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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원을 잘 가꾸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5월의 들판을 달려보면 갖가지 풀꽃들이 밝은 계절을 노래하고 있다. 노란 꽃들이 유난히 많다. 그중에서 군락을 이루어 피어있는 금계국은 황금색 깃털이 아름다운 금닭(金鷄)을 비유한 듯한 국화과 식물인데 너무나도 소담스러워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살펴본다. 몇 년 전만 해도 많지 않았던 꽃들이 요즈음은 길섶과 비탈에 풍성하게 널려있다. ‘사랑의 망각’ ‘상쾌한 기분’이라는 꽃말과 함께 강인한 번식력으로 봄의 들판을 차지하고 있다.풀꽃은 원래 존재감이 별로 없지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노래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흥얼거리며 시골집 골목길로 들어서면 노란 돈나물(돌나물) 꽃도 눈길을 끈다.오늘은 시골집의 소나무 순치기를 하려는 날이다. 5월 하순부터 6월까지가 적기이다. 그동안 노란 꽃가루를 마루에 흩뿌려 귀찮게 하던 새순들이 쑥쑥 자라서 다른 모양새를 보이고 있고, 그대로 두면 잎들이 햇빛을 가리거나 바람을 막고 수형(樹形)을 망칠 수 있기에 불필요한 가지도 잘라주어야 하는 시기이다. 이걸 놓치면 다음 계절, 여름과 가을을 기다려야 한다.정원에는 몇 그루 낮은 소나무가 꽤나 근사하게 자라고 있는데 수형 관리를 위해 매년 가지치기를 해주고 있다. 검붉은 나무둥치가 드러나도록 자르며 나무 끝부분이 강하게 자라는 특성 때문에 순을 따서 가지 세력의 균형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소나무 종류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나무의 외모를 고려하며 큰 가지부터,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쪽으로 전지(剪枝)를 한다. 말라죽은 가지, 병든 가지를 먼저 자르고 쑥 뻗은 도장지와 아래쪽으로 쳐진 가지, 둥글게 굽어있는 가지, 교차하는 가지를 자른다. 뭉크러져 있던 잔가지가 잘려지면 바람도 시원하게 통하고 갖가지 모양의 굵은 가지가 영험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소나무는 절개와 의지, 충정과 지조 등의 가르침을 주듯 우리의 애국가에도 철갑을 두른 듯하다고 하지 않은가. 소나무 꿈을 꾸면 벼슬할 징조이고 소나무를 그리는 꿈은 만사형통을 이룬다고 하니 잘 키워야 하겠다.5월 30일부터 22대 국회가 열렸다. 여의도 국회 정원에도 가지치기를 한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은 지역구 253명과 비례대표 47명 등 총 300명의 국회의원 중 초선 의원은 131명이다. 지난 21일 국회 박물관에서 가진 ‘초선 의원 의정 연찬회’에 모여 국회 조직과 기능 및 주요 의정 지원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앞으로 4년간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국회에 반영하여 국민의 심부름꾼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를 다짐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나무에 기둥 쪽 108개 가지와 밖에서 둘러싸고 있는 175개의 가지가 서로 엉키거나 햇빛을 가리고 혼자서 쭉 뻗는 행위로 여의도 소나무를 훼손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는 옛날에는 가축을 키웠다고 하니 이상한 소리를 듣지 않도록, 여의도의 여의(汝矣)를 ‘여의주(如意珠)’라고 해도 좋을 정치·금융의 중심으로 거듭나게 해서 대화와 타협으로 국회 정원을 잘 가꾸어 나가길 염원하는 바이다.

2024-06-06

시낭송의 매력과 풍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이른 아침 들리는 새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부터 들리는 새소리에 잠을 깨고 눈을 뜨니, 오늘 하루가 왠지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다. 예전에는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지만, 요즘은 촌락에서도 닭 울음 소리나 개 짖는 소리가 드물어진 것 같다. 그만큼 삶의 양태가 바뀐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소쩍새나 부엉이 등 밤새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자리에 들고, 이른 아침 온갖 새소리에 눈을 뜨면 도회지만 어디 산 속에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필자의 우거 주위엔 도로 건너의 야산과 연결되는 작은 언덕이 뒤뜰과 이어지고 있어서 정원의 나무들과 함께 길다랗게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나무를 비롯 풀들이 자라고 있는 그곳에선 사시사철 수많은 새들이 날아들고 합창이 끊어지질 않는다. 그러한 곳에서 새들의 지저귐을 자주 듣다 보니, 어쩌면 새들의 특유한 대화법(?) 같은 지저귐에도 일정한 패턴이나 규칙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침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새들의 울음은 서로의 안부마냥 그렇게 정겹고 반가울 수가 없었다고나 할까?‘언제부턴가/자명종 같은 새소리가 두드리면//깃 터는 아침이/선물처럼 다가와//샘솟는/환희의 빛살/온누리에 뿌리네//터질 듯한 음조로/하루를 탄주(彈奏)하느니//초목의 푸르싱싱/새들의 무정설법(無情說法)//오롯이/추임새 삼는/꿈을 향한 날갯짓’-拙시조 ‘새소리로 여는 아침’전문싱그러운 녹음과 향기로운 풀잎이 꽃필 때보다 더 아름답다는 유월 아침에, 온 누리에 울려 퍼지는 새소리는 그야말로 자연의 서정시처럼 들린다. 연록의 잎새가 짙어지면서 산과 들에 초록의 서사시를 쓰듯이, 새들의 낭랑한 지저귐은 계절을 찬미라도 하듯 그 자체가 영롱하고 이슬빛 머금은 명징(明澄)한 시편으로 여겨짐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바람결조차 부드러워 새들의 목놓아 외치는 읊조림에 나뭇잎마저 살랑거리며 추임새를 넣는 듯하다.누렇게 물결치며 맥추(麥秋)의 서정을 노래하던 보리를 베어내고 논배미의 행간에 또박또박 글자를 심듯이 모심기를 하는 망종(芒種) 즈음에, 사람사는 세상에도 시와 음악을 품고 즐기는 모습들이 활달하기만 하다. 이를테면, 책방이나 한적한 뜰에서 시를 읊거나 시낭송회를 열고, 십인십색의 화음이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문인과 독자와의 만남으로 문학과 예술의 얘기꽃을 피워가는 마당에는 풍류가 저절로 흐르는 듯하다.시는 세상에서 가장 정제된 언어로 짧지만 시사하는 의미와 울림이 있다. 아름다운 시어들을 목소리의 음색과 시에 담긴 희로애락을 가슴으로 전하며 잔잔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시낭송가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활자화된 시를 목소리의 운율과 낭송가의 표정, 몸짓 등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표현이 더해지게 되면 더욱 따뜻하고 풍부한 감동을 자아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시낭송가는 시인과 독자 사이를 이어주며 세상과 소통하고 시 나눔의 감동을 전달하는 풍류 가인(佳人)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의 일상화로 감정과 정서가 메마르고 단절돼가는 현대사회에, 시를 읽으며 시낭송의 매력과 운치를 느껴보는 풍류생활을 즐겨보면 어떨까?

2024-06-06

산사의 풍경소리

탄탄스님(통도사중동분원 서래사주지, 동국대(와이즈 캠퍼스) 출강) 밤 하늘의 별들이 초롱초롱하고 칠흑같은 어둠속 저 멀리 산그늘이 더욱 검푸른 곳에서 하루에 두끼만 먹고 어떨때는 일용할 두끼마저 삼양라면과 농심라면이고 밤참으로는 가끔 왕뚜껑 컵라면 일 때도 있었지만 차리리 속은 편했던 적이 있다. 사람을 만나고 친분을 쌓아올려 수 천명의 지인이 있음 뭣 할런가? 살아보니 다 헛되고 헛된 인연이더라.  세상 살아가며 허무함을 느껴 나락에 빠진 자에게 겨울이면 아프지나 말고 엄동설한 굶지말고 잘 버티라며 쌀 한가마 김치 몇포기 나눠주는 지인 딱 한 명이면 그저 행복한 세상일터.직장생활에 밥줄을 걸고 높은 자,같잖은 자,눈치나보며 비위맞추랴,쥐꼬리같은 박봉에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아가며 사는 꼴이 꼭 여색에 빠져서는 머리부터 아그작 아그작 암컷에게 씹혀 먹히는 줄도 모르다가 최후에는 성기조차 씹혀먹히며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숫컷 사마귀 같은 수 많은 인생도 어지간히 애잔하다. 인간세상이란게 종족번식을 위해서이든, 애욕에 빠져서이든, 짝사랑이든, 또 그 어떴든 간에 숫컷 사마귀처럼 애처롭게 살아가는 이 또한 부지기수다.  갈 곳도,오라는 곳도 없어 하루 온종일 신물이 나오도록 라면으로 연명하지만 이 몸은 자유로운 들개 버금가는 자연인이다. 잠 못이룬 긴긴밤 줄기차게 마셔된 술병이 머리맡에 나부끼고 이를 바라보며 우선 당장 해장할 고민에 머리를 감싸나,그래도 그대는 자유인이자 자연인 아닌가. 여름날 밤에도 온 몸에 모기에 뜯기며 홀딱 깨벗고 잔걸 보면 더욱 그렇다.  이 몸이 아침이면 뱃속이 벌써 여러 해째 영 불편하였다.생률과 생무우를 먹어 보면 어떨까하여 생각만 하염없었지만,밤을 날로 예쁘게 깍어 무우를 밤톨처럼 깔끔하게 까서는 앙징맞은 찬합에 넣어 대령해줄 어여쁜 어느 여인이 있나, 그 번거로운 일을 해 줄 언년이 식모가 있을까나, 마트에 가서 무우 한개 먹자고 한 다발을 사와서 보관 할 곳도 없고 당뇨에는 썩 이롭지 않지만 비타민C가 엄청 풍부하다는 사과나 감조차 혼자 먹자고 깍아 먹는 사소하기조차 한 일도 그렇게 쉽지가 않다. 이토록 혼자 사는 일은 그 모든 것이 수월치가 않다.가끔 자연인 재방을 본다.홀로  날마다 부지런 떨며 깊은 산 속에서  집도 손수 지어 자급자족을하며 사는 모습, 대단한 용기이지 않은가.어디에도 얽메임 없는 자유를 갈망하여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생활하는 그 신념과 용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높이 평가할 만 일이다.  '만사 귀차니즘' 에 빠진 현대인들에게는 죽었다가 여러 번 깨어나도' 언감생심으로 꿈꿀수도 없는 그 신비의 세계, 그 삶도 충분히 인간다운 삶이라는 철리를 깨우쳐 본다.  누군가에게 얻어들은 옛날옛적 이야기 하나 해보자,"어느 골짜기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칡넝쿨을 거두려고 웬 줄을 당겨 붙들었는데, 그것이 하필 그늘에서 자고 있던 호랑이 꼬리였다.이런 낭패가 있나,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나무꾼이 깜짝놀라 급히 나무 위로 올라갔다.잔뜩 화가 난 호랑이가 나무를 마구 흔들어 대자 놀란 나무꾼이 엉겹결에 그만 손을 놓아 버렸다. 그런데 나무에서 떨어진 곳이 하필 호랑이의 등이었다이번에는 호랑이가 너무도 놀라 몸을 흔들어 대었고,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호랑이는 나무꾼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달리기 시작했다.나무꾼은 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호랑이 등을 더 꽉 껴안고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그런데,한 농부가 무더운 여름에 밭에서 일을하다가 이 호사스런 광경을 보고는 불평을한다. “나는 평생 땀 흘려 일만 하고 사는데,어떤놈은 팔자가 좋아서 빈둥빈둥 놀면서,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는가?”농부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절대절명의 생사의 기로에 있는 나무꾼을 부러워 했다나ᆢ. 때로는 남들을 보면 다 행복해 보이고 나만 죽도록 고생하는 것 같다. 나는 뜨거운 뙤약볕에서 일을 하는데 남들은 호랑이 등을 타고 신선 놀음을 하는 듯 하다.그러나,실상을 알고보면 사람 사는 것이 거진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하다.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똑같은 외로움속에서 몸부림치며 생을 영위하고 남과 비교를하면 다들 내것이 작아 보인다.나에게만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들어가 보면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다.비교해서 불행해 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으로 범사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것이 현명한 삶의지혜가 아닐까 한다. 탈탈털린 영혼이었을때 꼭 한번은 만나보시라고 꼭 강권하고 싶은 경북 영덕군 남정면 골짜기의, 포항에서 제일 높은 스님은 아니지만 젤 높은 곳 내연산 문수암에 가면 저절로 만나지는 스님이 있다.산위에서 산밑을 바라보라.모두 다 아랫것들로 보이더라, 높은곳은 뭐 별천지 더냐?,지역사회에서 명망있는 팔순의 카톨릭 사제를 거주하는 암자의 명예신도회장으로 일방적(?)으로 임명하시고 하루 흙짐 스무지게를 지어 절을 손수 보수 수리하고 일상에서 지옥과 극락교를 마음대로 건넌다는 지론으로 아무런 걸림없이 겸손을 지향하며 내 맘이 가는대로 당나귀하고 염소하고도 벗이 되어주고 가파른 산길에서 지던 짐을 내던지는 당나귀 타박하지 않고 돌려받아 둘러메고는 묵묵히 산길 걷는 포항의 기인스님, 3,000배도 쉽지 않은데 팔굽혀 펴기 3,000회도 끄떡없다더니 몸을 너무도 흑사하며 하나 뿐인 몸을 아끼지도 않더라.남의 사주팔자도 명쾌히 들여다 보고 염생이 밥주려고 청과시장 썩은 과일 수거하러 트럭을 몰고 극락교를 건너 사바로 발길 향하는 작업복도 잘 어울리는 묵설스님이다. 포항에 잠시 살때면 가끔은 통화도 하고는 했지만 더운 날엔 내가잡은 고기는 말고 방금 죽어버린 시원한 물회 한사발을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싶다.'전국의 기인찾아 삼만리'를 취미삼은 내게 경북 영덕군 남정면 회리길499로 좀 오라하시기에 한숨에 달려갔네. 비싼 게 좀 먹자면서 곱게 동여멘 포장끈 녹슨칼로 뚝 끊어서 융슝한 대접도 받았다.그 다음엔 이런 당부의 말씀을 주시었네, '인생이란 강한자와 대적만 하려 말고강한자를 벗으로 두는 속편한 길 가라'다 이루워져서 만족한 다음엔 그 다음에는 반드시 어김없는 허무가 찾아오기 마련인데, 그리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나 어느정도 성공하여 일가를 이루웠거나 돈줄을 거머 쥔 재벌이거나 유명연예인들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후에 그 공허를 이기지 못해서 도박도 하고 술이나 이성을 찾고 더 나락으로 빠져서 마약으로 그 공허함을 넘을려고 하는 것 같다며, 자신도 수행길 고단하고 외로워서 술마시다가, 아까비라 내청춘도 많이 지난간 거라고 솔직담백하게 할도 해주고 방도 해준다.그러면서 나에겐 한가지 더  한번 더 강조하여 챙겨주는 말쌈이"절대로 강한자에게 덤비지 말고친하게 지내요'두 번을 더 내게 반복 강조를 하더니만, 또 '어떤 일을 하든 아쉬움을 조금 남겨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신다.인간에게는 이성적으로 다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어야 하며, 그래야 호기심을 일으키고 희망을 되살린다고 되뇌이셨다.동물선원 원장직 마다하지 않고 제 갈길 가는 기인(?)이랄까, 수행도 독특한데 니들 맘대로 생각하던 말던멋대로 살아갈테니,괘념치를 않는다네.헤어짐을 앞두고선 사족을 하신 말쌈이 '완벽한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론 노력도 해야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듯 여지를 남기고 감사 할줄도 아는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현실에 순응하고 마음의 부족을 채우라고 덧붙이셨다.날 콕찍어서는, 언어를 빨리하면 복이 감한다고 다른 복은 갖추었어도 말을 천천히 하라고 말이 많은 사람들은, 즉 욕구불만이니 말을 줄이는것이 상책이라신다.촌로처럼 허름하게 늙어가지만 어느 관상가 점쟁이 뺨따구 왕복으로 서너번도 더 쳐주는 도인도 훨씬 능가하는 꿰뚫어 명쾌하기조차 한 인생길 조언도 결코 마다하지 않으면서, 예전의 묵설당이 그 포커페이스 고수의 묵설은 온데간데 없고 번듯한 중늙은이의 스님으로 거듭나 내일모레 구순의 신부님하고도 승속과 종교도 초월하고 지옥과 극락도 마음대로 넘나드는 확고부동한 고독한 수행자의 늠름한 모습이었다네. / 탄탄(통도사 포교원 서래사 주지•동국대학교 출강)

2024-06-06

‘보복정치’로는 民心 얻을 수 없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22대 국회 문을 열자마자 윤석열 대통령 부부 등을 겨냥한 특검법 폭주에 나서 분위기가 살벌하다. 민주당은 가장 먼저 ‘채상병 특검법’을 재발의했다. 윤 대통령을 특검 표적으로 정조준하고 있다.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사망 사건 조사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던 날 윤 대통령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권에서는 “탄핵까지 거의 온 것 아닌가”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온다.중앙지검장 시절 윤 대통령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최근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주가조작 의혹, 허위 경력 기재 사기, 뇌물성 전시회 후원, 대통령 공관 리모델링·인테리어 공사 특혜, 민간인의 대통령 부부 해외 순방 동행,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를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법안 내용을 보면, 자신들 입맛대로 검사와 판사를 임명해 수사·재판을 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검 후보 2명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더 기막힌 것은 압수 수색, 구속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영장 전담 법관을 따로 지정하고, 재판도 전담 재판부가 심리하도록 한 것이다.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원천배제한 법안이다.조국혁신당은 1호 법안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했다. 한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법무장관 시절 자녀의 논문을 대필했다는 가족 관련 의혹과, 작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설명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를 수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일각에선 “조민 아빠의 복수극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조국 대표 가족은 자녀 입시비리로 딸(조민)은 의사면허를 잃고 아내는 3년여 수형 생활을 했다. 조 대표도 유죄를 선고받고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조 대표는 “과거 검찰이 내 딸은 일기장과 고교 생활기록부, 체크카드, 신용카드 내역을 조사했다. 그러나 한동훈 딸 같은 경우, 소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압수수색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며 검찰의 불공정성을 제기했다.야권은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21%까지 떨어진 한국갤럽 여론조사가 나오자 입법폭주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든, 민심은 자기편이라는 것을 자신하고 있는 듯하다.22대 국회가 시작부터 복수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장소로 변한 것 같아 충격적이다. 명색이 국민대의기관인 국회가 앞으로 ‘특검정치’라는 어둡고 파괴적인 어젠다를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존재이유가 무엇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느끼고 있지만, 특검정국은 사법체계와 정부의 행정기능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야권이 윤 대통령 부부와 한 전 위원장을 처단대상으로 규정하고, 국회를 ‘복수의 장’으로 만들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일시적으로는 증오심에 가득 찬 보복정치가 민심을 얻는다는 착각을 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파멸을 불러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24-06-04

6년 만에 재개되는 대북확성기

우정구 논설위원 대북확성기는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우리 군의 심리전 무기다. 1962년 북한이 대남방송을 시작하자 우리도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개시한 것이 대북확성기 방송의 시초다. 그동안 남북관계에 따라 방송이 중단되거나 재개되는 일이 여러번 반복됐다.최근 북한이 오물이 든 대형풍선을 남한으로 살포하는가 하면 GPS 전파교란 행위 등 연쇄적 도발을 일삼자 정부가 대북확성기 방송 재개를 무기로 꺼내 들었다.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선언 이후 중단된 지 6년만이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압박 수단으로 통하고 있어 북한의 다음 반응에 정부도 긴장감 갖고 대비하고 있다고 한다.대북확성기 방송은 최대 30km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방송 내용을 들을 수 있는 고출력 장비의 무기다. 부도덕한 북한 수뇌부의 실상이 스피커를 통해 폭로된다면 북한군과 인근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 무기로서는 최적격이다.정부는 과거에도 북한이 심각한 도발을 개시했을 때, 대북확성기를 카드로 꺼낸 적이 있다.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2015년 비무장지대 목침지뢰 사건, 2016년 4차 핵실험 등의 직후다. 특히 그동안 내보낸 대북방송의 내용이 김정은 정권의 세습과 비리 등 북한 내 실상을 폭로한 것이어서 이번 우리측 대응에 북한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이번 대북확성기의 재개로 남북관계의 긴장감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북한측의 다음 대응에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이런 이유다.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분위기다. 대북확성기의 위력과 함께 유비무환의 정신무장도 갖고 갈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04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닭의장풀

점심을 먹는 동안 소나기가 내렸다. 시원해질까 싶었는데 오히려 습도만 높아졌다. 식당 바깥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언제 비가 내렸나 싶게 말갛고 파란 하늘이었다.“아이고 더워라. 여서 뭐합니까? 그늘에 가서 좀 쉽시다. 담배도 한 대 피우고.”검고 붉은 피부를 가진,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키가 크고 깡마른 사내가 내 옆으로 와 섰다. 오늘부터 나와 한 조가 된 사내였다. 우리는 식당 처마 옆 그늘진 곳으로 가 앉았다. 사내는 두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 중 하나를 자기 얼굴에 문지르면서 남은 하나를 내게 건넸다. 냉동고에서 막 꺼낸 생수병이었다. “이 일 한지 오래입니까?”“오래 되고 말고가 있습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내가 전기 기술자도 아니고. 어제 처음 해 본 일입니다. 어제 하루 하고 말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오늘 또 나오라 하더라고요.”태양광 발전 패널 설비 공사 현장은 처음이었다. 공사 현장이 집에서 비교적 먼 곳이라 어쩔까 했지만 일당이 나쁘지 않았고, 현장이 산이라 하니 마음이 갔다. 오후 작업을 시작한 후에도 사내는 계속해서 말을 걸거나 자기 이야기를 했다. 손놀림을 멈추거나 쉬지는 않았다. 입을 통해 노동의 무게를 내뱉고 덜어내는 것 같았다. 사내의 목소리가 조금 컸었는지 공사 감독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잠시 조용하다 싶었는데 감독이 사라지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이거, 이거 이름이 뭔지 압니까?”보랏빛 꽃이었다.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가 뭉쳐진, 주위를 둘러보니 공사 부지에 지천으로 깔린 풀이었다. 사내가 가리킨 꽃으로부터 눈길이 닿는 곳까지 퍼져나간 보랏빛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아니오, 이름이 뭡니까?”“이게 바로 닭의장풀. 닭장 옆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달개비라고 하면 들어 보셨을라나? 예쁘지요? 봄에 나는 것은 먹기도 했는데.”사내는 꽃을 하나 꺾어 머리에 꽂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이것들이 예쁘기는 한 데 풀은 풀이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보는 족족 뽑아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엉망진창이 됩니다. 생존력이 엄청 나거든요. 여기 뽑아 놓으면 저기서 나고 저기서 뽑아 놓으면 저쪽 어딘가에서 또 나고 있고. 약으로도 쓰인다 듣긴 들었는데, 그렇다고 이걸 약으로 쓰겠다고 캐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은 없으니.”4, 5일정도 평탄 작업이 끝난 후 콘크리트 작업이 시작됐다. 태양광 패널을 올리고 고정할 자리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설명을 듣고 흩어져 막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보랏빛 꽃이 보였다.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꽃이라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쓰였다.“왜요? 무슨 일입니까? 그 잡초 꽃 때문에요? 아이고, 보기보다 마음이 여리시네.”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사내가 삽으로 땅을 내리찍었다.“이 녀석들은 어디서든 잘 살아낸다 했지요. 걱정 마십시오. 죽었나 싶어도 다시 머리를 내밉니다. 자, 하지요. 오늘 좀 많이 파야 하던데.”하지만 한 번 간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능한 꽃을 피해 삽질을 했다. 사내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지만 더 이상 입을 대지는 않았다. 땅을 파는 작업은 그전 작업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오전 일을 마칠 즈음 우리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에 젖은 옷 때문인지 몸이 무겁다 느껴졌다.일주일이 지났다. 전날부터 태양광 전지 패널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넓고 큰, 검은 판들이 땅을 덮었다. 설치는 전문업체의 사람들이 했고 나와 사내는 보조 일을 했다. 주로 장비, 도구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이거나 패널을 고정하는 동안 흔들리지 않게 잡고 있는 일이었는데 검은 전지판에 반사된 빛에 내내 눈이 부셨다. 그날따라 사내는 말이 없었다. 나는 사내가 입을 여는 것을 기다리다 먼저 말을 걸기로 마음먹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싸구려 선글라스라도 하나 가지고 오는 건데. 말이라도 좀 해 주지. 안 그래요?”연철은 부러 툴툴거렸다.“오늘 마치고 한잔 합시다. 술 하지요?”사내가 말했다.일을 마치고 둘은 식당에 남았다. 삼겹살과 소주 몇 병 준비해줘요,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식당 주인에게 부탁을 해놓았었다.“이건 내가 낼 게요.”“아이고, 고맙습니다. 잘 마실 게요. 하하. 자, 한 잔 받으십시오.”사내는 내 잔에 술을 따랐다. 둘은 공사가 얼마나 이어질지, 어느 어느 지역에 열린다는 큰 공사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 티브이에 나오는 정치인이나 대통령 얼굴을 보며 욕을 해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문득 사내가 했던 말이 떠올라 내가 말을 꺼냈다.“그, 닭의장풀인가 하는 것들 말인데, 패널들이 다 올라가고 나면 햇빛을 못 받을 텐데 괜찮을까요? 오늘 보니 패널 밑은 완전히 응달이던데. 햇빛도 못 받고 비가 온다해도 빗물들이 스며들려면 오래 걸릴 텐데. 쟤들도 꽃이 피려면 해도 보고 비도 맞고 해야 할 텐데.”“글치요. 햇빛을 아주 못 받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받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물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위에서 흘러 내려오거나 땅속으로 흘러든 빗물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전만 못 하겠지요. 뭐,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그래서 잡촌데. 잡초가 제일 강하다 안 합니까.”“그렇겠지요? 하긴, 우리가 잡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 보니. 꽃이 예쁘더군요. 자꾸 보니까.”“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카는 말도 있다 아입니까. 무슨 유명한 시에 나온다 하던데. 하하.”나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오늘 왜 말이 없었는지,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물었다. 사내는 소주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고는 한숨을 쉬었다. 사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재건축이 된다고 했다.“오늘 회식은 내가 쏠 일이 아니네. 듣고 보니.”“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입니다.”재건축 이야기는 제법 오래 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재건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파트 주민들 중 상당수는 전세나 월세로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었고 자가로 살고 있던 사람들도 막상 재건축을 위해 집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에 들면 막막했다. 재건축을 위한 투표에서 찬성표는 번번이 60%를 넘기지 못했다.“다들 말만 재건축, 재건축 했지 실제로 벌이지는 못했거든요.”이번에는 달랐다. 외지의 한 부동산 업체가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더니 재건축을 위한 투표 공고가 붙었고 투표 결과 찬성률이 60%를 넘었다. 사내도 찬성표를 던졌다. 재건축조합이 결성되었고, 시행사와 건설사 입찰이 시작되었다.“저야 뭘 압니까. 마누라가 이번에는 꼭 재건축을 해야한다 해서. 그런데 어제 웬 서류가 집에.”재개발 후 지어질 아파트의 대략적인 평수, 호수와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자가 분담금에 대한 안내서가 왔다고 했다. ‘평당 건축비는 천만 원 정도 예상하고 있으며 기존 조합원의 경우 크기별로 기존 아파트의 가치를 산정해서 건축비에서 기존 아파트의 가치, 늘어나는 세대의 분양이 다 된다는 가정 하에서의 이익을 조합원 수로 나눈 가치 등등을 뺀 금액이 자가 분담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성을 따져보니 아파트 층수를 기대만큼 높이지는 못한다. 이러저러하니 조합의 이익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양해 바란다.’ 는 내용이었다.“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이 열다섯 평인데 작은 것을 고른다고 해도 스물여덟 평이니 거의 두 배가 되는 셈입니다. 그것만 해도 건축비가 이억 팔천이라는 말인데 절반만 낸다 해도 일억 사천을 제가 감당해야 한다. 이런 엿같은 계산이 나오더라 이 말입니다. 시발.”그것 때문에 아내와 심하게 싸웠다고 했다.“마누라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돈 못 버는 제 잘못이지요. 헛바람 불어넣으며 돌아다닌 나쁜 놈들 탓이지요.”사내는 물잔의 물을 바닥에 부어 버리고는 소주를 물잔에 따르더니 벌컥거리며 마셨다.“뭐, 어찌 되겠지요. 안 되면 팔고 또 이사 가면 됩니다. 우리가 한두 번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외지에 나가있으니 마누라하고 나하고 둘이야 어디든 누울 곳이 있겠지요.”불판의 고기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술병은 쌓여갔다. 나는 이것저것 이야깃거리를 찾아 건넸지만 사내는 취한 탓인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일이 많아졌다. 간혹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알아듣기 힘들었다. 시발시발 욕지거리만이 분명하게 들렸다. 욕설이 사내의 술버릇이었는지 이번만 유독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슬리지 않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가끔 욕을 따라 하기도 했다. 사내가 시발하면 내가 따라서 시발, 사내가 지랄하면 또 따라서 지랄. 한동안 식당은 시발 지랄거리는 욕설로 가득했다.사내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려나 싶었다.“혼자 가도 괜찮겠어요? 넘어질 것 같은데.”사내는 손을 들어 안심하라는 듯 휘휘 젓고는 식당 밖으로 나갔다.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 나갔던 사내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서 잠이 든 것인지, 비탈을 굴러 아래쪽에 처박힌 것은 아닌지, 잠시 고민을 하다 나는 사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직은 달빛이 남아 있는 밤이었다. 그 달빛을 배경으로 누군가 연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사내였다. 사내는 대뜸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내게 건넸다.“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 시발. 쟤들도 살아가는 놈들인데. 햇빛은 볼 수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비도 맞아야 하고. 아이, 시발. 미안합니다. 그라고 이건 선물입니다. 아니다 숙제인가. 볕 잘 들고 물기 많은 곳에 심어 주세요. 거기서 또 어떻게든 살아가게.” 김강 소설가·내과의 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6-04

반려견과 현대인의 삶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현대인의 행복지수는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안정, 건강, 사회적 관계, 직원 만족도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 높은 기대치, 경쟁시대의 압박 등은 행복지수를 낮추게 하기도 한다. 경제 선진국과 후진국, 아프리카 원주민 등의 행복지수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과학기술문명이 가져다 주는 삶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은 행복지수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또 다른 면도 있는 것이다.독일, 유럽의 경제 선진국 행복지수는 대체로 높은 편이다. 생활수준, 안정된 소득, 국가 복지제도 등 경제적 안정이 첫번째 이유다. 과학적 의료시스템으로 건강관리가 용이하고 기대수명을 충족시킨다. 또한 사회 보장 제도와 안전한 환경, 다양한 교육기회와 교육수준이 삶의 가치를 높여주고 만족도 상승에 요인이 된다. 반면, 경제 선진국 미국을 보면 불평등, 스트레스, 정신건강의 문제로 우울증과 총기 난사 등 사회적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얀마, 네팔처럼 경제 후진국의 행복지수는 낮은 편이다. 소득, 실업률의 경제적 불안정과 낮은 기대수명, 질병, 정치적 불안정, 교육 수준 등도 행복지수를 낮게 한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행복지수는 문화, 생활방식, 공동체 관계 등이 영향을 받는다. 가족과 공동체의 강한 유대,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문화적 정체성, 자연과 밀접한 생태적 균형 등 다른 각도의 행복지수로 봐야 할 것이다.인간의 삶의 행복지수는 경제적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결정되는 속성이 있다. 최근에 유럽과 미국, 한국 등은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흐름이 높아 졌다. 초경쟁사회에 정신적 손실과 소외감을 조건없이 배려와 사랑으로 채워주는 반려견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아침 방문을 두드리고 깨워주고 함께 산책하고 거리를 보면 유모차보다 반려견을 태운 차가 많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필자도 5년 전에 대전에서 블랙탄 포메라니안 변려견을 가족의 일원으로 입양했다. 집에 새로운 기운을 달라고 ‘새봄’으로 이름 짓고 우리 가족 막내가 되었다. 경쟁시대 부모의 요구와 사회적 요건으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았던 큰 아이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입양을 반대했던 가족도 밥을 같이 먹고 재롱에 웃고 웃는 하루의 생동감을 일으켜 주는 새봄이의 열혈 팬이 되었다. 필자도 새봄이 등장으로 주말 집으로 가는 길이 즐거워졌고 산책 당번이 되어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입양했을 때 4개월 된 3.4kg의 작은 체구지만 빠르고 영리하고 귀여움에 산책길에서도 사랑받는 존재이기도 했다.반려견이 현대인의 삶에 주는 선물은 크다. 생존의 경쟁에서 발생되는 스트레스와 허전함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채워주고 가족 간 소통의 가교 역할을 한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현대인의 삶이 풍족해도 스스로 못 채워주는 삶의 공간 때문에 행복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 공간을 채워주는 반려견이 늘 곁에 있어 현대인의 삶은 행복해져 가는지도 모른다.

2024-06-04

탄핵의 추억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현직 대통령 탄핵의 추억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나게 한 추억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휩쓴 하나의 광풍이었다. 곳곳에 포진 해 있던 반정부 세력들이 세월호 참사로 흉흉해진 민심을 선동해서 대규모 민중시위를 일으켰고, 언론과 과반의석의 야당이 적극 가세하고 일부 여당과 사법부까지 동조해서 현직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낸 거였다. 헌정사상 초유의 그 탄핵을 짜릿한 승리의 성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치욕과 한탄의 역사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탄핵에 대해서는 헌법 제 65조에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고위 공직자의 비리 또는 위법의 혐의가 발견되었을 때 그 수사와 기소를 정권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정규검사가 아닌 독립된 변호사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는 제도를 특별검사제(특검)라 한다. 한 마디로 수사의 공정성을 기대·인정할 수 없을 때 도입하는 제도다.특검법안과 탄핵소추의 의결권은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이는 국회가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력남용을 방지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하는 기능이다. 더불어 민주당은 거듭해서 국회의석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자 걸핏하면 특검과 탄핵이란 말을 입에 올리고 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탄핵으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을 한 것과 적폐청산의 명목으로 특검을 해서 지난 정권의 공직자들을 모조리 사법처리한 전력의 재현이다. 행정부와 사법부를 겁박하고 방해하는 특검과 탄핵의 남발을 막을 수단이 바로 대통령의 거부권이다.지금의 야권이 집요하게 특검과 탄핵 정국을 갈망하는 것은 오로지 저들이 지고 있는 사법리스크를 모면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과 다른 점이 적지 않다. 야당이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민심이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빼놓고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이슈가 없다는 것과 언론과 사법부도 어느 정도는 달라진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게 관건인 것은 야권의 구심점을 이루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조국 당대표가 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이다.그들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보려던 ‘김건희 특검’은 김정숙· 김혜경과 함께 ‘3김여사 특검’으로 가자는 반격에 머쓱해졌고, 채상병 순직사건 특검도 국회 부결로 일단 무산되었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특검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대통령 탄핵으로 몰아가기는 역부족일 것 같다. 그보다는 그들을 향해 시시각각 죄어가는 사법리스크가 오히려 국운의 향방을 가를 것 같다.

2024-06-04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하자

김진홍 포항지역학연구회 연구위원 지난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와 함께 탐사시추 계획의 승인을 알렸다. 석유 문제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리게 된 것은 50년 만이다.당시 많은 언론의 1면을 장식했던 영일만 앞바다의 석유 이야기는 당시 어디에선가 지하로 스며든 경유가 우연히 올라온 것을 원유로 착각하면서 오해가 커지기도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1973년 2월 7일 상공부는 포항 앞바다 제6광구 1차 석유 시추 탐사작업의 90%를 완료한 시점에서 석유 발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당시 포항 앞바다의 석유 발견의 꿈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3년 뒤인 1976년 1월 16일에는 포항 영일 일대 석유광업권을 국가서 집행하고 민간인 광구 설정은 불허한다는 결정도 나왔다. 이후로도 포항 앞바다 일원의 석유 탐사는 본격화돼 30개소에 시추작업이 추가로 이뤄지기도 하였다. 결국 1977년 1월 15일 당시 상공부 장관은 재차 포항의 석유탐사는 진전이 없다고 언명하였다. 그 이후 포항 앞바다의 석유 이야기는 마치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다시 50여 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불이 붙었다.50년 전보다 더욱 과학기술이 발전한 지금의 물리 탐사 결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기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사실 포항의 지하에 가스전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장 수년 전부터 철길숲의 불의 정원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나중 확인이 되어야만 하겠지만 적어도 영일만 앞바다가 분쟁 수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는 경제적으로 큰 긍정적인 효과를 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나라가 석유제품 수출국이기는 하지만 수출하는 석유화학 제품의 원재료인 원유를 모두 수입하기에 국가 차원에서 수익이 극대화되기는 한계가 있다.그런 면에서 만약 영일만 앞바다에서 대규모의 원유나 가스전이 발견되어 실제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면 우리나라의 석유화학제품의 가격경쟁력만큼은 크게 개선될 여지가 크다.포항의 경우에는 향후 생산기지가 될 곳과의 직선거리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내륙으로 원유나 가스를 이동시켜 임시로 저장할 시설 등을 해안가 어디엔가 만들 수도 있다. 포항철강공단에서는 이와 관련된 저장장치, 수송장치 등에 필요한 강관이나 관련 설비를 생산하기 위해 모처럼 가동률이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로 파생되는 어떠한 형태로든 새로운 고용 창출, 인구의 유입과 그로 인한 소비산업과 서비스업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제 겨우 탐사 시추계획을 승인했을 뿐이다. 호들갑 떨 때는 아니다. 앞으로 실제 포항 앞바다에서 석유나 가스가 나더라도 그 소유권은 포항시와 무관하다. 따라서 포항시나 경상북도는 이 사업이 성공할 경우를 대비하여 최대한 그 낙수효과가 포항시, 경상북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2024-06-03

가난이란 무엇인가

최근 타계한 신경림 시인은 ‘가난한 사랑 노래’란 시를 남겼다. /연합뉴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다. 시인은 맑고 뜨거운 눈물의 언어를 우리에게 남기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파장’, ‘농무’, ‘목계장터’ 등 절창이 셀 수 없으나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위의 시다.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달렸다. 가난한 젊은이는 곧 그 자신이기도 하고,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온 민중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젊은 날 광부, 장사꾼, 영어강사 등으로 힘겹게 삶을 이었다.가난을 겪어본 시인이 쓴 이 시는 가난이 무엇인지 말해준다.가난이란 두려워하면서도 기계에 손을 넣거나 용광로 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것이다. 가난이란 버릴 수 없는 그리움을 버리고 사랑을 알아도 몰라야만 하는 것이다. 가난은 꿈과 사랑과 그리움을 다 버려야 하는 상태, 개성이며 취향은 물론 희망과 기대까지 모든 게 끊어져버린 막막한 무저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에 흐르는 가난의 구정물 대신 애처롭게 빛나는 가난의 낭만만을 읽는다.신경림 시인이 하늘로 돌아간 날, 학생들과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을 읽었다. 빈민촌에서 사는 ‘나’는 일가족이 자살해 세상에 홀로 남았다. 얼마 안 되는 봉급이지만 씩씩하게 삶을 꾸리면서 동거남인 상훈과 미래의 알뜰한 행복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상훈이 말끔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나 말한다. “사실 나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대학생이야. 아버지께서 방학 동안 어디 가서 고생 좀 하고, 돈 귀한 줄도 알고 오라고 해서 너랑 여기서 지낸 거야.”가난을 ‘사서 하는 고생’으로 여기는 풍조는 여전하다. 몇 해 전 쪽방촌 체험 프로그램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는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며 절규한다. 사람들은 가난에 낭만을 부여하고 서사를 입히기 좋아한다. 같은 성공이라도 자수성가 스토리에 열광하고, 가난해본 적이 있다고 하면 인간적으로 느낀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재래시장에 가 어묵을 먹고, 겨울에 연탄 나르며 흰 얼굴에다 검댕을 처바른다. 연예인들이 빚더미에 앉았다며 생활고를 호소하고, 광고가 끊겼다며 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가난은 대개 상대적 가난이다. 하지만 진짜 가난은 절대적인 것이다. 서로의 가난을 비교하다 그래도 나는 낫구나 싶으면 가난이 아니다. 남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 가난이 진짜 가난이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집에서 나와 옷 입고 밥 먹고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과 나는 가난하지 않다. 결핍과 가난을 혼동하지 말자. 정말 가난한 이들을 욕보이지 말자. 가난을 낭만으로 여기지 말자. 가난을 대상화하지 말자”고.돌아보면 나는 결핍을 가난과 착각해 잘 먹고 잘 사는 생활을 애써 남루하게 만든 적이 많았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타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며 삶 자체다.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가난한 계집을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가난 그 자체를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내 가난은 그게 어떤 가난이라고. 내 가난은 나에게 있어서 소명이다. (…)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읽으며 등골이 서늘하다. 나는 그리움을 알고 사랑을 알고 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며 더 즐거운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가.

2024-06-03

결혼 이야기

요즘 부쩍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주말이 되면 카페에 앉아 가능한 주택 대출제도를 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살 곳이 어딜지 점찍어 보며 살고 싶은 동네를 찾아가 찬찬히 둘러본다. 그것만으로 벌써 내게 마음에 드는 집 한 채가 생기는 기분.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이 동네가 벌써 우리 것이 된 것만 같아 설렌다.결혼이란 뭘까.사실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때때로 결혼이란 상대에게 얽매이는 구속 또는 희생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렇게 지레 겁을 먹다보면 현재 내 앞의 행복이 소중하고 아까워서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8평 짜리 원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자유의 공간.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이곳에 배우자와 함께 살게 된다면? 아주 약간 망설여질 정도로 쉽게 내 공간을 내어주기란 쉽지 않다. 이 협소한 공간 속에서 우린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양보하며 살아가야 할 거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근사한 결혼 생활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던 중 며칠 전 본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결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LA 출신 여배우 니콜은 연극 감독인 찰리와 결혼을 하기 위해 배우 커리어를 버리고 그와 결혼해 뉴욕에 산다. 니콜은 결혼 생활 중 고향인 LA로 돌아가고 싶지만 찰리와의 결혼 생활 때문에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그러던 중 니콜이 LA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한 파일럿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고, LA에 생활하며 찰리에게 이혼 신청을 요구한다.그 와중 그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며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 이혼 소송까지 번지게 된다. 이혼 소송에서 일어나는 일과 인물의 감정선을 극의 절정까지 끌어올리며, 두 인물 모두 서툴고 인간적이며, 본인 스스로가 제일 중요한 이기적인 인간상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사랑은 변하기 마련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결혼 전과 후 분명히 결이 달라진다. 무수히 많은 상황, 환경, 사건이 있겠고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거나, 변형되거나, 비틀어지거나, 끈끈해지거나, 단단해질 수도 있다.이 영화를 통해 깨달은 건 사랑만으로 완벽한 결혼 생활의 완성을 꿈꿀 수 없다는 점이다. 나와 너는 우리로 묶이지만 어쨌든 다른 개개인의 인간이고, 더군다나 유통기한처럼 소멸하는 연인간의 뜨거운 사랑만으로는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영화 속 니콜과 찰리는 웨딩마치 속 화려함이 완벽하게 빼내진 채로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니콜은 찰리와 헤어지는 길에서 그의 풀린 신발끈을 정성스레 묶어준다, 이혼을 고려할 정도로 그를 증오하지만 그가 가는 길에 넘어지지 않도록 신발끈을 묶어주며 끝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니콜에게 찰리는 ‘우리끼리의 나눈 농담도 다 기억하는 사이’, ‘확신이 없는 나랑은 정반대인,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를 본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져‘버릴 정도로 내가 깊게 빠져들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상대를 답답해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소리를 지르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모난 말들만 던지는 싸움 속에서 그간 우리가 쌓아올린 존중과 신뢰의 태도를 굳게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싸움은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고, 감정이 고조되며, 본능적으로 손해를 보기 싫어하니까. 아담과 찰리도 그렇다. 서로를 위해 고상하게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벽을 부수고,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으로 쌓아올린 믿음까지 부수진 못한다. 그들은 과거의 사랑을 바탕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도 서로의 길을 응원하는 사이를 택한다.파경 후 관계를 유지하는 ‘결혼 이야기’를 보며 나는 오히려 그전까진 알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소멸된 애틋한 사랑이었고, 이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겁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사랑은 자연스레 변할 테지만 함께 사랑해온 시간 속의 믿음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고 연인과의 첫 만남, 우리가 나눈 눈빛,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고 이는 이미 내게 영원한 믿음으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2024-06-03

방언시의 놀라운 효과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시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고통을 나누어야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시는 독자들과의 소통 고리를 잃어버리고 표독하게 제 잘난 듯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옷을 갈아입고 미로로 질주하고 있다. 시인은 정치적 선동으로도 모자라 고발과 분열을 미덕으로 삼아 내뛰고 있다. 글로 쓰인 시가 시 본연의 운율과 가락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황혼에 물든 저녁녘 단 한 줄의 시 구절에 어깨를 들썩이는 독자를 찾으러 나서는 시인이 그립다.말하듯 노래하듯 써야 시가 되는 언문일치와 결별한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표준어라는 그물망이 직조되기 이전에는 가슴을 격렬하게 울리는 싱싱하고 푸른 토착어로 노래하듯 시를 쓴 작가들이 있었다. 소월이 대표적인 시인이다. 구전 전통의 우리 가락을 시작을 통해 안정된 시의 미학에 도달하였다. 한자어는 물론 외래음차표기조차 배제하여 쓴 그의 시는 노래하는 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민요적인 가락과 구어적 글쓰기의 결합으로 가장 전통적인 시혼을 우려내는 시작에 충실하였다. 김소월은 ‘개여울’, ‘가는 길’, ‘팔베개 노래’, ‘진달래꽃’에서 외래어나 외래어 음차표기나 한자어를 철저히 배제하고 토착어 지향적인 자세를 일관하였다. 동시대의 만해나 이상화 등의 시인들과도 비교해 보면 매우 재미있다. 토착어로만 쓴 시들과 외래어나 한자어가 많이 뒤섞인 시들을 비교해 보면 시로서의 품격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상화 시의 경우에도 고유어로만 시어를 선택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한자어가 뒤범벅이 된 ‘이중의 사망’을 비교해 보면 토착어 지향성의 시들이 훨씬 더 아름답고 가슴을 치는 품격을 지녔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30년대 이후 시문학파나 생명파, 특히 청록파 시인들의 토착어 지향의 시작 경향이 이어져 아름다운 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한자어를 선호하거나 외래어나 외래어음차표기를 선호하는 위세적 심층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시 쓰기에도 반영이 되었다. 사회 공간 속에서 지적이고 고급적 집단 무리에 편승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시에는 마치 조선조 양반과 평민층의 계급적 길항관계처럼 외래어나 한자어가 꿈틀거린다. 특히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에게 두드러졌다. 70년대로 들어서면서 민학운동이 촉발되고 상실된 실체로서의 민족과 고향을 강조하는 민족문학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시들이 판소리나 민중극과 함께 많이 나타났다. 특히 새마을운동으로 붕괴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이들이 잃어버린 고향과 고향의 재발견을 위한 방편으로 토착어 지향성을 보이지만 표준어라는 압박에서 자신의 구어의 맛깔을 온전히 찾아내지는 못하였다.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시인협회 주관으로 두 차례에 걸친 방언시집 간행이 계기가 되었던지 모티브 차원에서 이용되었던 방언이 시작에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표준어를 수호하던 국립국어원이 오히려 토착적 방언시의 창작을 지원하고 주도하였다. 언어의 종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국어정책의 중요한 축이라는 지향이 피상적으로 간간히 이용하던 방언 시어들을 온전하게 활용하는 차원으로 전개되었다. 어른과 아이들이 공유하고 지식과 계급의 차등을 뛰어넘는 상실의 실체, 사라진 것들을 다시 호명해 내는 시적 기술로서 방언시가 나타났다. 토착 지향의 시인들이 방언을 활용한 노래하는 시, 말하는 시로서의 발돋움을 시작하였다.방언으로 쓴 시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온갖 감각 기관을 총동원시키는 시간 회귀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실한 사물과 상응하는 토박이 음성이 결합하는데 성공한 작품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방언으로 쓴 시편들은 시각적 텍스트인 문자로 잊어버린 옛 시간을 당겨오고 가물가물 사라진 기억을 호명하는 힘을 가진다. 떠나온 고향,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척들과 이웃의 삶터를 개방해 준다. 눈으로는 지나간 시간이나 공간의 빛을 되찾아주고 귀로는 소멸된 소리를 토속적인 악센트로 불러온다. 코로는 증발되어버린 시큼하고 소똥냄새가 뒤섞인 공간의 냄새를 소환하고, 입으로는 소멸된 사물의 존재들을 호명해 온다. 시의 방언은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을 기억해내고 불러오는 수단이 된다.

2024-06-03

인류 문명 발상지 해 뜨는 동방의 나라 오리엔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동경으로 실크로드를 열었던 서아시아다. 서구 유럽의 시각으론 역사의 카메오라며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지만 인류문명 교류에 위대한 공헌은 변치 않은 사실이다.서아시아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이름도 생소하기 짝이 없는 ‘차탈휘유크’와 ‘예리코로’라는 인류 최초의 도시가 형성된 곳이 서아시아와 나일강 유역의 오리엔트 지역이다. 물론 처음에는 주민이라고 해봐야 5000에서 1만 명 정도였겠지만 가축의 사육이라는 선진 삶의 방식으로 윤택한 터전을 닦았던 곳이며, 농법과 가축사육, 생산물의 이동 등을 유럽에 전해준다.기원전 4000년경부터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곳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두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3500년 전, 농경과 관련해 관개농업이 발달했던 이 지역에서 농업생산량이 늘어나고 농촌은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청동기가 제작되고 점성술과 더불어 문자와 태음력이 발명된다.이집트 역시 나일강 유역의 범람을 대비한 대규모 치수 사업을 통해 도시국가가 형성된다. 이로써 고대문명의 태동, 즉 메소포타미아 수메르를 중심으로 히타이트, 아시리아, 헤브라이,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등 수많은 오리엔트 고대국가가 태어났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인류문명 창달에 앞장섰다. 이 중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훗날 5000년 역사의 굳건한 모태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문명이란, 자생적이든 모방에 의한 것이든 일단 탄생과 동시에 이동과 전파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동 과정이 곧 문명의 교류다. 문화교류를 통해 서양문명의 뿌리라 일컫는 그리스·로마 문명이 꽃피는 토양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서양 기독교 중심사상이 절대적 보편가치로 인식되고, 유럽인의 인식 세계에 들어앉은 이교도에 대한 배타적 권리는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축소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르네상스나 산업혁명으로 인한 살상 무기의 발전으로 절대강자의 자만이 넘쳐 인류침탈에 이바지한 제국주의만 없었어도 자랑할 만한 요소는 그리 많지 않다.오리엔트란 용어 역시 서구의 시각이다. 오리엔트란 지중해 동쪽 여러 나라, 아시아를 가리키는 경우다. 어원은 라틴어의 오리엔스(Orient)에서 나왔다. ‘해가 뜨는 곳’ 동방(東方)을 뜻하며, 특히 로마인들은 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한 지중해 동쪽을 통틀어 오리엔트라고 불렀다. 라틴의 속담 ‘빛은 동방으로부터’에서 동방이란, 당시 그리스를 가리킨다. 이때 빛이란 선진문화를 일컫는다.‘페르시아’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란 남서부 해안가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 파르스(Fars)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이란의 고대국가 엘란 왕국에 이어 기원전 815년경 이란의 북서부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거주하던 민족이 남쪽으로 내려와 파르수마슈에 정착해 세웠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발상지다.막강 페르시아가 등장하면서 기원전 6세기 나일강 유역에서 30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자연재해 한번 없이 풍요를 누리던 이집트를 평정하고, 갈등을 일으키던 오리엔트를 하나로 묶는다.페르시아는 지중해로 진출해 소아시아 그리스 식민지를 야금야금 삼켰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리스와의 한 판 세기의 대결을 불렀다. 결국 다리우스 3세를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기원전 331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제국이지만, 당시 화려했던 그들의 문화는 상상 속에서 여전히 찬란하다. 6세기에 폐허가 된 페르시아 고대도시 페르세폴리스를 방문했던 여행자들은 적지 않은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 기록 중 하나이다.“황량한 들판에 초라한 기단과 무너진 원형 석주만이 남아 있을 뿐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훗날 1931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그 비밀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이 생존한 이상 인류는 진화를 거듭할 것이고, 문화는 느리게 빠르게, 혹은 발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신라인 혜초, 이븐바투타, 마르코폴로는 기록의 사나이였던 까닭에 역사 인물로 기억되지만,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은 무수히 많은 사람이 오갔을 것이고, 그 길에 족적을 남겼다.초기 페르시아제국에는 수백만의 이민족이 살았고, 거대한 주를 통치하는 지방 총독들 역시 왕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제국에 대항하는 자는 피의 응징을 당해야 했지만,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점령하면서 그곳에 잡혀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했으며, 그들의 신앙과 종교의례도 허락했다. 훗날, 이 일로 인해 제국에 다양한 종교가 섞이면서 복잡한 문화적 양상을 띠게 되지만 말이다.역사란 제국이 힘을 다하면 새로운 제국이 태어나면서 이어진다. 고대 제국은 토지와 노동력 확대 및 군사력의 기본적 확장에 목적을 두고 정벌이란 이름으로 정복 전쟁을 일으키곤 하였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6-03

‘24환경의날’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구시는 지난 1일 삼성창조캠퍼스에서 ‘2024년 환경의날 및 환경교육주간’을 맞아 ‘파란하늘 대구, 탄소중립으로 GREEN 미래’라는 주제로 ‘24환경의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기념식에 앞서 지역 예술인 양철인간의 ‘마임공연’이 이루어졌는데, 태극기 그림이 들어간 폐현수막으로 만든 옷에 대나무꽂이가 몸통 곳곳에 박혀 보기가 불편한 복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마임공연’은 관객 앞에서 보다 관객 속으로 들어가 진행한 시간이 많이 길어 바로 옆에서 보는 사람은 다소 불편하였다. 그러나 그만큼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행위예술의 방법으로 전달하려 한 것 같다. 그럼 실제 대구시민은 환경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대구시가 지난 2012년부터 10년 이상 꾸준히 조사하고 있는 ‘대구의 사회지표’ 조사 결과를 참고해 보았다. 이 조사는 구군별로 1000~1200가구를 표본추출하여 총 8400가구, 가구원수 총 1만48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메머드급 인식조사이다.‘생활환경’ 분야 인식조사 항목은 대기, 수질, 토양, 소음·진동, 녹지환경 등에 대한 ‘환경체감도’, 쓰레기 증가, 자연자원의 고갈, 수질오염 등 ‘환경문제 인식’, 합성세제 사용줄임, 대중교통 이용, 녹색제품 이용 등 ‘환경보전 노력’ 등 다양하게 구성하였다. 먼저, 최근 2022년의 대기환경 체감도를 보면 ‘좋음’ 응답자가 22.6%로 2019년 ‘좋음’ 응답자 비율이 36.9%인 것에 비해 무려 14.3% 감소하였다. ‘나쁨’에 대한 비율은 2013년 13.8%에서 매년 증가하여 2022년에는 33.5%까지 증가하였다.이렇게 2022년의 조사결과, 대기 외에도 수질, 토양, 소음·진동, 녹지환경 모두 ‘좋음’ 응답자 비율이 2019년에 비해 감소하였고, ‘나쁨’에 대한 비율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계속 증가하였다. 2022년도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가장 큰 환경문제는 ‘쓰레기 증가’로 39.6%이고, 이어서 ‘기후변화’가 17.7%로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환경문제로서의 인식은 2019년 5.1% 정도에서 22년에 17.7%로 무려 12.6%p 증가했다. 구·군별로 보면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 인식은 달서구가 22.5%로 가장 높고, ‘소음’은 동구가 12.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환경보존 노력은 ‘에너지 절약’이 유일하게 51.1%로 50% 이상이고, ‘녹색제품 이용’, ‘중고물품 구매 및 판매·기부’, ‘환경 및 자연보호운동 참여’는 노력하는 비율이 30% 이하이고, 매년 감소추세이다. 이처럼 대구시민들의 ‘환경체감도’는 나빠지는데, ‘환경보전 노력’은 오히려 낮아지는 상황이다.그래서 시민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현명한 환경보전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마침 이번 ‘24환경의날’에 27개 기관과 단체에서 마련한 다양한 교육과 ‘체험부스’에 부모님과 함께 흥미롭게 참가한 많은 ‘어린 시민’들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환경은 분명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2024-06-03

지금 애타게 ‘우리’를 찾는 건

김규인 수필가 대한민국에서 ‘우리’라는 말이 사라진다. 코로나로 사람들은 혼자가 되고, 정치권에서는 철저히 나와 남을 두부 자르듯이 구분한다. 잘린 무리는 남이 되어 우리의 크기를 자꾸 줄인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를 입에 달고 살아온 한민족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줄어드는 인구로 가속도가 붙으며 사그라든다.혼자 크는 자녀가 ‘우리’라는 단어를 잃고, 집뿐만 아니라 식당에서조차 홀로 식사하는 자리가 늘어난다. 음식물 제조 회사에서는 일인 가구에 맞추어 용량을 줄인 상품을 잇달아 내어놓고 편의점에서는 한 사람의 식사에 맞추어 무가 자신의 형체를 잃고 토막 난 채로 잘려 나온다. 그렇게 ‘우리’는 해체된다.휴대전화의 출현은 나 홀로의 삶을 부추긴다. 친구를 만나려는 사람들을 떼어놓고, 긴 시간을 붙들고 자기만 쳐다보라고 다양한 미끼를 던진다. 미끼를 문 사람들을 놓지 않는다. 심지어 버스에서 내려 길거리를 걸을 때도 휴대전화를 쳐다보느라 사고를 당해도 사람의 일이라 넘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꽉 쥔 채 놓지 못한다.친구들을 만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고는 모두 휴대전화를 쳐다보느라 바쁘다. 말하더라도 휴대전화가 중심이 된다. 휴대전화 게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최신 모델의 휴대전화가 이야기 소재가 된다. 휴대전화는 한 번 문 미끼는 절대 놓지 않는다.사람들이 혼자의 삶을 즐기고 휴대전화가 자신에게 빠진 사람들을 놓지 않는 한 ‘우리’는 홀로 떠돈다. 우리 엄마, 우리나라, 우리 집과 같이 ‘우리’가 붙어야 말맛을 느끼던 우리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모두가 혼자의 삶에 빠져있는 사이, 밀려 사라지는 ‘우리’를 되찾아야 한다.아직도 늦지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진 ‘우리’를 다시 모으자.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이모, 밥 한 그릇 줘요”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모가 차려주는 한 끼의 식사는 몸과 마음을 덮인다. 돈을 내고 먹는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우리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일상에서 확인하는 순간이다.어디 그것뿐인가. 2002년 월드컵 경기 당시 한국인들의 월드컵 응원 열기는 축구 실력 못지않게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모두가 하나 같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하나 되어 응원하는 모습은 한국인이 아니고서는 보기 어렵다. 한국인은 좋으나 슬프나 한결같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그렇게 살아왔다.지금 애타게 ‘우리’를 찾는 것은, 혼자 해결하기에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 때문이다. 낮은 신생아 출생률, 합의를 모르고 각자의 길을 가는 의대 증원 문제, 침체한 경제는 아직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연금 개혁 문제는 다시 22대 국회로 책임을 떠넘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인데 그 앞에서 나만을 찾는다.다시 ‘우리’를 회복할 수는 없을까. IMF 위기 앞에 금을 모으고 국가 채무를 갚기 위해 돈을 모으던 우리의 유전자는 그대로 우리 몸에 남아있지 않는가. 혼자가 편하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더 큰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2024-06-03

국민들의 대통령과 영부인 걱정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해결 어려운 문제나 걱정거리가 있을 땐 선현이 남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 세계 사람들의 입에서 하루에도 수천 번 인용되는 것이지만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기에.‘논어’ 계씨편엔 天下有道 則政不在大夫 天下有道 則庶人不議(천하유도 즉정부재대부 천하유도 즉서인불의)란 문장이 있다. 고루하고 어려운 말이 아니다. 현대적으로 풀어쓰면 대충 아래와 같다.“공자는 말했다. 세상에 도(道·원칙과 합리)가 굳건히 서있다면 정치가 권력자의 손에만 독점되지 않고, 그런 세상이라면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는다고”.국민을 위무하고 편안하게 해줄 의무를 가진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하지 않고, 외려 국민이 정치인을 걱정하는 해괴한 상황에 오늘날 한국이 처해 있다 말하면 과장이라고 욕을 먹을까? 앞서 인용한 문장 중 大夫(대부)란 단어를 21세기 방식으로 ‘대통령’이라 바꿔보자.한국 국민들은 현재 전·현직 불문 대통령과 그의 아내를 무거운 마음으로 걱정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인도를 방문한 아내를 두고 ‘영부인의 첫 단독 외교’라 하니, 견해를 달리하는 국회의원 한 명이 “국민을 어찌 보고 능청맞게 흰소리를 하느냐”고 따진다.현직 대통령의 아내가 선물로 받았다는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놓고는 “특별검사를 통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과 “과도한 흠집 내기”란 목소리가 긴 시간 격렬하게 충돌 중이다.너그럽고 선량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까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대통령들과 그의 배우자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의 걱정과 화를 부르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도 못해주는가?/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03

‘승자독식 전쟁’을 끝내려면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정치’가 ‘전쟁’이 되었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이라는 함정에 빠진 탓이다. 승자의 독식은 패자의 박탈감과 분노를 불러온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치보복이 반복되는 이유다.대화와 양보가 없는 승자독식 정치는 민주주의를 형해화(形骸化)한다. 집행권을 가진 여당과 입법권을 장악한 야당의 끝없는 전쟁이 그 생생한 증거다.승자독식 선거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대선에서 득표율 0.73% 차이(윤석열 48.56%, 이재명 47.83%)로 승리한 대통령이 집행권을 100% 독점하며, 총선에서 지역구 득표율 5.4% 차이가 의석수 1.8배 차이(민주당 161, 국민의힘 90)를 초래했다. 이처럼 엄청난 사표(死票)가 발생하는 선거는 민심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승자독식 제도에서는 승리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 같은 정치’가 일상화된다. 다수결의 전제인 대화와 타협은 공허할 뿐이며, 이성과 양심은 설 자리가 없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증오 마케팅’으로 상대를 비난, 조롱하고 혐오를 극대화시킨다. ‘나는 천사, 당신은 악마’라는 흑백론이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을 심화시킴으로써 공동체의 기반을 무너뜨린다.그렇다면 어떻게 ‘승자독식 전쟁’을 ‘승패공존 정치’로 바꿀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정신’과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먼저 정신적 측면에서는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가치관이 내면화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전부 혹은 전무’(all or nothing)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대소’(more or less)를 두고 벌이는 협상과 타협이다.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오만과 독선이 민주주의 파괴의 주범이다.다음으로 제도적 측면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혁과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은 물론, 대통령 4년 중임제 또는 의원내각제 개헌까지도 본격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서유럽국가들이 보여주듯이 다당제 연합정치와 같은 합의제민주주의가 정치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정책의 연속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꼼수 위성정당을 막고, 소선거구제의 사표를 줄이기 위해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이 문제는 이미 여야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음에도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여 ‘폭탄 돌리기’만 계속하고 있다.거대양당이 여론을 의식하여 개혁시늉만 할 뿐,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얻는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이처럼 선거법 개혁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니 결코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식인·시민사회·언론 등 여론의 압력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성사시킨 것처럼, 개혁요구가 거세지면 정치권도 계속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은 거대양당의 ‘승자독식 전쟁 놀음’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혁에 나서도록 지속적으로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2024-06-03

특검이 인민재판은 아니다

김진국 고문 민주주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표는 많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국민이 뽑았다. 각자 자기 역할이 있다. 대통령은 가장 많은 사람의 지지로 선출됐다. 그렇지만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은 법을 만든다. 그렇다고 아무 법이나 만들 수는 없다.흔히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언론은 대통령이 자기 권한을 넘어서지 않도록 날을 세워 견제한다. 원로원 중심의 로마에서 권력을 집중하던 시저는 암살당했다.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서로 다른 분점(分占)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의회가 대립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임기 중에 하는 의회 선거는 일종의 중간평가다. 그러니 감내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그런데 요즘 일부 야당 의원은 선을 넘어선다. 대통령 선거는 과거이고, 국회의원 선거는 최근이라고 해서, 대통령 선거를 무효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대통령의 권한까지 접수한다고 착각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의원도 있다.특검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의혹을 묻어놓고, 두고두고 정치적 갈등을 빚는 것보다 특검으로 진실을 밝히는 게 오히려 오해를 덜 수 있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서는 너무 예민하다. 그것이 오히려 김 여사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킨다. 윤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사람조차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한 조언을 피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버럭 화를 내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사이가 멀어진 원인도 김 여사다.그렇지만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발의한 ‘김건희 종합 특검법안’은 어이가 없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전시 군사정부를 운영하는 점령군이 된 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수단을 다 끌어다 붙였다. 상상을 뛰어넘는다. 민주당이 모든 권한을 쥐고, 김 여사를 심판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민재판’이다.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김 여사를 수사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래서 지휘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윤 총장을 털어서 몰아내기 위해 임명된 지검장이었다. 그런데도 아무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검찰수사로는 먼지까지 털어도 안 되니, 이제 ‘정치수사’를 해보겠다는 건가.그는 사법 체계를 잘 아는 전문가다. 그런데도 사법 체계를 파괴하며 자기 편할 대로 일방적인 수사를 할 수 있게 법을 짰다. 특검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하도록 했다. 이제까지 여야 정당이 합의해 추천하던 관례를 버렸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추천하려다 비난을 받자, 겨우 선심을 쓴 게 조국혁신당도 추천하라는 것이다.특검을 임명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수사와 기소는 행정부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회가 추천한다. 그런데 이 법은 국회가 특검을 추천했는데도 대통령이 3일 이내에 임명하지 않으면, 두 명 가운데 연장자가 자동 임명된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민주당이 임명하겠다는 말이다.행정부만 무시하는 게 아니다. 특별검사는 관할 법원장에게 영장을 심사하고 발부할 전담판사를 지정하도록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이 특검이 기소한 재판은 전담재판부가 신속하게 집중심리하도록 규정해 놓았다. 영장 발부는 물론 재판까지 입맛에 맞는 판사를 지정하겠다는 뜻이다.특검은 검사 10명, 검사 아닌 공무원 20명을 파견받아, 특별검사보 10명, 특별수사관 70명을 임명하도록 했다. 100명의 수사 인력이 최대 170일까지 수사를 벌인다. 관련 범죄 혐의를 자수·자백·제보하는 사람은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플리바게닝’까지 도입했다. 우리 법체계에는 없는 제도다. 이런 법을 던져놓고, 거부권을 행사하면 윤 대통령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꽃놀이패다.박근혜 대통령 특검에서조차 없던 무소불위의 특검이 9개월 동안 대통령실을 휘저으면 국정이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권력을 절제하지 못하면 국민은 더 큰 권력을 주었을 때를 두려워하게 된다. 권력 행사는 넘치지 말아야 한다.

2024-06-02

교육부와 고질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의대 학생 증원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이른바 자유전공(무전공)학부 문제가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지만, 전체적인 상황과 미래기획을 입체적으로 조명하지 않은 채 정부가 힘으로 밀고 가는 상황이어서 씁쓸하다. 의견 대립과 충돌을 방지하면서 충분한 대화와 설득의 마당이 선행돼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다.교육부는 자유전공학부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처럼 단칼에 대학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고전 그리스 비극에서 얽히고설킨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방안으로 고안된 것이 ‘기계 타고 오는 신’이었다. 쾌도난마식으로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고 표표하게 무대를 떠나가는 위대한 신을 경배한 고대 그리스인들은 행복했을까?!자유전공학부는 새로운 제도가 결코 아니다. 지난 1977년 박정희 정권 시절 말기에 실시된 ‘실험대학’ 제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입학하기 전에 전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1년의 대학 생활을 경험한 후에 전공을 결정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 실험대학이었다. 하지만 실험은 끝내 실험으로 끝났고, 5년 만인 1982년부터 학과제로 환원되고 말았다.이유는 간단명료하다.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이 우심(尤甚)한 까닭이었다. 나는 어문계열로 대학에 들어갔는데, 국문·영문·불문·독문·중문·노문학과의 여섯 개 학과가 어문계열 소속이었다. 어문계열 정원이 190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130명 이상이 영문과로, 30명 정도가 국문과로 진학했다. 따라서 30명을 가지고 4개 학과가 운영되는 기형적인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실험대학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김영삼 정권은 1996년부터 이른바 ‘학부제’라는 이름으로 ‘실험대학’을 부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학생과 교수들의 극심한 반발과 준비되지 못한 교육 현실의 벽에 막혀 불과 3년 만에 좌초하기에 이른다. 1999년부터 학과제로 돌아가는 대신 일부 국립대와 사립대에 ‘자유(자율)전공학부’가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문제는 내년 입시부터 전국 73개의 대학에서 3만 8천 명에 이르는 신입생을 무전공으로 선발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전체 입학생의 28.6%에 이르는 무전공 입학 인원이 작년의 6.6%에 비해 무려 5배 가깝게 늘어난 것이다. 무전공 인원을 대거 늘리면 한국 대학의 문제가 자연적으로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는 교육부의 행태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비인기학과 혹은 기초학문 영역에 속하는 단과대학과 학과 및 해당 대학과 전공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과 우려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무시한 채 두 차례나 실패한 제도를 앞세워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압박하고 협박하는 교육부 관료들의 두뇌 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몇 년에 한 번씩 강남 8학군 학생들을 위한 대입제도 변화로 그나마 존립 근거를 찾아왔던 교육부가 이제는 대학 자체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유명무실한 국가교육위원회와 고질라처럼 괴물이 되어가는 교육부의 행태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아! 교육부여, 대학이여!

2024-06-02

제2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우정구 논설위원 고(故)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그룹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획기적 전기가 된 사건으로 유명하다.1993년 6월 7일.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원 200여 명을 불러모아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 내지 2.5류가 된다”며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 모두 다 바꿔라”라는 강도 높은 주문을 했다.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은 경영의 핵심가치를 양에서 질로 전환하고, 품질경영으로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한다. 기업주의 비전 제시가 성장으로 이어진 모범적 사례로 평가된 선언이다.프랑크푸르트 선언 2년 후인 1995년의 일이다. 삼성 생산 휴대폰 15만대가 불태워지는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 거행된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자 자존심”이라는 구호 아래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거행된 휴대폰 화형식 후 삼성의 휴대폰 시장 국내 점유율은 놀랍게도 4개월 만에 50%를 차지한다.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많은 기업의 본보기로 회자되는 것은 선언적 의미 이상의 기업성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지난달 파업을 결의하자 국내 경제계의 관심이 삼성의 파업 움직임으로 쏠리고 있다. 무노동 경영을 고수하던 삼성에서 파업선언이 나온 것만으로 쇼킹한 일인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점이라 삼성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일부에서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버금갈 제2의 선언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의 국내 경제 기여도는 국내 기업 중 단연 1위다. 삼성의 대응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6-02

어서와, 구미는 처음이지

김장호 구미시장 중장년 세대라면 누구나 옛 장터에서의 정겨웠던 추억 한두 가지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필자도 어린 시절 시끌벅적한 시장을 구경하며 설레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구미역 앞에는 오랜 전통을 가진 ‘새마을중앙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구미의 역사와 함께 부침을 겪어왔다.70∼80년대 전성기를 누리며 구미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시대가 변하고 지역이 쇠퇴하면서 다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밤에는 불이 꺼지고 점점 침체되어 갔다.그랬던 새마을중앙시장이 최근에는 주말 저녁이면 구름 인파가 몰리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지난 4월 새롭게 개장한 ‘달달한 낭만야시장’의 인기 덕분이다.개장 첫 주 4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렸고, 일부 가게는 평소의 6배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시작부터 대박을 터트렸다.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찾고 있는데, 서울의 한 방문객은 “서울 명동과 남대문을 옮겨 놓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그동안 구미는 산업도시로 잘 알려졌지만, 그만큼 회색도시, 노잼도시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랜 시간을 지나며 굳어진 구미의 이런 이미지를 한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인식의 전환이 필요했다. 구미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주변의 익숙했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디자인하는 작업에 돌입했다.구미의 대표 관광지인 금오산엔 알록달록 깜찍한 의자와 예쁜 포토존을 설치하고 잔디밭 출입도 자유롭게 허용했다. 낙동강 수변공간에는 스포츠 시설을 비롯해 특색있는 휴식 공간과 산책 코스를 더해 새로운 힐링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구미 IC를 비롯한 도심 주요 장소에는 내년 개최되는 ‘2025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를 기념해 ‘WEICOME TO GUMI’, ‘승리의 주먹’ 등 다이내믹한 조형물을 설치하고 경관조명을 더해 이색적인 볼거리를 선보였다.뿐만 아니다. 젊은이들의 거리 ‘금리단길’은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손길로 골목골목 개성을 더하고 있고, 지역특색을 살린 ‘구미푸드페스티벌’과 ‘라면축제’는 새로운 도심 축제의 성공 가능성을 알리며, 구미의 심심하고 지루했던 도시 이미지 틀을 깨부쉈다.돌이켜보면, ‘낭만야시장’도 관행으로부터의 탈피,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수십 년을 이렇게 해왔는데 잘 되겠냐’는 회의적인 시선, ‘대구와 다른 도시에서 이미 하고 있는데 구미에서 성공하겠느냐’는 의구심. 극복해야 했다. 끓는 물 속에서 익숙함을 즐기는 개구리를 기다리는 것은 결국 죽음뿐이지 않은가.국내외 내로라하는 야시장을 찾아 힌트를 얻고, 수차례 난상토론을 거치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나갔다. 그저 그런 야시장으로 끝나지 않도록 전문가들의 참여를 이끌어 완성도를 높이고, 다른 곳과의 차별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시장 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대학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아 조명 하나, 메뉴 개발 하나에도 세심하게 신경 썼고, 한식대가와 외식업계에도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이렇게 해서 ‘달달한 낭만야시장’이 탄생했고,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덕분에 시장 안의 국수골목, 순대골목, 족발골목 등 잊혀 가던 골목길도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게 됐다.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더 보강해서 야시장의 활기찬 기운을 문화로와 금리단길을 비롯한 원도심 전역에 퍼트리고, 도시 구석구석에 구미의 새로운 색깔을 입혀나가려고 한다.익숙함 너머의 새로움을 발견하고 재창조하는 도시, 깊은 정취와 넘치는 활기로 밤에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도시. 낭만도시 구미의 달달한 매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2024-06-02

나란히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는 6·25참전 용사다. 아버지 집 대문을 지키는 ‘6·25참전 용사의 집’ 이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금의 내 아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젊음과 목숨을 바쳐 싸웠다.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고 많은 것을 잃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끝내 지키고 싶었던 여동생은 지키지 못했기에 늘 가슴 한 조각이 분단된 조국처럼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70년을 넘게 통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사신 아버지는 아직도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동생의 얼굴은 아버지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다고 했다. 함께 별을 보며 냇가에서 멱을 감던 기억이나 빨래줄에 빨래를 널던 수많은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전쟁 중 아버지는 목에 파편을 맞아 상처가 깊이 박혔지만 그 상처보다 더 깊은 것은 여동생에 대한 기억이었다.몇 해 전 아버지를 모시고 ‘고성 통일 전망대’에 다녀왔다. 조국분단의 현실을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로 가는 내내 아버지의 얼굴은 어두웠다. 민통선 지역으로 향하며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했다. 안보교육 영상도 보았다. 같은 나라 안이지만 민통선으로 가면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들이 많았다. 왠지 삼엄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통일전망대 관광’이라는 출입증을 국군들에게 받아 2차선 도로를 달렸다.“이대로 금강산까지 가면 얼마나 좋을꼬”아버지는 어서 이 길이 뚫려야 한다며 도로 옆 바다해변으로 고개를 돌렸다.통일전망대 앞에 오니 계단이 있었다. 통일로 가는 계단이기를 바라며 아버지는 희망의 계단을 올랐다. 지척에 북한 땅이 보인다. 뛰어 가도 얼마 걸리지 않을 땅을 우리는 망원경을 통해 보았다. 어렴풋이 철조망도 보였다. 북한의 해금강, 낙타봉, 송도해변도 눈에 담았다.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는 뻐꾸기에게 아버지는 통일의 염원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뻐꾸기가 그 임무를 잘 완수해 줄 것이라 믿는다.아버지의 여동생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생사를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동생이 살아 있다고 믿었고 북쪽 땅 어딘가에 있기 때문에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지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암울한 역사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역사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많은 대화로 풀어 나가야 한다. 통일은 헤어진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실제 탈북자가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통일을 ‘엄마’라고 정의했다. 통일이 되면 엄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들의 그리움과 고통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늘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통일은 늘 마음의 소원이었고 동생이라 정의하는 단어였다.아버지의 슬픈 안색이 기쁜 안색으로 바뀌는 날이 와야 할 텐데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많은 이산가족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가족을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구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의 기억은 아직도 그림을 그리듯 술술 풀어낸다. 여동생을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쌓아야할 추억거리가 쌓여 있는데 꿈에서조차 한 번을 만날 수 없는 시간을 한스러워했다. 김경아 작가 분단의 슬픈 현실을 자손들에게 더 이상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다시 못 올 것만 같은 북한 땅을 원 없이 바라보시다가 ‘덕순아, 덕순아 살아 있거래이’하시더니 발길을 돌렸다. 목숨 걸고 탈출한 새터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 뿐인 목숨을 걸지 않고도 여행 가듯 남북을 오갈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 정치 이념 이런 것 다 내려놓고 그저 우리 민족이고 우리말을 쓰는 형제고 우리랑 같은 뿌리니까 쉽게 오고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통일이 되면 아버지 집 대문 앞에 ‘피양 랭면 배달’ 스티커도 함께 붙어 있겠지. 백두산 여행을 마치고 아버지와 고모가 나란히 함께 집으로 들어와 식초와 겨자를 곁들인 시원한 피양 랭면을 드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운 금강산’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마음먹으면 등산복 차림으로 다녀올 수 있는 그 곳이기를 바라본다. 아버지의 간절한 기다림에도 세월은 오늘도 기다려주지 않고 구름처럼 흐르고 있다.

2024-06-02

친족상도례를 보완하자

유영희 작가 가정의 달, 5월이 지났다. 가정의 달은 UN에서 정한 ‘세계 가정의 날’에 영향을 받아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정의 달에 어린이날을 비롯하여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가족 관련 기념일이 많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가정의 달로 지정하면서까지 기념하고 의미를 되새긴다는 것은 가족 간에 화목이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실제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심리적 상처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자녀들도 많다. 5월이 되면 여지없이 부모의 착취와 학대로 고통받는 자녀들 이야기가 기사에 오른다. 올해 기사에도 딸을 여러 번 신용불량자를 만든 부모가 사위에게도 재산 피해를 주려 하자 인연을 끊고 싶다는 사연이 있었다. 나 역시 모 대학에서 어느 수강생이 부모가 자기 이름으로 대출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면서 자주 결석하다가 끝내 학기를 마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자식들이 이런 피해를 당해도 친족상도례 때문에 부모를 처벌할 수 없고, 어렵게 절연을 결심하고 집을 나와도 가족에게는 주소지와 연락처가 공유되어 피해가 계속되어도 속수무책이다. 친족상도례 때문이다.친족상도례는 고대 로마에서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관습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문화가 동양의 유교 문화에도 있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아버지가 양을 훔쳤어도 아들이 고발하면 안 된다고 했고, 맹자는 순임금이라면 아버지가 사람을 죽여도 숨겨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로 형법 제151조 2항에는 친족이나 동거의 가족이 죄를 지었을 때 숨겨주는 것은 형을 면한다. 다만, 이런 경우는 ‘친족간 처벌 특례 규정’이다.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 ①항에 의하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제323조의 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친족상도례이다. 그렇다고 모든 범죄에 대하여 친족상도례를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재산죄에 적용된다. 형제라도 동거하지 않으면 친고죄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직계존비속 관계는 동거하지 않아도 재산죄에 대해서는 형을 면제받는다. 그래서 방송인 박수홍의 아버지가 형이 한 횡령을 자기가 한 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친족상도례의 부작용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2022년 방송에서는 정치인들이 친족상도례를 수정해야 한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개정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정신의학과 의사 이호선은 ‘가족이라는 착각’에서, 자식은 ‘내 것’이 아니고, 부부는 ‘하나’가 아니며, 부모는 ‘어른’이 아니라면서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고, 가족 간에도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족에게 자신의 재산권을 완전히 위임하지도 말고, 친족상도례도 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내년 가정의 달에는 친족상도례로 고통받는 자녀들 기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2024-06-02

설비의 수명과 비용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노화가 진행된다. 노화는 시간의 흐름에 의한 피할 수 없는 변화로 성장기를 지난 성인은 누구나 겪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근력이 떨어지고 피로감이 커지며 장기와 기관에 작용하는 생리적인 능력과 건강 상태가 전반적으로 저하된다. 신체를 작동하는 장기와 기관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몸의 기능에는 이상이 없으나 성능이 저하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생애 주기에 거쳐 우리 몸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동일 한 나이 대 에서도 근력의 차가 생기고 수명이 달라지게 된다.사람이 영유아기 아동청소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생애 주기가 있듯이 생산 공장의 설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입부터 사용 열화 폐기까지 설비수명주기가 있다. 이 수명 주기를 늘리기 위해서는 초기 도입 시 공정의 생산품에 맞게 적절한 성능을 발휘하는 설비를 설계하고 적정한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이는 생애 주기의 전체 비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비용을 무조건 싸게 하여 성능 발휘가 안되면 설비 운영비용이 증가하고 성능이 필요 이상으로 크면 도입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설비 도입 이후는 생산공정에서 필요로 한 때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이 중요하며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수명과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사람의 수명도 청결한 관리로 병을 줄이고 발병 시 치료를 잘 해야 늘어나듯이 설비도 고장과 큰 연관이 있다. 설비 고장과 수명의 관계는 마치 욕조와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하여 욕조곡선(Bathtub curve)이라 한다. 즉 고장율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초기도입기는 높은 값이었다가 점차 감소하여 정상안정기는 일정한 값을 얼마 동안 유지한 후 시간이 지나 열화 마모가 진행되면 다시 점차로 높아진다는 것이다.설비 초기와 정상안정기 마모열화 고장을 줄여 설비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것이며 직원 모두가 참여 해야 한다. 고장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한 관리를 통해 고장이 안 나도록 예방하는 것이며 설비의 작동원리와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 해야 할 개소를 파악하여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를 마이 머신 활동으로 명명하고 2005년부터 전 직원이 참여하여 추진하고 있다.그리고 병들기 전에 징후를 알아차리거나 병이 날 것을 예측하여 미리 설비를 교체하고 유지 보수하여 예지보전하는 것으로 정비 직원의 주요 업무이기도 하다. 사람도 예방과 예지를 통해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예기치 못하는 질병에 걸리듯이 설비도 돌발적인 고장이 발생하게 되며 이때는 안전하고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안전하고 빠른 고장 조치를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데 경험은 시간이 필요한 반면 지식은 설비의 원리와 구조를 이해하고 운영하는 학습의 영역으로 시간을 뛰어넘을 수는 있기에 더욱 필요하고 강조되는 것이다.

2024-06-02

해양쓰레기와 SRF발전선박, 그리고 바다의 날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바다의 날은 국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장보고 장군이 청해진을 설치한 날로 정했다. 미국은 5월 22일, 일본은 7월 10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에도 바다의 날이 있다는 것이다. 그 날이 3월 23일이다. 이 날은 볼리비아가 칠레에게 전쟁에서 패해서 바다를 빼앗긴 날이다. 다시 바다를 찾기 위해 온 국민이 마음을 다잡는 날이다. 이렇듯 국가에게는 영토가 중요하다. 독도는 경상북도의 땅이고, 대한민국의 영토이다.유엔(UN)에서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있다. 전 세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2030년까지 유엔과 국제사회가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2015년 유엔에 의해 채택되었다. 지속가능발전 목표에는 양극화 해소, 빈곤퇴치, 성차별 종식 등 17개 목표가 있는데 그 중에 해양생물보호가 들어가 있다.세계적으로 바다를 지키고 해양생물을 보호하자는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린피스가 고무보트를 타고 석유시추선, 러시아 군함, 일본 포경선에 달려드는 용감한 그린피스 투사들의 사진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인간으로서 지구공동체를 온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빠른 속도에만 관심이 있는 인간종들과 쟁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피스는 후원금을 받을 만한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그린피스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 일. 일상생활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이들을 키우고,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지역공동체에서 사회활동, 경제적 활동을 해야 만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일상의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활동에서 환경산업과 환경운동이 결합해야 일반시민들의 호응을 받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바다에는 해양쓰레기로 몸살이다. 아니 몸살을 넘어 생명에 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플라스틱 음료수 페트병이나 수산 양식에 사용되는 부표는 해양에서 제대로 수거되지 않는다면, 작은 조각으로 파편화가 진행된다. 하나의 작은 쓰레기가 바다에서는 수십만 개의 작은 오염원으로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분자화 되어가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해 해양생태계를 넘어 우리가 먹는 식품의 안전이나 사람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범위로 넘어서게 된다.2015년에 발표되어 자주 인용되는 잠벡(Jambeck)이란 학자의 논문에서 육상에서 해양으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양이 480만~1270만t으로 추정하였다. 또 우리나라의 해양쓰레기 연간 발생량도 2018년 기준으로 14만5000t 정도라고 한다.태평양 공해상에 떠 있는 쓰레기 지대의 총량이 7만9000t 정도라고 하고, 그 쓰레기 지대의 면적은 180만㎢로, 남한 면적의 16배 정도이다. 진짜 쓰레기양이 어머어마한 것이다.몇 년 전 세계자연기금(WWF)이 낸‘플라스틱오염이 해양생물, 생물다양성,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해양생물종의 88%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악영향을 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전체 바닷새의 90%, 바다거북의 52%가 플라스틱을 섭취한 것으로 추산되며, 인간도 매주 신용카드 1장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있다고 밝혔다.실제로 죽은 고래 배 속에서 플라스틱 컵과 비닐봉지 등이 잔뜩 쏟아지는 사진이 찍히는 상황이 해양생태계의 현실인 것이다.포항은 해양관광도시를 지향한다. 포항의 근대화를 일으킨 산업인 철강산업에서 문화적으로 더욱 나아가, 친환경탈탄소 철강산업이 성공하고, 배터리산업, 해양관광산업으로 포항지역공동체가 발전하려면 바다에 대한 특별한 계획이 필요하다. 매년 바다로 유입되는 수십만t의 해양쓰레기,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선박을 이용한 SRF(고형폐기물연료) 발전소를 계획해 볼 단계가 아닌가 생각한다.필자가 알기에 국내기업 중에 선박 위에 발전소를 설치하여 노르웨이로 수출한 기업이 있다고 듣고 있다. 발전소에 사용되는 경유 대신에 해양 플라스틱쓰레기(SRF)를 사용하는 선박발전소가 건조되고, 그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에너지를 포항의 배터리에 저장하여 육지로 갖고 올 수 있다면 해양생물, 해양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안전과 평화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2024-05-30

정치인의 신의

홍석봉 언론인 21대 국회가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 막을 내렸다.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21대 국회 후반기 2년 동안 정부 여당은 거대 야당에 질질 끌려가며 여소야대의 설움을 톡톡히 맛봐야 했다. 여야는 지난 28일 정국의 뜨거운 감자인 ‘채상병 특검법’을 표 대결 끝에 부결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논란이 많은 민주유공자법 등 5개 쟁점법안을 단독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4개 법안을 통과 하루 만에 거부, 폐기시켰다. 14번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국민연금 개혁안도 차기 국회로 떠넘겼다. 우리 정치의 민낯이다. 21대 국회는 2만5830건의 법안을 발의, 이 중 36.6%인 9454건을 처리하는 데 그쳤다. 여야가 사실상 합의했거나, 이견이 없는 민생 법안들까지 줄줄이 밀려났다. 대통령을 겨냥한 특검법과 당 대표 방탄법만 반짝였다. 정쟁으로 날을 샜다. 국회의 직무유기다. 국민에 대한 신의 배반이다.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바닥이다. 불신받는 대통령의 현주소다.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와 몽니도 한몫했다. 민주당의 ‘채상병 특검’ 재의결도 윤 대통령 불신에서 기인했다. 젊은 병사의 희생 원인을 밝히고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는 것이 우선인데도 본말이 전도됐다. 야당은 ‘대통령 격노’만 부각시켜 윤석열 깎아내리기에 올인이다.여야 간의 신의는 일찌감치 사라졌다. 정치판의 협치는 기대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장기화하고 있는 의정갈등도 신의 상실이 그 근저에 있다. 정부와 의사집단은 서로 불신하고 있다.서울의대 교수들은 “의대 정원 증원이 지지율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대로 강행한다면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 의료계를 붕괴시킨 책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불신만 쌓여간다.30일 문을 연 22대 국회도 21대 국회와 판박이가 될 공산이 커졌다. 정치판엔 암운만 가득 드리워져 있다. 여야 무한대치 정국 속에 입법폭주와 대통령 거부권이 맞부딪히는 충돌 사례는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즉시 특검법 재발의를 공언했다. 국회가 열리자마자 여야 충돌이 재연될 전망이다.진(秦)나라의 재상 상앙(商鞅)은 큰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 상금을 약속하고 이를 지킴으로써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고사성어 이목지신(移木之信)이 나온 배경이다.상앙은 법을 어긴 태자의 대부를 처형하고 태사를 형벌에 처했다. 이후 10년이 지나자, 길에 떨어진 물건은 줍지 않았고, 도적이 없어졌다. 백성의 살림은 풍족하고 나라는 부강해졌다. 상앙의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부국강병책은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틀이 됐다.신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개인 간은 물론 기업과 기업 간,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신의가 있어야만 원만한 관계가 이뤄진다. 이목지신은 위정자가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22대 국회에서는 윤석열 정부와 정치권이 얼마나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으려나. 통렬한 자기반성과 쇄신에 달렸다.

2024-05-30

서민의 꿈 로또복권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해 복권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가 복권에 대한 인식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응답자의 74%가 “복권이 있어서 좋다”는 대답을 했다. 당첨 여부를 떠나 복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대체로 긍정적이다.복권 구매 이유로는 기대와 희망, 행복과 기쁨 등이 가장 많았다. 복권 당첨자가 발표될 때까지 인생역전을 노리는 희망과 기대감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지난해 우리나라 복권 판매액은 6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중 로또복권이 83%로 5조6000억원을 차지했다. 로또복권의 경우는 1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경기 불황과 복권 판매는 비례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빠듯해진 살림살이를 복권 한방으로 해결해 보자는 대중의 심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속되고 있는 국내 경기 불황에도 복권 판매가 역대 최대치를 갱신한 것만으로 불경기가 복권 판매를 부추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복권 구매자의 연령층에서 20대보다 60대가 2배가량 많다. 저소득 서민층일수록 복권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는 반증이다.한국의 로또복권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3억분의 1인 미국의 로또 파워볼과 메가밀리언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행운이 없이는 당첨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2022년 11월 미국 파워볼에서 나온 당첨금은 20억4000만 달러(약 2조8000억원)다. 길을 가다가 번개를 맞고 살아날 확률이라는 소리가 그럴 듯하다.북권 당첨 금액을 올리자는 일부 여론에 정부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했다. 팍팍한 삶 속에서 소소한 위로를 받고자 하는 복권을 무턱대고 당첨금을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5-30

봄볕

윤명희 수필가 유모차를 밀고 들어오는 남자의 얼굴이 환하다. 공인중개사인 내 사무실에 그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온다. 유모차에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아이를 내려놓자, 아이는 탐색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손녀를 바라보듯이 웃었다. 가끔 보면서도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빠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숨는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아랫입술이 삐죽이 나온다. 울음보가 터지기 직전이다. 나는 얼른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가렸다.물기가 그렁한 눈도 잠시, 아이가 아빠의 품에서 내려선다. 우리 사이의 낯선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아이는 의자를 당기더니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올린다. 금방 시들해졌는지 의자에서 내려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걷는 걸음마다 노랑병아리 소리가 따라다닌다. 아이를 쫓아다니는 남자의 눈이 깊다. 그는 아이의 뺨에 제 얼굴을 갖다 대고는 붕어빵 같으냐고 묻는다. 그는 만날 때마다 그렇게 묻는다. 꼭 닮았다고 하자, 그가 웃었다.몇 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덤프트럭 운전을 하는 그는 한쪽 다리를 약간씩 절었다. 늘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고, 마흔 조금 넘었을 뿐인데 쉰도 더 되어 보였다. 혼자 오래 살아왔던 그가 일이 끝나고 불 켜진 집에 들어가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했다. 아이를 갖는 게 소원이지만 나이가 열 몇 살이나 적은 필리핀 아내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더 욕심내다 이 순간마저 날아갈까 싶어 포기한다는 그가 안타까웠다.그의 집을 보러 갔을 때였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을 연 그녀는 재봉 일을 하고 있었다. 재봉질 해 놓은 천들이 작은 방 한 가득이었다. 바닥에는 일감과 먼지가 굴러다녔고, 2인용 식탁 위에는 빈 컵라면 그릇에 빵 봉지가 구겨진 채 있었다. 개수대에는 음식물이 말라붙은 냄비와 그릇들이 포개져 있고, 그 아래에는 빨래 바구니에 미처 담기지 못한 양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손님인 나를 보지 않고 눈길이 자꾸만 재봉틀로 가는 그녀는 주인이 아니라 잠시 일 하러 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가 언젠가는 자기 고향으로 가 버릴 것 같아 며칠을 고민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가진 재산이 얼마쯤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전혀 거리낌 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 옆에 앉아 미주알고주알 통장 내역을 털었다. 두꺼비같이 헌 집 주고 새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 하는 날, 그녀에게 새 집에서 예쁜 아기 낳아서 잘 살라고 했다. 그녀는 그의 뒤로 숨으며 더듬거리는 말로 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같은 동네주민이 된 그들은 종종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 직접 커피를 타 마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닐봉지에서 사과를 꺼내 내 손에 건네주며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고 했다. 축하한다는 달뜬 내 말에 그는 ‘남들 다 낳는 데요’ 라며 쑥스러워했다. 아빠가 된다고 생각하니 쉬는 날 없이 일을 해도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매화꽃이 막 필락 말락 하려던 날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그가 휴대폰을 쑥 내밀었다. 폰에는 아기 사진으로 가득 찼다. 나는 길가로 물러서서, 입을 오물거리는 갓난아기의 동영상까지 보고 또 보았다.“다들 날 닮았다 그래요”내 옆에 붙어 서서 아기사진을 보는 그의 눈이 빠져들 듯 했다. 그는 가끔 내게 또 다른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또 가끔은 아기를 보여주러 유모차를 끌고 왔다. 볼 때마다 아이는 부쩍 자랐다.아장거리는 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아이를 지켜보며, 그는 며칠 전에 필리핀에서 장인장모님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딸이 사는 걸 보고 기뻐해서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이제 둘째 낳아야지?’ 라고 하자, 그가 또 웃었다. 집사람이 얼마나 씻고 닦고 하는지 피곤하다는 말이 행복의 비명처럼 터져 나온다. 세월이 거꾸로 가고 있다. 그는 이제껏 보아 온 중에 오늘이 가장 젊어 보인다.엄마가 기다리겠다는 그의 말에 아이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간다. 앞만 보고 걷던 아이가 뒤돌아서서, 내게 뽀얀 손을 흔든다. 햇살 같은 웃음을 보여주고는 종종 걸음을 이어간다. 빈 유모차가 바삐 따라간다. 나는 그들이 건물 모퉁이를 돌아 갈 때까지 마주 흔들던 손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 서 있다. 딸을 앞세우고 가는 그의 등에 봄볕이 앉았다.

2024-05-29

삼삼오오 모여, 대구 오오극장

오오극장은 올해로 아홉 살 된 독립예술영화관이다. 이 극장은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어느새 지나쳐 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간판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55라는 숫자가 적힌 간판이 제법 크게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영화를 사랑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곳을 놓칠 수 없다. 어느 순간 은은한 그 분위기가 삼삼하여 오오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오오극장의 ‘오오’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가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작품 하나가 완성되어 가듯이 ‘오오’는 삼삼오오의 ‘오오’이기도 하고, 55석의 ‘오오’이기도 하다.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다 좋다는 감탄사 ‘오오’라 해도 괜찮다. 또는 어서오라는 뜻으로 ‘오오’라 쓰인 듯도 하다. 인터뷰 자료에 따르면, 층고가 높은 공간에 맞게 좌석을 배치하려다 보니 55석이 나왔고, 이를 극장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매우 정감 있는 이름이 붙여진 셈이다.이름만큼이나 오오극장은 따스한 분위기가 맴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극장처럼 상영 영화의 포스터가 벽면에 나란히 붙여져 있다. 무심하게도 툭 걸려있는 영화포스터가 낯선 방문객을 반기는 듯하다. 통유리로 된 1층의 외관은 탁 트여 있지만 사실 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유리창에 빼곡하게 적힌 하얀 방명록이 은은하게 안과 밖의 공간을 구분해주기 때문이다. 하얀 글씨로 적힌 수많은 방명록 중에는 오래도록 제자리에서 이어가기를 바라는 문구가 제법 많다.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은 잘 꾸며진 서재처럼 영화와 이에 관한 책자들로 즐비하다. 서재의 중앙에는 작은 스크린이 놓여 여러 독립예술영화와 오오극장에 대한 광고 영상이 흘러나온다. 특별작품 설명이나 독립영화에 대한 정보 등 다양한 영화 소식이 은은한 불빛과 함께 따스하게 전해진다. 멀티플렉스의 공격적인 마케팅 화면과는 꽤 대조적인 분위기다.왼쪽에는 예매소와 다방을 함께 운영하는 삼삼다방이 자리하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소통하는 공간으로 친근한 북카페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술과 관련된 여러 발행물도 놓여있어 영화 대기 시간에 홀로 즐기기에도 제법 괜찮다. 더불어 마스코트 길고양이 ‘오우삼’의 애옹애옹 울음소리도 오오극장의 정감 있는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린다. 실질 상영관은 입구의 정면에서 보면 제일 안쪽에 있다. 상영관은 스크린과 좌석들이 매우 가깝게 배치된 아담한 곳으로 55석 중 앞의 4좌석은 휠체어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상영관의 안까지 턱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동선에도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199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 영화관은 지금 멀티플렉스처럼 크지 않았다. 대부분 오오극장보다는 규모가 있었으나 단관극장이 많았다. 영화 상영도 서울의 영화관부터 시작하여 지방으로 배급되는 형태였다. 더구나 당시 한국영화는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어서 외국영화가 상영되지 않는 기간에 상영되었다고 한다. 1998년 4월 ‘CGV강변 11’이 개관되면서 여러 편이 동시에 상영되는 다관극장(멀티플렉스)이 등장한다. 또한 상업적 논리와 더불어 한국영화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국내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1999년 2월 영화진흥법이 개정되고, 외국영화에 비해 상업성이 부족했던 한국영화를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당시만 해도 많은 한국영화들이 이에 속했었다. 이후 한국영화는 점점 좋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2001년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라이방’·‘나미’·‘고양이를 부탁해’의 앞글자를 딴 ‘와라나고’운동이 일어난다. 이는 상영시장에서 위기에 놓인 한국예술영화를 지키기 위한 관객들의 자발적 관람 운동이었다. 이에 발맞춰 최소한의 상영 기회를 보장한다는 목표로 지원 정책이 이뤄지며, 2007년 서울의 ‘인디스페이스’가 설립된다.이후 지역에서는 최초로 대구의 ‘오오극장’이 들어섰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지원 정책의 변화와 축소, 코로나19 팬대믹의 영향, OTT 시장의 확장 등으로 인해 독립예술영화관들은 경영 위기로 휘청거리게 된다. 실질적으로 OTT 재택관람이 대세를 이루고,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예전에 비해 급격하게 감소했다. 멀티플렉스도 관람객이 줄어드는 상황에 독립예술영화관을 찾는 발걸음은 더욱 뜸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때로는 작은 영화관이기에, 독립예술영화가 주를 이루기에 찾아드는 사람들도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은 것에 부여된 의미가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고, 독특한 색을 전달하기도 한다. 오오극장은 대구 지역에 기반한 독립영화인과 시민들이 뜻을 모아 만들어진 만큼 처음의 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홈피와 SNS 운영, 문화적 다양성과 확대라는 극장의 역할, ‘수성못’·‘맥북이면 다 되지요’ 등 대구의 독립영화 상영, 대구영화학교나 다양한 모임 장소 등. 은은한 온기를 품은 오오극장은 방명록으로 남겨진 유리창의 하얀 문장들처럼 오늘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최정화 스토리텔러◇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

2024-05-29

환경위기, 지구위기, 인간위기

장규열 고문 백년 전,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주로 유럽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몰려왔으며 그 가운데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도 섞여있었다. 거친 바다를 건너 뉴욕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처음 만나야 하는 일은 입국심사와 함께 부여된 소독과 방역. 화생방훈련이라도 하듯이 검역관이 쏘아대는 디디티(DDT) 연기를 뒤집어써야 했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도착한 첫날, 화학살충제의 짙은 연기를 만나야 했다. 그런 연기의 폐해를 고발한 사람이 있었다.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이 1962년에 저서 ‘침묵의봄(Silent Spring)’을 발간하였다. 살충제 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이 곤충과 조류, 어류와 포유동물에게까지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점을 고발하였다. 먹이사슬을 통해 동식물체 생태환경에 축적되어 결국은 지구환경과 인간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 경고하였다. 그런 결과, 이민국에서 DDT 사용을 방역과정에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환경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새들이 사라지고 들판이 황폐하여 동식물은 물론 사람도 살 수 없는 무섭게 삭막한 봄이 찾아올 터이라고 예고하였다. 카슨은 그야말로 선각자(先覺者)였다.오늘 우리는 어떤가.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지구를 해치고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중단없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에 경고음이 떠오른 지도 십수년이 되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다. 일상생활 가운데 플라스틱 제품과 일회용 편의품의 사용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배경을 둔 인구고령화와 저출산현상과 연합하여 인류의 전성기는 지구상에서 저물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현실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에 심취하여 정쟁을 반복하느라 지구와 환경 따위는 우선순위에 올라오지 않는다. 60년 전 세상은 그래도 양심바른 저자의 책 한 권에 마음을 돌렸었는데, 21세기 세상은 오늘 코앞의 이익 말고는 생각이 가 닿지 않는다.6월 5일은 유엔이 선포한 ‘세계 환경의 날(World Environment Day)’이다. 올해 주제는 ‘세대회복(Generation Restoration)’이다. 환경을 긍정적으로 돌이켜 무너져 내리는 세대를 회복하자는 게 목표라고 한다. 즉, 환경회복을 통하여 인구위기의 돌파구까지 모색하자는 것이다. 땅의 힘을 회복하게 하고, 지구표면의 사막화를 방지하며 가뭄을 극복하는 데 일차적인 전략목표를 둔다고 한다. 농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육성하고 식수자원과 해양환경을 보호하며 도시개발에 있어 자연환경을 균형있게 보존하는 데 역점을 둔다고 한다. 지구환경을 위한 경각심을 전 지구적으로 일으키기 위하여 세계 각국이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기로 권하겠다고 한다.우리 정부는 어떤가. 자연환경과 지구자원을 보호하여 자연생태계와 인간문명의 균형적인 상호작용을 확보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새소리와 물소리로 가득하여 자연과 인간이 함께 숨쉬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구를 만들어야 한다. 지구는 하나 밖에 없다.

202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