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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로마제국 발칸반도 완전 정복-그리스, 서구 문명의 선봉이 되다

‘세계의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처럼 로마는 정복지라 해도 도로와 수로를 만들어 시민의 일상적인 삶에 혜택을 골고루 부여했던 그들만의 지배 방식이었다.도로란 반란에 대비해 정벌을 위한 것일 수도 있었고, 변방 민족이 침략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할 기반이기도 했다. 우리 조선시대 당시 ‘무도안전(無道安全)’이란 말이 있었다. 도로가 없어야 오랑캐와 왜구의 침략을 늦출 수 있다는 사고와 비교하면 들숨 날숨이 가빠진다. 약탈에 무방비로 노출된 변방의 하층민을 구해 줄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알렉산드로스가 죽자 휘하 장수들이 그리스 본토를 비롯해 각 점령지역을 나누어 통치하게 된다. 흩어지면 반목과 갈등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힘이 고갈되어 가던 중 로마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만났다. 로마는 기원전 3세기 중엽부터 대략 1세기 동안 포에니전쟁을 치르면서 카르타고를 점령하고 지중해와 오리엔트 지역에까지 위세를 떨쳤다. 남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이탈리아반도 깊숙하게 쳐들어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명성도 로마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장군을 만나면서 막을 내렸다. 그는 ‘나의 허락 없이는 바닷물에 손도 담글 수 없다’며 서쪽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던 한니발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린다.로마는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충분한 자원이 필요했다. 이때 로마가 눈을 돌린 것이 발칸반도다. 발칸반도에는 일리리언이 로마 상선을 털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일리리언인 눈에 로마상선은 우리 바다를 휘젓는 침략자일 뿐이었다.로마는 이들을 소탕코자 본격적으로 발칸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등 해상무역으로 살아가던 발칸반도 원주민 격인 일리리언인의 저항에 부딪혔다. 하지만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로마군을 막을 수 없었다. 로마는 아드리아해 서쪽 해상로를 쉽게 장악했다. 마케도니아마저 굴복시킨 로마는 기원전 146년, 비실대는 스파르타를 마지막으로 그리스를 완전히 정복하고 도나우강 남쪽 영역 발칸반도는 로마 우산 속에 들게 된다.기원전 28년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잡으면서 제정시대가 열리고, 서기 9년 드디어 발칸 전 지역이 로마 제국에 완전히 무릎을 꿇는다. 이로부터 5백여 년간 로마의 철권통치를 받아야 했다.시간이 흐르자,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 스스로 로마와 그리스 역사가 뒤섞이는 경험을 이상하게 받아들였다. 신들의 땅 그리스가 곧 로마고 로마가 곧 그리스였다. 그리고 정령숭배, 즉 숲과 나무, 주피터, 태양신 등 다양한 신이 판치던 로마종교가 그리스신화를 만나면서 일취월장(?) 재창조된다. 시기와 질투, 폭력, 사랑 등 인성을 갖춘, 인간보다 조금 더 크고 잘생기고 아름다운 그리스 신들에게 로마인으로서는 감히 신을 인간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서기 3세기 말이 되자 드디어 발칸반도에서 황제가 나온다. 첫 번째 인물이 디오클레티아누스(244~311, 재위 285~305)다. 지금의 달마티아 땅에서 태어난 그는 태생적 하층민 자손이었다. 황제 친위대를 이끌던 그는 누메리아누스 황제가 암살되면서 군인들 추대로 황제에 등극한다. 그리고 발칸반도 판노니아 출신 동료 막시미아누스를 또 한 명의 황제에 올려 로마를 동서로 구분해 서쪽을 맡긴다.황제는 각각의 정부에 부제를 두어 통치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4두 정치(4분치제도·四分治制度)에 돌입한다. 이때 막시미아누스 부제 중 한 명이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였다. 그는 에스파냐에서 프랑스 지방인 갈리아와 오늘날 영국의 브리타니아를 맡았다.‘4두 정치체제’는 군인황제를 종식하는 토대로 작용했다. 이러한 정치적 결단이 또 한 명의 발칸반도 출신 황제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제국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긴, 기독교 공인 등 로마 역사에서 황제 중 큰 획을 그은 콘스탄티누스대제에 큰 영향을 끼친다.콘스탄티누스대제는 발칸반도 세르비아 동남부 지금의 니슈 지방에서 태어났다. 니슈는 동쪽 변방 국경을 노략질하는 고트족 방어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아버지 콘스탄티우스가 고트족을 물리치기 위해 이곳을 지나다 여관집 딸이었던 헬레나와 사랑을 나눠서 태어난 아들이다. 황제에 오른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칙령’을 반포해 기독교를 정식으로 공인했다.330년, 발칸반도 서쪽 끝자락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로마의 신권과 왕권을 모두 가져왔다. 궁극적으로는 진일보된 부활을 꿈꾸었지만, 이때부터 60여 년간 버려진 듯 남겨진 서로마 사람들과 갈등의 불씨를 묻어두게 된다.정치권력이 비잔티움으로 이동하면서 로마에는 교황이라는, 교권을 시민 위에 두는 권위적이면서 신과 인간세계 구분이 확연하게 진화, 혹은 퇴화한 가톨릭이 자리잡게 된다. 반면 그리스와 발칸반도에는 신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 없는 원리주의적인 동방정교가 뿌리내리면서 또 하나 종교 갈등이라는 뇌관이 작동한다./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4-04-08

백제어의 깊은 바다, 전라도 방언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전라도를 흔히 예향이라고 한다. 전라도 시내 엔간한 음식점에는 품격 있는 그림 몇 점은 걸려 있다.전라도 사람과 만나 한 잔 술을 나누다 보면 절로 흥겨운 가락이 쏟아져 나오고 그 중 누구든 판소리 한 자락 정도는 풀어낸다. 어쩌면 판소리에 담겨 있는 애절한 가락은 전라도 방언이어서 제 맛깔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전라도에서는 장음을 이중모음으로 소리내어 아주 끈끈한 부드러운 정감으로 판소리에서 전라도 소리미학을 담아낸다. 판소리가 전라도에서 발달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전라도 방언의 특징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라도 방언의 말씨는 입을 적게 벌리고 발음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춘향전의 한 구절을 들어보자. “춘향이 깜짝 놀래, “향단아, 저 건너 누각 위에 선 것이 누구냐?”/“통인 서고 방자 선 것 봉게, 이 고을 사또 자제 도련님인개비요.”/춘향이 놀래어, “벌써 나왔겄구나.”/“버얼써부터 나왔어라우.” ‘보니까’가 음절 사이가 뭉쳐져 ‘봉께’로, ‘갑이요’가 움라우트 실현되어 ‘개비요’, ‘벌써’가 장음의 음절 늘이기로 ‘버얼써’, 종결어미가 ‘왔었어요’가 ‘왔어라우’로 실현된 남부전라도 종결어미는 노래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거시기’만 알아도 전라도 방언을 거의 다 배운 셈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채만식의 ‘천하태평춘’과 ‘탁류’에는 “아니야 저 거시기 서울아씨 시집 안보내우?”/(‘천하태평춘’)과 “저 거시기 조사나 잘 좀 해보았수?”‘탁류’)와 같이 ‘거시기’가 곳곳에 보인다. ‘거시기’는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대명사로서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을 때, 그 이름 대신으로 쓰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감탄사로서 “하려는 말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얼른 말하기 거북할 때, 그 말 대신으로 쓰는 군말”의 뜻을 가지고 있다. 전북방언에서는 ‘거시기허다’로 동사를 대신하는 용법으로도 쓰인다. ‘거시기’는 명확하지 않은 사물이나 사실을 말할 때 쓰이고, ‘거시기허다’는 명확하지 않은 상태나 동작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전라도 구어 가운데 대표선수라 할 수 있다.채만식의 소설에는 ‘돌라먹다’(속이다), ‘갱기찮다’(괜찮다) 등 전북 군산 방언, 혹은 채만식의 개인 방언(idolect)이 작품 속에 소복하게 담겨져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아리랑’, 이병천의 ‘모래내모래톱’과 최명희의 ‘혼불’에 나타나는 ‘달챙이’(허기는 달챙이 숟가락 하나라도 빼놓고 가면 거그서 아쉬울팅게. -‘모래내모래톱’, 놋숟가락 닳아진 달챙이가 거꾸로 꽂혀 있어 이상해 보인다.-‘혼불’)는 ‘놋쇠나 무쇠로 만든, 끝이 상당히 많이 닳은 숟가락’을 의미한다.이 숟가락은 누룽지를 긁을 때 주로 사용하였고, 닳아서 쓸모가 없게 되면 문고리에 거꾸로 꽂아서 열쇠처럼 사용하던 것이었다. ‘매급시’, ‘매럽시’(맥없이), ‘매시럽다’는 “솜씨가 매시랍다, 손끝이 매시랍다”는 표현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걸로 보아 ‘솜씨가 좋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전라 방언에는 “꽤 많다”라는 의미로 ‘솔찬하다’라는 낱말이 있다, 전라 방언의 대표적인 낱말이다. 솔찮다’는 전라도 작가들이 쓴 문학작품에 전라도답게, 전라도스럽게 심심찮게 보인다.장일구는 ‘혼불의 언어’(한길사)에서 요절한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 담긴 절절한 전라방언을 가려내어 분석하고 있다. “근디 누구는 남원산성 그 거창헌 거이 입 안으로 옴시레기 들왔다고 허고이.”, “사랑마당에서 우세두세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상머슴이 고한다.”와 같이 ‘옴시레기’(모두, 전부), ‘우세두세’(조용하다, 두런두런)와 같은 찰진 전라도 특유한 방언은 대화체에서뿐만 아니라 지문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몇 년 전 작고한 칼럼니스트 김서령의 ‘김서령의 家라는 수필집에는 전남 나주 죽설헌에 살고 있는 박태후 화가와의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봄에 서령 씨가 만지던 배꽃이 자라서 된 열매요. 쌍다구는 시퍼래도 맛은 괜찮을 거요, 먹고 더 달라고는 마쇼, 잉.” 일상의 생생한 구어체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쌍다구’(생김새, 또는 생긴 모양)나 문말 어미 ‘마쇼, 잉’에서 전남 방언 특유의 맛깔을 느낄 수 있다.비음을 섞어 길게 끄는 전라방언을 들으면 백제어의 깊은 방언고고학의 심해에 풍덩 빠진다.

2024-04-08

막장 총선, 성찰과 반성을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철면피(鐵面皮)들의 행진이었다. 염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정치꾼들의 목소리만 높다. 내로남불과 적반하장(賊反荷杖)이 난무하고, 범죄자들까지 총선에 뛰어들어 ‘견강부회(牽强附會)’하니 어처구니없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민주주의의 무덤’이 되었다. 정치가 난장판이니 총선 이후가 더 걱정이다.내일은 민심 심판의 날이다. 패자의 반성은 물론, 승자도 박수 받을 처지는 아니다. 여야가 하나같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소명의식 없이 사익만 추구한 정상배(政商輩)들이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굽신거리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정치의 퇴행이며 민주주의 위기다. 오직 진정한 자기성찰과 반성만이 공동체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무엇을 성찰하고 반성해야 하는가? 정치지도자들은 오만과 불통, 언행불일치와 표리부동부터 고쳐야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는데 불신을 자초했다. ‘시스템 공천’을 말하면서 ‘고무줄 공천’을 했고, 국민을 빙자하여 권력을 남용했다. 통합을 말하면서 분열을 획책했고, 법치를 말하면서 법원의 판결을 비웃었다.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뻔한 거짓말’로 주권자를 기만했으니 그 죄가 매우 크다.권력을 탐하여 ‘편 가르기’와 ‘혐오 정치’를 한 것도 반성해야 한다. ‘통합의 수단’인 정치를 ‘분열의 도구’로 악용함으로써 나라는 ‘심리적 내전상태’가 되었다. 반역자집단·범죄자연대와 같은 막말로 상대를 악마화하고 내편의 분노를 부추겨 나라를 두 동강 내었다. 물론 이들의 선동에 놀아난 주권자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어떻게 해야 희망의 정치를 만들 수 있을까?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각성이 시급하다. 베버(M. Weber)는 그의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에게는 ‘열정·책임감·균형감각’ 등 세 가지가 필수조건이라고 했다. 우리 정치인들도 공익을 위해 희생·봉사하려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권력을 위임해준 국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야 하며,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이러한 정신적 각성과 함께 제도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적대적 공생정치를 심화시켰고, 연동형비례대표제는 꼼수 위성정당을 양산하여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 법학 교수였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자 “비법률적 방식으로 명예회복을 하겠다”면서 비례정당을 창당했다. 법학자가 범법자가 되어 법을 부정하고 정치적 면죄부를 받겠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이제 이 난장판 선거가 끝나면 반드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은 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 불공정과 불의를 일삼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을 반성해야 하고, 국민은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정치인들의 선동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한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한다. 희망의 정치도, 파멸의 정치도 모두 우리가 만든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성찰과 반성 없이는 미래도 없다.

2024-04-08

사전 투표의 유·불리

홍석봉 대구지사장 사전 투표는 유권자가 지정된 선거일 이전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선거일에 선거할 수 없는 유권자가 투표할 수 있도록 해 유권자의 선거권을 보장해준다. 투표 참여율을 높여 주고 투표일이 분산, 투표 당일의 혼란을 막아 준다. 이전에는 부재자 투표가 비슷한 역할을 했지만 불편했다.우리나라는 2013년부터 선거권자는 선거일 5일 전부터 이틀 동안 전국 어디서든 사전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됐다.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처음 시작됐다. 전국 단위 선거로는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첫 시행됐다.미국에서 2000년 조기투표가 도입, 시행된 후 한국과 일본 등에 잇따라 도입됐다. 유럽 각국에도 사전 투표제가 시행 중이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 학계에서는 이 제도의 위헌성과 위험성을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전투표가 아니라 1, 2, 3차 투표로 나뉜 선거는 투표시기에 따른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투표의 등가성을 문제 삼는다. 언제 투표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정치성향이 드러날 수도 있는 공개투표의 부작용도 지적된다. 21대 총선 때는 사전 투표 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등 부정선거 논란까지 일어났다.22대 총선 사전투표율이 31.28 % 로 역대 총선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번 사전투표의 높은 투표율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 유리하고 여당에는 불리하다는 분석이 통설이다. 이번 총선의 높은 사전투표율을 두고 여야가 서로 유리하다고 아전인수격 해석을 한다.선거 막판까지 막말 공방 등 정치 혐오감이 높지만, 사전 투표율이 이렇게 높게 나온 것은 의외다. 각 정당의 독려때문일까. 내 한 표에 대한 관심과 권리의식이 강해졌기 때문일까./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08

정치인의 범죄까지 감싸줄 건가

김진국 고문 지난달 한 걸그룹 멤버가 팬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있었다. 에스파의 카리나(24·본명 유지민)다. 배우 이재욱(26)과 교제한 일 때문이다. 처음 이 사실이 알려진 뒤 팬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소속사 앞에서 트럭 시위까지 벌였다. 트럭 전광판에는 “팬이 너에게 주는 사랑이 부족한가”라고 적혀 있었다.팬은 연예인의 힘이 되지만 사생팬은 골칫거리다. 연예인과 팬의 관계를 넘어서 마치 현실 세계에서 연애한다는 착각에 빠져 선을 넘는다. 공연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함께 소리치고, 춤추는 잔치마당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연예인의 집안으로 몰래 들어간다든지, 스토킹과 범죄 수준으로 발전하기까지 한다.우리 정치가 이렇게 돼 간다. 나와 공동체, 나라를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좋을지 걱정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런 정책을 추진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를 가리는 일은 포기했다. 아이돌을 사랑하듯 내가 좋아하는 영웅을 정하고, “네가 하는 일은 뭐든 다 좋아”라고 외친다.문재인 전 대통령이 후보로 나섰을 때 열성 지지자 그룹을 ‘문빠’라고 불렀다. 아이돌 열성 팬처럼 ‘빠’를 붙였다. 문빠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라고 외쳤다. 무슨 일을 하건, 지지하겠다는 말이다. 그만큼 신뢰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이 건전한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까. 나치도 그렇게 시작했다.형법 151조 2항에 “친족·호주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은닉·도피시켜 준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친족간의 정의(情誼)를 고려해 형을 면제하는 것이다. 또 범인의 자수나 타인의 고소·고발을 막는다든지 진범을 대신해 범인인 것처럼 신고하는 행위도 면책한다. 요즘 정치인과 지지자의 관계는 마치 현실 세계의 친족처럼 ‘무조건’이다.민주당의 양문석·김준혁 후보는 민주당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다. 김부겸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당에서도 여러 가지 유감스럽다는 것하고, 또 후보도 여러 가지 사과를 했으니까요. 이것은 국민 심판을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민주당이 책임을 지지는 않겠다. 공천은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두 후보에 대한 여론이 매우 나쁘다는 건 안다. 하지만 국회 의석은 차지해야겠다. 그로 인해 다른 후보가 영향을 받지 않게 막겠다는 것이다. 당직자들도 방송에 나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국민에게는 그런 후보에게 표를 찍어달라고 하나.민주당이야 그렇다 치자. 유권자는 더 문제다. 한병도 민주당 전략본부장은 지난 3일 두 후보와 관련한 수도권 판세에 대해 “큰 변화는 감지되고 있지 않다. 유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이 판단하게 하겠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범죄를 저질러도, 막말해도, 무조건 지지다. 사생팬과 다를 바 없는 덕질이다.양문석 후보(안산갑)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유사 불량품’, ‘매국노’라며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당내 반대파를 향해서도 ‘수박’, ‘쓰레기’, ‘바퀴벌레’, ‘똥파리’ 등 자극적인 혐오 표현을 퍼부었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을 잡는다며 임기 중 27번이나 고강도 규제책을 발표했다. 15억원이 넘는 아파트 담보 대출도 막았다. 그런데 정권 핵심 인사는 허위 문서로 돈을 빌려 핵심 규제 지역 아파트에 투기했다. 본인이 말한 내용만으로도 범죄 혐의가 분명하다. 공천 당시 공천 취소를 요구하던 친노·친문 인사들도 이제 침묵으로 돌아섰다. 사생팬의 항의에 겁을 먹었다.민주당 김준혁 후보(수원 정)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부끄럽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위안부, 초등학생과 성관계했을 거라고 말했다. 김활란 초대 이화여대 총장은 여대생을 미군들에게 성상납했다고 말했다. 연산군은 사대부 부인들을 궁으로 불러 스와핑했다며, 윤석열도 “유사하다”라고 비난했다. 그런데도 무조건 지지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을 따라간다. 국민이 깨어 있지 않으면 정치는 부패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는지 걱정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4-07

경탄(驚歎)에 관하여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이탈리아의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와 리카르도 페드리가의 편저(編著)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 첫머리에 기억할 만한 구절이 나온다. 철학은 과학이 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탐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그 하나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명제이기에 논외로 한다. 그 둘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출발한다. “그리스인들의 철학은 경이로움에 대한 반응에서 비롯한다.”경이로움에서 시작한 고전 그리스 철학이 오늘날 서양철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은 무척 흥미롭다. 경이(驚異)로움은 놀랍고 낯설며 비일상적이고 신이(新異)하며 익숙하지 않은 대상에서 오는 감정을 일컫는다. 경이로움을 감촉할 때 우리는 경탄(驚歎)의 소리를 내지르거나 환호한다. 예기치 못한 장면이나 상황 혹은 풍경을 연상하시기 바란다.학창 시절 경춘선을 타고 강촌역에 내렸다. 마음속에 무엇인가 응어리져 풀리지 않은 채로 야간열차에 올라탄 것이다. 역전 부근에 있는 술집에 들어가 ‘경월 소주’와 간단한 안주를 시켜 독작(獨酌)하고 있는데, 생면부지의 사내가 맞은편에 앉는다. 나보다 너덧 살 많아 보이는, 수더분한 인상의 사내가 양해를 구하더니 자리를 잡는 것이다.몇 잔 소주를 나눠 마시고 났을 때 그가 내게 던진 질문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살면서 경탄해본 적 있어요?!” 아주 간단한 단문(短文)의 질문이었는데, 대답할 수 없었다. 스물두 살 나이의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경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경탄’이란 말을 호명하는 그가 정말 경이롭고 그래서 나는 경탄했다.시를 쓰고 막노동을 하면서 세상을 떠돌고 있다는 그가 아주 낯설지만 경이로운 존재로 불쑥 다가왔다. 25도짜리 쓰디쓴 경월 소주와 더러 이해되지 않는 대화와 풀리지 않는 내부 인식의 혼란으로 그날 밤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문득 두툼한 철학책에서 ‘경이로움’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마주하니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다.그랬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밤하늘을 보며 정신없이 걷다가 우물에 빠지는 바람에 하녀의 우스개가 되었다는 철학자 탈레스를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든다. 자기는 물론이려니와 거의 모든 인간과 무관하게 빛나는 한밤중의 별을 보다가 우물에 빠진 철학자라니! 그런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자라고 플라톤은 탈레스를 극력(極力) 옹호했다 한다.탈레스가 올려다본 밤하늘의 경이로움은 어떤 것이었을까?! 별을 보고 길을 갔고, 가야만 했던 고대의 나그네를 부러워하던 낭만주의자 게오르크 루카치의 사유와 인식이 떠오르기도 한다. 혹은 ‘별 헤는 밤’의 시인이 멀리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며 오래전 이국 소녀들의 이름을 하나둘 소환하는 장면도 경이롭지 않은가.그리스 철학이 경이로움에 대한 반응에서 시작되어 연면부절(連綿不絶) 그 뿌리를 내려 오늘날 유럽의 철학적 사유의 원류가 되었다니, 경이롭기 그지없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고, 실로 경탄하는지 새삼 생각하도록 하는 문장을 돌이켜본다.

2024-04-07

나쁜 정치 심판날

우정구 논설위원 정치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대의정치란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여 정치를 하는 제도다. 국회의원은 그 지역 주민이 선거를 통해 뽑아 지역을 대표하여 국정을 감독 관리하는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위임받은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권력을 잡은듯 폼을 잡는다면 유권자는 뽑지 않아야 한다. 또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사람이 품위를 잃은 망언이나 쏟아내고 자식 이름으로 돈을 빌려 쓰는 편법대출을 일삼아도 부끄러운줄 모른다면 당연히 뽑지 않는 게 옳은 일이다.민주당 김준혁 경기 수원정 후보가 이화여대 초대총장이 학생을 미군 장교들에게 성상납했다는 등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과거 망언으로 여성단체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또 같은 당 경기 안산갑 양문석 후보는 대학생 딸 명의로 11억원을 대출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다.문제는 이처럼 부도덕한 행위가 명백한데도 후보들이 사퇴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지역 모두 민주당 우세지역이다. 부도덕한 부분을 뭉개고 우세 판세에 기대겠다는 생각이다.이번 총선은 유죄선고를 받고 재판 중인 사람들까지 줄줄이 선거에 나서 논란이다. 국회가 범죄자의 도피처가 돼선 안 된다는 거센 비판에도 그들은 아랑곳 않는다. 과거에는 볼 수 없던 나쁜 현상이다.공자는 제자 자공의 물음에 군대를 버리고, 식량을 버리더라도 백성의 믿음(民信)을 얻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성의 믿음없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는 뜻이다.나쁜 정치는 나라를 병들게 한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을 잘 뽑아야 하는 이유는 나쁜 정치가 나쁜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유권자는 윤리적 단호함을 선택의 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07

군자의 의리, 소인의 의리

유영희 작가 며칠 전, 국민의 미래 인요한 선거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일러 정이 너무 많다고 하면서 김건희 여사가 명품백을 가져온 사람을 차마 박절하게 끊지 못했다고 변명한 것을 옹호했다.또 마피아도 부인과 아이는 안 건드린다면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비판을 너무 심하다고 비난했다.이런 뉴스를 듣자니 중국 고대의 재상 관중이 생각난다. 관중은 관포지교라는 사자성어로도 유명한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재상이다. 제나라의 군주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때 포숙아가 모시던 소백이 먼저 제나라에 들어와 환공이 되었다. 그런데 그 전에 관중은 자기가 모시던 규를 군주자리에 앉히려고 소백을 죽이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다. 그래도 포숙아는 관중을 소백에게 추천했고 환공 역시 자신과의 사사로운 관계는 잊고 그를 재상으로 임명했다. 그후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나라의 국력을 키웠다.이러한 관중의 처세에 대해 공자 제자들과 공자의 의견이 갈린다. ‘논어’헌문편에서, 자로는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는데도 관중은 따라죽지 않았으니 어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자는 관중 덕분에 환공이 제후를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관중을 어질다고 평가한다. 자공 역시 자로 편을 들면서 관중은 자신이 모시던 공자를 따라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원수에게 충성했으니 어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자는 관중이 없었으면 한족은 모두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라면서 관중이 어질다고 옹호한다. 그러면서 공자는 개인 관계의 작은 도리에 연연하는 것은 필부의 의리이고, 백성을 위한 큰 의리를 실현하는 것은 군자의 의리라고 부연한다. 이것을 군자의 의리와 소인의 의리라고 한다.한편, 군자와 소인의 차이에 ‘논어’ 위정편에서 군자는 의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소인은 이익을 밝히는 사람이라고 하고, 맹자 역시 어떻게 하면 이익을 키울 수 있느냐는 양혜왕의 질문에 군자는 이익이 아니라 의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맹자도 의리란 결국 군주가 백성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라고 하면서 의리와 이익이 서로 관계가 깊다고 보충한다.정은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교감이므로 정이 많다는 것은 자기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말이다. 대통령이건 대통령 부인이건 모두 공인 중의 공인이므로 사사로운 정보다는 국민 모두를 위한 정의와 공정에 힘써야 한다. 공직에 뜻을 두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출마한 인요한 선거대책 본부장이 정이 많은 것을 약점이라고 포장하면서 옹호하는 것은 군자의 의리와 소인의 의리를 혼동한 처사이다.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의를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사사로운 관계를 무조건 끊어야 한다고 하기도 어렵고, 정이 많은 것을 나쁘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다만, 사사로움을 확대하여 그 다정함을 누구를 위해서 사용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공직에 있거나 공직을 꿈꾸는 사람은 자신의 다정함과 즐거움을 얼마나 많은 사람과 나누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2024-04-07

중요한 일과 급한 일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신이 만물에게 공통으로 부여해준 것 중의 하나가 시간이다. 누구나 24시간은 동일하며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개인의 인생도 큰 차이로 나타난다. 목표를 정해 열심히 사용한 시간 만큼 성과로 나타나며 무의미하게 허비한 시간이 있었다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게 우리의 삶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쉼없이 움직이고 있는 초 단위의 시간들이 모여서 인생이 되기에 현재 마주한 순간 순간의 소중한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가 매우 중요하다.미국 역사상 최고의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영적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조나단 에드워즈는 중요성과 시급성을 바탕으로 시간 사용 배분 원칙을 제시했다. 급하면서 중요한 일이 있고 급하지 않은데 중요한 일이 있으며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고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을 일로 구분하였다. 이를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소중한 것을 먼저 하기 위한 습관들이기로 시간관리 매트릭스를 제시하였다. 그는 급하지 않은데 중요한 일은 개인의 리더십 영역으로 스스로 계획적으로 꾸준히 하여야 급한 일을 줄일 수 있다고 하였다.생산 현장에서도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필요한 시기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재료를 사용하여 사람과 설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연속 생산하여야 하기 때문에 수시로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발생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객의 주문량은 바뀌고 이에 맞추어 재료 사람 설비와 이를 운영하는 방법이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수시로 생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 시간을 들여야 한다.현장의 설비나 사람 재료 그 외 어떤 문제로 인해 생산이 중단되어 고객의 납기를 맞추기 어렵게 되면 급하고 중요한 일이 되지만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비를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 고장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생산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재료나 자재 제품을 정리 정돈 하는 일은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급하지 않다고 하루 이틀 미루기 시작하면 고장이나 트러블이 발생하여 매우 급한 일로 변하게 되며 조치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 비용이 든다.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현장의 설비와 주변 환경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자재나 재료가 잘 정리 정돈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런 현장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제안하면 시간이 없다거나 바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사례나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하나 같이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잘 알고 있으며 위에서 강조하지 않아도 개인 스스로 계획하여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시간관리를 잘하기로 유명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긴급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은 없고 중요한 일 중에는 긴급한 일은 없다’고 하였다.시간관리를 가장 잘하기로 유명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긴급한 일 중에 중요한 일은 없고 중요한 일 중에는 긴급한 일은 없다’고 하였다. 중요한 일은 대부분 스스로 계획하여 꾸준히 해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지가 필요하고 지속하면 급한 일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시간은 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드는 것으로 모든 것은 자기 의지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겠다.

2024-04-07

망국(亡國)으로 가려는가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불과 70여 년 만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것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일이다. 소위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급성장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인류사적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흔히들 머리가 좋은데다 근면하고 교육열이 높은 민족적 우수성을 주요 동력으로 꼽는다. 하지만 그것은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걸 거지꼴을 못 면하고 있는 북한이 보여주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오로지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뛰어난 선견지명과 추진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올바른 방향을 잡고 기반을 닦아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이번 총선은 대한민국 국운의 향방을 가르는 또 하나의 기로가 될 것이다. 야권에서는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는 선거라 하고, 여권에서는 종북·좌파들과 범죄혐의자들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한다.‘윤석열 정권이 잘 한 게 뭐가 있느냐’는 것이 좌파들이 덮어씌우는 무능 프레임이지만, 사실 윤석열 대통령은 구국의 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들을 해냈다. 무엇보다 큰 공은 좌로 기울어져 전복될 위기에 놓인 자유대한민국을 바로잡은 것이다. 종북·주사파들이 장악한 지난 정권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 정체성을 와해시키려는 공작들을 해왔다. 그런 좌파정권이 연장되었더라면 지금쯤은 거의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그것을 윤석열이 온몸으로 막을 것이다.놀라운 외교력으로 국익과 국격을 높인 것도 윤석열 대통령의 출중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홀대와 망신을 사고 다녔던 문재인과는 확연히 다른 능력과 품격을 보여준 것이다. 빚더미에 앉은 경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손꼽아야 할 치적이다. 원전철폐니 소득주도성장이니 하는 몰지각한 포퓰리즘성 정책으로 파탄 낸 경제 구조를 회복하고 노동개혁을 실천한 능력과 의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경제가 회복되면 당면한 고물가와 어려운 민생도 저절로 안정이 될 것이다.지금 야권의 대표인 이재명과 조국이 범죄 혐의자들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국은 1, 2심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된 범죄자이고 이재명은 아홉 가지나 되는 죄명으로 수사를 받거나 재판 중이다. 그들은 이번 선거를 자신들의 사법리스크 회피용으로 삼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러니 국익과 민생이 안중에 있을 리 없다. 정치적 생명 뿐 아니라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를 판국에 무슨 짓이든 마다하겠는가. 그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문제는 국민들이다. 그들의 프로파간다와 가스라이팅에 현혹되고 세뇌된 국민들이 선거판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번 선거에서 야권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면 윤석열 정부는 그야말로 식물정부가 될 공산이 크다. 그들이 공공연히 내뱉고 있는 것처럼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윤석열 정부가 아무것도 못 하게 발목을 잡고, 무능을 핑계로 탄핵을 하려 들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망국으로 가는 길이다.

2024-04-04

밝은 눈, 맑은 마음으로

윤영대전 포항대 교수 4월 5일은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 우리 고유의 명절 중 하나인 한식(寒食)날이다. 한창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에 웬 찬밥인가? 예부터 나라에서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켜서 쓰는 개화(改火) 의례를 행했는데, 버드나무를 문질러 불을 피우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주었다고 하며, 그 사이에는 불을 사용할 수가 없어 ‘찬 음식’을 먹었다는 얘기다. 이날은 쑥떡이나 약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일년내내 병 없이 지내라는 의미이며, 또 ‘손 없는 날’이라 성묘하고 산소를 돌보며 잔디를 깎는 개사초(改莎草) 풍습은 지금도 행해지는 풍습이다.또한 한식은 농부들이 소의 상태를 점검하거나 볍씨를 담그어 농사 준비를 하는데 이날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으면 풍년이 들고 바다에서는 풍어를 만나는데 세찬 바람과 함께 큰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하루 전날이 24절기 중 다섯 번째인 청명(淸明)인데, 밭 흙에 비료를 섞고 골고루 가래질하는 봄밭갈이 시작의 날이기도 하다. 한 해의 양식을 마련하는 중요한 일이지만 점점 잊혀져 가는 듯하다.봄의 논밭길을 걸으면 온갖 봄나물들이 파릇하고 산과 언덕엔 곱고 화려한 꽃나무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올해는 따뜻한 3월이 계속된 탓인지 벌써 목련꽃들은 베르테르의 눈물처럼 꽃잎을 떨구는데, 일주일쯤 일찍 만개한 하얀 벚꽃이 영일대 호숫가에 둘러서서 풍성한 꽃잔치를 벌이고 호미곶 10만 평 들판은 노란 유채꽃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이러한 봄날, 식목일에는 나무도 심어야 하는데 그동안 산림녹화가 잘 되었는지 근래에는 큰 식목 행사를 볼 수 없고 집안 뜰에 몇 그루의 꽃나무 심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올 4월의 아스팔트 거리는 하얀 벚꽃 아래로 색다른 펄럭임이 요란하다. 4월 10일에 치러질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무수히 걸려 있는 후보자의 현수막들이다. 생소한 이름들도 많이 보인다. 빨강과 파랑, 초록과 노랑 색깔 옷을 입은 후보자와 도우미들이 꾸벅꾸벅 인사하고 선거방송 트럭이 지나가면 귀가 먹먹해진다. 집집마다 배달된 커다란 봉투에 두툼하게 담겨진 선거공고물도 다 읽기 어렵다.왁자지껄 시끄러운 이번 선거판에 뛰어든 정당 수는 무려 40개, 비례대표 투표지 길이가 자그마치 51.7cm라고 하니 어이가 없고, 전국 952명의 후보자 중에서 지역구 254명과 비례대표 46명, 즉 300명을 뽑아야 하는데 이중 전과기록 보유자만 32%인 300명이 넘는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약 4천430만 명 중에서 경북은 약 220만, 가능한 많은 유권자가 정당한 주권을 행사해 주면 좋겠다. 윤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딱 한 달 남겨둔 이번 선거는 향후 국정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점이라고 생각되어 유권자들을 어지럽게 만드는 그 많은 이슈와 선거공약뿐만 아니라 후보자들의 인성과 경력, 가족관계 등도 꼼꼼히 따져보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나라가 바로 설 것이다.4월의 청명한 봄날, 아름다운 꽃나무 아래에서 찬 음식 먹은 깨끗한 정신에 밝은 눈, 맑은 마음으로 고른 올바른 나무 한 그루씩을 자신의 꿈을 가다듬은 두 손으로 바르게 심었으면 한다.

2024-04-04

누가 자꾸 박근혜를 불러내나

홍석봉 대구지사장 뜬금없이 박근혜 등판론이 일었다. 대구·경북 국민의힘 일각에서 나온 목소리다. 22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 강세 지역에 ‘선거의 여왕’ 박근혜를 내세워 바람을 차단하자는 속내다.하나 마나 한 선거가 될뻔했던 대구·경북 선거판이다. 그런데 경산과 대구 중·남구에 무소속 돌풍이 불고 있다. 특히 경산은 박근혜 정부 실세였던 최경환 전 부총리가 무소속 간판으로 뛰고 있다. 최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 후광을 업은 국민의힘 조지연 후보를 앞서가는 형국이다.이에 대구·경북 25석 전석 석권을 노리는 국민의힘이 경산지역에 화력을 쏟아 붇고 있다. 경산에서 선대위원회 현장대책회의를 여는 등 부산하다.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방책이다. 이 와중에 박 전 대통령의 지원 유세설이 나왔다. 지역정가의 호사가들이 박근혜 등판을 부추긴 것이다.국민의힘 유영하 후보가 출마한 대구 달서갑에 박 전 대통령의 지원 유세설로 술렁댔다. 유 후보와 함께 시장을 방문하려다가 취소했다고 했다. 그의 선거 지원이 중도층과 수도권 공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고려했다는 그럴듯한 분석도 있었다. 가짜 뉴스였다.박근혜 등판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출판행사 때 “더 이상의 정치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친박은 없다”고 못 박기도 했었다. 정치권과 거리두기 선언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박근혜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있는 것 같다. 그의 청정한 삶을 더는 흔들지 않는 것이 맞다. 그는 그간 기억하기조차 싫은 탄핵 사태를 겪었고 영어의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젠 정치라면 몸서리칠 터이다.물러난 전 대통령의 선거 지원 유세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 격에도 맞지 않다. 물론 틈만 나면 정치판에 훈수를 두는 이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박근혜를 앞세운 선거였던 2008년 18대 총선에선 지역에 박근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한나라당 공천 탈락자들로 구성된 ‘친박연대’가 대구 3석, 경북 1석 등 지역구 6석과 비례대표 8석을 얻었다. 당과 국민은 “살아 돌아오라”고 한 당시 박근혜의 위력을 실감했다. 친박 세력은 당시 한나라당 내 친박과 김무성 등 친박 무소속연대 12명을 합치면 40여 명에 달했다. 친박연대는 2010년 미래희망연대로 바꿨다가 한나라당과 합당했다. 이후 친박이 한나라당 당권을 장악,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2012년 19대 총선에 들어서면서 정리된다.친박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 과정에서 탄생했다.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박근혜 의원이 당 대표로 선출돼 각종 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등장했다. 이후 부침을 거듭하다가 2017년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구심점이 사라졌고, 당내 입지는 급속히 위축됐다. 각자도생을 꾀했다. 20년 만에 스러졌다.박 전 대통령의 집사격인 유영하 변호사만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배려 케이스로 대구 달서갑에 둥지 틀고 명맥을 이었을 뿐이다. 친박팔이도 자취를 감췄다. 한때 위세를 떨치던 친박당이 부나비처럼 명멸했다. 봄비에 하염없이 지는 벚꽃처럼.

2024-04-04

언더독의 반란

우정구 논설위원 선거철에 잘 등장하는 용어로 언더독 효과와 밴드웨건 효과란 말이 있다. 이 용어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다.언더독이란 개가 싸움을 할 때 밑에 깔린 개(Under Dog)를 지칭하는 표현인데, 일반적으로 각종 경기에 있어 약자를 의미한다.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약자를 응원하는 현상을 언더독 효과라 한다.1948년 미국 대선 때 사전 여론조사에서 뒤지던 민주당 해리 트루먼후보가 공화당의 토마스 듀이 후보를 4.4% 포인트 격차로 이기면서 이 용어가 널리 쓰였다고 한다.밴드웨건은 언더독의 반대 개념이다. 어떤 사람의 수요가 다른 사람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뜻한다. 편승효과라고 부른다. 특정 상품이 유행하면서 그 상품에 소비가 쏠리는 현상을 이르는 말로 상품시장에서는 충동구매를 자극하는 마케팅으로 활용되기도 한다.정치적으로는 특정 후보가 앞서면 그쪽으로 지지세가 올라가는 현상을 밴드웨건 효과라 한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우리 속담을 연상케 하는 말로 들린다.스포츠 경기든 경쟁사회에서든 언더독의 반란이 있어야 살맛도 나고 인생의 묘미도 있는 법이다. 강자가 늘 이기는 경기라면 볼 것도 없고 흥미도 없다. 질 것 같은 약자지만 그들의 투혼이 강자를 이겨낼 때 관중들은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선거일이 임박한 가운데 22대 총선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수도권에서의 승부가 관심이다. 지난번 선거에 참패한 국민의힘은 언더독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04

포스텍 의과학대 신설·스마트병원 설립 ‘담대한 도전정신’이 신세계의 문을 연다

이대환 작가 담대한 도전이 신세계의 문을 열어젖힌다. 새 지평을 개척한다는 말이다. 포항에는 그 실증이 셋이다. 포항제철(포스코), 포항공대(포스텍), 그리고 에코프로.포스코와 포스텍은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세계관으로 무장한 무사욕(無私慾) 일류국가주의 박태준의 리더십과 창업세대의 헌신적 애국심이 창조한 위업이다. 이것은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의 모범으로 우리 현대사를 빛내고 있다.포항사람 이동채가 일궈낸 에코프로는 우리나라에서 이차전지소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현재 뜻밖의 고초를 감내하는 가운데 걸어온 66년의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갈 길을 가다듬고 있는 이동채. 나에겐 동갑내기 고향친구(그는 대송면 성좌, 나는 대송면 송정)와 다름없는, 고향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이할 포항의 영웅.지난해 4월, 포항에서 그와 함께 물회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다. 내가 일본에서 ‘손(孫)’이란 성(姓)까지 창시한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의 어린 시절을 들려줬다. 역사 근처 철로변 판잣집의 한 귀퉁이에 돼지를 치고 돼지우리 구석에서 밀주를 만들어 팔러 다녔다는 눈물겨운 사연이었다. 이동채의 반응은 무덤덤했다.“손정의 회장네 집에는 돼지도 있고 밀주도 있었네. 그때 우리집에는 그런 것도 없었어.”손정의는 이동채보다 한 살 위다. 같은 동네에서 컸으면 “정의야” “동채야” 부르고 있을 두 사나이의 공통점은 흙수저 중의 흙수저 출신이고 담대한 도전정신과 각고의 인내와 지혜의 힘으로 세계적 기업을 육성했다는 것이다.이강덕 포항시장은 전지보국, 바이오보국의 깃발을 들었다. 제철보국, 교육보국을 바탕으로 성취해야 하는 포항의 미래 비전이다.전지보국은 에코프로와 포스코퓨처엠이 그 기반을 조성했고, 코스닥 대장 자리를 오르내리는 에코프로는 성장 대로로 당당히 전진하고 있다.‘바이오보국 포항’의 주요기반은 포스텍의 의과학과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이다. 포항의 거사이며, 대한민국 바이오제약의 도약에 꼭 필요한 디딤돌이다.그런데 김성근 포스텍 총장 취임 뒤로 삐꺽대는 소리가 나왔다. 나는 작가로서 지난 1일 ‘포스텍 총장, 속였는가 비겁한가’라는 칼럼을 바로 이 지면에 발표했고, 오후에는 그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다음날 아침에는 시장과 총장이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김 총장이 털어놓은 고충들에서 내가 좀 분개하며 가장 공감한 점은 “포스코의 지원금이 없었다”라는 것이고, 내가 가장 아쉬운 점은 ‘임기 3년 5개월 남은 관리 총장’이란 점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천성이 그런지 몰라도 ‘담대한 도전정신을 읽어내기 어렵다’라는 것이다.의과학과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에는 넉넉잡아 연차적으로 1조원 정도 소요된다. 재원 확보 방안은 필수적 선결 과제지만, 겁부터 내세울 일은 아니다. 신임 포스코 회장이 이사장을 맡는 게 급선무이다. 나는 이사회에 박태준 선생의 유족, 대기업의 오너와 경영자들이 초빙되기를 바란다.새 이사장과 이사들, 총장, 포항시, 경상북도,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공약한 중앙정부와 국회, 의과학대와 스마트병원의 긴요성을 갈구하는 바이오제약 기업들, 지역 의료법인 등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공을 들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재원 마련의 방안은 마련될 것이다. 자신의 가족가업을 통해 ‘1000억원 문화재단’을 설립하는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에게도 충분히 설명할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그리고 김 총장이 ‘500병상 병원과 배후 인구 100만’을 소극적 견해의 근거로 내세운 것이 내게는 설득력이 크게 모자랐다. 그러한 일반 병원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포항의 기존 종합병원을 보강하겠다.포스텍 연구중심 의과학대의 스마트병원은 마치 포스텍이 세계적 강소 대학으로 성장한 것처럼 세계적 강소 병원으로 나가야 한다. 포스텍 생명과학의 독점적 기술력부터 최우선 특화하고 가장 뛰어난 특화 분야 중심의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서서 일반 병원의 역할도 겸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가령, 서울 강남의 어느 유명한 성형전문의원을 생각해보자. 규모는 동네의원이다. 그러나 국내 전역에서, 중국에서, 동남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국제적 병원 기능을 한다. 이러한 성형전문의원의 커다란 확장 같은 병원이 특화 분야 중심의 포스텍 의과학대 부설 스마트병원으로, 일반 병원의 역할도 겸하는 것이다.물론, 의과학이나 스마트병원은 바이오제약과 임상실험에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전문가의 강의 같은 긴 설명이 있어야 한다.기필코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의 반열에 안착해야 하는 포스텍은 지금 여기서 삼두마차를 완성해야만 한다. 김성근 총장이 오래 묵은 법인 소유 포스코 주식 등을 현금화하여 향후 10년간 1조2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제2 건학 프로젝트,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의과학대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 포항으로 오게 해서 포스텍과 결합해야 하는 포스코 미래기술연구원, 이들 셋이 그 삼두마차이다.다시 문제는 근원으로 회귀한다. 새 지평을 여는 제일의 동력은 역시 담대한 도전정신과 시대정신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리더십이다.거사에 도전하는 길은 험하고 멀지만, 지역사회의 리더십들이 손잡고 앞장서면 반드시 신세계의 문을 열어젖힐 수 있다. 경북매일신문이 4월부터 마련한 ‘이슈 논단’의 첫 필자로서 지난 1일 포스텍 의과학대 신설과 스마트병원 설립 문제에 대한 칼럼을 기고한 이대환 작가가 그날 오후 열렸던 김성근 포스텍 총장의 기자간담회 관련 기사를 읽고 다시 ‘이슈 논단’에 올리는 칼럼이다.

2024-04-03

유채꽃 물결따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확연한 봄의 당도다. 시샘하던 비바람에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길가의 벚나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앙상하던 가지에 하얀 벚꽃이 팝콘처럼 피어나 꽃터널이 생기고, 연이은 등불마냥 송이송이 피어난 꽃송이가 밤조차 환하게 밝히며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듯하다. 다시 돌아온 새봄이 파릇한 풀빛과 함께 갖가지 꽃빛으로 어우러지니 정녕 봄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다.길가나 언덕배기에 벚꽃이 한창이라면 강가나 들판에는 유채꽃이 꽃물결의 장관을 이루고 있다. 초록의 잎과 줄기 위에 샛노랗게 피어난 유채꽃은 황록(黃綠)의 어우러짐으로, 멀리서 보면 풀빛 위에 펼쳐진 노란색 양탄자마냥 싱싱함과 산뜻함을 자아내게 한다. 추위를 이기며 지내온 겨울초답게 유채밭의 노란색 꽃물결은, 싱그럽고 선명한 빛깔로 명랑의 안부를 전하며 따뜻한 감성의 노란 물결을 일으키는 듯하다. 화사한 봄꽃이 만발하는 꽃소식으로 유채꽃이 만개하자 전국 곳곳의 유채꽃 명소에는 유채를 느끼고 즐기는 유채꽃 축제로 분주해지고 있다. 벚꽃과 유채꽃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이는 ‘서귀포 유채꽃 축제’를 비롯, 전국 최대규모인 창녕군 남지읍의 ‘창녕 낙동강 유채 축제’ 등이 열리면서 상춘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포항지역의 호미곶 바닷가 유채밭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파도가 환하게 일렁이는 이색적인 풍경 속에 풍덩 빠질 수 있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쉴 새 없이 다가오는/파도의 하얀 안부//드넓게 맞이하며/꽃물결로 화답하는//호미곶//유채밭에는/설렘이 넘실대네//동토의 시간을 쟁여/기대인 듯 희망인 듯//일제히 솟아올라/손짓하며 반기는//노란색//감성의 바다/가슴 속에 어리네’ -拙시조 ‘호미곶 일우-유채밭’ 전문포항시 호미곶면 대보리 일원 15만평 규모의 유채밭은 포항농업을 먹거리 생산에서 축제·관광·경관농업으로 다변화시켜 농업인의 소득증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8년부터 조성됐다. 계절별 특색 있는 작물이나 화초를 심어 경관과 체험을 곁들인 축제형 아이템을 선보이고 있는데, 봄에는 유채꽃과 여름의 유색보리·해바라기를 비롯 가을에는 메밀꽃과 해바라기 등의 경관이 두드러진 명소로 자리매김해서 철마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또한 호미곶을 상징하는 상생의 손과 대보등대박물관, 한흑구 문학관, 청포도 시비 등과 연계된 스토리 테마파크를 구성해 관광산업육성에도 크게 일조하지 않을까 싶다.과연 휴일의 이른 아침에 둘러본 호미곶 유채꽃은 소리없는 외침으로 탐방객을 반기는 듯했다. 초록의 캔버스에 점점이 아롱지는 노란색의 현란한 유희 너머 짙푸른 바다의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수평선의 절묘한 안배는, 한 폭의 그림 그 이상의 감동이 여울지는 듯했다. 유채꽃물결의 둘레마다 수 갈래 밭두렁이 감성의 오솔길로 열리고, 너른 들판의 주인인양 고고하게 서있는 노송의 자태에서는 한 편의 시가 그림처럼 어리고 있었다. 탐방로 군데군데 포항에서 걸출한 문학적인 업적을 남긴 흑구 한세광 선생의 수필과 시를 발췌해놓은 작은 명판도 한결 어울려 눈길을 끌고 있었다. 노란색의 안부가 물결치는 호미반도 경관농업단지는 농촌과 탐방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2024-04-03

꽃대궐 아파트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봄꽃 개화달력이 올해는 안 맞았나보다. 지구온난화로 해마다 개화시기가 빨라진다며 일찍이 정한 전국의 벚꽃축제가 꽃 없는 축제로 치러졌다는 소식이다. 봄 같잖게 추웠고 꽃샘추위와 잦은 봄비로 햇빛에 민감한 벚꽃이 더디 핀단다. 대구에서도 유명한 수성못의 벚꽃도 영 시원찮다. 지난 주말에야 핀 벚꽃이 듬성듬성 예쁘지 않은 모양새다. 한꺼번에 화르륵 펴서 찬란하고 눈부시다가 일주일도 안되어 난분분 훨훨 날아 떨어져야 벚꽃인데 피다 만 듯 보기에 안타깝다.수성못 남켠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다. 내가 이사왔을 때 이미 20년 가까이 된 아파트였다. 여기서 봄을 지낸 지 30년도 넘었으니 50년을 훌쩍 지난 낡은 아파트였다. 그런데 이 낡은 아파트의 봄은 동요 ‘고향의 봄’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봄이다. 높은 성채의 담과도 같은 도로변 석벽엔 치렁치렁 노란 개나리로 뒤덮여 있고, 그 담 위로는 목련이 줄지어 있다. 아파트 들어서서 오르면 벚꽃 터널을 지난다. 봄이면 으레 피는 꽃들인데 무슨 대수랴 싶지만 나무들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다. 50여 년 전에 비록 묘목이라도 최소 아파트의 나이보다 더 오래되었을 아름드리 큰 목련나무와 벚꽃나무의 아우라는 정말 압도적이다.내 나이 30대에 이사 와서 또 그만큼의 세월을 살며 늙었다. 10대의 아이들이 자라 일가를 이루어 떠날 동안, 아파트도 나만큼이나 노쇠하고 녹슬고 삐걱거리며 낡아졌다. 그러나 나무들은 해마다 겉껍질을 벗으며 더 자랐고 더 커지고 더 단단하고 더 굵어졌다. 4층 높이의 아파트보다 훨씬 더 큰 목련이 매단 꽃송이는 밤에 보면 마치 서양 궁전 볼룸의 커다란 샹들리에를 연상시킨다. 어린 손자는 두 손을 마주 모아쥐고 손가락을 위로 펼친 모양으로 꽃 흉내를 낸다. 벚꽃은 몽글몽글하게 한데모여 탐스러운 여느 벚꽃과 다르다. 가지를 축축 길게 늘어뜨려 불빛 축제 때나 봄직한 루미나리에 터널을 연출한다. 벚꽃송이를 가까이에서 본 손자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붙여모아 꽃모양을 만들어 보인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떨어지는 풍경은 어떤 멜로드라마의 CG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낭만적이다. 떨어진 꽃잎이 만들어준 핑크 꽃길을 밟기 아까워하면서 또 며칠을 더 즐기는 봄꽃풍경이다.30년만 지나면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하는 요즘이다. 이 아파트도 당연히 그런 논의가 오고간 지 한참되었으나 지지부진한 모양새로 또 몇 번의 봄을 지내고 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정떼지 못하는 어떤 사연들이 있는지는 나는 모르겠다. 나무가 오래 살면 영험이 깃든다 했으니 저 나무들은 잘 알리라. 시뻘건 녹물에 벌레가 제집인 줄 아는 집, 겨울엔 몹시 추운 이 아파트의 불편함을 저 나무들은 잘 알리라. 사람이 늙고 병들면 갈 준비를 해야하듯, 사람이 지어 깃들어 살던 집도 낡고 허물면 떠나야 할 때가 됨을 잘 알리라. 이 아파트가 마땅히 헐리더라도 찬란하게 꽃을 피워주는 저 거대하고 당당한 나무들은 그냥 그대로 오래오래 살면 좋겠다. 자연이 만들어 낸 나무의 기운은 오랠수록 장대하니 외경심마저 든다. 이사를 나왔어도 봄을 제대로 즐기려 꽃대궐을 찾았다. 사진 찍는 젊은이들이 여럿 보인다.

2024-04-03

허경영 식 공약

홍석봉 대구지사장 국가혁명당 허경영 대표는 다소 엉뚱하고 기발한 처신으로 이목을 끄는 인물이다.그는 기초의원부터 대통령 선거까지 각종 선거에 8차례 출마했다. 비현실적인 공약 등을 제시, 주목받았다. 22대 총선에 국가혁명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한 그는 비례후보 253명 중 가장 많은 481억5천800만원을 신고, 뉴스의 초점이 됐다. 3년 만에 무려 400억원의 재산을 늘렸다. 축재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국가혁명당은 5대 공약을 내걸었다. 국회의원 100명 축소, 결혼 시 수당 1억원 지급, 출산 시 5천만원 지급,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70만원씩 지급, 18세 이상 국민 1인당 150만원 지급 등이다. 선거공보에는 ‘허경영이 맞았습니다. 여당도 야당도 따라하는 저출산 정책 예언’이라고 제시했다.그의 뜬금없는 정책은 관심 대상이다. 출산 장려금 등은 처음엔 손가락질받았다. 지금은 여러 정당이 따라한다.민주당은 ‘모든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 1억원 대출’을 총선 정책으로 내놓았다. 1997년 15대 대선 때는 ‘토요 휴무제’, 2007년 17대 대선 때 ‘노인수당’ 공약을 제시했다. ‘허무맹랑하다’는 비아냥을 받았다. 토요 휴무제는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시행됐다. 노인수당은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실현됐다. 시대를 앞서 간다는 평가가 나왔다. 허경영이 맞았다.‘역시 허경영’‘허경영은 선지자인 듯싶다’는 등 반응이 쏟아졌다. 허경영은 이번에 정당제도와 수능 폐지, 유엔본부 판문점 이동 등 공약도 내놓았다.황당해 보이던 그의 정책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되레 예지력이 있다고 평가해야 할 판국이다. 허경영의 혁명이 어디까지 계속될 지 궁금하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4-04-03

4월은 잔인한 달인가

장규열 고문 영국 시인 엘리어트(T.S. Eliot)는 이렇게 적었다.‘사월은 잔인한 달, 죽었던 땅에 라일락이 싹을 틔우고, 기억과 소망이 뒤엉키며, 잠자던 뿌리가 봄비로 잠을 깨지만.’ 시인은 왜 그렇게 노래했을까. 모든 게 살아나는 멋진 사월을 그는 어째서 잔인하다고 노래했을까. 벚꽃이 피고 목련이 올라오는 사월은 아름답지 않은가. 따듯한 햇살 아래 서 있기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동면에서 벗어나 만물이 소생하는 기적을 목격하는 사월은 신비롭지 않은가. 그럼에도 시인은 사월을 잔인하다고 못을 박는다.시의 제목이 ‘황무지(The Waste Land)’였다. 돌아온 새봄이 눈부시겠지만 황무지의 입장에선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모든 게 상대적이다. 봄이 온다고 한들 풀 한 포기 올라올 턱이 없는 황무지로서는 한겨울 찬바람이 차라리 공평했던 터이다. 사방이 모두 죽어버려 다시 살아날 기미조차 없는 곳에서는 겨울 눈밭이 오히려 포근했을지도 모른다. 봄이 되어 사방이 모두 기지개를 켜는데 아직도 황망하게 먼지만 날리는 땅에게는 잔인할 뿐이었던 모양이다. 황무지의 입장은 누구의 모습이었을까. 시인은 무엇을 빗대어 그렇게 이 시를 썼을까.시인의 눈에 봄이 잔인했을지언정 돌아온 사월은 여전히 아름답다. 포근하고 따사로운 햇볕이 고향의 들판을 생각나게 하고 꽃향기 봄기운은 마을어귀 시냇물 소리를 들리게 한다. 세상은 총선판. 누군가는 꿈을 안고 출사표를 던졌겠지만 세상살이는 아직도 고단하다. 확성기가 노랫가락을 길거리에 뿌려대지만 보통사람의 하루하루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사거리 후보자의 구십도 인사가 오늘만 굽신대는 헛수작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외치는 구호 가운데 일상을 실제로 나아지게 할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홀리듯 내 한 표를 던져야 하는 시민들에게 사월은 어떤 달인가. 마지막 몇 날이라도 진정이 실린 선거판을 만나고 싶다. 찾아온 사월이 잔인하지 않으려면 후보들은 어떤 마음으로 선거전에 나서야 할지 헤아렸으면 싶다.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데 길거리에서 외쳐본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학교는 허물어진 교권과 쉽지 않은 학교폭력으로 무너져 가는데 선거가 좋은 대책을 찾아올 수 있을까. 세상은 빛처럼 달아나는데 선거판은 지난 세기 모습으로 저러고 있는지. 과거를 들추면서 악다구니를 하는 사이에 우리의 내일은 누가 살피고 헤아릴 것인지. 출사표를 던진 이들에게 생각이 없다면, 표를 쥔 유권자라도 정신을 차려야 할 터. 마지막 며칠이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무슨 생각으로 선거판에 나섰는지 가늠해야 한다.나라살림이 바로 서고 서민경제에 숨통이 트이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헤아려야 한다. 다음세대 교육과 보통사람 일상에 희망이 보이고 기대가 실리려면 누구를 세워야 하겠는지 들여다 보아야 한다. 생각없이 거수기처럼 던지는 한 표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우리의 사월이 그래도 잔인하지 않으려면, 총선의 민심이 어떻게 일해야 할 터인지 생각해야 한다.

2024-04-03

나무의 시간

정미영 수필가 봄바람이 고즈넉한 숲을 흔들어 깨운다. 돋을볕의 줄기들이 나무 사이로 퍼져나가면 밤사이 내려앉았던 어둠이 서둘러 제 갈 길을 떠난다. 나뭇가지들은 따뜻한 바람의 손길이 닿자마자 앙증맞은 꽃망울을 터뜨리느라 분주하다.나무들은 오래 전 각인된 유전자의 기억으로 봄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환경에 적응하면서 대대손손 수천 년을 지탱해 온 나무의 저력이 새삼 경이롭다. 무리지어 사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도 저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 각자의 속도로 오랜 세월의 흐름을 건너왔겠지.나는 봄맞이를 하려고 나무 앞에 선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환한 얼굴로 나무를 마주하고 있다. 나무는 해마다 세찬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매서운 추위에도 씩씩하게 견뎌낸다. 나는 그러한 나무들을 보면서 지난겨울에도 봄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봄바람이 불어와 얼었던 계곡물을 녹이고 나목의 수피를 봄기운으로 물들일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나는 나무를 쓰다듬으며 자연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꽃 피는 봄의 따스함,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의 열정과 낙엽이 휘날리는 가을의 쓸쓸함, 무채색 겨울 숲속에서의 고요를 떠올린다. 잊지 않고 반복되는 시간의 순환은 나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어느 한 계절 동안 내 삶에 모진 풍파가 찾아와 내가 침잠하고 바닥을 헤매다가도, 언젠가 다가올 앞날에는 희망이 두 팔 벌리고 안아주겠지, 나를 기대하게 만들고 꿈을 꾸게 만드는 힘이 있다.소설을 쓰는 K작가가 이탈리아를 다녀오면서 지인들에게 선물을 했다. ‘판타레이(panta rhei)’가 적힌 냉장고 마그넷이었다. 냉장고에 붙여 놓고 오며가며 글자를 들여다보다가 요 며칠 생각했다. 나무처럼 판타레이(panta rhei)를 잘 증명하는 존재가 있을까.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말했다. 매일 찾아오는 24시간의 하루도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 내일의 하루가 다르듯이, 나무가 일생을 견뎌내는 시간을 지켜보면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나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나무의 시간은 계절에 따라 변곡점의 연속이다. 뿌리가 땅 속 깊이 뻗어 있고,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생명력을 과시하는 동안에는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내적 성장을 도모한다. 나무를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면 알 수 없다. 나무의 하루가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순간 생장점을 성장시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햇빛을 받아 꽃을 피우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나의 내적 성장도 때로는 나무를 닮아 천천히 이루어져야 되리라.북 트레일러 강좌에 등록했다. 몇 번의 수업을 들은 뒤, 복습하려고 휴대폰 앱에 들어갔다. 제작을 위해 알아야 되는 개념과 요소를 기억해 내며 고군분투했다. 19초 영상을 만드는데 5시간이 걸렸다. 디테일을 표현하기 위해 1초 단위로 크롭, 키프레임, 페이드 등의 다양한 기법을 작동시켜야 했고 어떤 배경과 사진이 어울릴지, 글씨체와 음악은 무엇이 좋을지를 선택하는데 고민했다. 서툴고 어려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어느 순간 배움의 즐거움과 스트레스의 무게가 비례해지며, 수시로 양가감정에 시달렸다.북 트레일러 제작법을 능숙하게 배우고 싶었다. 강사님께서 나의 책 ‘사계’로 영상을 제작해 오셔서, 그것을 표본으로 매시간 수강생들과 수업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서 잘해 내고 싶은 마음이 늘었다. 또한 다른 작가의 책도 멋진 영상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기에 욕심이 생겼다. 배움의 속도가 느린 나를 배려와 인내심으로 지켜봐 주시는 강사님과 다른 수강생들께 미안함이 커질수록 마음이 앞섰다.나무의 시간을 닮고 싶은, 햇살 고운 봄날 오후다. 나무의 시간에 가치를 부여하며 나의 시간을 투영해 본다. 나의 성장이 느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배운다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변화하고 발전할 것이다.

2024-04-03

스마트 세상의 이모저모: 버스 정류장

현대사회에서 대중교통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이 무엇인지 인공지능 코파일럿(Copilot)에게 물어보았다. “현대사회에서 대중교통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상징물은 지하철입니다. 지하철은 많은 사람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교통 복지와 편의를 제공하며 도시의 발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데, 이는 소프트웨어 발전과 함께 꾸준한 발전 덕분입니다.” 지하철이 없는 지역도 많은데 버스 정류장이 아니겠냐고 다시 물으니, 마지못해 수긍해 주는 듯한 답변이 나온다. “버스 정류장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이 더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버스 정류장은 지역 사회의 이동성을 지원하고, 지역 간 연결을 도와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지역 특성과 사용자 입장에서 어떤 대중교통이 더 대표적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버스 정류장 하면, 오래된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초콜릿 박스를 들고 앉아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거나, 남녀 주인공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등의 낭만적인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의 버스 정류장은 그렇게 긍정적인 감성의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얼마 전 수도권 도심의 버스 정류장에 노선별 대기판을 새로 도입했다가 오히려 퇴근길 대란을 겪은 사례가 소개되었다. 30~40미터 길이의 정류장에 1미터 간격으로 13개의 노선별 대기판을 설치하여 버스는 정해진 위치에만 서도록 변경했다. 그 결과 퇴근길 버스 정류장이 1천여 명의 탑승 대기자로 가득 찼고, 지정된 대기판 앞에 정차하기 위해 기다리는 버스들로 인해 극심한 교통 혼잡이 빚어져 결국 9일 만에 운영을 중지하게 되었다. 기차나 지하철과 달리 버스는 다른 차들과 도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였던 것 같다. 그 후 부근에 정류장을 추가 개설하여 버스 정차 위치를 전후방으로 분산하고 노선을 일부 변경하는 등의 일대 교통 혼잡 해소 대책을 실시했다. 다행히 얼마 전 버스 운행 시간이 최대 13분 줄고, 퇴근 시간대 정류소 밀집도가 약 56% 줄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해결책을 고안하고 시행하는 과정에 담당 부서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이 된다.버스 정류장에 스마트 기술이 더해지면서 단지 승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공간이 아니라 도심의 매연과 극한의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쉘터’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버스 정류장이 스스로 주변 공기 질을 측정하고 냉난방과 공기 청정을 실행한다. 큼직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버스 노선과 다음 도착 버스 정보를 대기자에게 알려주어 미리 탑승 준비를 돕는 것은 물론이고, 쉘터 안에 장애인이 대기 중이라는 것을 가까운 저상버스에 미리 알리기도 한다. 공항 라운지처럼 버스 대기자를 위한 별도의 라운지가 운영되는 곳도 있다. 추위나 무더위, 나쁜 공기 속에서 몇십 분씩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이용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한편, 기다리는 시간 자체를 줄여 주는 노력도 있다. 일부 수도권 광역 노선에서는 앱을 이용한 좌석 예약제가 시행 중이고, 4월부터는 경기도 내 다른 지역으로 확대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앱에서 원하는 버스, 내리는 곳, 타는 곳을 순서대로 선택하면 해당 노선의 기점 출발 60분 전까지 손쉽게 예약할 수 있다. 버스 이용자는 출퇴근 시간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 사전에 예약해 둔 버스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고, 버스 운영자 입장에서도 사전에 이용자 규모를 파악할 수 있으니, 이용자와 버스 기사 모두에게 편리함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곽지영 태재대학교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장 그런데 이렇게 되면 혹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버스 이용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지, 예약자와 현장 탑승자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지는 않을지 염려스럽다. 기술의 적용 뒤에는 항상 양지와 음지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앱을 통해서 뿐 아니라, 버스 정류장이나 별도의 대기 공간에서도 일종의 ‘현장 예약’이 가능해야 할 것 같다.예를 들어, 어르신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큼직한 글씨의 예쁜 번호판을 버튼으로 만들어 배치해 두고, 엘리베이터처럼 꾹 누르기만 하면 자동으로 줄서기가 된다면 어떨까? 자신이 선택한 버스가 만석이라면 그 다음 버스를 몇 분 더 대기해야 한다는 안내도 나올 것이다. 큼직한 디스플레이에 아이들도 알아보기 쉬운 그림으로 버스 운행 노선과 좌석 예약 상황을 보여주고, 몇 개의 탑승구 앞 디스플레이에 버스의 실시간 위치를 기반으로 다음 정차할 버스 번호가 표시된다면 탑승객들은 눈치보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이 원하는 버스 번호가 표시된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버스 기사들에게는 정류장 도착 전 자신이 정차해야 할 정류장의 위치와 대기 중인 탑승 인원이 표시되니 미리 준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버스 정류장이 인공지능 코파일럿은 물론 시민들에게 대중교통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마트 세상에 걸맞은 모습으로 계속 변모해 나가야 할 것 같다. 특히, 실제 운영 상의 어려움을 미리 예측해보고 디테일 속에 숨은 악마가 없도록 더 면밀히 살펴야 한다.

2024-04-03

新지방시대를 주도할 포항의 ‘실천적’ 전략

이재훈 전 경북테크노파크원장 경북 제1의 도시이자 환동해 거점도시 포항은 경제적, 지정학적 가치가 매우 높고 성장잠재력이 풍부한 도시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 정부에서부터 포항을 거점으로 하는 여러 발전전략이 기획되기도 했다.고(故) 박태준 명예회장 시절 포스코는 포항 지역을 광역신도시로 만들기 위해 인공섬 국제공항과 1천만평(3천300만㎡) 흥해 배후도시 건설 등을 포함하는 종합발전계획을 구상한 바 있으며, 김영삼 정부시절에도 포항을 한 축으로 하는 환동해 경제권에 대한 발전계획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실행되지는 않았다.이같은 여러 계획 중 하나라도 제대로 실행되었다면 지금 포항의 모습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보곤 한다.얼마 전 지역방송사에서 방영한‘新지방시대 포항의 미래를 말하다’라는 특별대담 프로에서 역대 정부의 지방 발전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현재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이 출연해 포항이 가진 잠재력과 가치, 지방시대를 주도할 포항의 역할 등을 심도있게 진단하고 논의했다.이 자리에서 우동기 위원장은 포항의 강점을 기업도시, 대학도시, 항만도시로 정의하며 현재 많은 지자체가 인구감소 등으로 지방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포항은 오히려 인구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도시라고 평가했다.포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산업의 쌀인 철을 생산하면서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며 눈부신 국가 경제발전을 이끈 글로벌기업 포스코가 소재하고 있다.또한 최근에는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이차전지 관련 기업을 비롯한 수소, 바이오 등 신산업 관련 기업들이 자리 잡으며 투자를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다.이는 포항시가 그간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철강산업의 침체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이차전지를 비롯한 신산업 육성 정책을 꾸준히 실천해 온 덕분으로 이제는 철강도시에서 배터리도시로, 나아가 바이오 신산업 도시로 변신하고 있다.포항시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배터리 등 신산업 분야에서 7조4천억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기업의 투자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인구 증가 요인으로 작용해 살기 좋은 도시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또 포항은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인 포스텍을 중심으로 주변 1시간 거리 내에 경북대를 비롯한 DGIST, UNIST 등 수도권에 버금가는 우수대학이 있고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포항가속기연구소 등 첨단 RD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어 우수한 인력이 풍부하다.이 밖에도 환동해 거점항만인 영일만항을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시베리아 횡단철도가(TSR)가 연결될 경우 북방경제의 중심이 될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포항은 분명 여느 지방도시와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포항이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균형발전의 모범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기업, 대학, 지역주민이 함께 협력하여 현 정부의 핵심지역정책인 기회발전특구와 교육특구 등을 유치하여 이를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실천력(實踐力)이 뒷받침되어야 한다.포스코는 인력이 없어 수도권에 대규모 미래기술연구원 분원을 설치한다는 수도권 중심의 논리를 앞세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 우수인재를 포항 본원으로 유치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등 지역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포스텍은 철강, 이차전지에 이어 새로운 포항의 먹거리인 바이오산업의 요람이 될 의과학대학 설립으로 우수인재를 지역으로 유치하는 등 지역발전에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실천적 역할이 요구된다.이러한 기업과 대학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기업가적 지방정부인 포항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조화를 이끌어내고 지역민들은 지역발전의 주체로서 포항이 가진 가치와 잠재력에 기반한 지역발전전략을 실천함으로써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균형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포항이 신(新)지방시대를 주도해 나가길 희망한다.

2024-04-02

여권에서 ‘윤석열 못 지켜준다’는 말 나온다

심충택 논설위원 민심이 등을 돌리자 여권 내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PK(부산경남) 지역 총선 최전방인 낙동강벨트에 출마한 조해진 후보(김해을)는 지난주 “총선에서 참패하면 보수 세력도 야당의 공격에서 윤 대통령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비친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지지기반인 PK지역 3선 중진의원의 입에서 ‘지켜주지 않겠다’는 험한 말을 들은 윤 대통령으로선 섬뜩한 기분이 들 것이다.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 혁신당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것은 오래됐지만, 여권 내부에서 윤 대통령 신상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충격적이다. ‘대통령 탈당’ 얘기까지 거론되는 상태다. 윤상현 후보(인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하면 대통령 탈당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여당 중진들의 거친 발언은 총선위기가 심각한 상황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만약 현 판세대로 범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200석 이상 국회의석을 확보하면 대한민국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대표가 장악하게 되고, 국가 미래는 예상할 수 없는 혼란 상태로 가게 된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자신의 사저를 찾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윤 대통령과의 단합을 유난히 강조한 이유는 이러한 당정분열을 예감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여권의 ‘옥새파동’으로 당시 새누리당이 다 이긴 선거를 지고, 자신은 탄핵까지 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두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말고 원팀이 돼 총선위기를 극복하라’는 마음속 얘기를 특히 윤 대통령에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현재 당정 간 갈등을 더 악화시킬 첨예한 현안은 의료대란이다. 나는 그저께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대 2천명 증원’의 불가피성을 장시간 역설한 것은 오히려 의정갈등을 더 악화시켰다고 본다. 의료개혁은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현안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환자들의 목숨이 걸린 사회혼란을 주도하고 있는 모습은 민심이반의 주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여권내에서는 최근 의대증원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태도변화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정부 장관 출신인 권영세 후보(서울 용산)는 “2천명 증원은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고, 안철수 공동선대위원장은 “2천명 증원을 성역으로 남기면서 대화하자고 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다들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여당후보 지원에 나선 유승민 전 의원도 “2천명 숫자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것은 국민들 눈에 오기로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여당 일각에서는 현 판세대로 선거일을 맞으면 100석 확보도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야권의 대통령 탄핵과 개헌 추진에 맞서기 위한 저지선이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독선적인 모습을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 본 선거일이 아직 일주일 남아있기 때문에 판세는 얼마든지 출렁일 수 있다.

2024-04-02

조용한 TK 선거

우정구 논설위원 22대 총선이 본격적으로 열기를 뿜어대는 가운데 대구와 경북만이 역대급으로 조용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국민의힘 절대 우세지역이기 때문에 선거 분위기가 초반부터 맥이 빠진 꼴이다.보통 투표일 일주일 정도면 선거 열기가 한창 달아올라야 할 판인데 거리는 선거 현수막만 요란할뿐 선거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다. 존재감 있는 여당 후보를 만나볼 수 없기는 이전 선거 때나 마찬가지다. 야당 후보는 인물난으로 애초부터 경쟁 구도가 안 생겼다.일각에서는 3무(無) 선거라 부른다. 후보가 내건 공약도 없고 ‘공천이 곧 당선’으로 생각하니 경쟁도 없다. 유권자 역시 선거에 관심이 없어 무공약, 무경쟁, 무관심의 3무라는 것이다.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 부르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에 있어 가장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직업, 사회적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나 정치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다. 민주주의에서 기득권을 응징할 수 있는 제도로 이보다 소중한 기회는 없다.중국이 홍콩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작년 12월 치러진 홍콩 자치구 구의원 선거는 최종 투표율이 27.5%로 선거 사상 가장 낮았다. 직전 구의원 선거가 71%의 투표율을 보인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 친중국 인사들로 채워진 후보들에 대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사라진 때문이다.당선을 ‘따 놓은 당상’처럼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는 TK지역 여당 후보들에게 조용한 선거가 과연 다행스러운 일일까. TK지역 유권자의 정치적 무관심을 불러올지 두렵다. 지금이라도 여당 후보들이 나서 선거판을 선거판답게 조용한 선거판을 뒤집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4-02

임신 전후 건강관리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최근 대한민국 출산율이 0.7이하로 줄어들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주원인은 결혼하는 인구가 줄어서이고 결혼이 줄어드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족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 같지 않고 자녀양육의 경제적, 정서적 부담, 자녀의 교육환경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으로 결혼이 줄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놓지 않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그 외에도 불임으로 인해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임신 전 부부 건강 및 임신 중 건강 관리에 대해 소개한다. 임신 전 관리는 부부 서로가 아이를 잘 가질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남녀의 몸과 정신이 건강해야지 수정이 잘되고 임신이 잘 된다. 그리고 건강한 아기가 태어난다.서로의 일이 끝난 후 저녁 식전 혹은 식후 같이 운동을 해야 한다. 30분에서 한 시간 가량 걷는 것이 좋으며 근력운동을 해도 좋다.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정신적 교감을 쌓는 것도 좋다. 꾸준한 운동은 각자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육체가 튼튼해지면 정신도 건강해진다. 걸으면서 하는 대화는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정신적 교감을 든든하게 한다. 같이 사는 동안 한 몸이라 생각하고 같이 운동하고 대화를 많이 나눈다면 부부관계에서의 교감도도 높아지고 육체적 정신적 튼튼함은 건강한 아이를 잉태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엄마의 몸에 아이가 생기면 더욱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우선 음식을 많이 가려야 하고 정신적으로 안정되는 것도 중요하다. 매운 것은 절대 먹지 말고 자극적인 음식도 멀리해야 한다. 임신하면 특정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일반적인 음식은 먹어도 되나 매운 음식은 절대 금해야 한다. 먹고 싶으면 약간 입맛만 돌게 한 두 숟갈 정도만 먹어야지 너무 많이 먹으면 산모와 태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신을 하면 운동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가서 걸어야 한다. 시간 날 때마다 가벼운 산책을 자주 하고 집안일은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임산부라고 어떤 일도 안하고 퍼질러 있으면 산모의 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일상적인 가정생활과 운동은 해야 한다. 남편은 하루도 빠짐없이 일이 끝나면 집으로 들어와 부인과 시간을 보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정신의 안정과 더불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봄이나 가을철엔 몸살이나 감기가 올 수 있으니 옷을 얇게 입고 다니지 말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다니는 것이 좋다. 잉태되는 순간부터 아기는 엄마가 먹는 것을 먹고 엄마가 운동해서 건강해지는 만큼 건강해진다. 2차 대전 당시 폴란드인 대상으로 엄마의 영양상태에 따른 아이의 건강을 조사한 자료가 있다. 이를 보면 산모가 잘 먹고 건강할수록 태어난 아이는 건강하고 나이가 들어서 성인병이 올 확률이 낮다. 자식이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나에서 자식으로 바뀐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아이를 위해 임신 전 임신 중 건강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나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이고 아이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다.

2024-04-02

3년 내 사장자리 넘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자 할 때, 주변 사람들의 마인드를 변화시키고자 할 때 현명한 리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Y리더십으로 원하는 바를 이룬다. 21세기 리더는 상대관점에서 말하고 지원하는 Y리더십이다. 상대를 진정 공감하게 하는 능력은 현대의 리더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조직의 경영자, 관리자, 리더들에게 You 관점의 Y리더십으로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낸다.MB정부시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 현대배관은 포스코와 관련이 없는 첫 혁신지원을 받는 기업이 되었다. 배전용 전기회로 개폐장치를 생산하고 있는 현대배관은 원료 창고와 1차 가공, 2차 가공, 완제품 생산 공장이 있고 생산 물류 흐름이 효율적이지 못했다. 창업주 Y씨(당시 63세)는 영업과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을 못 믿어 7년 더 사장하고 넘겨주겠다고 했다. 필자는 재무만 쥐고 3년 내 넘겨주라고 했다. 한 달 반쯤 지나 양주시내 조용한 자리에서 3년 내 아들에게 사장 자리를 넘겨주겠다고 했다. 이에, 필자는 아들을 생산 이사로 발령 내게 하고 3개 공장의 흐름을 잇는 ‘생산 물류 최적화’ 프로젝트를 맡겼다. 코흘리개부터 성장과정을 지켜본 공장장들은 아들 말을 쉽게 들어주는 구조가 못 되었다. 생산 물류 최적화 활동 과정에 분석과 개선 기회를 창출하는 방법 등 전문지식을 심어주고 공장장들을 리딩 하게 했다. 처음에 진행이 잘 되지 않았지만 변화관리 교육을 병행하며 6개월쯤 눈에 띄게 변화가 일어났다. P-Q(Products-Quantity) 분석을 통해 Layout 설정과 창고 위치, 원료관리, 생산과정의 중간재 양을 적량화 하여 정체되는 상태를 개선해 나갔다. 작업장은 일을 쉽고 편리하게 효율적으로 되었고 바쁨이 여유로 다가왔다. 원료 입고에서 제품 출하까지 강물이 흘러가듯 흐름화를 만들어 효율적인 생산체제로 변화되었다. 함께 참여한 공장장들은 젊은 30대 생산 이사를 인증하게 된다.세상에 가장 어려운 것이 내가 아는 지식을 전하고자 하는 상대의 뇌에 넣는 일이라고 한다. 금수저로 태어나 귀하게 자란 아들은 조금만 어려운 일을 만나도 피하는 성격이었지만 잠재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업주의 기업 성공 지식과 노하우를 일방적으로 주입시켜려다 보니 소통은 요원해 지는 것이다. 성공적인 생산 물류 최적화 결과를 전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지속하게 했다. 이후 창업주는 회장이 되고 아들이 사장이 되었다.인도의 일곱 살 동자승은 야생 코끼리에게 책을 읽어주며 소통을 한다. 동자승은 코끼리와 함께 태어나 성장했고 늘 상대를 먼저 생각해주는 친구다. 현명한 리더는 상대관점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의사결정을 하게 한다. 상대가 주인공이 되어 선택하고 도전하게 하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질문에 답하며 성공의 결과를 만드는 동안 경영수업을 체득한 것이다. 일의 성공은 타이밍과 수용성에 있고 상대 관점에 생각하고 말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2024-04-02

포항 기업혁신파크 유치, 새 도약의 기회

안병국 포항시의원 우리 포항시는 청년인구의 수도권 유출 및 인구 감소,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다방면으로 고민해왔고 노력하고 있다.특히, 기업혁신파크 유치는 포항시에서 급변하는 사회·경제환경에 맞춰 새로운 도시경쟁력 확보에 대한 기대와 공모 선정에 각별한 노력을 들였고 포항시의회와 함께 힘을 모은 도약의 결과이다.포항시는 지역대학과 산업단지를 거점으로 산업·연구기관·대학 등 글로벌 혁신생태계를 구축하는 산학 연계·융합형으로 지난해 11월 기업혁신파크 공모사업을 국토부에 신청하여 올해 3월 27일 최종 결정 통보를 받았다.기업혁신파크는 기업도시개발특별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민간기업의 산업·연구·관광·레저 분야 등에 걸쳐 계획적·주도적으로 자족적인 도시 개발·운영에 중점을 두고 국토의 계획적인 개발과 민간기업의 투자를 촉진시킨다는 목적이 있다.기업혁신파크는 기업이 스스로 입지 선정, 개발계획 수립, 투자, 개발, 사용 및 기업 유치 등 전 과정을 주도하고, 정부는 기반시설 조성 및 세제 지원을 통해 지역 경제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이다.포항 기업혁신파크는 이차전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동대 일원에 54.7㎡(16.5만평) 규모로 들어서며, 부지조성 사업비는 2천565억원이다.사업기간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로 한동대학교, (주)에코프로, (주)포스코퓨처엠 등 7개 기관이 공동 제안하여 산학융합 캠퍼스와 기업육성을 위한 혁신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필자는 포항시에 기업혁신파크가 성공적으로 조성된다면 포항의 경제성장과 발전에 반드시 새로운 기회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며 에너지, 바이오헬스 산업도시로의 변모가 가시화됨에 따라 이는 작은 변화가 아닌 포항의 경제적, 사회적, 산학연의 지평을 확장하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따라서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고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면 인구감소 예방에 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수도권과의 격차 완화로 경제적 역외유출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그 결과,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지 못하고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악순환에서 탈피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앞으로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9일 간담회 개최 결과를 통해 4월부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현장실사 등을 통해 점검하고, 미진한 부분은 전문가 컨설팅 등으로 보완하는 등 기업 및 지자체와의 협력 유치에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이제 포항시는 거제, 당진, 춘천에 이어 기업혁신파크 선도사업지로 선정된 만큼, 지역균형발전의 초석이 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소통하며 협력하여야 할 것이다.포항 기업혁신파크의 성공을 위해 다음 몇 가지 고려 사항들을 제안하고자 한다.첫째, 양덕과 흥해 주민들과 소통이 있어야 한다. 대상지역 주민들과 소통은 사업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이것이 기업혁신파크 성공의 지름길이다.둘째, 기업혁신파크 성공은 입주할 실제기업들의 실제투자와 실입주를 이끌어내야 한다. 다른 지자체들이 내놓는 투자 유인책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앵커 기업인 (주)포스코퓨처엠, (주)에코프로와 한동대학교의 정책사업과 반드시 연계해야 한다.셋째, 포항 기업혁신파크의 유치 업종은 이차전지 에너지사업과 바이오헬스산업이다. 두 산업의 조화로운 융합과 균형있는 질서를 잘 활용해서 혁신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2024-04-01

평북 방언으로 서정을 노래한 김소월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평북 정주 출신인 김소월의 시에는 섬세한 향토 방언이 800여 개나 결 고운 무늬를 이루어 향토적인 전통 가락과 장단과 어울린다. 소월은 20년대의 문학 일상어와 평북 방언을 구분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일상어로서, 모어로서 방언을 사용하였다. 소월은 시 작품에 평균 2개 이상의 방언 내지 방언 변이형을 사용하고 있을 만큼 방언을 풍족하게 시에 수용하였다. 방언을 표준어와 대립되는 관점에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어로 인지하였고, 자연스럽게 시어로 사용함으로써 가장 전통에 근접한 서정시의 최고봉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소월이 사용한 북방의 언어는 개여울에 흐르는 서정적 울림의 샘처럼 마르지 않고 우리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고 있다.김소월의 ‘진달래꽃’(매문사, 1925)에 실렸던 ‘기억’이라는 시 1연에서는 무려 5군데나 의미 해석이 어려운 방언 시어가 나온다.‘싀밋업시’, ‘실벗듯한’, ‘머리낄’, ‘슷고’, ‘잔물’, ‘해적이다’, ‘축업은’, ‘시메산골’, ‘하롯길’과 같은 시어는‘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은 고어이자 평안도 방언이다. 향토색 짙으며 이미 소멸의 길로 들어선 이런 시어는 해석하기가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싀밋업시’는 ‘멋쩍게’라는 의미의 평안 방언인데 ‘평북방언사전’에도 보이지 않아 그 의미를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싀멋업시’는 소월이‘팔베개 노래조’의 서사에서와 ‘시초’에서 사용한 시어이다. “무슨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망연히 있음”을 뜻한다고 이기문 교수의 설명을 듣자 겨우 시 문맥을 이해할 수 있겠다. ‘실 벗듯한’은 ‘실’이 ‘뻐듯한’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벗듯한’으로 교열함으로써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머리낄’은 ‘머리카락’의 방언형이다. 그러나 시집‘진달래꽃’에서는 ‘머리길’로 교열함으로써 엄청난 오류를 범헀다. ‘슷고’는 “담벼락을 손가락으로 살짝 대어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을 의미하므로 ‘스치고’의 의미로 교열하면 좋을 듯하다. 가수 정미조가 가요로 불러서 80년대에 인기를 끈 노랫말이었던 소월의 시 ‘개여울’에도 많은 평북 방언이 보인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에서 ‘잔물’이란 시어는 ‘작은 못’의 의미를 지닌 방언이다.‘해적이다’는 ‘풀따기’에도 보이는데 “무엇을 헤쳐서 들추어내다”라는 의미를 가진 평안도 방언이다. 남부 방언에서도 ‘희적거리다, 해적거리다’라는 방언이 있으니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사용되었다가 이젠 고어가 된 어휘다.김억(1939)편 ‘소월시초’‘님에게’라는 시에는 ‘축업은’(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님에게’)이라는 시어가 있다. ‘축업은(추겁은)’은 평북 방언으로 ‘추겁다, 추거워’로 변칙 활용을 하며 ‘축축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미래사에서 출판한 ‘진달래꽃’(1991)에서는 ‘축업은’(‘님에게’), ‘추거운’(‘여자의 냄새‘)으로 달리 표기가 되어 있다. ‘추겁다’라는 방언을 잘못 이해한 결과로 동일한 시어를 이처럼 서로 다르게 교열해 버린 것이다. ‘축축하다’보다 물기가 좀 더 빠진 상태를 ‘눅눅하다’라고 하는데 이 ‘눅눅하다’의 방언형인 ‘누겁다’ 역시 소월의 ‘오과의 읍’에 나타난다. ‘시 산’에서 보인 ‘시메산골’은 ‘두메산골’과 함께 ‘인적이 드문 산골 마을’이라는 의미로 오늘날까지 정주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의 길”이라는 뜻인 ‘하롯길’이라는 방언형도 이 작품의 외롭고 쓸쓸한 전경을 드러내는데 매우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모든 언어나 방언은 고도의 표현력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흔히들 세계의 언어와 방언이 많은 것은 경제적으로 낭비라는 주장이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의사소통을 하는데 많은 경비가 지출된다는 근거에서다. 사실 세계에 언어와 방언이 다양하면 할수록 이에 대처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언어의 다종성이 가져다주는 지적 축적이나 문화 창조의 힘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방언은 시와 소설을 창작하는데 놀라우리만치 위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들 방언이 사라지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사고와 세계관, 지식과 이해의 단위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우리가 향토 언어, 방언을 아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4-04-01

(비)일상의 공간 온천

지난 1월 29일 저희 일행이 향한 곳은 마쓰야마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소인 도고온천입니다. 도고온천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유바바 온천장의 실제 모델로도 널리 알려져있지요.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도 등장하는 도고온천은 무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최고의 온천입니다. 이토록 유서 깊은 도고 온천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1894년 서구식과 일본식을 절충한 양식의 도고온천본관이 건설된 이후인데요.이 건물은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마쓰야마시 전체 가옥의 55%가 파괴되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일행이 방문했을 때는 도고온천본관이 내부공사 중이어서 근처의 별관인 아스카오유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었는데요. 다리를 다친 백로가 도고온천에서 상처를 치유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두 건물의 꼭대기에는 모두 백로 조형물이 있었습니다.흥미로운 것은 도고 온천가에 일본의 문호인 나쓰메 소세키(1864~1916)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복원된 도고온천역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坊っちゃん, 봇짱)’(1906)에도 등장하는 봇짱 열차 실물이 전시돼 있었으며, 근처에는 8시부터 22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도련님’의 등장인물이 나와 움직이는 ‘봇짱가라쿠리시계탑’이 있었고, 도고온천 상점가에서는 ‘도련님’과 관련된 각종 미니어처와 봇짱 당고를 팔기도 했습니다.이것은 마쓰야마와 나쓰메 소세키가 맺은 인연의 결과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28세이던 1895년 마쓰야마의 보통중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이곳에서 1년간 생활했는데요. 이때 고교 동창이자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와 교류를 나누었으며, 무엇보다도 소세키의 명작 ‘도련님’을 낳는 여러 가지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도련님’은 에돗코(江戸っ子, 도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 봇짱(도련님)이 마쓰야마의 학교에 부임해 장난이 심한 학생들과 도덕성이 결여된 선생님들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마쓰야마 지역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짓궂고 음험한 면도 있지만, 봇짱 역시 무조건 자기만 옳다고 여기기에 마쓰야마 사람들이 더욱 부정적으로 보인 것인지도 모릅니다.이 작품의 첫 번째 문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親譲りの無鉄砲で子供の時から損ばかりしている.)”는 것인데요. 봇짱의 무모하고 저돌적인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가 바로, 그 유명한 ‘무대포(無鉄砲, むてっぽう)’입니다. 결국 봇짱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교감에게 복수를 하고 도쿄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무대포인 봇짱이 살 수 있는 곳은 언제나 “도련님은 올곧고 고운 성품을 지녔어요”라고 칭찬만 해주며, 자신을 “끔찍이 귀여워해” 주는 기요가 사는 도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도련님’의 봇짱을 생각할 때면, 늘 나쓰메 소세키의 강연 ‘나의 개인주의’(1914)가 떠오릅니다. 이 강연에서 소세키는 남의 흉내나 내는 ‘타인본위’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개인주의를 주장했는데요. 이때의 개인주의는 “당파심이 없고 옳고 그름만 있는 주의”로서, 국가주의가 대세이던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주목할 것은 소세키가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남들이 모르는 외로움을 낳는다고 경고한 점입니다. 실제로 ‘도련님’의 봇짱은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마쓰야마를 떠나 도쿄로 돌아오지만, 곧 자신의 유일한 하인이자 친구이며 부모이기도 한 기요가 죽어 진정한 혼자가 되어 버립니다. 철저히 ‘자기본위’로만 생활했던 봇짱에게는 안타깝지만 당연한 결말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경재 숭실대 교수 ‘도련님’에서도 도고 온천가는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봇짱은 “다른 곳은 뭘 보나 도쿄의 발뒤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온천만은 근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나 온천이 맘에 들었는지, 봇짱은 하루라도 온천에 가지 않으면 “왠지 마음이 개운치가 않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토록 혐오하는 집과 학교와는 구분되는 비일상적인 장소가 아니었음이 곧 밝혀집니다. 사실 이곳에도 수많은 눈들이 있어, 봇짱이 경단이나 메밀국수를 먹거나, 욕탕에서 헤엄을 쳤다는 등의 사소한 사실까지도 낱낱이 감시당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도련님’에 등장하는 도고온천은 일상의 괴로움과 모자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일상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일상의 자유로움과 홀가분함과는 거리가 먼 일상의 공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하긴 일본에는 활화산만 70여 개에 이르며, 공식적으로 지정된 온천만 3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또한 고온다습한 기후의 특성상 일본인에게 목욕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일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도련님’이 잘 보여주듯이, 일본인에게 온천은 극락과도 같은 별세계이면서, 동시에 가장 친숙한 삶의 공간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4-04-01

대학이란 전쟁터

최병구 경상국립대 교수 3월이 끝났다. 대학의 3월은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입학한 새내기와 화사한 봄날이 어울려 빛이 나는 시기이지만, 올 3월 대학가에는 유독 피곤함과 우울함이 뒤엉켜 있었다. 주위의 동료들과 전화할 때마다 전쟁터 같은 대학에서 다치지 말고 살아남자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나의 무능력을 다시 직시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시작은 개강과 함께 폭탄처럼 던져진 본부의 모집단위 광역화(안)이었다. 2025년부터 입학정원의 25%를 무학과 자율전공을 선발하겠다는 안에 대해 학내에서 수많은 문제 제기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본부는 어떤 이유인지 학내의 의견을 듣지 않고 원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입학정원을 한 명만 내놓으면 모든 혼란에서 자유로운 학과에 선발되기 위한 이전투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전선은 함께 살아가는 동료와의 사이에 생긴다. 사회에서 흔히 목격되는 광경이 대학에도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다음으로 던져진 폭탄은 ‘글로컬 대학 30’사업이다. 작년에 이어 진행되는 이 사업에 전국의 모든 지역 대학이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스럽게(?) 우리 대학은 작년에 선정이 되어서 당장은 별 파도가 없지만 전국적으로 선정되기 위한 이합집산이 활발하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학교와 학교, 학교와 지역의 벽을 허무는 것이 관건이 되는 사업이기에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작년에 선발된 대학에서 들려오는 온갖 잡음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눈앞의 생존이 절박한 상황에서 ‘글로컬 대학’이란 간판이 갖는 위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 와중에 부산의 어느 사립대에서는 교수 근태 관리를 위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출근부를 작성하는 지침과 이를 어길 경우를 대비한 징계 규정을 만들었다. 명분은 연구와 수업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지만, 교수 사회를 길들이려는 제도임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학교는 비판적 교수들의 재임용 거부 등으로 지역에서 제법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을 거울삼아 교수 길들이기가 확산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대학이 대학(大學)이길 포기하고 취업 전문기관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한때 이 사실에 분노하는 교수들이 많았지만, 더 이상 아무도 이런 현실을 원망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교수가 취업률이란 지상과제를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대학이 지켜야 할 학문의 자율성과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교수의 역할이 근본적인 한계에 처해있기 때문이다.교수는 연구와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이 급변하는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들어야 하며, 연구자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 교육의 방식이나 보탬의 구체적 함의는 전공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를 부정하는 교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권력이 정한 연구와 교육만을 강제하는 꼴이다. 토론과 협의는 완전히 실종된 상황에서 생활인으로서 교수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2024-04-01

몸으로 쓴 리더의 조건

김규인 수필가 손흥민의 골에 이강인이 펄쩍 뛰어올라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 모습을 국민들은 얼마나 원했는지. 태국과 피파 순위만큼이나 큰 차이로 이겨서 기쁘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대한민국 축구팀이 하나가 된 것이다. 조각난 팀이 한 팀이 되는 건 쉽지 않다. 누군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탁구 게이트 이후 런던으로 사과하러 온 이강인을 손흥민은 따스하게 맞아준다. “강인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달라”는 인간적인 손흥민을 만난다. 이 한마디가 국가대표팀과 토트넘을 이끄는 주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리더란 이런 거라고 조용히 몸으로 말한다.손흥민이 남모르게 지원한 무료 급식소가 40곳이라는 보도가 영국을 달군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고 시간이 나면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대학교에서 축구를 지도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 온 그의 기사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토트넘에서 슬럼프에 빠진 동료, 히샬리송에게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응원하고 재기를 돕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력이 없으면 밀려나 벤치에 앉아야 하는 냉엄한 프로의 세계에서 말이다. 어쩌면 서로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주장이기에 앞서 따스한 마음이 먼저 다가가는 그에겐 언제나 팀이 우선하는 것 같다.그런 가운데에도 매년 두 자릿수의 골과 도움을 기록한다. 이러한 바탕에는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으며 실력을 키우는 노력이 있음은 물론이다. 돈으로 몸값을 결정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인간미 넘치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본다.2023년 수해가 발생했을 때 수색 작업 중 급류에 휘말려 순직한 채수근 병사의 유가족에게도 그는 말없이 1억 원을 건넨다. 이러한 사실도 최근에서야 알려진다. 언제나 그의 선행은 남이 모르게 이루어지기에 뒤늦게야 다른 사람을 통해 알려진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도움만을 주려는 그의 마음이 요즈음 더 반짝인다.국회의원 금배지를 달고자 나온 사람들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투표용지의 길이는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는데, 그 길이만큼이나 출마자들의 비리도 끝없이 알려진다. 심지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당선권에 다수를 차지하는 당도 보인다. 국민을 위해 남 앞에 나서는 사람들의 수신제가 후의 치국은 언제나 이루어지는지. 자신을 찍어달라고 내미는 손을 보며 리더의 조건을 생각한다.손흥민의 선행이나 남 앞에 나서는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의 그동안의 행동이 둘 다 남이 모르게 하는 데 국민들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다르다. 손흥민으로 따스하게 데워진 가슴이 차갑게 식는다. 남을 배려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언제나 볼 수 있을지. 더 높은 권력을 얻고자 한다면 자신을 닦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한다.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국회의원은 언제쯤 나올까. 국회의원이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임을 잊은 것은 아닌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쯤 남을 향해 손을 내미는 리더가 나올까.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