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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으로 여는 새로운 길

정상철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은 무엇을 통해서 느끼는 것일까?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소한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행복도 소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족, 친구, 연인 등과의 관계에서 사랑과 소통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람들에게 큰 만족감과 행복을 주는 요소이다. 가정주부가 전자상가에서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이 있는 냉장고를 보면 고가임에도 구매하게 된다. 그것은 생활의 편리함과 행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보면, 중대재해 3법이 통과되고 발효되면서 수많은 기업주들이 구속을 피하기 위해 여러 활동들이 산업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고위험 수작업을 자동화 하여 원천적으로 위험 작업장을 개선하여 사고를 방지하는 것으로 디자인 씽킹 툴(Design Thinking Tool)을 활용해 문제를 풀어간다.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란 무엇인가. 현재의 상태를 더 좋은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인간을 생각의 중심에 두고 인간에 대한 공감을 통해서 새로운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여 혁신하는 사고방식과 툴들의 집합으로 정의 한다. 인간의 생각과 미래의 가치, 기술의 균형을 이루는 특징이 있고, 직관적 사고를 통한 숨어 있는 문제 발굴과 분석적 사고를 통한 문제해결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 씽킹의 문제해결 과정은 다음 단계로 이루어진다.첫 번째, 이해와 공감(Empathize): 사용자의 니즈와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와 관찰을 통해 사용자를 탐색하고, 사용자와의 공감을 형성한다. 두 번째, 문제 정의(Define): 사용자의 요구사항과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한다. 이 단계에서는 사용자의 관점과 필요성을 파악하여 핵심적인 과제를 도출한다. 세 번째, 아이디어 도출(Ideate): 다양한 관점과 창의성을 활용하여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브레인스토밍, 아이디어 스케치, 아이디어 보드를 사용해 아이디어를 확장하고 조합한다. 네 번째, 실험과 검증단계(Prototype): 아이디어를 설계하고 실제 프로토타입(시제품)으로 제작해 테스트한다. 사용자의 피드백을 수집하고, 프로토타입을 수정하며 개선해 나간다. 다섯 번째, 구체화와 개발 단계(Test): 프로토타입의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솔루션을 구체화하고 개발한다. 사용자의 요구사항과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얻는다. 각 단계는 반복되며, 문제의 복잡성에 따라 여러 번 반복되기도 한다. 사용자 중심의 솔루션이 도출되고, 실패를 통해 학습하며 개선하는 반복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상황이해·아이디어 발굴·아이디어 설계·시제품 개발·테스트·적용 등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사용자중심 니즈(Needs)를 반영하여 냉장고 기능과 디자인을 새롭게 하여 삶의 편리성과 행복수준을 높여간다. 제조현장에서도 고위험 수작업을 자동화 아이디어를 설계하고 자동화장치를 개발하여 사람을 안 다치게 하는 사회적 욕구수준을 향상시키는 디자인 씽킹 툴은 행복한 사회를 이끄는 새로운 길이다.

2023-11-12

사마귀를 추모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 입동(立冬)이었던 11월 8일 된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올해 들어 처음 내린 서리였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마당에 나선다. 휴대전화 사진기로 루드베키아 노란 꽃과 이파리, 망초와 머위 큰 잎에 내려앉은 서리를 담는다. 불과 며칠 전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청년들이 적잖았는데, 순식간에 일기(日氣)가 급변한 것이다.지구 온난화의 폐해가 세계 전역을 휘감고 있는 시절의 난맥상을 우리도 확연하게 경험하고 있다. 늦가을에도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오래전에 사라진 빈대까지 출몰한다. ‘팬데믹(pandemic)’에서 따온 ‘빈데믹’이란 신조어가 나왔으니, 한국인들의 응용력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다. 특허 능력은 없지만, 실용신안 면(面)에서는 명불허전(名不虛傳) 최고다.마침내 겨울이 오긴 온 것이다. 입동 당일에 된서리가 왔으니, 24절기 가운데 하나는 멋지게 맞췄구나, 하는 생각이 찾아든다. 사흘이 지난 11일 아침에도 된서리가 내려 초록의 잔디가 하얗게 채색된다. 시절의 변화에 가속이 붙는 양상이다. 차가운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불원초(不願草)를 하나둘씩 뽑다가 아연 놀라고 만다.잔디 위에 사마귀가 잠자듯 고요하다. 미동도 없기에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 본다. 그래도 움직임이 없기에 살펴보니 엎드린 채 죽어 있다. 간밤에 부쩍 내려간 냉기를 견디지 못해 이 세상과 작별한 것이다. 집이 없는지, 혹은 집으로 가는 길에 죽었는지 모르지만, 사마귀는 푸르른 하늘과 새털구름과 햇빛과 바람 아래서 생을 마감한 게다.사마귀의 마지막을 동행한 것은 무엇이며, 그 순간 사마귀를 찾은 상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고사성어로 친숙한 사마귀가 겨울 초입에 허무하게 세상과 작별하니 마음이 제법 쓸쓸하다. 한여름에 당당한 자세로 나를 향해 앞다리를 곧추세우던 녀석들의 자태가 눈에 밟힌다. 제 분수를 알게 되면 녀석들은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죽음과 소멸에는 허전함과 아쉬움과 쓸쓸함이 동반한다. 지금부터 53년 전 오늘 1970년 11월 13일 대구 출신의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이 청계천에서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외치면서 분신(焚身)을 감행한다.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살면서 동료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처우를 개선하고자 싸웠던 전태일! 그는 자신의 외침에 아무런 반향도 보이지 않은 정부와 업주들에게 가장 처절한 형식의 죽음으로 항거함으로써 부당함을 고발한 것이다.그가 세상을 버린 지 반세기가 가까워진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숱한 정치적 격변과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이른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1천1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엄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가까스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20:80의 사회에서 1:99의 부도덕한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사마귀의 죽음이 불러온 상념이 전태일과 노동자들 그리고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모순에 이른다. 언제나 우리는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환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오면!

2023-11-12

짠테크 유행

우정구 논설위원 불경기 심화와 고물가 등의 영향으로 직장인들 사이에 짠테크가 주목을 받고 있다.짠테크는 소비자가 단순히 안 써서 아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낭비를 최소화하여 재물을 모으는 새로운 형태의 재테크 방식의 하나다. 돈에 있어 인색하다는 뜻의 짜다와 금융거래로 이득을 낚아채는 재테크가 합쳐진 신조어다.수년 전 유행했던 욜로(YOLO)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욜로는 ‘인생은 한번 뿐이다(You Only Live Once)’는 뜻으로 미래 또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는 자기 중심적 소비패턴이다.최근 한 트렌드 조사기관이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10명 중 9명이 지금은 재테크 필수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응답했다.응답자에게 “소비와 낭비를 줄이는 지출을 경험해 봤느냐”는 물음에 대해 98.5%나 “그렇다”고 답했다.특히 주목 가는 대목은 잔돈적금 등 앱서비스를 통해 포인트를 현금화하는 앱체크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10명 중 9명이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에 믿음이 간다는 반응을 보였고, 짠테크를 실천하는 사람을 안쓰럽거나 궁상 맞아보인다는 생각보다 대단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불경기가 좀 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짠테크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여겨진다.고금리, 고물가, 경기침체와 가계소비 둔화 등으로 국내 전반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소비 현상이다. 불황기에 적응하려는 소비자들의 절박함을 느끼게 하는 현상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1-12

대한민국 버전 IRA(인플레 감축법)가 필요하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미국도 유럽 선진국들과 함께 예외 없이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었으나 민주당 정부는 적극적이었고 공화당 정부는 역행했다. 부시 대통령은 교토의정서에 참여하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다. 따라서 미국은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이 선진국 중에서 매우 뒤처졌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일이 파리기후협약 복귀였고 모든 정치력을 기울여 IRA를 시행하고 있다.IRA는 미국 연방정부 주도로 2022년부터 2031년까지 500조원(현 환율 기준)을 투입하여 지난해 기준 현재 22%인 재생에너지를 2030년 60%까지 달성하고자 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재생에너지 발전인데, 태양광의 경우 2022년 1천750만KW에서 2031년 7천500만KW까지 순차적으로 확대 설치, 둘째 재생에너지 기반 디지털화한 스마트 그리드(전력망) 설치, 셋째 충분한 전기차 충전소(에너지 저장소) 설치, 넷째 막대한 전기차 보조금 지원을 통한 전기차(움직이는 에너지 저장장치) 보급 확대다.이를 통해서 재생에너지 기반의 새로운 첨단 산업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코로나19로 풀린 막대한 자금을 에너지전환과 미래 산업 투자로 이끌어 내고 인플레이션도 감축시키고자 하는 미국 정부의 미래 산업 투자전략이다.재생에너지 기반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는데 대해 기존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에너지산업계의 반발과 석유, 석탄, 가스 관련 산업 등 좌초자산의 퇴출 저항을 주정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점도 있다. 그래서 연방정부가 강력하게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신재생 에너지 정책의 기본인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의 기본적인 인·허가권을 지방자치제도의 원칙에 의거하여 일선 시, 군, 구에 부여하고 있다.기초자치단체인 시, 군, 구가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경쟁을 했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그간 시, 군, 구는 그 권한을 재생에너지발전 사업을 규제하는 쪽으로 경쟁적으로 사용하여 구미시의 경우 이격거리를 벗어나 발전 사업이 가능한 지역이 도시 면적 전체의 0.09%에 불과한 상황까지 왔다.또한 시, 군, 구의 협상력으로는 산업화시대에 적합하게 설계된 한국전력 중심으로 수직계열화 된 전력 송·배전망을 재생에너지기반 에너지전환 시대에 적합한 수평화 된 ‘디지털화한 스마트 그리드’를 한전에 요청할 협상력도 부족하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지역은 송전선로 부족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한전 또한 수백만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 구성될 수평적인 재생에너지 기반 디지털화한 스마트 전력망으로 송·배전망을 재구축할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다.차제에 미국의 IRA와 비슷하게 법과 제도 정비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활성화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현재 시, 군, 구의 조례를 통한 각종 이격거리 규제로 재생에너지를 설치할 땅이 없고, 한전의 송전선로 부족으로 재생에너지발전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도 미국처럼 법과 제도 정비를 통해 새롭게 정책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먼저 우리 기업들의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 전국 산업단지의 장·단기 RE100 수요파악부터 해야 한다. 파악된 수요를 바탕으로 모든 이격거리 규제를 폐지한 뒤 첫째, 도시와 산업단지 주변 농지에 재생에너지 수요에 적합한 만큼의 태양광 발전단지를 조성하도록 한다.둘째,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과 농지태양광 발전단지 간에 직접 PPA 방식의 새로운 그리드(전력망) 구축을 활성화한다. 셋째, 전국 곳곳에 재생에너지 충전소 구축 사업을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충분할 정도로 활성화한다. 넷째, 국내 차량들을 가능한 한 빠르게 전기차로 교체 가능하도록 전기차 보조금을 확대한다.지금 세계는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난리가 난 상황이다. 미국은 IRA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새로운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안면몰수하고 있다. EU는 유럽판 IRA(Net Zero Industry Act)를 통해 유럽의 산업보호와 새로운 산업생태계 구축에 여념이 없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논의만 분분한 채 탄소중립 정책은 끊임없이 갈지자 행보만 하고 있고 에너지전환정책은 거대한 화석연료 발전사들에게 발목이 잡혀 논의만 가득한 가운데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미국의 경우 국고를 500조원이나 직접 투입하는 충격요법을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첫째, 농지태양광 발전단지 조성, 둘째, 산업체와 발전단지 간 직접 PPA 방식 스마트 그리드 구축, 셋째, 전기충전소 설치 등에 “기후금융”을 활용하면 국가 재정 부담은 거의 없이도 탄소중립 달성이 가능하다.불필요한 이격거리 해제하고 전면적인 농지태양광을 허용하는 등 법과 제도만 선진국 수준으로 정비하고 정부에서 제도 활용만 제대로 한다면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 보다 발전된 첨단 제조업과 디지털화한 산업 환경을 활용하여 단시일 내에 탄소중립 선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급히 대한민국 버전 IRA(인플레 감축법)가 필요한 이유다.

2023-11-12

프랑크푸르트학파와 하버마스 그리고 포항

유성찬 (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연구소 소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포항시민연대 공동대표 발터 벤야민(1892∼1940), 호르크하이머(1895∼1973), 아도르노(1903∼1969년), 에리히 프롬(1900∼1980), 마르쿠제(1892∼1979) 등 학자들은 프랑크푸르트 대학과 인연이 깊다. 그 대학 사회연구소의 회원이고, 독일인들이다. 부유한 유대인의 자제들이기도 하다. 세계사에서 이 사람들을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부른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히틀러의 나치 집권 후에 1933년부터 학문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출신 유대인 학자들이다. 그리고 2차대전이 끝난 후, 대부분 다시 독일로 돌아와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사회비판이론을 연구하게 된다.여기 또 한 사람의 학자가 있다. 유대인은 아니지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정통계승자로 불리운다. 현재 생존해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94)가 바로 그 사람이다. 2006년에는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바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부유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특이한 점은 어린 시절 나치소년단의 단원이었다는 것이다. 역사속에서 나치소년단원은 독일패망 전에 ‘베를린사수’ 전투로 내몰려 총알받이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버마스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치즘의 실체,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알게 되면서 사회적, 정치적 의식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파시즘과 사회비판이론을 연구하게 된다. 이후 좌파로부터는 수정주의자로 우파로부터는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한다. 프랑크푸르트학파와 하버마스는 실존주의를 넘어 현대사회의 ‘인간의 수단화’, ‘인간소외’에 대항해 학문적 과제를 만들어 내었고 이를 사회비판이론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하버마스의 핵심은 의사소통이론과 공적토론영역(공론장) 이론이다. 또 이 이론들은 현대의 언론학과 커뮤니케이션 이론에도 영향을 많이 끼쳤다. 프랑스 계몽시대의 공론장은 부르주아지(bourgeoisie)들이 모여서 맥주와 커피를 마시며 논쟁하던 살롱이며, 현대의 공론장은 신문과 라디오, TV방송이다. 약 20여년전부터는 인터넷시대에서 SNS, 모바일톡으로 공론장이 역사적으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한다. 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려면 공론장이 그에 맞추어 잘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인간의 이성(理性)은 ‘진위(眞僞), 선악(善惡)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말하고, 합리(合理)는 ‘논리적 원리나 법칙에 잘 부합함’을 뜻한다. 사람이 참과 거짓을 구분할 줄 알고 그 이치에 부합하여 살아간다면 그 자체가 대동세상이자 선(善)한 공동체일 것이다. 실제 참된 인간이라면 현실사회에서 ‘벽에 부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폭력적 쟁투보다는 평화적인 ‘의사소통행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의사소통이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역할을 바꾸어가며 자신의 주장을 하게 되고, 또 상대방 주장을 비판하고, 주장에 대해 이유를 물으면서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말한다.어떤 사회적 문제를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인내와 시간이라고 말하겠지만 필자에게는 ‘하버마스’와 사회비판이론이다. 현대사회에서 하버마스와 의사소통이론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인간세상사가 다 복잡하게 섞여 돌아가도 이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사회적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면 해결되지 않을 일이 없다는 긍정적 논리이다.시민들의 투표로 포항시청과 포항시의회가 만들어져 있다. 포항시청과 포항시의회는 합리적인 행정행위를 통해서 대부분의 포항시의 문제들을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근원적인 힘은 참여민주주의의 원리속에서 시민들이 직접 투표장에 가서 투표를 한 행위이다. 즉 시민의 참여가 힘인 것이다.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이성과 이치에 맞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참여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자발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진실되고도, 당연히 힘이 세다. 이성과 합리성이 왜곡되지 않는 공론의 장(場)이 포항지역사회에 활짝 열리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포항시의 행정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여기까지는 논리적으로 쉽다.문제는 행정행위로도 해결이 잘 안되는 사회적 사안(事案)들이라는 것이다. 특히나 의료폐기물처리장, 음식물쓰레기처리장, SRF발전소 등 환경문제는 포항시민들의 건강권, 환경권과 직결되고, 부동산 가격의 상승, 하락과 연결되기에 재산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시민들의 촉각은 바로 반응하고 저항하게 된다.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론과 공론장이 더욱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포항시와 포항시의회의 활동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관변단체, 지역언론, 기업, 시민, 학자 등 포항지역사회를 대표하는 많은 단체와 시민들이 합리적으로 참여하는 공적토론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폐쇄구조가 아니라 열린사회, 열린토론의 공론장이 있어야 해결이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마스를 본받는 것이 해결의 지름길인 것이다. 단 이성과 합리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 진리이다.

2023-11-12

맨발걷기 열풍

우정구 논설위원 맨발하면 에티오피아 출신의 아베베 비킬라 선수가 떠오른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그는 마라톤 전구간을 맨발로 달려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선수다. 그의 맨발 투혼은 마라톤 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지금도 그 모습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최근 맨발로 땅의 기운을 느끼며 걷는 맨발걷기 운동이 선풍적 인기다. 신발을 벗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과 자연을 접하며 걷는 편안함 때문인지 맨발걷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춰 지자체의 맨발 황톳길 조성도 곳곳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다.건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맨발걷기 열풍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 같다. 이처럼 맨발걷기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성인병 등 각종 질환에 효력이 있다는 경험담이 방송과 유튜브 등을 통해 퍼지면서부터다. 지역에 따라 맨발로 걷는 어싱족 모임이 생기고, 지자체 주관의 맨발 페스티벌 행사도 벌어진다. 어싱(earthing)은 지구표면과 발이 접지한 상태를 표현한 맨발걷기의 신조어다.최근 부산 해운대와 강원 경포해변 등에는 전국에서 맨발족이 몰리면서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맨발족을 관광사업의 자원으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사실 포항은 일찍부터 맨발 친화도시를 선언한 곳이다. 2020년 맨발로 걷기 좋은 ‘맨발로 30선’을 선정한 바도 있다. 송도 솔밭숲, 기계 서숲, 양덕 나무은행둘레길, 해도 도시숲 등이 ‘맨발로 30선’에 포함된 곳이다. 특히 포항의 맨발 길은 도심에서 가까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인기다.포항의 닉네임으로 맨발걷기 친화도시가 하나 더 추가돼도 좋지 않은가. /우정구(논설위원)

2023-11-09

‘이자장사’ 된서리 맞는 은행들

홍석봉 대구지사장 “고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서민의 주름살이 날로 깊어지고 한숨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지난 7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나온 얘기다. 금융권이 고연봉과 성과급으로 배 두드릴 때 서민들은 한숨만 내쉰다는 지적이다.은행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정부·여당까지 전방위로 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고금리에 이자장사로 돈잔치를 한다는 것이 이유다. 윤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 ‘갑질’이라고 지적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금융권을 질타하고 있다. 대통령이 특정 직업군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은행들이 돈벌이에 눈이 어두워 공적인 기능과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질책이다. 이자장사로 돈을 그러모으면서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금융권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주위의 어려움은 외면한 채 나만 배부르면 괜찮다는 탐욕주의에 대한 경고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수준의 약탈이나 다름 없는 이자장사로 수익과 혜택만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금융권은 고금리 기조 덕분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있다. 5대 은행이 올 9월까지 거둔 이자 이익이 30조366억 원. 전년 동기보다 7.4% 늘었다. 30조 원을 넘긴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금리 상승때 예금금리는 천천히 올리고 대출금리는 더 빨리 올리는 식으로 막대한 예대마진을 챙긴 덕분이다.“중소기업과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활동은 축소해가면서 은행들은 300~400% 성과급을 지급하고 임직원 1인당 평균 연봉 1억 원이 넘는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은 최대 실적을 낸 올 연말에도 성과급 잔치와 연봉 인상은 불보듯하다. 생계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금융사들은 IMF외환위기 당시 160조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이 투입돼 살아 남았다. 현재의 금융사는 국민의 피땀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 금융사들이 제 잇속 챙기기만 급급,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지역 대구은행도 IMF 당시 공적 자금과 지역민들의 우리사주 운동 등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올챙잇적 시절을 외면하고 있는 금융권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은행들이 부산하다. 하나은행과 대구은행 등은 사회적 책임 실천을 위해 상생금융 지원에 나서겠다며 각종 지원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시중은행은 주택담보대출금리를 인하하며 바짝 꼬리를 낮췄다.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속셈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초과이익 환수 방안과 ‘횡재세’ 도입 논의를 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이몽룡은 ‘금술잔의 맛있는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 쟁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농 떨어질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성소리 높다’는 시를 지어 변학도의 탐학을 징계하고 다스렸다. 탐욕에 빠진 금융권이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때다. 함께 가야만 멀리 갈 수 있다.

2023-11-09

입동(立冬)의 계절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푸근한 날씨가 이례적으로 계속되며 단풍이 곱게 물들더니 이제 안동에서 첫얼음을 보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평년보다 10여 일이 늦은 얘기이고 전국 곳곳에 첫서리가 내리고 고드름이 열렸다는 추위 소식도 들린다. 대지가 얼기 시작한 모양이다.이제 농촌에서는 1년 농사의 끝맺음으로 콩으로 메주를 쑤고, 찬 서리 맞은 배추와 무를 절여 김장을 담그는 계절이다. 입동(立冬) 전후 닷새 이내가 가장 맛 좋다고 하니 갖은양념을 섞어 우리 고유의 음식인 김치를 만들어 장독에 넣어 한해의 양식으로 저장해 두면 마음이 푸근하리라. 지난 2년 전 뉴스를 달군 중국 어느 공장의 김치 담그는 장면이 떠오른다. 알몸 남성이 배추를 절이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중국산 김치를 거부하는 공포가 확산하여 김치에 대한 원산지 집중 점검이 실시되곤 했었다. 그러나 김치는 미국 일본 등 해외수출량이 약 4만t으로 지난해에 비해 5% 정도 증가했다지만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뺏겨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알몸 김치’였던 중국산에도 손길을 뻗치지 않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최근 어처구니가 없는 ‘소변 맥주’와 더불어 중국산 식품에 대한 거부 운동이 일고 있다.누른 황금 들판에서 거두어들인 햅쌀로 시루떡을 만들고 치계미(雉鷄米)로 노인들에게 음식을 전해드리는 풍습은 우리의 경로(敬老)사상으로 주변에 훈훈한 미소를 짓게 한다. 또 가을걷이 후 초가지붕을 다시 덮으며 이엉 잇기하고 ‘입춘날 추우면 그해 겨울이 크게 춥다.’고 하여 군불 때어 바닥 말리고 하던 옛 시골의 정경이 떠오른다. 이번 첫추위 이후에 한파특보가 내려지면 땅속으로 파고드는 동물들처럼 우리도 조금 침체된 생활 속에서도 몸을 움직이며 꾸준히 삶의 에너지를 살려나가야겠다.11일은 ‘빼빼로 데이’다. 11월 11일, 아라비아 숫자 ‘11’이 가늘고 길쭉한 초콜릿 과자를 닮았다고, 30여 년 전 부산의 어느 여고에서 시작한 것을 롯데가 국내 최대의 ‘데이 마케팅’으로 추진했던 날이다. 지금은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빼빼로나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자리 잡은 인기 있는 행사일이다. 11일은 또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여 빼빼로 데이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기념일이니만큼 서로를 잘 융합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면 좋으리니….한파특보가 내려졌다. 칼바람 속에 체감 온도가 떨어지면서 시민들도 겨울옷과 목도리 등 추위를 피하기 위한 모습들이 이제 겨울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정치계도 연일 찬 바람이 부는 한파로 걱정이다.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터무니없는 날 선 공방으로 밝은 미래를 원하는 국민은 연일 한랭 전선에 싸여있는 듯하다. 이 추운 겨울날 국민들의 마음에는 따스한 날들이 기대될 것인데 연일 쏟아내는 망발에 마음은 더 추워질 뿐이다.이제 나뭇잎 떨어져 나목(裸木)이 되면 풀들도 마르고, 만물 또한 활동을 접고 다음 봄날까지 휴식을 취하는 겨울, 그 초입의 계절인 11월에는 이제 추수 후 겨울잠을 자야겠지. 다음 따뜻한 봄날을 꿈꾸며….

2023-11-09

가짜뉴스와 여론조작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정보화시대인 오늘날에는 여론전 승패에 정당의 사활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론을 선점하거나 장악한 정당이 보다 쉽사리 민심의 지지를 모을 수가 있고, 그것은 곧 선거의 승리로 이어진다. 여론전에는 좌파정당이 능하다. 공산혁명을 위한 핵심전략이 프로파간다이고, 그런 공산당 전술을 배운 좌파들이기 때문이다.지난 좌파정권 5년 동안 그들은 현란한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정권의 탄생부터가 그런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용한 결과였다. 민노총이니 전교조니 하는 좌파단체들이 주동이 되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그것을 촛불혁명이란 명분으로 포장해서 대통령탄핵 정국으로 몰아갔고, 마침내 정권을 잡기에 이른 것이다.좌파정권이 제일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언론장악이었다. 정권의 유지나 계승을 위해서는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가 필수적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경영진부터 좌파노조가 장악한 것을 필두로 방심위를 통해서 여타 방송매체도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특히나 탁현민이라는 콘텐츠 기획 전문가를 발탁하여 각종 정부행사를 기획·연출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완전한 통제에는 미치지 못했으니, 우파성향의 신문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다, 방송활동을 못하게 된 정치평론가들의 유튜브 일인방송이 우후죽순 생겨나서 언론독점을 성토하고 비리를 폭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었다.선거판을 뒤집을 뻔한 가짜뉴스의 일례로 소위‘윤석열 커피’사건이 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기간 중에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의혹’으로 몰리게 되자 “대장동 몸통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주임 검사였던 윤 후보가 당시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를 만나 커피를 타 주고 수사를 무마했으니, 윤 후보에게 원죄(原罪)가 있다는 거였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대장동 수사에서 허위로 드러났다. 당사자인 조우형씨는 2021년 11월 “나는 윤석열 검사가 아닌 박모 검사를 만났다”며 이른바 ‘윤석열 커피’ 가짜 뉴스를 부인(否認)한 것이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인 남욱 변호사도 그해 11월에는 “그런 얘기를 김만배씨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다가 “조씨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가 아니라 착각한 것”이라며 발뺌을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윤석열 커피’ 주장을 계속 확대재생산했고, 당시 친민주당 언론들은 대장동 관계자 또는 검찰발 기사로 이를 확산하면서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뒷받침했다. 또 당시 검찰도 조우형씨 조사 등을 통해 허위임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를 방치해 가짜 뉴스를 묵인·조장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가짜뉴스와 선동정치가 민주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협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선거철에는 여론조작이나 허위사실공표가 급증하게 마련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현혹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가짜뉴스와 여론조작을 차단하지 않으면 자칫 나라를 망칠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민의를 왜곡하는 여론조작과 가짜뉴스가 횡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2023-11-09

변화를 통한 병역판정검사 제도 발전

김종호 병무청 차장 최근 나타난 여러 현상을 접하면서 세상의 흐름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병무청의 핵심정책이라 할 수 있는 병역판정검사 제도 역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우선 병역판정검사의 정밀성 제고를 위해 지속적으로 전문 검사인력을 증원하고 첨단 의료장비를 도입하는 한편 검사 항목을 확대해 왔다.전문의 자격을 갖춘 병역판정검사전담의사를 비롯한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임상심리사 등 분야별 전문인력을 증원하고,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최신 의료장비를 매년 확충하여 더욱 세밀한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병리검사의 종류도 매년 1∼2종씩 점진적으로 늘려 2022년 신사구체여과율, 2023년 알부민 및 고밀도 콜레스테롤 등 검사 항목을 추가해현재 30종의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병역판정검사의 정밀성 강화뿐만 아니라 병역의무자 편익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병역판정검사를 통해 확인된 질병은 ‘건강검진결과서’ 제공을 통해 본인에게 알려주고 치료방법을 안내해 준다. 병역판정검사가 생에 첫 종합건강검진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또한, 20대청년들의 정신과 관련 문제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을 고려, 정밀심리검사를 추가하는 등 심리검사를 강화하고 정확한 진단으로 적기에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병역판정검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비용도 지원한다.신체등급 판정에 참조한 병무용진단서와 의무기록지 발급비용을 지급하고 있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 등 경제적으로 취약한 병역의무자는 외부 병원 위탁검사를 우선해 실시하고 있다.이외에도, 뇌전증 위장 병역면탈 범죄 사건 등에 대한 재발 방지와 함께 더욱 정밀한 병역판정검사를 위해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병역면탈 추적관리 및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병역면탈 통합 조기경보 체계도 준비하고 있다.병역판정검사는 실질적인 병역의무의 시작으로 병역의무자가 제일 먼저 병무청과 마주하는 곳이 병역판정검사장이다.따라서, 병역의무자들이 불안감을 떨치고 병역이행의 첫걸음을 잘 내디딜 수 있도록 사회의 변화 흐름에 맞추어 제도를 지속 개선함으로써 병역판정검사가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2023-11-08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나도 보험사기꾼이 될 수 있다

이희철포항남부경찰서 경위 실손보험을 악용한 보험사기 사건이 잇따라 증가하고 있다.특히 실손보험 사기 사건의 경우 회사원과 전업주부, 학생 등 평범함 일반 시민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심코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병원 측의 제안으로 실제 진료 사실과 다른 진료 내역서를 발급받아 보험금을 받는 순간,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혐의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적발된 보험사기 규모가 1조818억원으로 매년 급증세를 보이던 보험사기는 급기야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다.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들 또한 10만명이 넘어섰다.최근 포항에서도 이같은 혐의로 의사 및 관련자 5명이 구속되고, 120명이 넘는 환자가 불구속 입건됐다.정형외과와 피부과, 피부관리실이 짜고 브로커까지 고용해서 환자를 유치한 뒤 실손보험금 청구가 되지 않는 피부미용 시술을 해주고 도수치료를 받은 것처럼 허위의 진료내역서를 발급해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조사를 해보니 입건된 대다수 환자는 평범한 일반 시민이었다.“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금전적인 유혹에 넘어가 실제 진료사실이나 금액과 다른 허위, 과장 서류로 보험금을 받아 보험사기에 연루된 것이다.병원 측의 유혹에 넘어가 보험사기에 연루되지 않도록, 병원이나 브로커의 실손보험이 보장되지 않는 치료사항을 보험처리 해 주겠다는 제안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또 보험금 청구 시 병원이 발급한 진료내역서, 영수증 등이 실제 진료받은 내용대로 작성되었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등 주의가 요구된다.보험사기는 개인의 탈법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전가시키고, 공보험 재정악화 등 사회 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하는 범죄임을 명심해야 한다.“세상에 공짜는 없다”눈앞의 작은 이익에 현혹되지 말고, 건전한 보험질서를 확립을 위해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자.

2023-11-08

詩가 있는 뱃나들마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들판엔 가을걷이가 한창이고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가 싶은데, 절기는 어느새 오늘부터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다. 가을의 본색이 만산홍엽으로 몸살을 채 앓기도 전에 겨울의 입김은 벌써부터 조락(凋落)을 채근이라도 하듯이 돌풍을 내두르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초입이 오버랩 되는 미틈달은 잠시 쉬어가도 좋을 여유와 안식의 시간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빠듯한 삶의 여정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잠시 옆도 뒤도 둘러보며 성찰과 되새김에 잠겨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망중한의 이끌림으로 찾아간 곳은 문경시 호계면의 ‘시(詩)가 있는 뱃나들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항아리나 나무, 기와 등에 지역출신 시인의 작품을 써서 전시해놓은 이색적인 곳이다. 간결하고 명징한 감성의 시에 홍조(紅潮)의 가슴으로 하나하나씩 시의 마을을 만들고 가꾸어놓은 손길에서 문향과 인향이 결 고운 단풍 잎새로 피어나는 듯하다. 문경의 젖줄 영강이 유유히 흐르는 강촌에 큰 느티나무와 죽림정 정자가 운치를 더하면서 아기자기한 시화작품들로 감칠맛이 더해지는 그곳에서 지난 주말, ‘커피시인’ 윤보영 시인의 전국 팬클럽 연합 독자모임이 소소하고 오붓하게 열렸다.전국적인 규모의 이번 행사는 지난 4월, 뱃나들마을(우로2리)을 ‘윤보영 시(詩)가 있는 마을’로 조성하면서 약속했었던 농촌에서의 문화축제 개최 후속편으로 ‘윤보영 시인과 함께 하는 제1회 전국 팬클럽 연합 독자모임’에 팬과 주민 등 150여 명이 참여하여 성황을 이룬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 마을의 예비 사회적기업인 ‘영강나루터’에서 제공한 따끈한 국밥 점심을 맛있게 먹고, 마을 주민들이 직접 농사 지은 농산물은 동이 날 정도로 구입하여 호응이 컸다.이어 팬클럽 회원과 주민들은 인천 무형문화재인 부평 두레놀이패의 흥겨운 풍물을 시작으로 함께 공연을 즐기고 시 낭송과 장기자랑, 윤 시인의 감성시쓰기 특강 등으로 하루를 즐겼다. 그리고 한 켠에서는 ‘윤보영캘리랜드연구소’ 회원들과 지방의 서예가가 신청인의 희망에 따라 윤보영 시를 캘리그래피로 써주거나 가훈·명언 등을 붓글씨로 써서 나눠주며 시향과 묵향에 젖어드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한 시인의 팬들은 강과 정자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뱃나들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즉흥시를 지으며 담소하는 등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전국에 8만여 명의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윤보영 시인의 팬클럽은 이같이 상생으로 함께하는 도농의 문화행사를 통해 도시인들에게는 문화적 만족감을 주고 농촌주민에게는 팬클럽회원 등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농산물을 직거래해 농가소득에도 도움을 줘서 윈윈하는 계기로 여겨진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명시가 시인의 고향마을을 찾아가서 스토리가 있는 문화명소가 되고, 또한 시를 사랑하는 팬들이 명소를 찾아 음악과 시낭송 등의 테마로 작은 축제마당을 펼친다면,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번성해지는 새로운 지향점과 성장 가능성이 되리라고 본다.

2023-11-08

‘황순이 가사집’을 읽다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지난 여름 황순이 선생께서 오랜만에 전화를 주셨다. 자작 가사집을 출간할 예정이라며 서평을 부탁했다. 오랜만의 소식도 반갑고 가사집을 낸다니 고마웠다. 예전 내방가사 공부할 때, 뚝딱 써낼 정도로 필력이 보통아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꾸준히 가사를 쓰셨구나 생각하니 참 대단하시다. 서평 쓸 위인은 못된다며 사양하며 짧은 발문을 써드렸다. 간단한 내방가사 소개의 글도 부탁하시길래 보내드렸다. 그 후 책 발간을 위해 꼼꼼하게 점검하는지 전화도 주셨고 출판기념회에 초청하셨다. 그리고 모바일 초청장이 왔다. 보고는 깜짝 놀랐다. 칠순기념을 위한 가사집 발간이라니. 20년 가까이 이런저런 일로 자주 만났다. 난 왜 내가 당연히 연장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황 선생께서 적어도 나보다 10년 정도는 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보다 3살이나 더 나이가 많음을 알게 된 순간 황 선생과의 만남, 식사, 대화나 통화의 내용들을 기억에서 떠올리려 애썼다. 찻자리 부탁도 꽤 했었는데, 혹여라도 실수한 건 없으려나, 무례했던 적은 없었나. 당혹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그러나 난 변명거리를 찾아냈다. 내가 그런 착각을 한 건 무리가 아니며 내 탓이 아니다. 황 선생은 일단 나이들어 보이지 않았다. 워낙 예의바르고 항상 공손했으며, 말투도 극존칭을 주로 쓰셨다. 이 모든 것 때문이다. 나보단 나이가 훨씬 어리겠지 착각을 할 만한 빌미를 내게 주셨다. 결례가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용서를….황 선생의 귀한 칠순잔치에 초대받아 황송한 스승 대접에 몸둘 바를 못 챙길 정도였다.나의 최선은 가사집을 꼼꼼히 읽는 거였다. 내방가사 9편을 엮은 자그마한 책, ‘백선에 꽃잎 날리며’는 ‘칠순이 된 순이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하듯 당신이 쓴 자기서사이자 생애사다. 프롤로그에서 ‘젊었을 때 부지런히 썼던 편지나 일기 쓰기가 나이 들어 책 쓸 만큼의 저력이 되지 못했’다고 겸양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4.4조의 음수율과 4음보의 음보율을 맞춰야 하는 가사는 수필보다 쓰기가 훨씬 더 어렵다.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숙제를 다하신 셈이다. 내방가사는 조선 여성들이 일상 속의 특별함을 기록한 문학이다. 화전가, 유람가, 경축가, 탄식류의 가사가 그렇다. 대소가 여성들이 돌려 읽으며 소통하고 연대했던 공동체의 향유문화다. 황 선생의 가사들은 전통의 가사 유형에 딱 맞춘 수준이었다. 황 선생은 내방가사를 내면화하고 있었던 거였다.작품들은 따뜻하고 애틋하고 향기로웠으며 긍지에 가득찼다. 황 선생의 그런 생애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었고,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한국의 전통다도를 학문으로 익혀 배운 차인이기에 차 관련한 기행가가 있고, 차인에 대한 추모가도 있다. 친구들과의 여행도 예사롭지 않아 역사와 문학을 테마로 한 기행가가 창작되었다. 유쾌한 친구들과의 소풍은 신명나는 화전가를, 어릴 적 친구를 조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쓴 가사의 애통함은 탄식가를 닮았다. 우리 옛 여성의 신명과 탄식과 자긍이, 그리고 전통과 역사에 대한 애정과 진지함이 가사에 그대로 투영됨을 읽었다.

2023-11-08

외국인 유학생 수입 시대

홍석봉 대구지사장 외국인 유학생이 없으면 국내 대학이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경북 지역 초·중·고교생 수는 최근 10년간 33만명에서 25만명으로 줄었다. 경북 대부분 시·군이 인구 감소 지역이다. 지방 소멸 위기다.학령인구가 줄면서 지방대학엔 외국 유학생이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됐다. 지난해 말 현재 외국인 유학생은 19만7천명. 교육부는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명을 유치하겠다고 했다. 외국인 유학생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생활비는 대부분 지역에서 소비한다. 지역의 부족한 일자리도 채워준다.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일부 대학총장은 아예 동남아 국가에 나가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대학 홍보를 하고 각종 당근책을 제시하며 학생을 모집한다. 최근 10년간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두 배 이상 늘었다.경북도가 외국인 유학생 1만명 유치에 나섰다. 경북도는 지난 6일 도내 26개 대학 글로벌 인재 유치 담당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외국인 비자 정책 등 유치 지원 업무를 안내했다. 경북도는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지역기업 및 유학원, 각국 대사관과 협업 방안을 강구 중이다. 유학생 유치는 고교까지 번졌다. 경북의 9개 직업계 고교가 내년도 외국인 유학생 65명을 선발한다. 자사고인 김천고도 내년 외국인 유학생 16명을 받기로 했다.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 유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출산율 0.7명 시대에 학교와 산업현장의 인력난이 심각하다. 외국인 수입이 유력한 돌파구지만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비자발급이 까다로와 한국 정착을 어렵게 한다. 한국 문턱은 여전히 높다. 이 장벽부터 무너뜨려야 한다. 그것이 함께 사는 길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1-08

정치의 계절, 국민의 다짐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정치권이 뜨겁다. 국민을 생각이나 하는지 정치의 진심은 헤아릴 길이 없다. 주권은 어차피 국민의 몫,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든 눈치를 볼 까닭도 없다. 국민은 소중한 한 표로 차갑게 평가하고 분명하게 심판한다. 국민이 선거를 앞두고 가져야 할 자세를 간추려 본다.첫째, 열린 사고. 나만 옳다는 생각을 이제는 벗기로 하자. 나의 주장만 옳다는 독선이 우리에게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가져다주었는지 우리는 모두 기억한다. 내가 맞다고 믿는 만큼 남들 생각에도 가치와 의미를 인정하기로 하자. 함께 고심하고 다 같이 만들어 가는 나라로 나아가기로 하자. 협상과 타협 없이는 늘 같은 자리에 맴돌 뿐임을 확인하고 명심하기로 하자. 둘째, 참여하는 마음. 투표로 참여하지만, 지켜보며 나의 권리를 지키는 민심을 살려야 한다. 이미 선출한 권력이 실패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다. 더 이상 권력의 오만과 편견, 독주와 욕망의 질주를 방관하거나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국민을 무서워하는 정치권이 되도록 길들여야 한다. 당신들이 잘못하는 날, 국민은 언제라도 바꾸어 낼 것임을 가슴에 새기게 하자. 투표 이후에도 제안도 하고 쓴소리도 하여, 정치에 나선 이들이 긴장하게 하자. 셋째, 공감과 배려. 나라와 사회가 잘 되기 위하여 우리는 운명 공동체임을 명심해야 한다. 추격과 경쟁으로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모두가 잘 살아가는 상생공동체를 한번 만들어 보기로 하자. 지역갈등도 부끄럽고 세대갈등도 이겨내야 한다. 온갖 차별을 넘어 화합으로 일어서야 한다. 사람이 모두 사람으로 존중받도록 하고, 다음세대 청년들을 더욱 세워 주어야 한다. 어려운 이웃들에 눈길을 돌리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흩어 버리지 않고, 모으고 모아 함께 잘 어울리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권력은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한다. 세계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대한의 국민에게 손색이 없다. 더없이 높은 자긍심으로 더욱 싱싱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지키고 이루어 낼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 각자임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들은 국민을 섬기고 국민은 나라를 성심으로 섬겨야 한다. 정치는 최선을 다하고 국민은 끊임없이 지켜보아야 한다. 정치는 더 이상 실족하지 않고, 국민은 더 이상 실수하지 말아야 하자.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이 시선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정치의 담론과 정치인의 대화 속에 나라가 안 보이고 민생이 안 들린다. 국격이 가라앉고 민심이 멀어진다. 정치는 욕망을 담아 공천과 표심을 바라겠지만, 국민은 일상이 답답하고 오늘 장바구니가 힘이 든다.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기대하지만, 나아질 기미는 추호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의 성공은 공천에 달린 게 아니라 국민의 하루하루를 챙기는 진심에 달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좌우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상의 고단함을 누가 덜어줄 것인지가 관건이 아닐까. 국민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이번엔 다르게 펼쳐야 나라도 살고 국민이 산다.

2023-11-08

눈 뜬 장님

윤명희 수필가 딸과 통화를 하고 있는데 남편의 전화가 끼어들었다. 딸을 미뤄두고 남편의 전화부터 받았다. 그는 뚜렷한 용건도 없이 끊었다.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차에, 또 신호가 왔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딸에게 내 신분증을 보내라고 한다. 방금 전에 통화했다고 해도, 그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빨리 보내라는 말만 두어 번 하고는 끊었다.신분증을 보내던 중에 또 남편의 전화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정신이 없냐고 묻자 대답은 없고 신분증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한다. 왜 필요하냐고 하니 느닷없이 버럭 화를 냈다. 급하게 신분증사본을 보내자마자, ‘딸이 원격으로’ 라는 그의 말이 어슴푸레 들렸다. 순간, 남편의 핸드폰이 내 명의라는 것이 떠올랐다.나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뛰기 시작했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빤히 보이는 집은 멀기만 했다. 꼭대기 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는 층마다 서고, 나는 평소에는 오르지 않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비밀번호 숫자가 하얗게 보였다. 손가락의 기억으로 현관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놀란 신발이 따라 들어왔다.남편의 핸드폰이 식탁 위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식탁도 따라 울었다. 핸드폰을 손에 들자, 마치 쥐와 엉겨 붙은 도둑고양이의 발광 같은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도둑고양이가 내 집을 다 뒤지는 것이 소리로 보였다.그것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전원만 끄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작동이 되지 않았다. 다급해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딸에게 전화했다. 빨리 신고부터 하라는 말에 112를 눌러 더듬거렸다. 경찰은 비행기 모드로 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떨리는 화면은 전혀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이나 누르고 눌러 겨우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핸드폰이 축 늘어졌다. 도둑고양이의 기운이 손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탁자 위에 던지듯이 놓았다. 매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괴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금방이라도 비시시 다시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통화 내용 중에 도둑고양이가 남편이 내게 꼭 전해야 할 말만 들리게 하는 수법으로 교란시켰다는 것을 안 것은 나중 일이다. 나는 그제야 넋 잃고 서 있는 남편을 보았다.두 명의 경찰이 오고, 곧이어 젊은 경찰이 들어왔다.젊은 그는 도둑고양이가 깔아놓은 악성프로그램을 지워나갔다. 암호 같은 파일의 이름들을 빠른 손으로 처리하는 그를 멍하니 보았다. 통장에 돈이 없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라했다. 대출까지 한다는 말에 나는 다시 얼어붙었다. 신용대출에 카드대출까지, 훔쳐갈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핸드폰 속을 모르는 나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에 몸이 휘청거렸다.벌써 줘버린 내 신분증으로 뭔 짓을 할지, 일 분 일 초가 불안한데 금요일 밤이다. 신분증 분실신고를 월요일 일찍 해야겠다는 내 말에, 딸은 경찰청 홈페이지에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라며 한숨지었다. 답답해하는 딸의 마음이 보였다.예전, 이모 앞에서 깔깔댔던 내가 떠올랐다.30여 년 전, 이모가 딸네에 갔을 때 일이다. 딸은 점심약속이 있어 외출을 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이모가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그녀는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밥 생각이 났다. 반찬을 꺼내놓고 밥을 푸려고 하자, 밥솥이 당체 입을 열지 않았다. 한참 전에 밥이 다 되었다는 신호까지 들었다.이모는 비틀어도 보고 당겨도 굴려도 보았지만,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을 만지다시피한 밥솥뚜껑을 열지 못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했다. 밥솥 안의 밥을 번연히 보고도 굶어야 했다. 그녀는 딸이 새로 샀다고 자랑한 전기밥솥을 발로 사정없이 차버렸다고 했다.저녁때가 다 되어 허기진 배를 안고 우리 집에 온 이모 앞에서, 나는 ‘살짝만 돌리면 될 텐데 그 쉬운 걸 모른다고?’하면서 웃고 또 웃었다.핸드폰 앞에서 씩씩대는 지금, 갑자기 이모가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2023-11-08

입동(立冬)과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19번째가 입동(立冬)이다. 태양이 황경 225도에 위치하며, 태양의 복사량이 점점 줄어들어 날씨가 차가워진다.한자어로는 설 입(立), 겨울 동(冬)이다.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다. 올해는 11월 8일(음력 9월 25일)이 입동이었다. 낙엽이 모두 지고 추워지기 시작한다.사주명리학에서 입동과 소설을 포함한 양력 11월(음력 10월)은 해월(亥月)이다. 입동은 지지(地支)의 해(亥)에 해당하며, 해월(亥月)이 시작한다. 해월부터는 양(陽) 기운이 사라지고, 음(陰) 기운만 지배하여 천지 간에 차갑고 어두운 기운만 가득 차게 된다. 만물이 활동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기다.회남자(淮南子) 권3 ‘천문(天文)’에 의하면 “추분(秋分)이 지나고 46일 후면 입동(立冬)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라고 하였다. 동면하는 동물은 땅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풀도 겨울을 나기 위하여 잎의 수분을 빼내고 누렇게 말라간다. 나무는 겨울에 대비하여 잎을 떨어뜨린다. 벌레도 알을 까놓고 자취를 감추는 때다.예전에는 농촌에서 입동 전에 밀, 보리와 마늘 양파 파종을 모두 끝내야 한다. 겨울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무를 캐서 무청으로 시래기를 엮고, 덜 자란 무로 동치미와 짠지를 담근다. 총각무는 수확해서 총각김치를 장만한다. 그리고 무말랭이와 시래기 말리기, 곶감 만들기, 땔감으로 장작 패기, 창문 바르기 등 기나긴 겨울을 지내기 위한 준비를 했다.입동에 하는 가장 큰 일은 김치 담그기와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쑤고 볏짚으로 묶어 걸어두는 메주 만들기다. 입동을 전후하여 5일 내외에 담근 김치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이때 만든 김장 김치를 독에 넣어 구덩이를 파고 땅에 묻어 보관해 오랫동안 먹었다. 요즘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높아짐에 따라 김장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김장할 때 사용하는 고추는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로, 신대륙 발견으로 유럽에 소개되고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전후로 들어와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조선 초기까지 먹은 김치는 동치미에 가까운 무로 만든 발효식품이었다고 한다. 배추는 1850년경 청나라에서 들어와 본격적으로 재배되어 우리가 즐겨 먹게 되었다고 한다.입동 무렵 미꾸라지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도랑에 숨는데, 이때 도랑을 파면 누렇게 살찐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다. 이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것을 도랑탕 잔치라고 했다. 미꾸라지는 양기(陽氣)를 돋우는 데 좋다고 한다. 가을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고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고 한 듯하다.특히 입동에는 마을 어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벌였는데, 이때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는 것을 치계미라고 하였다. 또한 시루떡을 장만하여 나누어 먹었다. 팥의 붉은 색이 액운과 귀신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농가에서는 행운을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웃들과 함께 나누었던 풍속이 이제는 추억 속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입동은 주역에서 중지곤(重地坤) 괘에 해당한다. 곤(坤)은 만물을 시작하게 하는 근원이며, 만물을 성장시킨다.만물을 증진시켜 이롭게 하고 완성시키는 유순함으로 올바름을 굳게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크게 형통하는 모습이다.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여 만물을 포용하여 모든 것을 낳고 기르는 위대한 생명력을 가진 것이 땅이며, 어머니다. 땅의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제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중지곤(重地坤) 괘는 6개의 효(爻)가 모두 음(陰)으로 이루어졌다. 하늘과 땅이 음으로 가득한 완전한 음(陰)의 상태다. 음(陰)이 지극하면 변화한다. 변하여 또 하나의 양(陽)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명리학에서 11월은 해월(亥月)이다. 해수(亥水)는 수(水) 기운이 강해 음(陰)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해(亥)는 동물로 돼지며, 강한 수(水)의 힘과 지혜를 의미한다. 그래서 사주에 해(亥)가 있으면 끈질긴 인내심이 있어 자기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를 하며, 혼자 묵묵히 실력을 쌓는 경향이 있고 지구력도 남다르다.입동은 나무의 죽음이 아니라, 새롭게 다시 태어나려고 스스로 땅속으로 되돌아가는 비장한 시기다. 나무가 죽어가는 모습은 아름답고 눈부시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람은 가을 단풍놀이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행복을 만끽하는 한편, 나무는 화려한 모습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상태다.저녁놀의 아름다움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태양은 지지만, 또다시 떠오른다. 아름다움과 추함, 태어남과 죽음은 다름이 아니다. 음양의 구분이 없는 차원이 무극이다.

2023-11-08

‘서울공화국’의 민낯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단어로 ‘서울공화국’이 있다. 모두 다 아는 바와 같이 이 말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와 인구를 풍자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지만, 수도권의 면적은 전체 국토의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서울공화국이 만든 숱한 문제는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며, 이에 따라 오래전부터 행정수도 이전을 비롯한 많은 해결책이 제시된 바 있다.지난 10월 30일. 여당의 대표가 시민의 대다수가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이유로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특별시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해서 큰 혼란을 일으켰다. 당장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도 서울로 편입해달라는 의견이 쏟아지고 한편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내년 총선을 앞둔 선거용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단 그 발언은 우리 사회의 두 가지 진실을 드러내는 것에 일조했다.첫 번째는 우리는 수도권·지방이란 구도에 익숙하지만,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다시, 또 구별 짓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억눌린 욕망은 적절한 계기를 만나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포시민의 의견을 반영해서 서울 편입이 추진된다는 정부 여당의 발언을 도화선으로 고양, 하남, 안양 등 인접 지역의 욕망이 터진 사실 말이다. 서울에 편입됨으로써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제외하고 어떤 이득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이번 사태는 그간 우리의 마음에 존재하던 욕망의 민낯이 위계적이고 경제적이란 점을 새삼 알려주는 것이다. 위계 서열화된 시스템의 가장 높은 것에 올라가야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명제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본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는 최소한의 브레이크 장치가 정치권의 한 마디에 파열된 셈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무엇보다 역대 정부가 지방균형발전이랑 명분으로 시행한 수많은 정책과 이번 정부의 ‘글로컬 사업’ 등과 같은 서울-지역의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에서 극단의 시각이 불쑥 튀어나온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당의 대표는 그 발언이 지닌 모순과 갈등의 지점을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총선을 앞둔 발언일까? 전자라면 그 무식함에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후자라면 역풍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수도권’이 다 같은 수도권이 아니라는 현실을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위계화의 법칙이 엄혹한 현실에서 지역의 학생들에게 정주하며 꿈을 펼치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뭐 하나 선뜻 답하기 어렵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은 좀 더 명확해졌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꽤 오랫동안 반등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 사회에 잠재된 혐오의 감정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만약 내가 김포에 거주하고 있었다면 여당 대표의 발언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것 역시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래서 무섭다.

2023-11-07

예? 아니오?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얼마 전, 향후 모 기관 평가를 위한 주요 안건 처리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해결되지 않은 케케묵은 안건 하나가 있었는데, 마침, 회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위원 중 한 명이 먼저 꽤 괜찮은 의견을 내었다. 그런데 회의를 주관하던 기관장이 그 의견을 들어보니, 말은 맞고 합당한데, 따르자니 본인 소관인 내부 부서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다 그렇잖아도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아 속앓이를 앓던 터라,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때, 좋은 방향을 생각하며, 나도 덧붙여 한마디 했더니, 다들 동요할 것 같았는지, 갑자기 기관장이 버럭, 그게 쉽지 않은 문제인데다 다들 마땅한 대책이 없는 것 같다며 서둘러 안건을 정리하려 하였다. 그 목소리 톤과 권위적인 태도에 다들 쥐 죽은 듯, 눈치만 보다가 ‘예’하고 일제히 숙이는 게 더 가관이었다. 졸속 행정, 이건 아니다 싶어, 한마디 더 하니,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못 박는 게 아닌가. 그러자 다들 아까보다 더 충성스러운 태도로, ‘예’하던 모습이란! 대책이 없는 게 아니라,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교묘히 싫은 것을 감추며 일을 졸속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속이 빤히 보였건만, 다들 권위에 굴복해 버리니, 참, 마음이 헛헛했다.장탄식(長歎息)을 하고 운전하고 돌아와 지인과 저녁을 먹으며 그날 일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지인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너도 참…. 세상 순진하기는! 그게 바로 인간이야. 공부한다더니, 인간 공부 안 하고 무슨 공부했냐.”는 핀잔만 잔뜩 듣고서, 허, 참. 깊어가는 가을, 많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1597년 2월, 한양에서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에 대한 국형장이 한창이었다. 문무백관 200여 명이 모두 그를 죽여야 한다고 일제히 아우성칠 때, 심지어, 이순신을 크게 추천한 유성룡마저도 선뜻 못 나서던 그때, 혼자 ‘아니오’를 외친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영의정 이원익. 그 결과, 이순신은 살 수 있었고 풍전등화 속 나라를 구한 명장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또 연산군 때, 환관 김처선은, 감히 두려워 아무도 말 못 할 때, 이토록 음탕한 임금은 보지 못했다며 직언(直言)하다 목숨을 잃었다. 화난 임금이, 그를 죽인 후에도, 그 집안을 멸족하고, 그 이름자 중 하나인 ‘처(處)’자 사용을 금지함은 물론, 동명이인들은 개명하라는 명까지 내렸으니. 게다가 처용무의 이름도 풍두무(豊頭舞)로 바꾸고, 과거 시험에서 처(處)자를 썼다고 합격을 취소한 일까지 있었으니, 실로 ‘아니오’를 외친 댓가가 크긴 했다. 그러나 다들 ‘예’라고 할 때, 환관으로서 ‘아니오’를 외칠 수 있었던 그 마음은 대단하지 않은가.어느덧 11월이다. 모두가 ‘예’라 할 때, 아닌 것을, 아니라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용기’이다. 누군가는 이 용기가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라 하고, 또 누구는 그런 용기를 부리다 꺾이고 지쳐 너덜너덜해질 테니, 그냥 그대로 사는 게 좋다고도 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어느 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길일까? 깊어가는 가을, 나는 예? 아니오? 어디에 속할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2023-11-07

어른의 아지트, 순대국집

나의 취미는 요리다. 그렇다고 집에서 빵을 굽거나 파스타를 하는 건 아니다. 술안주를 직접 만들어먹는 게 좋달까. 코로나 시절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 어렵다보니 집에서 혼술을 하는 취미가 생겼는데, 매번 시켜먹기가 부담스러워 간단한 요리를 해먹다 보니 생긴 취미다. 처음에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같은 간단한 찌개 종류부터 해먹기 시작했는데, 요즘엔 유튜브에 편리한 레시피가 많아 이것저것 해먹어보는 중이다.하지만 그런 나도 집에서 도저히 해먹기를 포기한 술안주(?)가 두 개 있는데, 감자탕과 순대국이다. 둘 다 30대 남자의 소울푸드 같은 요리인데, 집에서 하자니 손이 너무 많이 가기도 하고 냄새가 온 집안에 남다보니 집에서 해 먹는 건 아예 포기했다. 하지만 소주를 좋아하는 나에게 둘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음식인지라, 감자탕이나 순대국에 혼술이 땡기는 날이면 집 근처의 가게에서 포장을 해 먹곤 한다.그러다보니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사실 순대국밥은 집에서 먹으면 맛이 없다. 감자탕은 그래도 포장을 해서 먹어도 우거지며 고기며 참 맛있게 먹고 밥까지 뚝딱 볶아먹는데(배가 아무리 불러도 볶음밥은 못 참는다. 소주 안주로 볶음밥을 어떻게 참아) 이상하게 순대국은 집에서 먹으려면 손이 안 간다. 분명 가게에서 먹을 때랑 똑같이 해먹어도 도저히 그 맛이 나질 않는다. 희한한 일이다.사실 나에게는 좋은 순대국 집을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맛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술을 마시고 할 때는 맛보다 중요한 요소가 몇 가지가 있다.하나는 냄새. 자고로 순대국 집은 돼지고기와 부속고기를 오래 삶은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색. 벽지며 천장에 살짝 누런 느낌이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주인이 너무 친절하지 않아야 한다. 가끔 말을 걸고 필요한 거 있냐고 묻거나 반찬을 아무 말 없이 리필해주는 경우들이 있는데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친절이라면 친절일 테지만, 이상하게 부담스럽단 말이지. 게다가 반찬을 남기는 걸 싫어하는 나로썬, 그런 친절은 정말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어쩌면 순대국의 맛이라는 건 단지 음식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런 부수적인 요소를 통해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적당히 허름해서 격식 차릴 필요 없는 그 느낌 속에서 평소엔 잘 보지도 않는 야구를 보며 순대국을 기다릴 때의 그 여유로움. 시게 익은 김치와 깍두기를 한 입씩 먹어보고, 양파와 고추를 쌈장에 찍어 먹으면서 소주를 한 잔 따라 미리 마실 때의 그 알싸한 느낌.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긴 순대국에 숟가락을 미리 담궈두고, 정구지와 새우젓, 다대기와 들깨가루, 모자란 간은 소금 살짝 넣고 고추기름과 마늘 다진 게 있는 집에선 그것들을 살짝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재료들이 잘 섞이게 만들 때의 그 기분. 숟가락을 꺼내 입으로 슥 해주고, 그 맛에 소주를 한 잔 비우곤 국물을 마실 때의 그 따끈한 맛이란….그렇게 소주를 한 잔 한 잔 비우고 있으면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 든다. 세상 일 따위 어찌되든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기분도 든다. 어쩌면 내가 순대국에 소주를 좋아하는 건 맛보다는 그런 일련의 느낌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 오늘 열심히 살았다, 이제 술도 한 잔 했으니까 오늘 하루는 그냥 쉬자하고, 뇌에서부터 발끝까지 늘어지는 그 기분이 너무나도 좋다. 그런 나에게 순대국집이란 지치고 힘들 때, 구석에 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찾는 나만의 작은 아지트인 셈이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작년 이사를 했을 때에도 나는 제일 먼저 순대국 집부터 찾아다녔다. 맛과 적당한 친절과 적당한 허름함을 갖춘, 혼자를 위로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숨어들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곳. 신기하게 그렇게 마음에 드는 순대국 집을 하나 찾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동네와 친해진 기분이 든다. 이곳에서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들고. 여기서도 이런 저런 일이 많겠지만 그럴 때마다 여기 와서 순대국에 소주 한 병 뚝딱하면 또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오늘도 순대국 집에는 수많은 혼자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문득 그 모습들이 살아고자 힘껏 힘을 내는 모습들 같아 측은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에겐 그런 장소가 하나쯤 필요한 것 아닐까?누구도 자신을 탓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따끈한 국물과 차가운 소주에 온 몸을 느슨하게 풀어줄 시간. 그래서 나는 우울할 때 순대국을 먹으러 간다.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과 장소가 하나쯤 있기를 바란다.

2023-11-07

그림 밖에 있는 사람

얼마 전, 동생이 참여한 회화전이 벨기에에서 열렸다. 여러모로 기쁜 일이니만큼 나도 동행하여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프닝이 끝나면 프랑스와 스페인을 여행할 계획도 세웠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모름지기 먹고 마시고 아무렇게나 늘어지는 시간에 가깝지만, 이번엔 달랐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다른 것보다 역시 가장 기대되는 건 미술관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명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모조리 섭렵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배낭을 짊어졌다. 다리가 퉁퉁 붓고 온몸이 지끈거려도 다음 날 아침이면 어떠한 미적거림도 없이 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것들을 마주할까, 어떤 작품이 나를 놀라게 할까,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 덕분이었다.참 신기하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작품이 그 작가 자체를 명징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지 또 무엇을 감추고자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살아가는지. 작가는 작품 내부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지만, 사실 모든 것을 발화하고 있다. 그 당연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또다시 느꼈다.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박물관과 미술관을 들락거리는 내내 우리는 가벼운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책에서만 봤던 작품들이 바로 앞에 놓여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그리스 조각부터 중세 회화, 르네상스를 거쳐 근현대 미술사를 빛낸 작가들의 작품을 찬찬히 살폈다. 그러다가 문득 발길을 멈췄다. 작품을 한참을 보고, 또 들여다봐도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빈센트 반 고흐,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였다.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에 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굉장한 감흥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매체에 이르기까지 고흐의 작품을 인용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고흐의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상했다. 넘치는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작품이 슬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아름다워서, 그림 밖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가 정신병동에 입원하기 일 년 전에 그린 작품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고흐는 미래에 관한 낙관을 꿈꿨다. 부서지는 햇빛이 아름다운 프로방스 지역으로 이사를 했던 것도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실패만 거듭하던 예술가에게 희망적 예감은 얼마나 소중한가. 여전히 호기롭게 캔버스 앞에 서서 붓을 쥘 수 있었던 건, 캄캄한 어둠 속 저 멀리 보이는 한 줄기 빛의 존재 덕분이었으리라. 그림의 시간적 배경은 밤이다. 강변으로 늘어진 집을 밝히는 불빛이 있다. 하늘을 수놓는 별빛도 있다. 강의 표면에 빛이 눅진하게 번져간다. 멀리서 보면 강과 하늘이,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과 하늘의 별빛이 모두 하나인 것만 같다.고흐의 밤은 푸르다. 푸른 밤은 차갑다. 그리고 외롭다. 푸른 밤을 밝히는 무수한 빛이 있다. 그렇다고 쓸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극대화된다. 반짝이고 일렁이는 빛을 바라보는 관찰자는 밖에 있기 때문이다. 빛의 내부로 들어가지 못한 채로 차갑고 외로운 공간 속에 서 있다. 그저 물감을 덧칠하고 또 덧칠하면서. 어둠이 있기에 빛은 더욱 강렬하게 빛나고, 슬픔이 있기에 강가의 풍경은 눈물겹게 아름답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의 오랜 후원자이자 동생인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밝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이렇듯 그는 빛을 고통이라고 말한다. 밝고 매혹적이지만 그만큼 아프고 괴로운 것이라 생각한다.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고 있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 고흐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야말로 그가 해석한 빛에 가까울 것이다. 아름다우나 고통스러운 것. 고통스럽기에 아름다운 것. 마침내 그는 자신을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하나의 질문을 꺼내놓는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거기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흐도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붓을 쥘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렇게 덧붙인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져갈 수 있을까?”텅 빈 캔버스를 바라보는 한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낙관과 무의미로 끝날 수 있다는 불안. 어쩌면 그건 삶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본다. 그림 밖에 서서 그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캔버스가 채워지면서 어떤 이야기가 탄생하게 될지 말이다.

2023-11-07

이준석은 탈당하는 즉시 ‘고립무원’이 된다

심충택 논설위원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 주말 부산까지 찾아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만나려 했으나 문전박대 당했다. 보수정당을 아끼는 많은 국민은 이날 인 위원장이 어떻게든 이준석을 포용해 공멸의 길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기대했지만, 그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이준석은 이날 자신을 만나러 온 인 위원장에게 시종 영어로 말하면서 “환자는 서울에 있다”며 모욕을 줬다. ‘서울환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 핵심측근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여진다. 부산시민들이 가득찬 자리에서 이준석이 인 위원장에게만 일부러 영어로 말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너는 우리 국가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가 포함됐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해석이 아니더라도 멀리서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어떻게 그렇게까지 모질게 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민심이다.인 위원장의 연이은 이준석 포용행위는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제 보수정당을 회생시키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한 이준석에게 할 도리는 다 했다는 충분한 명분을 쌓았다. 결과적으로 인요한식 ‘포용의 축적효과’가 이준석의 탈당과 신당창당 명분을 사전에 반감시키는, 보이지 않는 성과를 낸 것이다.이준석의 신당창당은 기정사실로 된 것 같다. 여당 입장에선 이제 이준석 탈당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게 됐다. 만약 이준석이 ‘윤핵관’에 의해 쫓겨났다는 ‘피해자 이미지’를 가질 경우, 그의 신당은 여당에 일정부분 상처를 줄 수 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지지기반이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에서 발붙일 곳이 없게 되자 스스로 당을 박차고 나와 신당을 창당하려는 그에게 민심이 우호적일 리 없다.그의 손을 잡아줄 정치인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이준석이 신당창당 준비과정에서 민주당 비명계 의원을 접촉하고 있다고 밝힌데 대해 우상호 의원은 “개똥같은 소리”라며 일축했다. 금태섭 신당 ‘새로운 선택’의 곽대중 대변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에서 안되다 보니 원래 있던 당에 맞불을 놓기 위해 신당을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같이 하면 득보다는 실이 많다. 우리뿐 아니라 누구하고도 같이 하기 힘들다”고 했다.곽 대변인 말처럼, 이준석 신당론은 ‘가능성’으로 남아 있을 때에만 협상력이 있다. 여당의 끈질긴 포용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을 탈당하는 즉시 그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칼은 꺼냈을 때보다 칼집에 있을 때 더 위협적이라는 것은 꾀 많은 이준석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내년 총선에서 이준석이 출마 지역을 서울 노원구가 아닌 대구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일부 보도도 나오고 있어 대구시민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이준석이 말하는 신당이 성공하려면 우선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춰야 하고 상당한 지지세력도 있어야 하는데, 대구를 정치거점으로 삼겠다는 그의 발상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보수진영의 산실인 TK지역 유권자들이 ‘먹던 우물에 침을 뱉는’ 이준석을 국회의원으로 뽑을 순 없지 않은가.

2023-11-07

인요한發 특권 폐지

우정구 논설위원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의해 누구나 특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어떤 목적이나 사정에 따라 법률상 그 예외를 인정하는 것을 두고 우리는 특권이라 부른다.우리나라 국회의원에게는 법률상 두 가지 특권이 있다.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의원은 회기 중에 체포되지 않는 불체포특권과 의회에서 한 발언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특권이 그것이다.국회의원 의정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지만 특권 남용사례가 많아지면서 특권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최근 국민여론을 반영하여 불체포특권과 의원 숫자 감축, 세비감액 등의 특권 축소를 당에 정식 요청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이슈로 늘 비관적으로 끝난 사안이지만 그의 요구에 정치권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그동안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위해 법률안도 여러차례 만들어졌지만 국회를 통과한 적은 한번도 없다. 아무리 비판이 거세도 기득권을 유지에는 여야가 한통속이기 때문이다.지난 4월 출범한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는 “국회의원들이 180개가 넘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가 난장판이 됐다”고 말했다.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국회에 입성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도 특권 때문”이라며 특권폐지 운동에 국민적 참여를 호소한 바 있다.총선을 앞두고 특권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지금이야말로 특권 폐지의 호기다. 인요한발 특권축소 요구가 정치권에 과연 불을 지필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11-07

바로 보는, 청도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공원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4절까지 있는 새마을노래는 한때 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노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가사를 만들었다고 하는 이 노래는 70년대를 풍미했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아침마다 마을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마을 공동의 일을 위해 모였다. 마을을 스스로 정비하고 깨끗하게 가꾸는 데 일손을 보탰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으로 시행되면서 노래도 더불어 더 많이 활용되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이 단조로운 노래 그리고 새싹 무늬가 그려진 초록 모자와 기억을 공유한다.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농촌 마을 가꾸기 운동에서 시작되었다.1969년 8월 박정희는 수해복구사업을 돌아보다 청도의 신도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다른 마을에 비해 깨끗하게 정비되어있는 마을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새마을가꾸기운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듬해 10월부터 박정희의 제안하에 정부가 주체가 되어 전국의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새마을가꾸기운동이 실시된다. 정부는 당시 쌍용시멘트의 과잉 재고를 농촌 마을에 나눠주며, 마을 재건을 독려했다. 마을 진입로를 확장하고, 하천에 작은 다리를 건설하고,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하고, 공동 우물을 정비하며, 목욕탕이나 빨래터 등 공공장소의 건립에 활용되었다.대통령의 개인 관심에서 시작되었던 새마을운동 사업은 정부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농촌 마을의 호응도를 끌어내었다. 이에 정부는 각 마을의 성과에 따라 기초·자조·자립 마을 3단계로 나누고, 차별적 물자 지급을 하면서 마을끼리의 경쟁심을 자극했다. 물자가 배제되는 마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며 차등 지급하였다. 1970년대는 물자가 풍족한 편은 아니었고, 마을마다 공동체를 유지하던 전통이 남아있었던 시기라 의외로 성과는 매우 좋았다. 뜻밖의 성과에 정부는 농촌에서 도시와 공장까지 운동을 확산시켰고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이 시행되었다. 실제로 새마을운동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 경제의 급성장에 일조한 면이 많다.그러나 도시의 산업화로 농촌과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도시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유신 정권에 대한 격한 목소리가 나오던 때에 박정희에게 필요했던 것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이었다.1973년 박정희는 “10월 유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새마을운동이고,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곧 10월 유신”이라 선언했으며, 초록 모자·노란 완장·새마을노래는 상징이 되어 전국적으로 추진되었다. 도시·공장·학교·마을 등 전부 새마을운동이란 이름 붙었으며,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사람들의 노동력과 재산과 시간 등은 반강제로 동원되었다. 도로의 포장·보수, 다리의 건설, 마을 진입로 건설 등은 국가사업임에도 보상받기가 쉽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의 노동력은 무료로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초기의 새마을운동이 마을을 위한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면 1973년 이후의 새마을운동은 마을 주민으로서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한 국가의 반강제적 사업이었다. 마을공동체가 자체적으로 유지하던 전통적인 공동체 생활은 국가가 주도할수록 점점 더 퇴색되어갔다. 1979년 박정희의 암살로 새마을운동은 내리막길을 걷는다.새마을운동 발상지로 자주 언급되는 청도 청도읍 신도마을에는 현재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과 기념공원, 새마을테마파크가 마을 정경과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다. 기념공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과거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세웠다는 신거역과 박정희 대통령의 전용 열차, 대통령 동상과 차표 동상이 보인다. 세월의 흐름을 머금은 빛바랜 열차와 물건들이 오랜 기억을 자극한다. 신거역 안에는 곰돌이가 차장으로 앉아있어 재미를 더한다. 작은 전시관으로 꾸며진 신도정미소나 교복체험관을 지나 기다란 번영의 길을 따라 걸으면 멀리 새마을운동발상지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마을이 변화된 모습과 당시의 책자나 사진, 현재 다른 나라로 수출되고 있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정보들이 1·2층에 나눠 전시되어 있다. 신도리마을 안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산 아래 새마을테마파크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잘살아보세관·새마을학교·시대촌·놀이터·스탬프 투어·숙박시설 등 둘러볼 거리가 많아 흥미를 더한다.새마을운동은 농촌에 불어온 근대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잘살아보고자 하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시작되었으나 국가가 주도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전통적인 마을공동체 유지 체제마저도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왔다.새마을운동은 현재 경제발전의 일환으로 여러 나라에 수출되고 있다. 근대화에 성공한 결과적인 면뿐만 아니라 과도한 실적 경쟁과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시스템이었다는 부정적인 면도 간과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와 연결된 역사를 지닌 이곳을 걸으며, 새마을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3-11-06

기억과 치유의 문을 열고 닫으며

죽음은 온전히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망자를 절차에 따라 떠나 보내고 남은 자리엔 ‘정리’와 ‘상실’의 과제가 남는다. 뜻하지 않은 죽음은 ‘만약(if)’이라는 후회와 회한의 절차를 반복한다. 그 반복적인 절차 속에서 상실은 옅어지고 삶에 대한 또 다른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그 무엇도 온전히 상실의 빈공간을 채우지는 못하겠지만 무뎌지고 잊혀지면서 상실의 아픔은 아물어간다.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바로 이러한 ‘정리’와 ‘상실’에 관한 영화다.‘너의 이름은’에서도 그렇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에서 시작된다. 반복되는 꿈, 그 속에서 미지의 궁금증은 증폭되어 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꿈은 모두 과거의 어느 시점에 발생한 사건을 기점으로 한다. 꿈은 조금씩 조금씩 반복되며 진행된다.꿈은 죽음과 맞닿아 있고, 그 죽음을 있게 한 원인과 연결된다. 원인은 재난이고 그 재난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상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채워갈 것인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2020년 1월 일본에 있었다. 포항문화재단의 재난을 문화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해외교류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후쿠시마 이와키시를 방문했다.2017년 11월 15일 포항 흥해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문화적으로 극복하고자 꾸준히 노력하였고, 그 일환으로 일본에서 활동중인 단체와 교류를 추진하게 된다.10여 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었지만 그날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지진해일로 인해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입었던 이와키시는 여전히 피해 복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원전 피해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당시의 흔적은 짙게 남아 있었다. 그날의 상처는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하루 아침에 사랑하던 이들을 잃었고, 살던 집과 동네가 쓸려 내려가는 모습이 각자의 기억 속에 박혀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의 복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전작인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가 가상의 재난을 다루고 있는데 반해 ‘스즈메의 문단속’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실제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피하거나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심연의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기억을 직접적으로 끄집어 낸다. 그날의 기억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만약이라는 가정을 끊임없이 반복해 보지만 돌이킬 수 없다는 지점에서 택한 방법은 과거의 상처를 직시하는 것이다. 물리적 피해복구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은 치유는 그 속도를 달리한다. 2020년 후쿠시마 이와키시의 방문에서도 피해복구와 다르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은 여전했었다.영화는 애도와 치유의 방법으로 실제 일어났던 재난을 끌어온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것이 해답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묻고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살핀다.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던 그날의 기억은 온전히 되살아나 눈앞에 펼쳐진다. 외면한 기억을 뒤돌아 마주했을 때, 기억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을 때 황량했던 내면에 순풍이 풀고 꽃이 피어난다. 이유없는 재난 앞에서 스즈메의 이유를 찾기 위한 문단속은 계속되지만 사라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영화는 장면 장면마다 재난을 경험했을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요소들을 배치해 두었다. ‘만약(if)’의 문을 열고 닫으며 초월적인 존재의 능력을 갈구하지만 이미 발생한 재난은 돌이킬 수 없다. 각인된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영화는 손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타인의 위로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날의 기억을 직시하고 인정했을 때, 그곳에서부터 치유가 시작된다고 말한다.직간접적으로 재난을 경험했을 모든 이들에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닫음으로써 비로소 이후의 삶이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이와키의 해변가에서 보았던 높은 방벽이 나왔을 때 울컥했던 마음과 함께 감정의 울림이 크게 여닫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잊어서 치유되는 것이 아닌 기억해서 아물어가는 상처의 치료 과정을 보게 된다./김규형 (주)Engine42 대표

2023-11-06

‘윤심’이 아니라 ‘민심’을 받들라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속담에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강서구청장 선거에 올인 했으나 참패하자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다. 이제야 윤 대통령은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나부터 반성하겠다”고 했고, 여당은 환골탈태하겠다면서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총선을 앞두고 저승이 어른거리니 겁이 나서 허둥대는 모습이 측은하다.필자는 이미 본 칼럼을 통해 여러 차례 정부·여당에 고언(苦言)을 했다. “제주 돌담이 대통령에게”(2022년 8월 9일),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보라”(2022년 9월 6일), “당심·윤심·민심”(2023년 1월 31일), “공정과 상식, 그 표리부동에 대하여”(2023년 2월 28일), “중도층의 표심이 두렵지 않은가”(2023년 10월 10일) 등이 대표적이다. 유사한 비판과 충고들이 다른 언론에서도 수없이 지적되어왔음은 물론이다.그럼에도 모른 채 하더니 총선이 다가오자 이제야 호들갑이다. 쇄신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혁신과 변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내년 총선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여당은 사실상 ‘용산의 출장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권력은 민심을 받들면 살고 거스르면 죽는다. 윤 대통령은 “민심이 곧 천심”이라고 했지만 말 뿐이었다. 오만·독선·불통으로 무너진 전 정권을 닮아가고 있다.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이전할 때의 초심은 어디로 갔는가? 소통이 막혔으니 왜 청와대를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것이 민심이다. ‘59분 대통령’이라는 별명은 불통의 상징이다. 참모들에게 “소통을 강화하라”고 지시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나부터 반성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위기 모면용’이 아니길 바란다. ‘반성이 기만’이 되면 민심은 폭발한다. 보선 참패는 대통령이 자초했고, 총선의 승패도 대통령의 변화에 달려 있다. 정치초보가 오만해서 폭주하면 사고 친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민심은 부정평가가 긍정평가의 두 배를 넘나들고 있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총선은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여당의 쇄신 역시 시급하다. 용산만 쳐다보는 무력한 당이나 ‘혁신 시늉만 내는 혁신위원회’는 없는 게 낫다. 보선 참패의 책임으로 물러난 ‘윤핵관’ 사무총장을 20일 만에 다시 총선 핵심직책에 중용(重用)한 것이 혁신이란 말인가? 위장된 혁신은 역풍을 불러온다. 또한 정당민주주의 관점에서 볼 때 당내 비판은 ‘내부 총질’이 아니라 ‘충언(忠言)’이다. 총선 승패는 중도층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중도 확장성이 있는 당내 비판세력을 존중해야 한다. 이들이 탈당 또는 신당을 창당할 경우 수도권 선거는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대통령이 민심을 오독(誤讀)하거나, 당이 ‘윤심’만 살피면 ‘떠난 민심’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공천에 ‘윤심’이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당락은 민심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2023-11-06

‘희망 고문’ 된 공공기관 지방이전

홍석봉 대구지사장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역이전이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연기됐다. 과열 경쟁과 사회적 공감대 미형성이 이유다.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역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국토부는 올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 상반기 내 기본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2차 이전 대상은 300곳 이상이다. 전국의 광역 및 기초단체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경제적 파급력이 크고 직원 수가 많은 우량 공공기관이 대상이다.돌발 변수가 생겼다. 혁신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우리도 유치하겠다”고 뛰어들었다. 유치 과열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속도조절에 나섰다.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총선 전에 바람을 타서 화약고를 건드리기보단 준비를 철저히 한 뒤 이전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 국토교통부와 조율했다”며 이전 연기를 공식화했다. 수도권 민심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일었다.상주시 등 전국 80여 자치단체장들은 지난 2일 비혁신·인구감소 도시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혁신도시특별법 개정’ 촉구 결의를 했다. 지자체장들은 혁신도시 위주의 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비혁신도시는 균형발전 측면에서 미흡했기 때문에 공공기관 이전을 지방소멸과 인구 위기를 극복하는 정책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정부와 국회에 촉구했다. 상주시는 제천시와 균형발전위원회를 방문, 비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 당위성이 담긴 공동성명서를 전달하기도 했다.이러다간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모두 공공기관을 우리 지역으로 이전해 달라고 요구할 판이다. 공공기관 배정에 목을 매고 있는 혁신도시 단체장과 주민에겐 ‘희망고문’이다. 저마다 당위성을 내세운다. 주무부서는 떡 갈라주듯 할 수도 없고 머리를 싸매야할 터이다. /홍석봉(대구지사장)

2023-11-06

‘마당개’를 아십니까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개를 마당에 묶어서 키우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절의 개들은 도둑이 들거나 낯선 사람이 침입하는 것을 경고하는 ‘경비견’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허름한 잠자리와 짧은 목줄은 당연했고, 주위에는 제때 치워 주지 않은 똥오줌이 널려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연히 산책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고, 복날 즈음해서 개장수에게 식용으로 팔려 가는 일도 흔했다.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오늘날에도 이런 처지에 놓인 개들이 적지 않다.1m 내외의 짧은 목줄로 마당에 묶여 생활하는 개를 ‘마당개’라고 한다. 공장에서 경비용으로 묶어서 기르는 개를 뜻하는 ‘공장개’라는 표현도 있다. 농어촌 지역이나 공장지대를 지나가다 보면 이런 마당개와 공장개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사람이 반가워 날뛰는 녀석, 경계심을 표출하며 사납게 짖어대는 녀석 등 반응도 제각각이다.2022년 조사에 따르면 도시 지역보다 농어촌 지역에서 마당개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미비한 탓이다. 보호자와 함께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즐기는 도시 지역의 개들과, 온종일 짧은 목줄에 묶여 지내는 마당개와 공장개들은 같은 개라고 하기엔 ‘팔자’ 차이가 너무 커 보인다. 인간이라면 어떨까? 어떤 사람이 짧은 줄에 묶여 행동반경을 제약당하고, 배변조차 줄에 묶인 채 그 자리에서 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심각한 학대이자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것이다.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월 2일, 경주시는 안강읍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24마리의 개를 구조했다. 오물과 쓰레기와 뒤엉킨 채 방치된 개들은 기생충과 피부병에 감염되어 있었다. 이처럼 적절한 환경과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많은 동물을 사육하는 사람을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라고 한다. 이 또한 심각한 동물 학대 행위이다.개정된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행위’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현행법으로 이러한 동물 학대 행위를 예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해나 질병, 죽음 같은 실제적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깨끗한 생활환경을 제공하고 다치거나 아플 때 반드시 치료해주는 등 동물을 기르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를 설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법적제재가 가능하도록 동물보호법이 추가 개정되기를 바란다.법제도의 개선과 함께 동물권에 대한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페미니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반려종이 성립하려면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종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썼다. 인간은 개를 길들여 반려동물로 삼았지만, 개 또한 휴머니티(인간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반려동물은 정복과 지배, 사육의 대상이 아니라 또 다른 우리이기도 하다. 마당개에게서 보이는 풍경은 짧은 줄에 묶여 있는 동물이 아니라, 주체의 신화에 속박당한 우리 자신이다.

2023-11-06

사회 자정작용 시스템

강길수 수필가 10월 하순, 후덥지근하던 가을 날씨가 소슬해진다. 어제와 오늘은 습도가 20%대까지 낮아졌다. 그래선가. 보도의 벚나무 낙엽들이 절반은 부서졌다. 샛노랗거나 새빨간 벚나무 낙엽을 줍던 즐거움도 올핸 못 누릴까 보다.낮은 습도에 벚나무 낙엽이 쉬이 부서지듯, 자연물들은 서로 반응한다. 그들의 상호 반응이 내겐 자정작용(自淨作用)으로도 보인다. 발생하는 오염물들을 자연은 끝없이 자정작용으로 정화한다. 공기나 물 등 무생물들도 물리, 화학적 자정작용을 한다. 살펴보면, 자연은 자정작용이 점철된 시스템이다.인간사회는 어떨까. 당연히 자정작용시스템을 갖는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는 결국 자정작용시스템이다. 인간사회의 정치제도 중 자정작용의 결정체는 무얼까. 바로 ‘자유민주주의’라 본다. 지구촌 대부분 나라가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한 것을 봐도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전이 말하듯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다.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허울이나 말장난에 불과하다.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이룬 것은 행운이다. 75년의 짧은 기간에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사회를 국민과 지도자가 해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정작용시스템은 무엇일까. 언론, 관습, 문화, 윤리, 도덕, 나아가 입법, 사법, 행정 등 사회 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자정작용시스템은 바로 공명정대한 선거다. 주권이 국민에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2020년 4·15총선 직후 부정선거 소송이 126건이나 제기됐다. 이후 많은 분이 부정선거퇴치 운동을 한다. 저작가 G 박사는 2017년 대선부터 올 강서 보궐선거까지 8차례에 걸쳐, 통계학 대수법칙을 위반하는 부정선거를 선관위가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또 H 교수는 올 강서 보궐선거 사전투표 결과가 나올 확률은 무려 5.7경분의 1이라 한다. 오랫동안 품질 수치를 다뤘던 나도 사전투표 결과를 보는 순간, 조작된 수치임을 직감했다.숫자는 진실이며, 증거다. 10월 강서 보궐선거의 득표율은 당일 투표 여당 47.12%, 1야당 48.46%, 차이 1.34%다. 반면, 사전투표는 여당 30.61%. 1야당 65.68%, 차이 35.07%다. 투표자 기준 사전투표율은 46.51%다. 따라서 비슷한 두 모집단의 투표결과는 거의 같아야 한다. 상식적, 통계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결과다.앞에서 보았듯 우리나라는 신성한 사회 자정작용시스템인 선거가 거악 오염시스템으로 전락해버렸다. 부정선거 획책 세력이 국민을 깔보고, 사회 체제 전복을 암암리에 도모한다는 의심이 짙다. 전쟁은 외부침략이고 부정선거는 내부침략이다.대통령과 정부, 정치권, 사법부, 언론은 이제부터라도 부정선거를 발본색원하여 나라의 자정작용시스템을 회복시켜내야 한다. 혁신, 변화 다 좋지만 선관위 발표 거짓 선거 숫자에 바보처럼 승복하여 어릿광대놀음만 해서는 안 된다. 여당 혁신위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부정선거를 막는 일이다. 이는 나라를 지키려는 국민의 뜻이다.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존속 여부가 걸린 문제니까.

2023-11-06

서울공화국은 곤란하다

김진국 고문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 문제로 정가가 어수선하다. 경기도 분도(分道) 시민공청회에서 이런 제안이 처음 나온 것은 이해할 만하다.김포시민이야 서울 편입을 원할 수 있다. 그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당론으로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김포골드라인 교통 대책 시민 간담회에서 김포시민이 의견을 모은다면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했다.김 대표는 “생활권·통학권, 직장과 주거지 간 통근 등을 봐서 서울시와 같은 생활권이라면 행정 편의가 아니라 주민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원칙적으로 서울과 출퇴근이 공유되는 곳은 서울시에 편입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하고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김포뿐 아니라 고양·부천·광명·구리·하남 등 서울 인근 도시들이 모두 들썩인다.김 대표 논리대로라면 수도권 전체가 서울이다. 대구·부산·광주 등 전국에서 중환자는 서울 대형병원으로 간다. 콘크리트 아파트 한 채에 30억~40억 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편치 않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렇다고 전국을 서울로 집어넣을 수는 없다. 집중도를 낮춰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경기(京畿)’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고려 현종(1018) 때다. 고려 초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왕도(王都) 주위 오백 리에 ‘적현(赤縣·京縣)’과 ‘기현(畿縣)’을 설치했는데, 이를 통합하면서 경기라고 부른 것이다.경기도는 원래 서울과 한덩어리다. 조선 시대 이후 서울 중심이 더 강화됐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국토교통부 균형발전현황판을 보면 서울·인천·경기,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6%다. 1960년 20.8% 수준이었던 수도권 인구 비중이 80년 35.5%, 90년 42.8%으로 치솟더니 2019년 말 드디어 절반을 넘어섰다. 면적은 서울이 전체 국토의 0.6%, 인천 1.1%, 경기 10.6%로, 합쳐서 11.8%, 10분에 1에 불과하다.그런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서울이 4만9천680원으로 대구(2만 5천543원)의 두 배에 이른다. 수도권은 4만703원, 비수도권은 3만9천212원이다. 청년 실업률도 수도권이 4.67%인데, 비수도권은 6.36%다. 그러니 서울로 몰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뭘 더 가져다 붙이겠다는 건가.김포의 서울 편입 정책은 선거용이라는 정황이 분명하다.내년 4월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절체절명의 고비다. 레임덕이냐, 힘 있는 임기 시작이냐를 가르는 선거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통해 수도권 민심을 확인했다. 그대로라면 수도권에서 지난 총선 결과인 103 대 16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안간힘을 쓰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 대계를 좌우할 문제를 선거용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린벨트를 설정하고, 수도 이전을 구상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다급해도 그런 꼼수를 부렸을까.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종시 이전 공약으로 선거 때 ‘재미 좀 봤다’라고 말했다.좋은 구상이라도 선거에 연결하면 왜곡되기 마련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도 지역 특성과 전체 연결을 고려하지 않은 나누어 먹기가 되면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정치적 거래, 그 이후 선거 때마다 이용되면서 표류하고 있는 새만금은 전형적인 득표 미끼가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코로나 지원금도 선거 전 현금 살포에 이용됐다.선거를 계기로 기발한 정책들이 발굴된다.평소 관료 조직의 경직성을 뚫기 힘든 과감한 정책도 선거를 계기로 실현되는 일도 있다. 미국의 뉴딜정책도 선거를 통해 나왔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국가 미래에 대한 거대한 디자인에 맞춰져야 한다. 당장 기존의 지역 발전 구상은 어떻게 할 건가. 여야를 막론하고 비전은 없고, 잔꾀만 느는 것 같아 걱정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