. 인생사에서 우리가 충분히 실천하여 본래의 기획을 만족시킬 정도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얼마 전 본 서책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We become what we think about)’. 이런 부류의 서책은 다채롭게 출시돼 있는데, 이른바 ‘끌어당김의 법칙’에 속하는 책자들이 그것이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지은이들의 경험과 주장이 이채롭게 기술되어 있기에 숱한 독자를 거느린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독일 출신의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세 가지 무능(無能)에 관해 설파한다. 그런 생각을 하도록 그녀를 인도한 전범(戰犯)이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이었다. 자신이 서명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죽음으로 직행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히만은 맡은 직무에 기계적으로 충실한다. 깊은 사유와 인식이 결여(缺如)된 국가 공무원 아이히만을 질책하면서 아렌트는 세 가지 무능을 지적한다.‘생각의 무능(inability of thinking)’과 ‘언어의 무능(inability of speaking)’ 그리고 ‘행동의 무능(inability of acting)’. 참으로 통렬한 지적이다. 아렌트는 생각의 무능이 언어의 무능을 낳고, 언어의 무능이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아렌트의 명제에서 우리는 인간 행동의 바탕에 생각이 자리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말이 씨가 된다는 표현이 있는데, 말의 근원을 파고들면 거기 생각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잠재의식이라 부른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이 잠재의식에 각인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되어 나온다. 그 말은 다시 타자와 대화하는 과정에도 부지불식간에 흘러나오고, 그것이 다시 우리의 행동과 직결되는 것이다.일상적으로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는 생각이 오늘의 우리를 만든 주재자이며, 앞으로도 우리는 만들어갈 근저에 자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연말연시에 깊이 있게 돌아보면서 새로운 결심과 단호한 결기를 가지고 실천할 방도를 구한다면, 우리 인생은 풍요롭게 인도될 것이다.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기획조차 시도하지 않음은 비겁한 일이다.게으르고 무능하며 타협하기 좋아하는 생각에 대못을 박고, 강력하게 경고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인생 항로를 기획하고 실천해보는 용감하고 웅혼한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24-01-07

사회 갈등과 정치 테러

우정구 논설위원 갈등(葛藤)이란 칡덩굴이나 등나무 덩굴처럼 엉망으로 뒤엉켜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개인이나 여러 집단 사이에 서로 다른 의견, 행동, 신념, 목표로 인해 서로 충돌이 일어나는 현상을 우리는 사회적 갈등이라 부른다.빈부갈등, 부부갈등, 종교갈등, 노사갈등, 남녀갈등, 이념갈등 등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갈등요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수많은 갈등요소를 법적으로 민주적으로 잘 풀어가는 것이 바로 정치다.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말했다. 인간은 개인적으로 존재하지만 홀로 살 수는 없다. 사회적 공동체를 형성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그래서 그는 국가없이 살 수 있는 자는 인간 이상의 존재이거니 인간 이하의 존재라고도 말했다. 인간은 정치 공동체인 국가를 떠나 살 수 없고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면서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고 했다.복잡한 세상에 갈등이 없을 수야 없지만 갈등이 사회적으로 커지면 국가 존립도 흔들게 된다. 최근 국가보훈처가 한 연구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은 한국사회의 갈등이 과거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종교분쟁이 있는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하다고 밝힌 바 있다.총선을 앞두고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테러가 발생한 것도 한국사회의 높은 갈등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정확한 테러 이유가 밝혀져야겠지만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대립과 증오를 부추기는 한국정치는 이런 사회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정구 (논설위원)

2024-01-07

울릉도·독도 대한민국 아니다?…재난방송 때마다 제외

김두한 경북부 울릉도 주민들은 재난방송에 대해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대한민국 재난방송에 최소한 울릉도와 독도는 없다. 우리나라를 내습하는 태풍의 진로가 북북서진, 서해로 진입 후 북동진하면서 한반도를 통과한 뒤 동해로 빠져나갈 때마다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나라 재난방송에서 제외된다.  이때 재난방송은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 동해로 빠져나가 우리나라에는 영향권에 벗어났다고 방송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울릉도는 태풍의 한가운데 놓인다.  태풍의 진로가 한반도를 관통하거나 동해로 진출해도 중국 등에 걸쳐 있는 대륙성 기압으로 북진하지 못하고 동해로 빠져나간다. 이때도 울릉도는 태풍영향권에 들게되지만, 재난방송은 우리나라를 빠져나갔다고 예보한다. 울릉도 주민들은 죽기 살기로 태풍과 싸우고 있는데 이렇게 방송하니 불만이 극에 달한다. 그런데 지난 1일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노토(能登)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7.6 강진이 발생을 때 재난방송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모든 재난방송과 언론 보도는 1일 오후 4시10분 일본 노토반도 북쪽에 규모 7.6 지진이 발생했다며, 우리나라 동해안 지진해일(쓰나미) 최초 도달시점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강릉 남항진 오후 6시 1분(최고 높이 20cm),  동해묵호 오후 6시 6분(67cm), 속초 오후 6시10분(최고 높이 41cm), 삼척임원 6시15분(30cm), 울진후포 6시 52분(18cm)이라고 했다. 울릉도와 독도는 서해에 있나? 일본 서해에서 발생한 지진의 해일이 한반도에 도달하려면 당연해 울릉도와 독도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재난방송 어느 한 곳도 울릉도와 독도는 없다. 독도에는 포항지방해양수산청 소속 독도 등대 공무원, 경북지방경찰청 독도경비대원 등 최소 30명이 거주하고 있다. 울릉도에는 관광객을 포함해 약 1만 명의 국민이 있다.  그런데 일본지진 발생으로 해일이 울릉도를 언제 덮칠지 모르는 상황인데 대한민국 재난방송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해일도달 시간을 아예 알리지 않았다. 울릉도와 독도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해일에 쓸려가도 괜찮다는 뜻인지? 일본 서해지역에서 지진으로 해일이 발생하면 울릉도에 가장 먼저 도달하지만, 수심이 깊어 해일의 높이가 한반도 동해 해안가보다 낮다. 하지만, 재대로 아는 국민이 없다. 당시 울릉도에 사는 친인척 등에게 전국에서 전화문의가 쇄도하는 등 난리가 났다. 따라서 재난방송은 도달시각과 해일 높이를 공지해 줘야 한다. 울릉도에는 해일을 감지하는 측정기계가 설치돼 있다. 충분히 알릴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도 재난 방송은 먹통이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기상 정보를 볼 때 재난 시 울릉도와 독도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독도에 해일 영향이 있다고 일본 기상청이 표시하자 우리나라 언론이 난리 났다, 독도는 한국 땅인데 일본이 자국영토로 표시했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우리의 재난방송에는 울릉도 독도가 무시됐지만,  일본은 울릉도 독도에 미칠 해일의 영향을 자세하게 예보했다. 도대체 독도가 한국 땅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독도에 있는 국민은 재난문자도 받지 못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영토로 표시했다고 떠들기에 앞서 우리나라 기상청이 먼저 독도에 닥칠 해일 도착 시각과 높이를 예고 해주는 것이 마땅한 순서이다.  울릉도와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면 그곳에 사는 국민의 안전부터 지켜내야 한다. 재난의 위험에 놓인 국민의 안전을 팽개치면서 영토를 올바로 지킨다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김두한기자kimdh@kbmaeil.com

2024-01-07

“아파트 화재, 피난·대피요령을 따르세요”

심학수 포항북부소방서장 가정의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푸른 청룡의 해가 시작되는 1월, 안타깝게도 연이은 아파트 화재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아파트 화재는 일반화재보다 다수의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평소에 피난·대피요령을 잘 숙지해야 한다.한가지 사례로 23년 3월 수원시 아파트 1층에서 발생한 화재의 경우 계단실로 연기가 확산된 상황에서 세대 내로 화염·연기가 확산되지 않았으나 계단으로 대피 중 연기흡입으로 계단에서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2019~21년 화재통계연감 자료에 따르면 공동주택 화재 시 발생하는 인명피해는 대피 중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와 같이 아파트 화재 발생 시 무조건 대피하기 보다는 상황에 맞는 정확한 행동 요령이 필요하다.안전하고 정확한 아파트 화재 피난 대피 요령을 살펴보자.첫 번째, 본인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현관으로 대피가 가능한 경우에는 낮은 자세로 지상층 및 옥상 등 안전한 장소로 대피한다. 이때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고 엘리베이터는 사용하지 않는다. 화재 시 엘리베이터 안 공간으로 연기가 축적되기 때문이다.두 번째, 현관으로 대피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대피 공간·경량 칸막이·하향식 피난구 등이 설치된 곳으로 이동하여 대피한다. 대피 공간이 없는 경우는 화염 또는 연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문을 닫고 젖은 수건으로 틈새를 막고 구조 요청 후 기다린다.세 번째, 본인 집 외 다른 곳(다른 세대 또는 복도, 계단실, 주차장 등)에서 화재 발생 시 실내로 화염 또는 연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에는 주변의 창문을 닫고, 무작정 밖으로 뛰쳐 나가기보다는 세대 내에서 대기하며 화재 상황을 주시하는 한편 안내방송을 집중해서 듣는다.마지막으로, 본인 집으로 화염 또는 연기가 들어오는 경우에는 현관을 통해 낮은 자세로 지상층 및 옥상 등 안전한 장소로 대피한다. 하지만 복도·계단에 화염 및 연기가 있어 대피가 어려울 때는 대피 공간·경량 칸막이·하향식 피난구 등이 설치된 곳으로 대피하여 구조 요청한다.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생사가 엇갈릴 수 있는 위기의 재난 상황에서, 나와 가족의 안전을 위해 평소 본인 스스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사전의 올바른 안전 및 대피 교육과 화재 예방 실천만이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2024-01-04

대한민국, 어디로 갈 것인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올해는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이다. 4월에 있는 이번 총선의 결과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다. 좌·우로 갈라져 대결하는 양대 진영 중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국운의 향방이 엇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국가 흥망의 기로일 수도 있는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인 것 같다.21대 국회는 다수의석의 정당이 어떤 횡포를 부릴 수 있는지를 낱낱이 보여주었다.더불어민주당이 집권당이었을 때는 이른바 공수처법, 임대차3법, 대북전단금지법, 검수완박법 등을 여야 합의 없이 강행 처리했다. 북한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자 하루 만에 발의되었다고 ‘김여정하명법’으로 불리는 대북전단금지법은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로부터 ‘표현의 자유 침해’‘반인륜범죄 저지 실패 사례’‘민주주의 역행’이라는 강한 우려와 비판을 받았고, 충분한 현장의견 수렴 등 숙의과정 없이 강행 처리한 임대차 3법은 오히려 전세값 폭등, 주거불안 증대, 임대차 분쟁과 갈등 증폭 등의 원인을 제공하여 서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문재인 정권 초기에는 적폐청산이란 명목으로 지난 정권 인사들을 모조리 사법처리한 검찰에 박수를 치더니 그 칼끝을 현 정부의 비리와 부정에 겨누자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편법을 써가면서 부랴부랴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정권이 바뀌어 야당이 되었지만 입법독재의 폭주는 거듭되었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의 임명동의안을 잇달아 부결시키는가 하면 행안부 장관과 당대표의 비리혐의를 수사하는 검사까지 탄핵하고,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무총리 해임 안을 통과시키고, 법무부장관과 임명된 지 3개월 밖에 안 된 방통위원장의 탄핵을 추진하여 자진 사퇴하게 하는 등 온갖 횡포를 자행했다. 우리나라는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가 국민을 대신하여 정치를 하는 대의민주주의, 즉 국민의 대표자로 구성된 의회가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정책 결정권이나 입법권 등을 행사하는 의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의회주의는 다수결 원리에 따르되 원내 세력 간의 대화와 타협을 핵심 운영원리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의회주의를 벗어난 입법과정을 거쳐 법률을 생산하는 것은 다수에 의한 횡포가 만들어내는 입법독재이며, 입법독재는 당연히 법치주의와 양립할 수 없고 법치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만행이다.만약 이번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다수의석을 차지하면, 사사건건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고 훼방을 놓아 식물정부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런 다음 무능정권이라는 낙인을 찍어 대통령 탄핵에 나설 것이고, 그 여세를 몰아 정권 탈환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성과 여태껏 쌓아올린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표퓰리즘과 선전선동이 난무하는 친중·종북의 사회주의로 가겠다는 것이 저들의 시나리오다.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 것인지는 오로지 국민의 손에 달렸다.

2024-01-04

청룡의 기운으로 새해를 열자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2024년 새해가 시작됐다. 갑진년(甲辰年)-‘청룡의 해’이다. 예쁜 연하장에 간단한 덕담을 써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우편으로 보내곤 했지만, 요즈음은 휴대폰 앱으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연말부터 날아오는 새해 인사에 고마운 얼굴들을 그려보며 1년을 시작한다.‘올해는 용띠의 해, 청룡의 기운을 받아 건강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길 바랍니다.’고 써 보냈다.사실 ‘용의 띠’ 해는 양력 1월 1일부터가 아니고 입춘, 그러니까 40여 일 후인 2월 4일부터 시작이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 ‘무슨 띠냐?’고 따지니까 청룡의 기운으로 새해를 시작하자.용은 순우리말로 ‘미르’. 12간지(干支) 동물 중에서 권위와 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이며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물을 다스린다. 또 용감하고 활력이 넘치는 추진력으로 행운과 번영을 이끈다. 그래서 용띠 해에 태어나면 투지와 결단력을 갖추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고 본다.용은 뱀의 긴 몸통에 돼지의 코, 사슴의 뿔, 토끼의 눈, 매의 발, 잉어의 비늘 등 뭍짐승 날짐승 물짐승 모두의 특성을 갖고 크기를 마음대로 변화시키며 비와 구름, 바람과 천둥 번개도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사신(四神) 중의 하나이니, 옛 고분 벽화에도 많이 그려져 있다. 또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顏), 옷을 곤룡포(袞龍袍)라고도 한다.청룡이란 이름도 많이 쓰인다. 고교야구 청룡기대회, 청룡영화제도 있고 1965년 창설된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는 베트남에 참전하여 빛나는 전공으로 무적 해병의 신화를 썼었다. 지형 곳곳에도 용의 이름을 붙인다. 계곡의 늪-용소, 고즈넉한 못-용연 그리고 깊은 우물-용정도 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했다는 구룡포의 전설을 되새기며 호미곶을 돌아오면 구룡소 돌개구멍에서는 파도가 밀려올 때면 하얀 물줄기가 솟는 용트림도 볼 수 있다.용띠 해를 맞아 달라지는 정책과 제도가 많이 제시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출산과 교육·복지 문제일 것이다. 결혼·출산 시 3억원까지 증여 공제를 해주고 부동산은 ‘청년주택 드림’과 신생아 특례를 준다. 최저 임금도 지난해의 2.5% 인상된 시간당 9천860원이 되고, 군 장병 봉급 및 수당도 인상하고 대중교통 할인인 K-pass를 도입한단다. 교육·복지 분야에는 늘봄학교의 전국 도입과 ‘6+6 부모육아휴직제’도 펼치고 환경 및 농수산 분야에서도 각종의 개선을 약속하고 있으니 국민 모두가 ‘용꿈’을 꾸어보자.해가 바뀌어 미국발 금리인하와 대선으로 세계 경기는 회복을 기대하고 있지만 국제 정세는 밝지 않다. 미-중 반도체 싸움, 소련-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분쟁도 걸림돌이다. 국내 문제도 짚어보면 지난해는 견토지쟁(犬免之爭)으로 아무 득도 없는 싸움질만 했고, 100여 일 남은 총선을 앞두고 야당 대표에게 칼을 휘두른 사건이 일어나 앞으로 피 튀기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이 걱정되지만, 올바르고 참신한 인물을 뽑아 ‘개천에서 용 나듯’ 등용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청룡의 해에 푸른빛 동해로 흘러드는 형산강에서 마음속으로나마 용왕제를 올리며 뜻하는바 모두를 이룰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2024-01-04

CES 2024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인 CES 2024가 이달 9∼12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주관하는 CES는 1967년 뉴욕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성장을 거듭해 지금은 가전전시회의 세계 최고봉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올해 전시회에는 150개 국가에서 3천500개 기업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져 있고, 참관객만 13만명이 넘을 것으로 주최측은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만5천명의 재계 및 정관계 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전통가전 기업뿐 아니라 포스코, SK, 롯데 등의 대기업과 전국의 중소기업에서도 많은 이들이 신기술 구경과 비즈니스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CES는 처음에는 가전전시회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자동차쇼와 뷰티, 푸드쇼까지 그 영역이 확대됐다. 급변하는 첨단 신기술의 경연장답게 각국 기업들이 내놓은 신제품들이 요란스럽게 눈길을 끈다.대구와 경북에서도 60여 개 기업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와 정보통신기술, 로봇,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CES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그 중 13개 기업은 CES 혁신상을 수상하는 영광까지 안았다고 한다. 혁신상은 주최사인 CTA가 전시회 개최 전 기술성, 심미성, 혁신성 등을 평가해 우수제품과 신기술에 주는 상이다. 상을 받은 기업들은 이를 활용, 세계를 상대로 마케팅에 나선다.세계는 신기술혁신 등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 지역에서도 CES에 참여하는 용기있는 기업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1-04

TK 의원들 뭣하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달빛철도가 지나갈 영·호남 14개 지방자치단체장이 ‘달빛철도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공동 건의서를 국회의장과 261명의 국회의원에게 전달했다.특별법은 지난해 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상정도 못 하고 해를 넘겼다. 특별법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와 국가의 행정·재정적 지원 등이 담겼다. ‘선거용 포퓰리즘’이라는 일부 주장과 기획재정부의 ‘예타제도 무력화’ 논리에 밀렸다. 동서화합의 상징이자 지방소멸 위기 극복, 수도권 과밀화 해소, 국토균형발전, 국가경쟁력 향상 등 건설 필요성과 당위성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달빛철도 특별법은 근시안적인 경제논리와 수도권 일극주의의 족쇄를 끊고 영호남 30년 숙원사업을 성사시키는 입법이었다. 국회의원 261명이 공동발의했다. 헌정 사상 최다였다. 하지만, 이름뿐이었다. 최종 문턱에서 좌절됐다. 영·호남 국회의원 공동 책임이다. 필요성을 인정했다면 소신을 다해 통과시켜야 했다. 정쟁을 벌일 때면 죽기 살기로 덤비던 의원들이다. 정치생명이라도 걸어야 했다. 하지만, 무기력했고 무능했다. 정치력의 한계였다.국민의힘이 22대 총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TK(대구·경북)를 비롯한 영남권이 물갈이 표적이 됐다. 지역 의원들은 전전긍긍이다. 초·재선들의 대거 탈락이 예고됐다.지역 의원들에 대한 의정 활동 평가는 부정이 주류다. 전문성을 살리지 못했다. 공천에만 목을 맸다. 주목받는 대야(對野) 활동도 없다.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를 막는 행동대가 됐다. 김기현 전 대표의 방패막이가 됐다. 당 지도부의 눈치만 살핀다는 비판이 나왔다. 오죽했으면 홍준표 대구시장이 “황교안에 붙었다가 김기현에 붙었다가, 이젠 한동훈에 붙어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군상들”이라고 통렬하게 비난했겠나.초·재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국회의원 누구도 의정 활동을 좋게 평가받지 못한다. 50% 이상 물갈이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도 물갈이 여론이 50%를 넘는 판국이다.홍 시장은 “재산형성 경위도 소명 못하는 사람, 그냥 무늬만 국회의원인 무능한 사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감 제로인 사람, 비리에 연루되어 4년 내내 구설수에 찌든 사람, 이리저리 줄 찾아다니며 4년 보낸 사람, 지역행사에만 다니면서 지방의원 흉내나 내는 사람 등 이런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지역 의원들을 꼬집으며 ‘놈놈놈’ 식으로 구체적으로 거명했다.그의 언급이 정답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밥값을 하지 못하는 의원들은 이참에 모두 퇴출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다. 존재감 없는 선량은 필요 없다. 적어도 지역과 나라를 위해 몸을 불사를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해야 한다.용산의 불통, 검사 일색의 인사와 가족의 처신을 질타할 수 있는 의원도 나와야 한다. 그런 국회의원을 보고 싶다. 달빛철도 특별법의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를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이번엔 제 몫을 하길 바란다.

2024-01-04

손녀와의 소꿉놀이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린이는 할머니 집에서 잘래 하면서 집에 가기 싫다고 하는 손녀다. 나도 바라는 바이긴 하지만 평소 바쁜 아이들의 일상 때문에 쉽지 않다. 아침에 유치원에 갔다 오후에 학원에서 피아노며 미술을 배운다. 저녁에 두 손주를 데리고 집에 와서 저녁밥을 해 먹이면 아빠엄마가 퇴근 후 데리고 간다. 숙제도 있을 테고 씻고 잠자기에도 여력이 없다. 여간 빡빡한 게 아니다. 주말엔 저희 4가족이 완전체로 살아야 할 거라 싶어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 며칠전 모처럼 집에 데려와 잤다. 유치원 방학 덕분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나지만 같이 자는 건 오랜만이다. 책도 읽고 수다도 떨며 기분좋게 잠들었는데 밤에 기침을 좀 하더니 목이 간지럽단다. 저희 집보다 다소 추운 집 탓인가 걱정스럽다. 오랜만에 같이 잘 수 있어서 좋았는데 아프면 어쩌나 신경이 쓰였다. 병원에 갈래? 좋단다. 손녀는 병원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를 잘 안다. 어릴 땐 막대사탕 얻는 재미였다. 울며 진료실을 나오면서도 사탕을 챙겨 쥐었다. 그러나 이젠 간호사가 줘도 사탕은 받지 않는다. 대신 약국에 들어가면 눈이 반짝인다. 장난감코너에 몸과 눈이 먼저 간다. 아빠엄마는 턱도 없을 걸, 할머니와 할아버진 뭐든 잘 사준다는 걸 잘 안다. 그깟 5천원 남짓의 것, 두말 않고 사주니 병원길은 장난감 사러 가는 길인 셈이다. 작은 소꿉놀이세트를 골라 계산대에 올린다. 할머니랑 소꿉놀이 하고 싶어.포장을 여니 투명 원형 통 속에 다소 조악하고 작은 동물인형이 다섯 개 들어있다. 제 눈엔 예쁜가 보다. 할머닌 뭐가 이뻐? 선심쓰듯 날 보고 하나를 고르란다. 그건 할머니, 그리고 나머진 각각 아빠, 엄마, 오빠, 이모라 하기로 한다. 유성펜으로 인형 밑에 제가 이르는 대로 적었다. 원형통도 버리는 게 아니었다. 각각 밥, 국물, 반찬, 죽이란다. 또 적었다. 포장지도 쓸모가 있었다. 침대와 아기침대로 정했다. 그 역시 글씨로 적었다. 헷갈리지 않아야지 싶었다. 밥도 먹이고 잠도 재우면서 같이 웃으며 얘기하고 떠들었다. 빈 종이상자를 주니 놀이터를 만든다. 펜으로 화장실과 출입문과 미끄럼대를 그린다. 교실도 만든다. 창문을 그리고 책상 몇 개와 사물함과, 꽃도 군데군데 그렸다. 인형들을 데리고 놀이터도 갔다가 교실에 가서 공부도 했다. 그리고 돌아와 밥 먹이고 잠을 재웠다.이튿날 눈 뜨자마자 또 놀잔다. 밥 먹을까 하면서 밥, 죽, 국물을 챙겼더니 오늘은 수영장에 놀러간단다. 수영장 그릴 빈 상자를 주어야 하나. 그런데 놀이터가 수영장이란다. 밥, 국물, 죽, 반찬이라고 쓴 원형통은 보트이자 튜브고, 침대는 수영장의 코치가 앉는 곳이란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잘못한 것을. 난 한 번 정한 역할과 구실과 장소와 용도는 고정된 것이라 생각했고. 펜으로 적었더니 아니었다. 린이의 상상 속에서는 작은 원통은 때론 그릇이고 때론 보트다. 상상의 공간에서는 놀이터가 호수로, 교실이 운동장이 될 수도 있음을 난 몰랐다. 그러고 보니 어제 교실에서 공부하고 놀이터에서 논 건 가족이 아니라 모두 친구들이었구나. 소꿉놀이는 그렇게 하는 거였다. 내가 틀렸고 손녀가 옳았다.

2024-01-03

작심삼일 퇴치법

이규석 수필가 새해 아침, 동해에서 힘차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다. 하지만 바닷가에 쌓은 모래성이 밀려온 바닷물에 스러지듯이 꿈은 사흘을 못 견디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재일교포 3세의 한 청년은 가난했지만 꿈은 야무졌다. “이십 대에 사업을 일으켜 이름을 떨치고, 삼십 대에 천억 엔의 자산가가 되고, 사십 대에는 대기업가가 되며, 오십 대에는 비즈니스로 온 세상을 연결하고, 육십 대엔 후진에게 기업을 물려주겠소. 그리고 우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승지 곳곳에 별장을 지어서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하며 삽시다. 나와 결혼해 주세요.” 지금은 일본에서 일등 부자가 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대학생이었을 때, 사랑하는 여학생 앞에서 밝힌 꿈이었다.꿈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하늘의 별을 따겠다는 허황한 것이 아니라 실현가능해야 하며,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낼지도 분명해야 한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첫 날 사과 상자 위에 올라가 서너 명의 직원들 앞에서 자신의 꿈을 이미 이룬 것처럼 연설했다고 한다. 지금 그는 삼백 개가 넘는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바보들은 결심만 한다. 오징어 물 맹세란 말이 있다. 실행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하나 마나 한 맹세를 두고 한 말이다. 새해 첫날에는 멋진 꿈을 세우지만 꿈은 사흘을 못 버티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며 쓴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많다.‘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조지 버나드쇼의 묘비명 앞에서 해마다 무릎을 치지 않으려면 어슴푸레한 희망사항이 아니라 야무진 꿈이어야 한다.“발레든 공부든 벼락치기는 안 통한다. 나는 나 자신과 경쟁했고, 매일 조금씩 발전하는데 재미를 느꼈다. 힘들게 살지 않으면 기쁠 때 얼마나 기쁜지를 모른다. 인생의 내리막을 만나서는 울면서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동료들은 나를 기계라 부르지만 쉬는 것은 나중에 무덤에 가서 쉴 수 있잖은가. 나는 조금씩 전진하는 기쁨에 나이 드는 게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이 젊은이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공연을 위한 그녀의 성장한 모습은 화려의 극치이지만, 모진 연습 때문에 으깨진 발은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집중과 단련의 달인, 강수진은 기어이 국립발레단장이 되었다.옛날 한 젊은이가 언덕을 오르다가, ‘이곳에서 넘어지면 3년 밖에 살지 못함. 조심하시오.’라는 푯말을 보았다. 겁을 먹은 청년은 너무 조심한 나머지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청년은 땅을 치며 통곡했다.“젊은이, 왜 그리 슬피 우는가?” 그의 곁을 지나던 노인이 물었다.“이 글을 보십시오. 저는 장가도 못 가보고 이제 곧 죽게 되었습니다.”“뭔 걱정인가, 서른 번만 넘어져 보게 젊은이, 백년도 넘어 살겠구먼,”우리도 작심삼일이라는 고약한 버릇을 고치려면 사흘마다 계획을 세워야 할까? 반드시 이루어야 할 꿈이라면 어찌 사흘 만에 무너질 수 있겠는가. 내가 꿈을 향해 달려가면 꿈도 내게 달려온다고 했다. 목표는 글로 써놓고, 이미 이룬 것처럼 상상하면서 매일 말하고 다니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다.

2024-01-03

말 없는 말

피귀자 수필가 아삭아삭 생오이를 씹는 맛,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하다. 어린이들이 천진스럽게 표현하는 언어들은 싱싱한 야채처럼 달고 신선하다. 게다가 까르르 웃음까지 섞어주면 별처럼 색도 되고 빛도 된다.같은 밤길인데도 그 별빛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듯 같은 말인데도 빛과 색에 따라 달리는 열매가 전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사람의 말마다 내는 빛이 있다. 밝고 맑은 말로 사람을 즐겁게도 하고 어두운 말, 탁한 말로 슬프게도 한다.또 어떤 사람은 눈부신 말로 빛의 샤워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영적 에너지가 보고 듣는 사람을 압도하고 설득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나무들이 발갛게 노랗게 한데 어울려 터트리는 단풍들의 합창처럼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어도 시간의 결이 스며든 것처럼 익숙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오래 간을 맞춘 사이처럼 편안하고 배려하는 말 한 마디에는 가슴이 녹기 때문이다.씨앗이 껍질을 벗어야 파릇한 새싹이 나오듯 친절한 말은 세상을 따뜻하고 평화롭게 만든다. 내가 먼저 친절을 베풀면 내 주변이 따뜻해지리라.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가장 먼저 그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살피게 된다. 언어는 영혼, 부모의 영혼이 언어를 통해 아들딸들에게 전해진다. 말을 배울 적에 사랑을 배우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가까이에 항상 예쁜 말을 쓰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과는 자주 대화하고 싶고 자연히 연락도 잦다.‘아’ 다르고 ‘어’ 다르듯 토씨 하나, 점 하나가 뜻을 바꾸는 것이 우리 말 아닌가. 토씨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점을 밖으로 찍으면 ‘나’가 되고, 안으로 찍으면 ‘너’가 되니까. ‘길이 있다’와 ‘길은 있다’도 품은 뜻이 다르듯, 조사 하나로 칭찬의 말이 되기도 하고 조롱의 말이 되기도 하지 않던가. ‘배가 고프냐’에서 ‘가’ 대신 ‘배는’ 이나 ‘배도’를 넣어 억양을 어디에 두느냐를 살펴보면 의미가 극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평생 우리말과 글을 쓰면서도 토씨 하나를 왜 알맞게 쓰지 못하고 오랫동안 어색하게 잘못 쓰고 있는가.무슨 말을 하고, 또 무엇을 하는지 유심히 보면 그가 타인에게 인색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지도 그 사람의 말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말을 지킨다는 뜻이고 말을 행동으로 옮겨 언행일치를 보이는 것. 약속은 그 사람의 삶의 태도뿐만 아니라 믿음과 신용의 수준도 드러내므로. 말로 한 약속을 지키는지 아닌지 하나만 봐도 그의 모든 것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이유이리라.즐거움도 근육이 필요하듯 입말에도 맛이 있다. 단맛과 쓴맛, 상한 맛과 싱싱한 맛. 오묘하고도 질감 넘치는 언어의 맛에 울고 웃는다. 아프지 않다는 ‘통즉불통’이 소통 감수성에도 적용되는 말 같다. 아무리 찾아봐도 돈 안 들고 힘들이지 않으면서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역시 말이 아닌가.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말에서 나와 삶의 나침반이 되기도 하니까.말이 통하지 않는 먼 타국에서도 반겨주거나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게 엄지 척과 웃음 한 스푼이면 족하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만국 공통어는 웃음, 말이 필요 없는 아름다운 말임을 여러 곳에서 실감했기 때문이다. 흔히 말은 씨가 된다고 한다. 그 씨라는 말을 화분에 심어 가꾸고 싶다. 물 주고 거름 주며 비바람에 뿌리가 뽑히지 않도록 가꿔 모난 목소리를 깎아내면, 화음을 이루며 살며시 다가와 우리의 뺨을 어루만져주지 않을까.위대한 책은 행간이 넓은 책이라던가. 그런 책은 여백이 있고, 글이 곧 그림 같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도 나이가 들고 삶의 지혜가 쌓여가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행간이 이윽고 보일 때가 있다. 여백도 생긴다. 새해엔 말에도 행간을 넣고 여백엔 웃음을 버무려 말이 필요 없는 말 웃음으로, 말맛을 차지게 살려봄이 어떨까.

2024-01-03

경칩(驚蟄)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가 경칩(驚蟄)이다. 태양의 황경이 34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3월 5일(음력 1월25일)이다. 음력으로는 2월의 절기다.만물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고 깨어난다는 절기가 경칩(驚蟄)이다. 경칩의 한자를 풀이하면 놀랄 경(驚)과 숨을 칩(蟄)이다. 원래는 ‘열다’, ‘일깨우다’는 의미의 계(啓)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 했다. 하지만 한무제(漢武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휘(避諱)하기 위해 놀랄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서(漢書)에 나온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 권5 ‘시칙’에 보면 음력 2월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묘(卯) 방향을 가리키고, 방위는 동쪽이고, 수는 8이며, 맛은 신맛이다. 이달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복숭아와 오얏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며, 꾀꼬리가 운다.천자는 청양(靑陽)의 태묘(太廟)에서 조회를 하면서 관리를 시켜 가벼운 죄를 지은 자는 방면하게 하고, 죄수의 손발을 묶은 족쇄를 풀어주게 하며, 볼기를 치는 형벌을 사용하지 않게 하고 송사를 금지시켰다. 또한 어린아이를 돌보아 주고, 고아나 자식 없는 노인을 보살핌으로써 ‘구부러진 어린 싹들’이 잘 자라나게 하며, 길일을 택하여 백성이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했다.이 시기에 천둥이 치기 시작하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모두 깨어난다. 동면하던 동물과 곤충들이 슬슬 지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다.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사라지고, 따뜻하고 성장하는 목(木) 기운이 찾아온다. 초목에 싹이 돋아나듯이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고,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부활의 의미가 있다.경칩에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알을 낳는다. 이때 겨우내 추위로 허해진 양기를 보충하고, 허리가 아픈데 좋다고 해서 새 생명인 개구리알을 먹는 풍습이 있다. 그리고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마셨다. 이 시기의 수액에는 땅의 정기와 봄의 양기가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관습이 생겼다고 본다. 다시 말해 땅의 정기인 토(土)는 신체에서 위에 해당하므로 위장병에 좋다는 이유에서다.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경칩에 젊은 남녀가 사랑을 고백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마주봐야 열매를 맺기에 ‘사랑나무’로 불렸다. 가을에 은행을 모아 두었다가 경칩에 사랑의 징표로 주고받았다. 은행은 남녀의 화합을 상징하는 표시다. 지금의 밸런타인데이와 유사한 형태지만 지금은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이다.명리에서 경칩과 춘분은 묘(卯)월에, 음력 2월(양력 3월)에 해당한다. 묘(卯)는 목(木)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기다. 묘(卯)는 무성하다. 즉, 양기가 생겨 번성한다는 뜻도 있다. 세시풍속으로 경칩에는 갓 나온 싹을 보호하기 위하여 농사를 짓는 밭에 불을 피우는 것을 금지하였다. 산불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아직 추위가 완전히 물러간 것은 아니어서 꽃샘추위가 찾아오기도 하는 시기다. ‘우수에 풀렸던 대동강이 경칩에 다시 붙는다’거나 ‘정이월에 김칫독이 터진다’는 속담도 있다. 경칩이 우수와 함께 아직은 겨울의 냉한 기운이 남아있지만, 봄으로 가는 절기임을 보여주는 것이다.묘(卯)는 동물로 토끼다. 토끼는 언제나 자신이 만든 길만 다닌다. 외부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해 굴을 세 개 판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이 있다. 그만큼 치밀하고 명석한 동물이다. 묘시(卯時)는 오전 5시와 7시 사이이므로 출근이나 등교하느라 늘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대다. 그래서 이때 태어난 사람은 항상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류대창명리연구자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은 잘하지만 마무리가 약한 것이 흠이다. 유시무종(有時無終)이다. 평소에는 잡생각이 많아 머리가 늘 피곤한 경향을 나타낸다. 변덕이 심하여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논리적이고 수학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음력 2월 초에는 바람의 신인 영동할미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가 올라간다. 농촌이나 어촌에서는 바람의 피해를 면하기 위해 풍신제(영등제)를 지냈다. 이를‘바람 올린다’고 한다. 풍신(風神)이자, 농신이므로 이렇게 풍신제를 올리면서 농사의 풍년과 고기잡이 만선을 기원하고, 가정이 무탈하기를 빌었다. 특히 어촌에서는 비바람 때문에 위험한 달이라서 조업을 하지 않았다. 이달에 결혼하면 바람난다는 속설도 있어 피했다.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절기에 맞는 행위를 함으로써 자연에 순응하여 각종 재난을 피하고 풍요를 기원했다. 곡식은 봄에 저절로 싹이 트지만, 반드시 사람의 노력이 있어야 오곡이 성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조들은 오랫동안 자연을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생활의 지혜를 축적했다. 이를 미신이라고 경멸할 수는 없다.

2024-01-03

장송곡 시위의 소음 기준

홍석봉 대구지사장 생활 소음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높아간다. 소음으로 인한 갈등도 커진다. 사람이 참을 수 있는 소음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국가소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주요 도시의 연평균 소음도는 61.57~70.57데시벨(㏈)이다. 국내 기준치 55㏈, WHO 권고치 53~54㏈보다 훨씬 높다.UN환경프로그램은 소음을 인류를 위협하는 세 가지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소음은 건강도 해치고 난청 위험도 높인다. 환경부에 따르면 소음 관련 민원은 2009년 4만2천400건에서 2019년 14만3천181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100㏈이 넘는 확성기 소음은 듣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대구고등법원이 지난 2일 ‘구청 앞에서의 장송곡 시위를 금지해달라’는 대구 서구청의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구청의 손을 일부 들어줬다. 법원은 집회나 장송곡을 막지 않는 대신 주최 측에 75㏈ 이상의 소음을 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앞서 지난해 충남 태안 군청 앞의 장송곡 집회·시위에 대해서도 법원이 75㏈(야간 65㏈) 초과 소음 발생 행위를 금지했다. 법원은 지자체의 평온한 업무수행을 방해하고 정당한 권리행사 범위를 벗어났다고 봤다.국내 기준치보다 훨씬 높지만 75㏈은 앞으로 집회·시위의 소음 기준이 될 터이다. 장송곡 시위는 당사자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소음 뿐만 아니라 장례용 각종 조형물 등도 시민에겐 일종의 테러다. 법원이 일정 지역 내에서 장송곡 재생과 영정 사진 및 장례식용 조형물·근조화 설치를 금지한 태안군 사례를 확대 적용해야 할 것이다.집회·시위를 주최하는 측은 앞으로 좀 더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1-03

특별한 기대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새해가 밝았다. 흐린 하늘 탓에 수평선을 박차고 오르는 해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달력은 어김없이 용띠해로 접어들었다. 새날을 맞으며 거는 목표와 다짐이 한가득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사회와 나라에 바라는 바가 먼저 떠오른다. 개인적인 성취와 보람이 벅찰 터이지만, 공동체가 오늘보다 나아지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다.먼저, 폭력이 사라져야 한다. 새해를 스산한 칼부림으로 시작하였다. 상상조차 끔찍한 폭력이 자행되는 오늘은 정상이 아니다. 누구를 미워하여 세상이 나아질 수 있을까.생각을 폭력으로 제압할 수 있을까. 남을 해치며 내가 이기는 게임을 오래 할 수 있을까. 칼이든 돌이든 물리적인 수단으로 거두는 성취는 보람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보복이든 반격이든 폭력은 곱절로 번지게 마련이다. 신체적인 위해만 폭력도 아니다. 정신적으로도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어 마음에 병을 깊게 들게 할 수 있다. 학교폭력이 그렇고 사이버폭력이 그렇고 성폭력도 그렇다. 폭력은 범죄다. 무겁고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폭력을 물리치는 각성과 다짐을 새로이 하는 사회적인 캠페인이라도 일었으면 한다.새해는 정치판이다. 곳곳에 현수막이며 쉬지도 않고 전화벨이 울린다. 진심인지 빈말인지 헤아리기도 버거운 구호와 외치는 소리가 벌써부터 소란하다. 좋은 정치가 일어나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요란하기만 하고 공허한 세상이 오는 게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출사표를 던진 이들은 바뀔 것 같지 않으니, 깨끗한 한 표를 지닌 유권자들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질곡에서 건져낼 사람을 찾아야 한다.거짓과 선동에서 나라를 구해야 하고 폭력과 협박에서 사회를 건져야 한다. 희망과 기대를 다시 찾아야 하고, 상상과 창의를 다시 올려야 한다. 멈춰선 오늘에 시동을 걸 사람을 뽑아야 하고, 어제보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비난과 욕설에 솔깃하지 말고 비전과 계획을 말하는 사람에 주목해야 한다.새해에는 진짜 문제가 조금씩이라도 풀리는 모습을 만나고 싶다. 정략과 술수로만 시끄러운 정치권은 담론의 주제를 바꾸어야 한다. 공천과 탈당이 문제가 아니라 저출산과 고령화가 진짜 문제다. 당신들 개인 욕심이 문제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하루하루 민생이 진짜 문제다.정치판의 구도가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경제와 사회의 안녕이 진짜 문제다. 정치인의 이합집산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안녕과 국토의 수호가 진짜 문제다. 다음세대 교육과 미래는 누가 챙기는가. 지구온난화와 기후문제는 돌아보고 있는가. 미래를 향한 비전과 계획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해결책의 실마리라도 붙들고 씨름하는 정치를 만나고 싶다. 개인적인 소망도 여러 가닥이지만, 2024년에는 사회적인 진전이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벌어지는 모습을 보았으면 한다. 봄에 있을 총선이 단초가 되어 나라와 사회에 좋은 일이 겹겹이 생기는 새해를 기대하고 기대한다. 2024년, 파이팅!

2024-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