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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주를 담은 건물들, 경주 엑스코대공원

옛 신라의 중심지였던 경주는 수많은 고분이 있고, 불교와 관련된 유적이 있으며, 당시를 짐작하게 하는 유물들이 즐비하다. 신라만의 고유한 유물이 있는가 하면, 로만글라스(지중해)·황금보검(카자흐스탄)·인면 유리구슬(로마)·원성왕릉 무사상(서역인)처럼 동서 교류를 한 흔적도 발견된다. 또한 전통적인 기와집과 초가집이 마을을 형성한 곳도 있고, 한눈에 보아도 현대의 뛰어난 건축가들이 솜씨를 발휘한 독특한 모양의 건축물도 찾아볼 수 있다. 경주는 남겨진 문화재와 오래된 역사가 현재의 삶과 어우러져 독특한 도시공간을 형성하고 있다.경주의 독특한 아이덴티티(identity)를 잘 담아낸 것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 중 경주엑스포대공원 안의 건축물도 손에 꼽을만하다. 지역의 이미지와 자연환경, 유구한 역사와 관광 도시로서의 면모가 건축물에 잘 드러나 있다. 경주엑스포대공원 안의 여러 건축물 중에서 이타미 준(유동룡)의 ‘경주타워’, 쿠마 겐코(Kuma Kengo)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 승효상의 ‘솔거미술관’이 유명한 편이다.엑스포대공원의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이한 건축물이 있다. 일반 빌딩처럼 생긴 네모난 건축물의 안쪽을 목탑의 실루엣으로 파내었는데, 멀리서 보면 황룡사 9층 석탑을 표현하여 신라의 찬란했던 문화를 상징적으로 담은 것을 알 수 있고, 가까이서 보면 건축물의 아래쪽 골조가 노출되어 있어 해체주의적 스타일이 반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82미터나 되는 이 ‘경주타워’는 가장 높은 층에서는 미디어 전시를 감상하고, 65미터의 유리 커튼월 공간에서는 보문 일대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경주타워’는 이타미 준이라는 재일교포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작품이다. 그는 한국의 고건축·문화·예술을 사랑하였고, 한국에도 여러 건축 작품을 남겼다. 그는 자연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건축물이 세워질 장소의 고유성과 인간의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건물을 디자인했는데, 특히 땅의 물성으로 자연의 이치를 밝히며, 건축을 통해 드러나는 세계를 표현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 또한 반영하기를 원했다고 한다.‘경주세계문화엑스포기념관’은 정문에서 왼쪽 끝에 위치하는데, 신라 고분과 경주의 주상절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빛을 가려주거나 비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하는 노란 철제 구조물이 지붕과 기둥으로 기념관의 영역을 규정하고 회랑을 형성하여 이동 동선과 방향을 알려준다. 철제 구조물이 뒤덮인 지붕 일부는 돔 형태로 봉긋 솟아올라 고분의 모양과 닮아있다. 또한 주건물의 마당 부분에는 독특한 분수대가 있는데, 마치 분수대의 바닥이 서서히 하늘로 치솟듯이 둥글게 말린 형태다. 하늘로 길이 열리는 듯한 이 수공간은 건물 안의 동선을 따라 걷다가 만나는 둥근 유리 커튼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붕의 돔 형태를 따라 전시관의 내부 천정도 돔 형태로 되어 있고, 주상절리를 닮은 방사형 판재들이 전시 공간의 동선을 만들어 조형미를 더한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터널, 세계 유산을 미디어로 홍보하는 살롱 헤리티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문자가 새겨진 스테인리스 미러 기둥, 경주에서 열렸던 역대 엑스포를 문의 형태로 만든 ‘세계의 문’은 전시 자체로도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세계 속의 경주’의 상징도 내포하고 있다. 이 건축물을 디자인한 쿠마 겐코는 건축물이 자연과 융화되고, 지어질 장소와 행복한 관계를 형성하는 건축을 추구한다. 제주도에서 지붕의 재료로 제주도를 대표하는 암석 현무암과 스테인리스 그물망을 접합한 재료를 활용한 바도 있다.‘솔거미술관’은 진정으로 자연 속의 건축물로 지어진 느낌인데, 언덕 위의 연못가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으며 땅의 높낮이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지어졌다. 황토로 된 벽은 경사진 언덕에 맞게 뼈대가 세워졌으며, 미술관 내부의 동선도 높고 낮은 본래의 지형에 따라 작은 공간들의 이어짐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 작품은 평면이 아닌 둥근 곡률로 전시되어 있어 독특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며, 특히 제 3전시실의 통창은 자연조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3월에 완공된 후 통일신라의 대표 화가 솔거의 이름을 따 미술관의 이름을 지었으며, 경주 최초의 공립미술관으로 자리잡았다. 이 건물을 설계한 승효상 건축가는 빈자의 미학을 건축에 잘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술관의 동선을 따라 거닐며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그의 건축 철학이 미술관 곳곳에서 빛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간과 공간을 이어지는 곳곳에 보이는 자연·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전시물은 물론 자연조차도 하나의 작품으로 삼은 이 미술관은 그 생김새조차도 하나의 자연물처럼 보인다.신라의 옛 중심지 경주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지역성과 역사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도시에 속한다. 도시 곳곳에 수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경주엑스포대공원의 미학적인 건축물도 경주를 제대로 담았다고 생각된다. 경주를 담은 건축물을 돌아보며 과거의 경주와 현재의 경주 그리고 세계 안의 경주를 느껴본다.◇ 최정화 스토리텔러 약력 ·2020 고양시 관광스토리텔링 대상 ·2020 낙동강 어울림스토리텔링 대상 등 수상/최정화 스토리텔러

2024-07-03

‘짧지만 긴 여운 …’ 소설가 김강의 엽편소설 이것은 복권이야기

김은 오랜만에 복권을 샀다. 복권 명당이라 불리는 판매소 근처 식당이 약속장소였고 약속시간보다 조금 빨리 도착한 덕분이었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리던 김은 문득 맞은편 보도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느긋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곧 두 발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신호기를 쳐다보며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단거리 육상선수들. 뭐지? 뒤로 돌아선 김은 무려 마흔 두 번이나 복권 1등 당첨자가 나왔다는 현수막을 보았다. 복권을 판 수수료만으로 건물을 샀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었다. 그 판매소인가? 보행신호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김은 복권을 살 생각이 없었지만 문득 어떤 의무감, 혹은 조바심 같은 것이 들었다. 자칫하면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 뒤쪽에 서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잖아. 김은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지갑에서 오천 원 권 지폐를 꺼내 손에 쥐었다. 지난 밤 꿈이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나? 꿈에 그녀가 나왔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시내 중심가를 걸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뭔가를 먹기도 했는데, 사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꿈에 나왔다는 것만이 정확한 기억이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어린 여가수의 꿈을 꿨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 주위에 말하지도 않았다. 글쎄, 소주 몇 잔이 들어가면 우스갯소리로 꺼낼 만하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복권 판매대 앞에 서니 혹시 하는 마음이 일었다.자주는 아니지만 김은 꿈을 핑계로 가끔 복권을 샀었다. 왕이나 북쪽의 김씨가 꿈에 나오거나 용을 보거나, 팔색조가 노래를 부르거나 똥을 밟는 꿈을 꾸었을 때는 부러 복권판매소를 찾아갔다. 물론 결과는 형편없었다. 왕도 아니고 용도 똥도 아닌데 뭐. 개꿈이네, 개꿈. 그 날 아침, 그녀가 나온 꿈을 되새기던 김이 내뱉은 혼잣말이었다. 그랬던 김이 복권을 샀다. 그저 복권 명당이라 불리는 가게 근처 식당이 약속장소였고 약속시간보다 조금 빨리 도착했고 마침 그 날이 그녀가 나온 꿈을 꾼 날이었던 덕분이었다.술을 마시는 동안 김은 복권을 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사내 셋이 어울려 마시다 보니 거나하게 취했다. 흰소리들,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후회와 이렇고 저렇고 하는 한탄과 이렇다면 저렇다면 하는 헛된 희망들이 술잔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 박이 대뜸 요즘 아내와 각 방을 쓴다며 한 숨을 내쉬었고 김과 홍은 그러면 그동안 한 이불을 덮고 잤던 거냐며 부러움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대단하다는 말을 한 것 같다. 누구도 한 잔 더 하러 가자, 자리를 옮기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박이 술값 계산을 했다. 김은 얼마라도 보태기 위해 지갑을 열다 반으로 접힌 복권을 보고서야 자신이 복권을 샀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김은 휴대폰으로 꿈에 나왔던 그녀를 검색했다. 이름과 그녀의 히트곡 몇 개의 제목을 알았고 걔 중 한두 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는 있었지만 꿈에 나올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궁금했다. 그래, 넌 왜 내 꿈에 나온 것이냐? 그녀의 사진을 보며 김이 물었다. 택시기사가 백미러로 뒤를 보며 대답했다.네? 손님 뭐라고요?아, 아닙니다. 혼잣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김은 검색화면을 덮으려다 그녀 사진 옆 프로필에 쓰여 있는 그녀의 생년월일을 보았다.‘1993년 5월 16일’516이네. 재밌네. 그런데 이거 5, 16 어디서 봤는데. 5, 16. 이거….김은 지갑에서 복권을 꺼내 복권 속 숫자를 살폈다. 5도 있었고 16도 있었다. 19도 9도 3도. 김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빈속에 소주를 들이켰을 때 느끼는 그런 달아오름과는 달랐다. 쿵쿵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얼굴은 뜨거워졌다. 동시에 머릿속은 이상한 감각들로 차기 시작했는데 조이는 듯 답답한 듯, 하지만 아프지는 않은 그런 감각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지러웠고 눈앞은 캄캄해졌다가 또 부셨다가. 안경을 벗고 손등으로 몇 번 눈두덩을 문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집에 들어선 김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들어가 지갑에서 복권을 꺼냈다. 읽고 있던 소설책 사이에 복권을 끼우고 책을 덮었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치킨을 먹고 있었다.“많이 먹었겠지만 이리 와서 한 조각이라도 드세요.”아내가 옆 자리를 비우며 말했다. 김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아내의 옆자리에 앉았다.“배불러. 그건 그렇고. 여보, 복권 샀어.”“복권 처음 사는 것도 아닌데, 웬 호들갑?”“그게 내가 엊저녁에 아이유 꿈을 꿨거든.”“걔가 왜 자기 꿈에 나와? 당신 아이유 좋아해?”“싫어하는 건 아니지. 꼭 꿈 때문만은 아닌데 아무튼 복권을 샀거든. 그런데 오면서 보니까 아이유 생년월일에 들어 있는 숫자가 내가 산 복권 속에 다 들어 있는 거야. 신기하지 않아? 1등 당첨되면 어쩌지?”아내는 치킨 기름이 묻은 손을 물휴지로 닦고는 손을 내밀었다.“정말? 어디 봐요.”“책에 꽂아두었지. 쫙 펴지라고. 접어서 지갑에 넣었었거든.”김은 전날 밤의 꿈과 횡단보도에서 맞은 편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어떤 의무감과, 조바심,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살 수 밖에 없었던 복권,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확인했던 번호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내는 정색을 하고 마주 앉아 김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은 아내의 볼이 약간 붉어졌다고 생각했다. 치킨을 다 먹은 아이들이 방으로 돌아가자 아내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김의 옆으로 와 앉았다. 그리고 물었다.“당신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복권 1등 당첨이 됐다고 쳐. 그 돈으로 뭐할 거야?”“1등? 하하. 당신도 내 말이 솔깃한가 보지? 사실 나도 긴장되기는 해. 뭐할 지는 당첨금이 얼마냐에 따라 다르겠지. 요즘은 예전처럼 많지는 않더라고. 그래도 적은 돈은 아니지. 토요일 발표니까 아직 삼 일 남았네. 당첨되고 생각해도 되는 것 아닌가?”“무슨 소리야, 지금 생각해둬야 적어도 삼 일 동안 행복할 거잖아.”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술이 깨는 것인지 의식이 또렷해졌다. 당첨이 되면 뭘 하지? 직장은 계속 다녀야겠지. 1등은 서울까지 가서 당첨금을 받는다던데 하루 연차를 써야겠네. 세금 때문에 1등 당첨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그 사람들은 어디가야 만날 수 있지? 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김은 이리저리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앉았다.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아내가 돌아누우며 말했다.“자기도 잠 안 오지? 나도 잠이 안 오네. 오늘 이상하네.”아내는 베개를 고쳐 베며 말을 이었다.“당첨되면 말이야, 그걸로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사자.”“아파트?”김은 우리가 사는 곳이 P시이고 서울에 살 일도 없는데 서울 아파트가 무슨 필요가 있냐며 되물었고 아내는 꼭 사람이 살기 위해 아파트를 사는 것은 아니지 않냐, 나중에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또 지방 아파트야 몇십 년이 지나도 가격이 그대로지만 서울은 다르지 않냐며 ‘서울 아파트 사자’를 반복했다. 김은 그게 바로 투기라면서 그런 생각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꼬라지가 된 것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김은 자신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고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느꼈지만 굳이 목소리를 낮추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라니, 그것도 서울 아파트라니.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충분히 좋은데 그 큰돈을 달랑 아파트 한 채를 사는데 다 써버리자니. 김은 화가 났다.“복권 사는 것은 투기가 아닌가. 뭐.”“암튼 서울 아파트는 절대 안 돼. 그러느니 차라리 기부를 해버릴 거야. 전부.”“기부? 우리가 기부 받아야 하거든. 암튼, 어찌되건 당첨금 절반은 내 몫이야. 부부니까. 그렇게 알아둬. 전세를 끼는 한이 있더라도 난, 서울 아파트 살 거야. 마음 정했어.” 김강 소설가·내과의 아내는 다시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아니, 당첨이 된 것도 아닌데 벌써 왜 이래? 포항 앞바다에 기름이 나온 것도 아닌데 벌써 부자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랑 똑같네. 똑같아. 기름이 있다 쳐. 그걸 꼭 꺼내 써야 하나? 그냥 좀 두면 안 되나? 그동안 환경이니 미래니 떠든 건 다 뭔데?”김은 아내의 등 뒤에 대고 말을 했다. 아내는 이불을 당겨 덮었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거기서 포항 앞바다 기름이야기가 왜 나오나? 복권이야기 하다 뜬금없이. 할 말 없으면 항상 저런 식이지. 어린 가수 꿈이나 꾸는 주제에. 당첨만 돼봐라. 무조건 절반은 내꺼다. 끝김강(52)은 소설가인 동시에 내과의사고, 포항에서 ‘도서출판 득수’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다. 2017년 단편 ‘우리 아빠’로 심훈문학대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단편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을 썼다. 지난해엔 장편 ‘그래스프 리플렉스’를 펴내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24-07-02

여름날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정열과 사랑의 계절 여름이 시작됐다. 어느새 반년이 후딱 지나고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과 함께 본격적인 여름날이 열리고 있다. 벌써부터 때이른 무더위가 찾아오고, 장마전선의 간헐적인 영향으로 몇 차례 비를 뿌리면서 여름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로 이어지는 듯하다.여름날의 폭염과 폭우, 태풍 등의 기후변화가 갈수록 심해지지만, 그렇다고 여름날을 건너뛸 수도,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그저 철저한 대비와 대응으로 무난하고 무탈하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하지만, 여름날의 시련을 겪지 않고서는 과실이나 작물 등의 튼실함이나 풍작을 기대하기가 어렵다.세찬 비바람에도 끄덕없이 휘몰아치는 태풍을 견디고, 작렬하는 태양이나 타는 듯한 가뭄에도 온전히 내면을 채우며 오지게 익어야만 가을날의 풍성하고 알찬 열매를 거둬들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고, 대추 한 알에도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들어있다고 노래한지도 모른다.여름은 강렬한 햇볕만큼이나 뜨겁고 활기찬 젊음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꽃들이 피어나고 잎새가 돋아나는 봄날이 화사하고 풋풋한 청춘의 시기라면, 풋과일을 익게 하고 때로는 시원한 녹음을 드리우며 왕성하게 알곡을 살찌워가는 여름날은 청장년의 때가 아닐까 싶다. 열정으로 도전하고 용기와 노력으로 꿈을 향한 줄기찬 도움닫기를 멈추지 않는다. 짙푸른 파도마냥 벅차게 용솟음치는 의지로 세상을 활보하는 꿋꿋하고 당당한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그렇기에 여름날은 유난히 낭만과 추억이 많은 때이기도 하다. 시원한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 더위를 피한다거나, 이열치열로 산행 또는 자전거를 즐겨 타는 등 바깥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그만큼 사연도 많고 추억도 줄곧 어리게 될 것이다. 해변에서 부는 갯내 바람과 쉼없는 파도소리가 가슴 속까지 철석이며 시원함을 더하고, 계곡에서 반기는 새소리며 물소리는 한결 맑고 정겹기만 할 것이다.‘어쩌면 나이를 먹는 것은/즐거운 일인지도 모른다/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추억은 늘어나는 법이니까//그리고 언젠가 그 추억의 주인이/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도/추억이 공기 속을 떠돌고, 비에 녹고/흙에 스며들어 계속 살아남는다면….//여러 곳을 떠돌며/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잠시 숨어들지도 모른다//처음으로 간 곳인데/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바로 그런 추억의 장난이 아닐까?’ - 유모토 카즈미 ‘여름이 준 선물’ 중에서경주·영덕·울진 등 동해안 일대의 해수욕장이 개장을 앞둔 가운데 포항시지역의 7개 해수욕장이 이번 주말부터 일제히 개장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방출로 해수 방사능 오염 우려나 동해안 해수온 상승으로 인한 상어떼 출몰 등의 긴장 속에서도 많은 피서객들이 바다를 찾을 것이다.해수욕장에서 열리는 해변축제나 볼거리, 먹거리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여름날의 선물 같은 낭만과 추억을 넉넉하게 누리는, 그래서 추억으로 더욱 행복한 여름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07-02

문화로 가는 혁신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문화 혁신은 조직 내의 기존 가치관, 행동양식, 업무 절차 등을 변화시켜 창의적이고 유연한 문화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이나 제품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조직의 근본적인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일하는 사고, 일하는 방법 등을 습관화 하고 체질화 하여 조직 내 내재화 되어 ‘스스로 개선하는 것’을 혁신문화라고 한다. 그 수준에 따라 글로벌에서 통하는 일류 문화와 이류 문화 등으로 나뉜다. 10년 이상 혁신을 했는데 기업문화로 정착 못한 것은 방향 설정이나 과정에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혁신이 문화로 못 가고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문화 혁신의 성공 조건은 첫째, 명확한 비전과 목표 설정이다. 혁신의 방향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혁신활동이 산만해진다. 둘째, 최고 경영진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경영진이 혁신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지 않거나 일관성 없이 방향을 변경하면 추진력이 상실 될 수 있다. 또한 변화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항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혁신이 지연되거나 실패 할 수 있다. 셋째, 직원들의 참여와 소통이다. 모든 직원이 혁신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대화와 토론이 없으면 시너지를 내기는 어렵게 된다. 넷째, 지속적인 교육과 학습이다. 학습을 통한 개인의 성장과 회사 발전을 위한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조직원의 학습을 멈추면 미래가 없고 혁신이 현 수준에서 멈춘다. 다섯째, 평가와 인증이다. 혁신의 진행 상황을 평가하고 올바른 피드백과 포상, 인증 등 동기부여를 반영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특히, MZ세대는 개인화 되어 있고 나에게 유익함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필자가 지원하고 있는 포스코 혁신은 20여 년이 되고 있지만 현 주소를 보면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여러 요건이 있겠지만 명확한 방향과 단기, 중기, 장기적인 플랜이 있어야 하고 일관된 지속성으로 진화 발전해나가야 한다.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방향과 색깔이 변하면 어려워진다.현장은 혼란스럽고 딜레마에 빠진다. 제조업의 혁신은 일의 속성과 설비 특성, 생산 프로세스의 특징에 맞게 혁신의 툴(Tools)을 선택하고 지속적으로 진화 발전하여 고유의 혁신 문화로 가야 한다.예컨대, 스마트 제철소로 가는 여정에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급강 생산조건에 필요한 방법론을 개발해 놓고 어렵다는 의견에 노무관리 차원으로 쉬운 칼만 장착하면 혁신의 가치성은 잃게 된다. 마치 닭이 계란을 못 낳는다고 닭을 잡는 꼴이다. 또한 경영 라인의 혁신에 대한 스폰서십을 얻는 일이다. 반대가 되면 동력을 잃게 되며 혁신은 경영진의 관심 속에 자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기업 혁신은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비전을 실현시키는 수단이기에 문제해결 툴 진화와 이를 효율적으로 이끌어가는 운영적 관점에서 고려해야 한다. 한 기업 고유의 혁신 문화는 인내와 창의성을 기반으로 일관된 방향과 지속성 속에 진화 발전된다.

2024-07-02

65세이상은 ‘운전금지·移民’ 요구하는 사회

심충택 논설위원 그저께 서울에서 역주행으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교통사고의 운전자 나이가 68세로 알려지면서 고령자 운전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운전자는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고령자 운전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는 것 같다.이 사고로 최근 우리사회에 확산하고 있는 ‘노인 이지메(왕따) 풍조’가 더 심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지금도 찬반논란이 일고 있지만, 지난달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들의 운전능력을 평가해 야간·고속도로 운전금지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정부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8년 개띠’로 표현되는 베이비붐 세대가 지난해부터 노인 범주에 들어가면서 우리사회는 노인인구가 급증했다.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아직 노인이 됐다는 의식이 전혀 없이 열심히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 운전은 필수다. 그런데 갑자기 ‘조건부 운전면허 대상’으로 지명 당하니, 사회적으로 고려장을 당한다는 상실감을 지울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더 충격적인 것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다. 연구원이 매달 펴내는 간행물(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이 보고서에서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노령층이 물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여 노후를 보내면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노인을 이민 보내면 ‘비(非)생산 인구’를 줄일 수 있다는 기가 막힌 보고서다.의식적이든 실수든, 정부와 공공기관이 내놓은 이러한 ‘노인 이지메’ 정책은 시민사회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최근 대구 수성구 한 4성급 호텔 헬스장에서 ‘만 76세 이상인 고객은 회원 등록과 일일 입장이 불가하다’는 글이 게시돼 논란이 됐다.정부보다는 연령을 10살 정도 올렸지만, 헬스장의 처사가 “상식이하의 노인차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지난달에는 개그맨 3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군을 소개하면서 “여기가 1만 5000명 장수 마을이다.들어본 적이 있냐. 중국인 줄 알았다”며 노인인구가 주류인 자치단체를 거리낌없이 조롱했다. 이 유튜브 출연자들은 영양군에서 젤리를 먹다가 “내가 할머니의 살을 뜯는 것 같다”는 섬뜩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우리 사회가 65세 이상 인구를 노인이라는 범주에 놓고 ‘님비(Not In My Backyard)’의 대상으로 삼는 경향은 오래됐다.최근에는 좌·우 진영싸움과 세대간의 갈등, 부양 부담 등이 이러한 님비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젊은층이 재미삼아 쓰는 실버존, 노인네, 틀딱충, 연금충과 같은 단어들도 노인혐오 분위기를 부추긴다. 정치권과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 순리지만, 오히려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으니 상황이 더 악화할 수밖에 없다.모두가 늙어가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간의 증오심과 갈등을 유발해 권력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집단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2024-07-02

공룡의 도시 대구

우정구 논설위원 1억만년 전 대구에 공룡이 살았다면 상상이 될까.대구에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1994년 한 시민이 신천에서 공룡발자국 화석을 발견해 신고한 것을 비롯, 수성구 욱수골, 남구 고산골, 동구 지묘동, 북구 노곡동 등 여러 곳에서 공룡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최근에는 동구 혁신도시 인근의 초계산 일대에서도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돼 시민의 관심을 모았다. 1억만년 전 백악기 시대 초식공룡의 흔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공룡은 지금으로부터 2억5000만년 전인 중생대 후기 들어 처음 등장하여 6600만년 전에 조류를 제외한 계통 전체가 멸종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육상을 걷는 동물 중 가장 거대한 동물로 공룡보다 거대한 동물은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트리케라톱스는 육상에서 제일 큰 포유류인 아프리카 코끼리보다 훨씬 거대하고 무거웠다.보통 500㎏에서 5t에 이르나 큰 것은 크기가 40m에 달한다.우리나라에서는 1973년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부근에서 공룡의 뼈 화석이 발견되면서 공룡화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이후 경남 하동, 고성 등에서도 발견되고 함안, 통영, 울산 등지서도 수천개의 공룡화석이 발견됐다.대구처럼 대도시 도심에서 공룡화석이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 한다.공룡의 흔적이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희소성, 접근성 등을 감안하면 잘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1억만년 전 대구는 거대한 호수였다. 그 옆을 거대한 공룡이 떼지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대구가 새롭게 보일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02

이종암 시인의 우주에 모아놓은 꽃, 별, 총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전 국립국어원장 경북 청도 출신 이종암 시인의 시집 ‘꽃과 별과 총’(시와반시, 2024)이 출간되었다.제목은 ‘꽃과 별과 총’인데 내용 배열은 제1부 꽃, 제2부 총(塚), 제3부 별로 구성되어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대지는 세상 만물의 어머니이고 대지에 꽃이 뿌리를 박고 있다. 그 대지의 무덤에는 사람이 묻혀있고 그리고 하늘에는 별이 떠 있다. 하이데거는 우주 만물의 존재론적 상징으로 꽃과 나무, 그리고 하늘의 새와 인간을 얘기했다.이종암 시인은 하이데거를 인식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존재의 무덤을 ‘총(塚)’으로 상징화하였다. 그래서 그가 그리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꿈을 묻어놓은 곳이 무덤이다. 이 시집을 해설한 신상조 평론가는 한 마디로 이종암의 시를 “무구의 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라고 정리하였다. “사월 산길을 걷다, 엉겁결에/한 소식 받아 적는다/저마다, 꽃!”이라는 이 시인의 인식은 사람이 저마다 다 꽃이라는 말이다. 그의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은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이 시인은 ‘별’을 상징하는 ‘꿈’이라는 시에서 “병든 여든일곱 우리 어머니/어저께 우리 내외 앉혀놓고 하시는 말씀//너거 아버지 세상 버린 지 십칠 년 만에 처음 내 꿈에 왔다 아이가, 집을 새로 다 지어놓았다 하더라, 거기서도 좋은 볏짚은 큰집에다 갖다준 것인지 반쯤 상한 짚으로 지붕을 엮어놓았다고 내가 또 잔소리를 막 하지 않았나, 이 꿈이 뭔공?// (중략) //안돼요, 아버지! 그곳에/ 어머니는 아직 가실 때가 아닙니다.” 이종암의 ‘꿈’에서 아름다운 이 지상의 꽃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이다. 그 한정된 “저마다 꽃인 사람, 연로하신 어머님이 꾸신 꿈에서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어머니의 방언 육성으로 전해준다.“입 주변까지 번진 대상포진으로 고생하는/ 여든 일곱의 우리 엄마, 손순연/ 37도 무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꿋꿋하다// 오랜만에 안부 전화드리니/“우리 선상님, 어데 멀리 외국 나가셨든게?”// 이리 무더운데 요새 뭘 드시느냐 하니/ “내사 하늘의 별 따다 안 묵는게.” 하신다// 면구스러움에 앞서, 그것 참!/ 초등학교도 못 나와 한글도 모르는 분이/ 외국 유람은 어찌 알고/ 하늘의 별 따다 먹는 것은 또 어찌 알까?//시인이랍시고 까불락대는/ 헐거워진 내 언어가 다시 탱탱해진다/”. 이종암의 ‘시인의 엄마’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비유와 상징이 시시한 시인보다 더 싱싱한 상상력을 지닌 시인 엄마의 아들이다. ‘시인의 엄마’는 시인보다 더 시적 창조력이 탁월한 ‘시인 엄마’가 아닌가?“내사 하늘의 별 따다 안 묵는게.”, 자주 전화도 안하는 자식에게 “우리 선상님, 어데 멀리 외국 나가셨든게?”는 참 엄중하다. 방언시의 문학적 장치로서 직접화법이 가진 위력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요사이 방언시가 제법 유행을 타자 아무렇게나 사투리로 쓴 하찮은 시들이 얼마나 나도는가? 오만과 독선에서 헤어나지 못한 자폐적 사유를 하는 시인들,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을 깨닫지 못한 언어의 창조라고 나불락거리는 시인을 질책하신다.시인들이 쉽게 스스로 갇혀버리는 환영의 틀을 초등학교도 나오시지 않은 엄마가 따끔하게 일깨워주신다. 시인은 천상으로 가는 연도에 선 언어의 마술사나 되는 것처럼 “배터리 닳아가는 자동차에게도 말을 건네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시인은 위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시라는 건 세상에 말 걸기이다. 수업 끝”이라는 자신의 ‘시론’이라는 작품에서 아주 해학적인 자조로 자신을 관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종암 시인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그는 ‘숙살지다’(청도에 가서), ‘댕강무디’(이총, 댕가무디), ‘우짜든동’(하늘예금), ‘하늘예금’(하늘예금), ‘선상님’(시인의 엄마), ‘안 묵는다’(시인의 엄마), ‘그름감별사’(그름감별사), ‘구름관찰사’(구름감별사)에서처럼 방언도 살짝 빌려오고 새로운 낱말도 창조하는 우주를 관통하는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청정하고 순수하고 맑고 깨끗해서 살갑다.이 시인의 시의 내면에는 인간 존재의 빈자리들 곧 꽃과 별이 총총한 이 우주 공간에서 적멸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삼인해’라는 시에서는 그 심연의 우주에 빈자리 “허공의 옆자리가 그토록 시리고 아프다”라며 꽃과 별의 시인의 인식의 깊이를 가늠케 해준다.

2024-07-01

바예지드 1세와 희대의 살육자 티무르

발칸반도는 동으로 서쪽으로 끊임없는 수백, 수천 번 외적의 침략으로 전쟁에 시달린 반도이자, 지금도 수많은 민족이 뒤섞인 까닭이요, 끈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는 강인한 민족들의 땅이다. 우리네 한반도와 비슷한 슬픔을 지닌 땅이다.코소보전투에서 승리한 바예지드 1세가 술탄의 자리에 오른다. 여세를 몰아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다. 이때 헝가리와 스위스 연합, 제노바공국,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베네치아까지 합세해 마지막 대규모 십자군, ‘니코폴리스 십자군’이 결성된다.1396년 9월, 드디어 헝가리 도나우강가 니코폴리스에서 두 군사가 맞붙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도 바예지드 1세가 승리를 거두면서 세계를 향해 성전의 선봉임을 과시했고, 하늘에 자랑했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 성공이 실패를 초래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알바니아를 버스로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오금을 저릴 만큼 험준한 산악지형에 아연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알바니아 모레아 같은 험준한 산악지대가 넓게 형성된 곳은 이슬람의 힘이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바예지드 1세는 그냥 두지 않았다. 무리한 군사적 행동은 역풍을 감당해야 했다. 발칸반도에 술탄의 신하로서 복종하고 고개 숙이는 에니체리가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도거나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군인이었다. 비(非) 무슬림으로 구성된 기독교계 직업군인을 이용해 무슬림과 투르크 인을 상대로 살육을 자행했던 것이다. 이는 토후국은 물론, 백성의 분노를 샀다. 성전, 전사의 원정대로선 이상과 신앙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이 일은 훗날 오스만제국으로서도 재앙으로 작용한다.이때였다. 1402년이 되자 세계사에 가혹한 정복자로 알려진 티무르가 등장한다. 현재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서정(西征)한 티무르와 대결은 피할 수 없었다. 티무르, 위대한 약탈자, 폭력의 화신,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하지 않은 무적의 사나이였다. 그가 지나간 자리는 비옥한 땅일지라도 풀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평야는 불모지로 변했다. 남녀노소 죽이는 것을 파리 목숨과 같이 여겼다. 사람의 머리로 탑을 쌓았다니 그저 할 말을 잊는다. 진정 악의 화신이라 해도 좋았다.“…. 화려했던 바그다드는 폐허로 남았다. 사원도, 기도하는 신자도 볼 수 없다. 나무들은 메마르고 수로는 막혀 기능하지 못했다. 도시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가혹한 모습이다.”티무르에 침략당한 지 35년이 지난 후 이집트의 모 역사가가 기록한 바그다드 모습이다. 티무르는 오아시스를 주변으로 독자적인 이슬람이 번지면서 자연적으로 스며든 이슬람을 받아들인 경우다. 14세기 후반, 사마르칸트 등 중앙아시아의 비옥한 땅을 평정하고 30여 년에 걸친 정복 사업은 살육을 동반한 가공할 만한 업적을 이룬다. 북쪽의 러시아국경에 걸쳐있고, 남쪽으로는 인도, 동쪽으로는 중국변방까지, 서쪽으로 타슈켄트, 테헤란, 앙카라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서진을 이어가 소아시아에 도착해 오스만제국과 대치한다.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고 있던 바예지드 1세는 급하게 동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무적의 이슬람군도 티무르에게는 어림없었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예지드 1세가 지배한 토후국 지도자 중 일부가 오스만제국을 배신하고 티무르에게 붙었던 것이다. 비(非) 이슬람군으로 이슬람교도, 혹은 튀르크족을 죽이는 전쟁에 성전이란 이름으로 동조할 수 없었다. 그러자 승패는 불 보듯 뻔했다. 세기의 패자 오스만제국도 티무르 앞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이 전투에서 ‘번개왕’ 바예지드 1세가 포로로 잡힌다. 수치심에 분노를 감출 수 없었던 1402년, 그는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그리고 화려한 문화를 향유했던 바그다드는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이때 세르비아 출신 에니체리들이 바예지드 1세를 위해 결사 항전했다고 전한다. 충성심을 잘만 심어 놓으면 이처럼 엄청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각설, 오스만제국을 점령한 티무르는 욕망에 불탄 나머지 역사적 오판을 범한다. 오스만제국으로서는 이만한 다행히 없었지만, 제국을 완전히 무너트리지 않았다. 오스만 군사를 유럽 침략에 선봉을 세우려는 티무르의 욕심이었다. 서구인으로선 천만다행한 일이 또 벌어졌다. 1402년 티무르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명나라를 치기 위해 사마르칸트로 향했다. 세계의 패자가 두 명이 될 수는 없다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는 티무르와 일전을 준비했으나 다행(?)히도 무위에 그쳤다. 티무르가 진군 도중 졸지에 열병에 걸려 죽었기 때문이다. 그이 나이 69세였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명나라에 대한 원정을 멈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여기서 역사적 가정, 즉 히스토리 이프(History if)란 말이 있다. 만약 영락제와 티무르의 한판 대결이 성사되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한반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스토리텔링 작가

2024-07-01

결혼은 미친 짓이다

1985년생 남성 중 절반이 미혼이라고 한다. 1984년생인 나는 또래 열 명 중 아직 장가 못 간 네댓 가운데 하나니 서러울 것 없다. 주변에서 여자 좀 만나라고 한다. 그러면 대답한다. 만나고 싶어도 여자가 없다고. 말도 안 된다며 너스레 떨지 말라고들 하는데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여아와 남아의 자연적 성비는 100대 104~107 정도다. 한국에서는 이 성비가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심각하게 한쪽으로만 치우쳤다. 남아선호사상 때문이다.초음파로 태아의 성별을 감식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1990년 100대 116.5까지 성비 불균형이 치솟더니 급기야 1994년에는 셋째 아이 이상 성비가 206.9에 달했다고 한다. 딸 하나 태어날 때 아들 둘이 태어난 셈이다.30년에 걸친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오늘날 한국은 합계 출산율 0.66명의 초저출생 사회가 됐다. 나 같이 훤칠한 쾌남마저 여태 짝을 못 찾은 걸 보면 과연 성비 불균형의 영향이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건 경력 단절, 양육비 부담, 주거 불안, 돌봄 시설 부족 등 사회 제반의 문제다. 젊은 남녀가 결혼과 출산에 회의적인 것은 서로 싫어서가 아니라 서로 좋아 합쳤더니 “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황인숙, ‘움찔, 아찔’)어 버리는 사회 현실 탓이다.엊그제 죽마고우와 영월 김삿갓계곡에 갔다 왔다. 1984년생 노총각 둘이서 물장구치고 백숙 삶아먹고 민물장어와 한우 갈비꽃살 구워먹고 산메기 잡아 매운탕 끓여먹고 진탕 술 마시고는 한 침대에 등 돌리고 누워 해가 중천에 걸릴 때까지 코골며 잤다. 그렇게 2박3일 잘 놀았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낮술 먹다가 “애인이랑 왔으면 재미없었을 것”이라는 의견 일치를 이뤘다.결혼을 생각할 때면 친구나 나나 막막해진다. 막막하고 자신 없는 걸 할 바에야 그냥 이렇게 둘이 놀러나 다니자며 낮술에 취한 채 진시몬의 ‘보약 같은 친구’를 합창했다. “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통계화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라는 게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미혼 사유는 구체화되며 가정을 꾸리지 않겠다는 의지 또한 굳건해진다. 내가 결혼하지 않는(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남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 이상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지만 주변 결혼한 이들을 보면 전부 이상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다들 수면 아래서는 처절한 물갈퀴질 중일까? 나는 아무리 해도 저렇게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발버둥 쳐봐야 안 될 것 같고, 근사하게 살자고 발버둥 치기도 싫다. 남들처럼 살 자신이 없다는 말을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로 고쳐본다. 이 가치관이 비슷한 상대를 만나면 좋겠지만 100대 116.5다. 되겠나?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둘째, 아이에 대한 애착이 걱정된다. 교권 간섭, 음식점 추태, 차량 뒤에 붙인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문구 따위 아이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과보호, 이른바 ‘내 새끼 지상주의’의 사례들을 보며 혀를 차다가도 ‘내가 아빠가 되면 더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군대에서 자식들이 죽었다. 음주운전에 관대하고 아동 성범죄에 자비를 베풀며 밀양 여중생 성폭행 가해자들이 잘 사는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고슴도치 부모가 되는 건 당연하다. 나는 아이 걱정에 밤잠 설치고 늘 어딘가 곤두선 채로 살게 될까봐, 그리고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자식에게 정작 뭐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할까봐 결혼이 생경하기만 하다.셋째, 혼자서 충분히 행복하다! 이 행복의 울타리 안에 누가 들어오면 함께 더 행복할까? 결혼한 사람들은 왜 결혼하지 말라고 하나. 왜 혼자 살라고 하나. 자기들은 결혼했으면서, 웃긴다 정말. 왜 연예인들은 방송에 나오기만 하면 결혼 생활을 푸념하며 배우자 험담을 하나. 결혼한 친구들 전부 이구동성 “네가 부럽다”고 말한다. 그럴 거면 대체 왜 했느냔 말이다. 내밀한 사정들은 모르지만 어쨌든 결혼한 사람들의 말과 글과 눈물과 한숨과 자기비하와 방황과 가출과 종교에 귀의와 이혼소송 등을 종합해보면 결혼은 고통이자 만병의 근원이며 악의 축인 동시에 생지옥이다.얼마 전 나는 꿈에 그리던 낚시용 레저보트를 장만했다. 한 선배가 말했다. “이제 보트 같이 탈 여자만 있으면 되겠다”라고. 내가 답했다. “보트를 샀다는 건 평생 독신선언 아니겠습니까?”

2024-07-01

불안을 다루는 법

디즈니·픽사의 대표작 ‘인사이드 아웃2’를 보고 왔다. 9년 만에 돌아온 2편 속 주인공 라일리는 13살이 되어 사춘기를 맞이한다. 행복을 위해 매일 바쁘게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를 운영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5인방에 의해 본부는 평화롭게 흘러갔으나 라일리가 사춘기를 맞이한 어느 날부터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가 본부에 나타난다.새롭게 등장한 감정인 당황은 많은 사람들 앞에 발표를 할 때나 잘 보이고 싶은 친구들에게 이목이 집중될 때 얼굴이 빨개지며 나타난다. 따분은 어딘가 심드렁해져 스마트폰을 볼 때나 침대 위에 하루종일 누워 뒤굴 거릴 때에 등장하고, 부러움은 멋지게 꾸민 학교 선배들을 볼 때나 근사한 학교 시설을 둘러 볼때 나타난다. 2편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감정인 불안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세어본다. 불안은 라일리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어하며 안정감을 돕고, 이를 지켜보며 불만에 휩싸인 기존 감정들은 새롭게 등장한 감정들과 싸움이 일어난다. 결국 기존 감정들이 본부에서 쫓겨나게 되고, 다시 본부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며 이야기는 진행된다.라일리의 의식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다 보면 신념 저장소라 불리는 아주 깊은 곳에 다다른다. 의식의 끝인 신념 저장소는 경험으로 만들어진 감정 구슬이 자리하고 있으며, 여기서 중요한 감정 구슬은 신념이라는 끈이 된다. 신념의 끈은 라일리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신조가 되어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잠재의식을 지니게 한다.이러한 잠재의식은 결국 자아가 되고, 라일리를 움직이게 한다. 사춘기를 맞이한 라일리는 변화를 앞둔 성장기의 불안감, 그리고 정체성 혼란이 찾아온다. 타인에 의해 자신의 선호도가 바뀌고 기분 또한 타인에 의해 제어된다. 사춘기와 함께 나타난 불안이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의 정도가 점점 심해져만 가고 결국 라일리의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신념과는 대비되게 절친이었던 친구들을 외면하고, 거짓말과 그릇된 행동을 하며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여태 자신의 신념이었던 ‘나는 좋은 사람이야’가 무너지게 되고, 내면의 모든 감정과 신념이 한꺼번에 뒤엉키고 폭발하며 자아를 잃게 된다.자아가 파괴된 라일리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한다. 자신 스스로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신의 신념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라일리를 제어하던 불안이도 길을 잃는다. 불안이는 오로지 라일리를 나쁜 환경과 선택에서 지켜주고 싶었으나, 지나친 욕심 탓에 라일리의 자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본부로 돌아온 기쁨이는 불안이를 안아주며 이 모든 걸 다시 돌려보자고 말한다. 때마침 패닉에 빠져 있던 라일리에게 오랜 친구들이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그 순간 라일리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환경과 감정을 받아들인다. 그간 멀리 하려던 불안이란 감정이 받아들여질 때, 불안을 벗어날 수 있고 불안은 금새 기쁨과 슬픔, 우울, 소심, 부끄러움 등 여러 감점을 뒤섞인 페르소나의 형태를 보여주며 무너졌던 라일리의 자아가 회복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그 후 라일리에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그녀의 자아는 ‘나는 선한 사람’이지만, ‘때로는 부족한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 변한다. 또한 감정은 자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뿐, 결국 자아와 신념을 만들어가는 것은 라일리 자신임을 인정하고 깨닫고 나서야 사춘기를 넘어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신념에 의해 인간은 움직이고 살아간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신념 한 가지가 있다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을 하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신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면 매사에 자신 없는 행동을 보이거나 금방 불안과 우울에 휩싸여 무엇이든 회피 행동을 보이고 만다. 라일리는 기쁨과 슬픔, 불안 등의 여러 감정 중 그 어떤 것 하나도 내세우지 않고, 여러 감정이 뒤섞인 신념을 가지며, 하나의 자아가 아닌 다채로운 자아를 지닌 사람으로 변하는 성장을 택한다.‘인사이드 아웃 2’에서 불안이는 라일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몰아세운다. 그 때문에 커다란 위기가 왔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현재엔 지나치게 불안감이 들 때면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불안을 잠재운다. 여태껏 나를 몰아세웠던 건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섰던 불안이었다는 점과 라일리처럼 불안은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한단 점에서, 불안을 단순히 다루는 법에 대해 오래토록 생각하게 했다.

2024-07-01

‘CCUS 탄소 포집-활용-저장’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이어진 브리핑에서 “140억 배럴 정도의 막대한 양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중 4분의 3이 가스, 석유가 4분의 1로 추정된다”고 했다. 향후 일정은 2028년쯤 공사를 시작에 2035년 정도에 상업적 개발이 시작될 수 있으며, 매장가치는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수준이라고 했는데 약 2200조 원 가치가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사용량을 기준으로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쓸 수 있는 양이다.이에 대부분의 언론은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되고, 막대한 경제적 가치로 국가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취지로 대응하였다. 그런데 마침 발표 다음날인 6월 4일 이회성 전 IPCC의장을 모시고 개최한 대구탄소중립지원센터의 세미나에서 한 대학생이 이 전 의장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였다. 보도된 대로 동해안의 석유개발을 하면 우리나라는 천연가스와 석유 사용량이 많아져서 2050년까지 약속한 탄소중립이 어렵게 될 것 같은데 방법이 있을까? 라는 취지의 질문이었고, 이 전 의장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CCUS 탄소 포집-활용-저장’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했다.‘CCUS’는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의 약자로 상당히 생소한 용어이지만, 우리나라가 2020년 전 세계에 굳게 약속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작년 4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수립된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기본계획’에는 우선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6억8630만t) 대비 40% 감축(4억3660만t)을 중장기 목표로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산업(2억370만t), 전환(1억4590만t) 그리고 수송(6100만t) 분야의 순으로 막대한 감축을 해야 하고 산림흡수와 국제감축을 더해 결국은 ‘CCUS’를 적용하여 감축(1120만t)하지 않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국가적으로는 ‘CCUS’를 도입해야 2030년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대구시는 금년 5월에 수립된 ‘제1차 대구광역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 감축목표 45%(2018년 대비)를 달성(556만t)하는데 건물, 수송, 폐기물, 농축산 그리고 흡수원만 적용했고 ‘CCUS’는 감축수단에 없다.이처럼 국가목표에 있는 ‘CCUS’가 아직 대구시와 같은 지방정부의 감축수단으로는 도입되지 않았지만, 관련 국가계획이 구체화 되고, 기술발전과 함께 사업성이 높아지면 지방정부도 감축수단으로 도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정부는 앞으로 ‘CCUS법’ 제정과 동해 가스전을 활용한 실증과 추가 저장소 확보, 원천기술개발과 실증·사업화까지 원스톱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구경북은 동해안 석유·가스 개발 추진에 대응해 ‘CCUS’ 관련 연구개발과 감축 사업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24-07-01

반도체산업에 국가의 힘을 모아야

김규인 수필가 미국은 40조5780억 원에 이르는 보조금과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무기로 세계 각국의 반도체 생산업체를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밑그림으로 2032년에는 세계 생산량의 28%를 미국 반도체 회사가 생산한다고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BSG)이 발표했다.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이다.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막기 위하여 최첨단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막는다. 이에 더하여 중국으로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막고, 반도체 생산기술이 넘어가지 않도록 압력을 가한다.일본은 반도체 회사의 미국행에 영향을 받아 엄청난 보조금으로 구마모토현에 TSMC의 제1공장을 완공하고 제2공장 부지 조성 공사를 시작했다. 제2공장 건설비 약 19조 원 중 약 6조3000억 원을 일본 정부가 지원하고, 6∼7나노급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인공지능의 발달로 반도체는 이미 국가의 전략 산업이 되었다. 각국의 사활을 건 지원에 우리 정부도 반도체산업 지원에 나선다.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에 18조 원을 지원하고 각종 세제 혜택과 인프라를 지원한다. 특히 AI 컴퓨팅 인프라 확보를 위한 K 클라우드 사업을 통하여 2031년까지 6775억 원을 투자한다.정치권에선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안’과 ‘조세특례제한법’을 발의하였으나 부자 감세 등의 이유와 여야의 기선을 잡기 위한 법안에 밀린 상태다. 야당은 ‘K 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과 ‘반도체 특별법 제정안’에서 반도체산업에 100조 원을 지원하고자 발의할 예정이다. 반도체만큼은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엔비디아에 대항하기 위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체 간 통합뿐 아니라 국내업체도 기업 간 협력은 필수적이다. 국내 인공지능 반도체 회사인 리벨리온과 사피온이 협력한다. 경쟁 관계의 두 회사가 협력하는 것은 세계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적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인공지능용 반도체산업을 선도하는 회사가 되기를 믿는다.인공지능 발달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에 따라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까지 인력 충원 경쟁이 일어난다.엔비디아의 인력 충원은 많은 돈을 미끼로, 대대적으로 일어난다. 국내의 훌륭한 연구 인력 수백 명이 해외로 빠져나간다.세계 각국은 회사보다 국가가 앞장서서 반도체 사업에 돈을 쏟아붓는다. 반도체 사업은 단순한 경제 이상의 의미가 있다.자율주행 자동차 산업의 점차적인 성장,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산업 및 군사 장비의 발달, 일상생활까지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점점 없어진다. 인공지능은 미래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획기적인 제품이고 반도체는 그 핵심 부품이다.반도체산업을 총괄하는 국가조직을 하루빨리 만들어 세계의 흐름에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아닌가. 투자도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때를 놓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이제 세계는 하나의 경제권으로 2등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진다. 앞으로의 세계 경제에 반도체는 미래의 전부는 아니라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2024-07-01

디케의 저울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정의의 여신, ‘디케(Dike)’의 저울이 흔들리고 있다. 공정한 재판의 상징인 ‘천칭 저울’이 균형을 잃고 흔들린다는 것은 정의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법의 저울이 공정하지 못하면 정의가 실현될 수 없고, 기울어진 저울로 내리는 판결은 정의를 빙자한 불의일 뿐이다.누가 디케의 저울을 흔드는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그 주범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인들의 정치력 부족으로 정치적 문제를 법적 판단에 호소하는데서 비롯된다. 노회(老獪)한 정치인들이 자기편에 유리한 판결이 나오도록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들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은 사법부의 판결까지도 아전인수(我田引水)로 해석하여 지지 또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최근 민주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자 보복성 입법으로 사법부를 길들이려 하는가 하면, 재판 담당판사의 실명을 공개하여 공격하는 등 사법시스템을 흔드는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사법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변질시켜 정쟁을 일삼는 행태는 헌법에 보장된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신분보장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반면 ‘사법의 정치화’는 사법부와 법관이 반성해야 할 문제다. 법관은 헌법 제103조에 규정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대원칙을 엄수해야 사법 불신을 막을 수 있다.이 때 법관의 양심은 주관적 판단이 배제된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률적 양심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법관은 재판에 있어서 자의성과 편향성을 엄중히 경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없이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그럼에도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진보성향의 민변·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의 ‘코드 인사’로 스스로 사법부의 신뢰를 떨어뜨렸고, 일부 판사들은 ‘재판이 곧 정치’라면서 법과 양심이 아닌 ‘개인의 정치적 표현’을 인정하자는 주장으로 사법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법관이 정치적 진영논리에 갇혀 재판에서 객관적 인식을 외면하고 주관적 이념성향을 드러낸다면 판결의 공정성은 보장될 수 없다.더욱이 정의의 가치를 흔들었던 조국 전 정의부(법무부)장관이 1·2심의 유죄판결에도 불구하고 “비법률적 방법에 의한 명예회복을 하겠다”면서 정치에 뛰어들고, 그의 책 ‘디케의 눈물’에서는 자기반성 없이 사법의 정치화를 비판한 것은 너무나 몰염치한 행위다.한 때 대학에서 제자들에게 가치와 당위를 가르친 교수였던 그가 어떻게 이 지경으로 추락했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측은하다.결국 디케의 저울은 누가 흔들거나 스스로 흔들리지 않아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정치인이 권력으로 법관을 겁박해서도 안 되며, 법관이 권력욕 때문에 정치인 흉내를 내서도 안 된다. 정치인과 법관이 각자 주어진 소명에 충실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디케의 정의는 실현될 수 있다.

2024-07-01

축구가 맞아가면서까지 할 일인가?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영국에서 활동 중인 유명 축구선수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씨가 운영하는 ‘SON 축구아카데미’ 지도자들이 어린 선수에게 체벌을 가하고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놀라고 있다.비단 축구만이 아니다. 야구와 육상, 배구와 유도 등 종목 가릴 것 없이 한국에서 운동을 배우는 학생들이 지도자와 선배의 체벌·욕설에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은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낡은 레퍼토리다.욕을 먹고 두드려 맞는다고 열등한 선수의 실력이 갑자기 좋아질 수 있을까? 이 질문 자체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폭력은 인간을 짧은 시간에 굴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30년 전 오늘인 1994년 7월 2일엔 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콜롬비아 축구대표팀 수비수였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총에 맞아 숨졌다. 살해당한 이유가 황당무계하다.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어 콜롬비아팀의 16강 진출을 좌절시켰다는 것.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겨우 축구에 졌다고 사람을 죽이다니. 사망 당시 에스코바르의 나이는 27세.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었다.물리적인 힘으로 상대를 핍박하고 제압해 이룬 성과가 영원히 자랑스러울 수 있을까? 그게 축구건 다른 무엇이건. 목표를 위해 강압과 고통을 견디며 1등이 된 선수가 운동 자체를 좋아하며 즐겼기에 꼴찌가 된 선수보다 행복할까?2018년 월드컵.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에게 5-0으로 패했다. 사우디 골키퍼가 말했다. “우리가 졌다. 그렇다고 나라가 망한 건 아니다” 축구? 맞아가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잖은가./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01

대통령은 왜 자꾸 적을 만들까

김진국 고문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요지경이다. 축제가 되어야 할 전당대회가 대통령 편과 반대 편으로 갈라 싸우니 모두 불안하다. 특정 정당이 누구를 대표로 선택하건, 어떻게 뽑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좌충우돌해 국정이 표류하면 그 피해가 곱다시 국민에게 돌아온다.윤석열 대통령은 왜 번번이 이인자를 칠까. 이인자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생각인가. 아니면 인기가 있다 싶으면 대통령에게 기어오르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문제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2개월가량 흘렀다. 그동안 국민의힘 대표들은 대부분 윤 대통령과 유쾌하지 않게 헤어졌다.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뒤 “별의 순간을 잡은 것 같다”라는 말로 윤 대통령을 띄우며 손을 잡았다. 그러나 윤 후보가 잇단 실수를 하자 “우리가 해주는 대로 연기만 좀 해달라”고 말했다가 ‘상왕론’이 불거지며 결별했다.이준석 의원과의 갈등은 요란했다. 이준석 당시 대표는 “8월에는 버스가 떠난다”면서 윤 후보의 입당을 압박했다. 신당까지 고려한 윤 후보는 기분이 상했을 수 있다. 이준석 대표가 지방에 간 틈을 타 윤 후보가 입당하면서 ‘패싱입당’ 논란이 불거졌다. 선거 과정에 두 사람은 갈등과 화해를 거듭했다. 결국 선거 이후 ‘윤핵관’들이 ‘내부 총질’한 이 대표를 끌어내리고, 쫓아냈다.유승민 전 의원과는 후보 경선부터 감정이 많이 상했다. 유 전 의원은 천공문제 등을 제기하며 윤 후보를 몰아세웠다.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안철수 의원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단일화하고, ‘공동정부’에 합의했다. 하지만 선거 이후 유 전 의원과 안 의원은 항상 견제와 배제 대상이었다.이준석 대표가 물러난 뒤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의원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그런데 초선의원들까지 동원해 연판장을 돌리고, 나 의원을 ‘이지메(집단 괴롭힘)’해 지지율이 가장 낮았던 김기현 의원 손을 들어주게 했다. 김기현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이 총선 불출마 를 요구했지만, 대표직 던지며 겨우 공천을 건진 경우다.그렇게 곡절을 거쳐 윤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발탁했다.그러나 총선이 한창일 때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대처 문제를 놓고 또 갈등을 빚었다. 윤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보내 사퇴를 요구하고, 한 전 위원장은 거부했다. 눈 속에서 화해했다고 하지만 결국 그 앙금이 한동훈 몰아내기 전당대회로 이어졌다. 그 대타가 나경원 의원인가 했더니, 역시 이번에도 아니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윤 대통령이 지원하는 후보라고 알려져 있다.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하겠다는 걸 굳이 나무랄 생각은 없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견제보다는 협력이 더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동안 윤 대통령이 걸어온 행적을 보면 의문이 남는다.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을 쳐내면 누가 남을까. 더구나 왜 쳐냈는지, 꼭 쳐내야 했는지,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대통령의 그동안 선택은 누구를 좋아해서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를 죽이기 위해 무리하게 나선다. 타깃을 먼저 정하고, 저격수를 찾는 방식이다. 쪼개기 정치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 더구나 국민의힘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최약체 집권당이다. 108명의 의원 가운데 8명만 빠지면 개헌 저지선이 무너진다. 탄핵 저지선이기도 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걷잡을 수 없이 탄핵 국면으로 밀려간 것을 ‘최순실 사태’로만 설명할 수 없다. ‘레이저’ 쏘기, ‘진박 감별’, ‘배신자 프레임’, ‘옥쇄 들고 나르샤’로 알려진 공천 파동 등 여러 악재가 겹쳐 전혀 예상 못 한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무려 집권당 소속 의원 62명이 탄핵안에 찬성했다.윤 대통령 지지도는 20%대 초반이다. 집권당은 물론 지지세를 더 넓히지 못하면 남은 3년도 편하지 않다. 거대 야당을 상대하기 위해서도 지지율을 끌어 올려야 한다.굳이 집권당 대표 경선에 적대적으로 개입하는 이유가 뭘까. 누가 집권당 대표가 된들 대통령에게 협조하지 않을까. 대통령 가족을 보호하는 일도 꼭두각시 대표가 더 잘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4-06-30

코로나19 유행 조짐?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 CNN방송은 지난 28일 여름철을 맞아 미국에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인다는 보도를 했다.이 방송은 미국내 최소 38개 주에서 최근 코로나19 감염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종료된 이후 더 이상 감염 사례를 집계하지 않고 있으나 병원 응급실 기록에서 감염 증가세가 포착된다는 설명이다.“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처럼 미국의 코로나19 감염이 는다는 외신에 괜스레 걱정이 가슴을 억누른다. 자라는 몸 길이 30㎝로 거북과 비슷하게 생긴 동물. 육식성으로 이빨이 날카롭고 강해 사람의 손가락을 물면 절대로 놓지 않으며 잘라 버릴 수도 있다. 자라 등처럼 생긴 솥뚜껑을 보고 놀란 가슴이 된다는 말은 어떤 것에 한번 혼이 나면 비슷한 것만 봐도 지레 겁을 먹는다는 뜻이다.코로나19는 2019년 중국의 우한시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번진 바이러스성 유행병이다. 발견된 지 두달만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 보건비상사태를 선포했고, 3월에는 팬데믹(범유행 전염병)으로 선포하기에 이른다.코로나19 사태는 공식적으로 종식이 선언되기 전까지 전세계 인구의 10%가 넘는 7억9000만명이 감염됐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는 부지기수다. 21세기 이후 전 지구촌을 집어 삼킨 최악의 전염병이라 할 수 있다.미국에서 벌어지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 증가세가 국제사회가 걱정할 정도의 위험한 수준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가볍게 보아서도 안 될 일이다. 코로나19가 남긴 상처의 트라우마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30

어느 동승(童僧)의 경우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첫 머리에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을 깊게 행하실 때 오온(五蘊)이 모두 공함을 밝게 보시고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셨다”는 구절이 나온다.이 구절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반야심경’ 전문의 의미는 크게 줄어든다. 여기서 ‘오온’이라 함은 인간의 실존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일컫는다.수삼 년 전부터 나는 이 문구에 붙들려 헤어 나오지 못했다. 여러 해설서와 강의에서도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대구 도심에 자리한 작은 사찰을 찾아 스님들의 강연을 듣기 시작했다.그러던 차에 이탈리아의 양자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의‘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2023)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그때 시작한 불교 공부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즘엔 ‘천수경’ 강연을 청강하고 있다. 사찰 1층에 마련된 제법 큰 강의실 벽면에 인상적인 그림 한 점 걸려 있다. 예닐곱 살이나 되었을까, 하는 동자승이 징검다리 위에서 무엇인가 응시하고 있다. 그것은 커다란 바위 위에 누군가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무더기, 아니 돌탑이다.우리나라 산야에서 흔히 마주치는 돌무더기로 이뤄진, 소원을 기원하는 고졸한 탑이다. 그림의 동승은 간절한 눈으로 돌탑의 정수리를 쳐다본다.그의 표정과 눈빛은 진지함을 넘어서 무엇인가 깊이 원망하거나 혹은 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자승을 휘감고 있는 저녁 햇살이 따사롭지만, 그는 그것을 전연 느끼지 못한다.하얀 고무신에 자주색 바지 그리고 연푸른색 저고리를 입고 파르라니 깎은 작은 머리가 정갈하다. 어떻게 그는 이곳에 흘러들게 되었을까?! 그의 부모는 누구였으며, 왜 어린 그를 절에 맡겨두고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동승이 희구하는 혹은 원망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오래도록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나만 빼놓고 다 이상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얼마 전이다.왜 그런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기초적인 문제 하나를 두고도 우리 모두는 완전히 다른 과정을 거쳐 각자 고유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것을 단출하게 줄이는 방법은 독재와 전체주의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젊었던 시절에도,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나의 생각과 판단과 습속과 행위는 하나의 굳건한 표준이라고 확신했더랬다.그런데 이제는 그런 믿음이 신기루에 지나지 않으며, 설령 누군가 그것을 공인한다 해도 쓸모없음을 깨우치게 되었다.나의 눈에 비친 대상과 그것이 불러오는 느낌과, 그것에 기초한 생각과 행위, 그리고 그것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인식작용의 허망함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 셈이다.오온의 작용에 담긴 무상과 상호관계, 거기서 파생하는 번뇌 망상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은 동승을 보면서 그가 하루속히 평정심과 무아에 도달하여 득도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4-06-30

제조 본원경쟁력과 개선

엄주선 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한국철강협회의 최근 철강경기 동향을 보면 중국의 열연코일 유통가격이 2022년 5월 t당 800달러를 기점으로 수요 약세와 경기침체로 지속 하락하여 현재 500달러 대로 떨어진 가운데 수요 회복시기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또한 엔저로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어 국내 철강재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있어 수입산 철강재의 가격 압력과 내수시장 침체로 하방 압력이 더 커질 것으로 예측하였다.그러다 보니 지난 3월 포스코그룹의 새 사령탑으로 취임한 장인화 회장도 핵심사업인 철강과 2차전지 소재의 본원경쟁력을 강화하여 그룹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는데 가장 역점을 두겠다고 하였다.이를 위해 철강 사업의 초격차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이차전지 소재산업은 시장가치에 부합하는 본원경쟁력을 갖춰 확실한 성장엔진으로 육성하는 한편 사업 회사 책임경영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본원경쟁력은 기업의 본질(本質)에서 출발한다. 본질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도끼(斤) 2자루로 돈(貝)이 되는 근본(本)’으로 풀이된다. 원시시대는 도끼를 사용하여 사냥을 하였고 조개 껍질을 화폐로 사용하였기에 도끼와 같은 도구를 활용하여 돈을 버는 것을 본질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기업도 설비라는 도구로 돈을 버는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좋은 제품을 남보다 싸게 만들어 고객이 필요 한 때 공급’ 하는 것으로 Quality·Cost·Delivery(Q·C·D, 품질·납기·원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본원경쟁력이다.필자가 도요타 자동차 연수를 갔을 때 현지 임원의 첫 질문이 ‘포스코는 Q·C·D 중 세계 일등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이었다. 당시 일본 도요타자동차 관동 공장에 LG직원 4명과 포스코 직원 4명이 같이 장기 연수를 받고 있었는데 연수를 받기 시작한지 몇 개월이 지나서 강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왜 LG직원들은 원가 이야기를 하면 금세 몰입이 되는데 포스코 직원들은 안전 환경 등 다른 이야기를 하고 몰입이 잘 안되는지 궁금하다’는 것이다.그 이후 또 몇 달이 지나 본인이 이유를 알았다고 하면서 한 말은 ‘포스코는 한번도 적자를 경험하지 못한 부잣집 막내 아들이라 그렇다’라는 말을 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칠판에 양동이 그림을 그려 하부에 구명을 뚫고 위에서 들어오는 물과 하부로 새는 물이 차있는 그림을 그렸다. 들어오는 물이 많으면 항상 양동이에 물은 줄지 않지만 기업이 어려워지면 들어오는 물이 줄기 때문에 양동이에 물이 줄기 시작하고 기업은 적자가 된다는 것이다.그래서 항상 양동이에 물이 마르지 않게 물이 많이 들어오게 하는 것은 경영진과 마케팅의 역할이지만 나가는 물인 원가를 줄이는 것은 현장 직원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전원이 지혜를 발휘하는 개선이라고 하였다.포스코도 현장 개선 활동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안전 환경 중심으로 붙임이 있기는 하였지만 제조 과정의 낭비를 제거하여 세는 물을 줄이는 것은 늘 기본이었다.앞으로 도 더 격화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원이 참여하는 개선 활동이 절실하다.

2024-06-30

디지털 교과서로 좋은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유영희 작가 헬렌 켈러의 스승 앤 설리번은 진정한 교사의 표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학습이 문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못 보고 못 듣고 말하지 못하는 헬렌 켈러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습할 수 있게 도왔다. 물론 현대 사회의 대중 교육 상황에서 개인 교사 설리번의 교육을 그대로 도입할 수는 없지만, 진짜 학습은 교수자와 학습자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그런데 내년부터 종이 교과서 대신 AI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한다고 한다. 시행 첫해에는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부터 시작하여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국어, 사회, 과학, 기술가정 등의 과목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작년 8월에 나온 AI 디지털 교과서 가이드라인을 보니, ‘500만 명의 학생에게 500만 개의 교과서’를 제공한다는 구호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500만 개의 교과서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질적인 학습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상당히 회의적이다.코로나 팬데믹 때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낮아졌다는 보고가 많지만, AI 디지털 교과서는 온라인 수업과는 성격이 달라서 섣불리 비교할 수는 없다. 온라인 수업은 종이 교과서를 사용하면서 소통 채널만 온라인으로 한 것인데 비해, AI 디지털 교과서는 개인별 맞춤 교과서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습자의 수준을 분석하고 그에 맞게 제공해주는 교과서 자체는 모두 디지털 기기를 통해 공급된다. 그러니 개인별 맞춤 수업이라고 해도 일방적인 학습 도구만으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게다가 장시간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눈도 나빠진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하루 평균 약 3시간 18분이라고 한다. 잠자는 시간, 학교에 있는 시간을 빼면 활동 시간 10시간 중 1/3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셈이다. 디지털 기기에 집중하면 눈 깜빡임 횟수가 줄어서 눈 건강이 나빠진다고 하니, 디지털 교과서로 수업하면 청소년 눈 건강이 악화될 것은 뻔하다. 게다가 작년에 스웨덴은 디지털 도구가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저해한다는 유명 의과대학의 연구 결과 발표에 힘입어 디지털 교과서에서 종이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뉴스를 보니,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더 염려스럽다.사정이 이러니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우려하는 국민청원이 있었다. 지난 6월 28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서는 ‘교육부의 2025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유보에 관한 청원’이 30일 만에 5만6505명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자는 전면적인 디지털 교과서 사용이 서면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보다 객관적, 과학적으로 더 효과적인 교육 방식이 맞는지 검증하자고 요구헸다. 국민동의청원은 30일 동안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부디 국회 교육위원회는 청원자의 바람대로 디지털 교과서가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지 엄밀하게 검증해주기 바란다.

2024-06-30

길 잃은 저출생의 길을 찾자

김은주 포항시의회 의원 아이들 어렸을 때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지금은 고 3인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생방송을 하는 방송작가 엄마 때문에 학교에서 가장 빨리 등교해야만 했다.초등학교 입학을 한 3월 모든 게 어색했을 막내에게는 아침 7시 30분 등교가 가장 낯설었을지도 모른다. 잠이 덜 깬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엄마 늦었다”를 무한 반복하면서 학교를 보내야 했다. 막내는 잠이 덜 깨서 울먹이면서 차에서 내렸고, 날씨가 추우면 차에서 덮고 있던 담요까지 둘둘 말고 차에서 억지로 내려야 했다. 아직도 담요를 덮어쓴 채 어깨를 실룩거리며 내렸던 8살 꼬마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나 울컥하기도 한다.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엄마로 살았던 시간은 내 인생에 가장 치열했던 순간이었다. “왜 엄마만 맨날 바빠?”라며 목 놓아 울던 아이들은 이제 고3이고, 스무 살을 넘겼다. 가끔 아이들에게 “엄마가 바쁜데 이렇게 잘 커 줘서 고맙다” 진심을 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었던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출산과 육아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출산 파업이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심각한 문제다.2023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 0.72를 기록했다. 경북 사정도 비슷하다. 경북의 합계출산율은 0.86(2023년 기준)이며 포항의 사정은 더 심각해 지난해 기준으로 0.65대로 떨어졌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OECD 최하위는 물론 세계 최하위다.국가나 지자체에서도 눈에 띄게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관련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 정책이 장기적인 정책이라기보다 단편적이고 생물학적인 관점에 치우친 정책이 나오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서울시의원은 출생률을 높인다며 골반 근육 강화 운동인 ‘케겔 운동’ 동작을 넣어 만든 댄스 체조를 선보여 논란이 되었다. 여성의 몸을 건강하게 해 출생률을 올리자며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여성 1년 조기입학’ 제안을 비롯해 대구시의 정자 분석기 무료 나눔, 지난해 서울시가 추진한 ‘서울팅’ 등 원인 진단이 제대로 안 된 정책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출생 정책 보니깐 아이를 더 낳기 싫어졌다’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경북도에서도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저출생 전쟁자금’ 모금에 나서고 있다. 처음 경북도의 전쟁 선포를 보면서 ‘저 전쟁은 경북도만 하면 되는 전쟁’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난 4월 추경예산 심사 과정에 저출생 극복 관련 예산이 대거 투입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경북도에서 22개 시군과 소통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저출생 관련 정책을 하달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지역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천편일률적인 정책이 지역민들에게 체감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를 낳아 잘 키우자는 정책에 굳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전쟁을 명명할 필요가 없다.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상황으로 전투태세로 저출생을 극복하자는 것이 과연 맞는 지 다시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하고 출범한 정부다. 경북도는 22년 여가부 폐지에 발맞춰 빠른 속도로 여성정책 관련 국을 과로 축소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나 경북도에서 성평등 추진 체계를 폐지에 앞장서면서 역설적으로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저출생의 경우 돌봄에 대한 지원을 넘어 사회적 보육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개인적인 선택이나 문제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포항시와 경북도,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함께 키우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걱정을 덜어줘야 하고, 수도권과 지역의 균형발전으로 수도권 집중을 막아야 한다.가족 제도 안에 출생문제 만큼이나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 일자리에 대한 질적 성장을 통해 엄마가 일하면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성평등한 임금도 보장되어야 하며 보편적인 아빠들의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과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적인 부분도 뒷받침되어야 한다.지금처럼 생물학적 관점에서 저출생 문제를 극복한다면 대한민국의 저출생에 대한 해답은 영원히 미지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얼마 전 지역에서 엄마를 위한 책과 잡지를 만드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10년 넘게 포항에 살았지만, 지역에 네트워크를 찾지 못해 서울이나 해외에서 주로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고 했다. 이제는 포항에서 이 이야기를 함께 할 사람들을 만나 글로컬 하게 저출생 문제에 접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앞으로 나는 엄마 당사자들과 함께 지역의 저출생 문제, 인구감소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포항에서 출발해 전 세계 곳곳에 엄마들과 함께 연대하는 그 멋진 길 위에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

2024-06-30

똑똑한 찜질법

박성률 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걷기나 등산, 달리기 등 야외운동을 하다가 뜻하지 않게 부딪치거나 넘어져서 붓고 멍든 상처가 나거나, 오랜만에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은 실내운동을 하다보면 운동량이 과해 근육통이 생기기 쉽다.부상이나 운동 상해로 몸이 쑤시고 결릴 때마다 할 수 있는 손쉬운 치료가 찜질이다. 통증과 부기를 가라앉히려고 뜨거운 타월이나 온탕부터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증상에 따라 냉찜질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응급처방에는 온찜질보다 냉찜질이 먼저다. 출혈이나 염증 또는 부종이 있으면 냉찜질을 먼저 하는 게 좋다. 혈액의 흐름을 억제하는 냉찜질로 혈관을 수축시켜야 피도 새나가지 않고 부기도 가라앉게 된다. 냉찜질은 조직 사이의 체액 투과 및 염증과 통증을 완화시켜준다. 또 마취 효과가 있어 순간적인 충격으로 근육이나 관절, 인대에 손상이 생긴 경우 통증을 덜어 줄 수 있다.간편한 냉찜질은 물을 부어 얼린 종이컵을 통증 부위에 7∼10분 정도 문지르는 것이다. 차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고 6∼7도가 적당하다. 얼음을 직접 갖다 대면 피부가 상할 수 있고 환부에도 좋지 않다. 온찜질과 마찬가지로 시간은 20∼30분이 적당하다. 누구나 냉찜질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협심증 또는 심장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심혈관 질환이 있는 경우 혈관이 수축하며 혈압이 오를 수 있으니 냉찜질을 삼가는 것이 좋다.반면 온찜질은 손상 부위의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 순환을 도와준다. 혈액 순환이 잘 되면 손상된 조직에 영양공급이 늘어나 회복이 빨라지는 이치다. 나이가 들면 생기는 퇴행성관절염과 같은 통증 개선에 좋다. 무릎의 온도가 가장 낮아 통증이 생기는 새벽에 온찜질을 하면 효과가 있다. 보통 3~12살 아이들의 넓적다리나 종아리 주위에 생기는 성장통에도 온찜질이 도움이 된다.온찜질에 적합한 온도는 어떤 종류의 찜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사용하는 핫팩은 대개 75도 정도 가열한 뒤 7겹 가량 수건으로 싸서 아픈 부위에 대는 게 좋다. 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수(水)치료를 할 때는 일부분만 담글 경우 46도, 몸 전체를 담글 경우 39도가 적당하다. 가정에서 흔히 쓰는 전기온열 팩은 국소 부위에 사용할 경우 최대 약 50도까지 온도를 올릴 수 있다.그런데 당뇨병 환자나 말초혈관장애, 버거씨병과 같은 혈관질환자는 감각이 둔해 온찜질을 하다 화상을 입을 수 있다. 특히 무릎이나 복사뼈 부위에 전기패드나 적외선 램프로 온찜질을 하다 화상을 입는 경우가 흔하다. 온찜질 역시 피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혈우병 등 피가 잘 나는 질병이 있거나, 악성 종양의 전이가 가능한 사람, 급성 염증이 있는 경우, 감각이 떨어져 있는 신체부위에는 주의가 필요하다.찜질은 적용 범위가 넓어서 거의 모든 신체 부위의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봐도 좋다. 운동 직후 생긴 근육통의 경우 48시간 내의 급성기에는 냉찜질을, 이후에는 선호도에 따라 냉찜질이나 온찜질을 하면 된다. 인대가 늘어났을 때도 손상 직후 48시간 내 급성기에는 냉찜질을 하고, 이후에는 온찜질을 해준다. 넘어져 다리를 다치거나 얼굴을 맞아서 멍이 생겼을 때도 냉찜질을 우선 해준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온찜질을 하면 효과적이다.골절 후 치료를 받고 나서 부어오를 때나 피부가 찢어지는 출혈로 부어오를 때, 벌레에 물렸을 때, 여름철 강한 햇볕에 노출돼 피부가 벌겋게 됐을 때, 수술한 부위에 통증이 있을 때, 관절염이 악화하여 붓고 관절에 열이 나는 등 급성 염증 반응을 보이는 경우에는 냉찜질이 좋다. 코피가 났을 때도 고개를 숙이고 이마에서 코 주위를 찬 물수건이나 얼음주머니를 대면 코피가 멎는 데 효과적이다.반면 만성적인 허리통증이나 디스크, 관절염, 오십견 등 만성질환의 통증이나 환부의 회복단계에서 온찜질이 필요하다. 경직된 근육 이완이나 통증완화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또 환부 조직의 노폐물을 배출시키고 영양을 빠르게 공급해 환부의 회복을 돕는다. 따라서 온찜질은 급성 통증과 부기가 가라앉은 후 회복단계에 하는 게 좋다. 여성의 생리통이나 냉증에도 배 부위를 온찜질하는 게 좋다.참고로 시중에서 살 수 있는 파스 종류는 냉온찜질 효과를 통한 혈액순환이나 마취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통 소염 약제를 피부에 흡수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핫파스나 쿨파스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은 실제 피부 온도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파스의 멘톨 성분이 겉 피부에 닿으면서 시원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약제에 따라 24시간 또는 48시간 작용하기 때문에 1일 또는 2일에 한 번씩 붙이면 된다.이처럼 찜질은 환부의 위치와 부상 상태, 시간에 따라 적절하게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 통증이 찜질로 개선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안전하다.

2024-06-30

인사철만 되면 나타나는 경주시 줄타기 인사

황성호 경북부 ‘경주시 인사는 줄 서기만 잘하면 자동빵’, 삼식이 지나니 ‘순실이(?)’7월 정기 인사를 앞두고 경주시청 직원들이 주고받는 줄타기 인사를 비꼬는 말이다. 직원들은 인사철 마다 경주시장 토호세력을 비롯한 최측근들이 인사에 개입(?)해 ‘밖에서 정치를 다한다’는 소문으로 술렁이고 있다. 지난 시장 때에는 ‘식’자 돌림의 최측근의 인사 전횡을 비유해 ‘삼식이’란 말을 유행시켰다. 현 시장 체제에서는 자칭 힘있는 토호라 불리는 몇몇 ‘순실이’에게 직원들의 인사가 휘둘리고 있다는 불평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다.직원들은 인사가 끝나면 시장실 앞에 불만 가득한 유인물을 뿌며 노골적인 인사불만을 표출한다. 또 승진에 떨어진 직원들은 내부통신망에 인사 불만을 토로하는 글을 올리는 등 경주시는 인사때마다 인사 후 폭풍으로 몸쌀을 앓고 있다.경주시 4급 서기관 승진과 전보 인사에 대한 직원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여전히 원칙 없는 인사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현재 경주시 직원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 줄서기에 타고난 사람들은 ‘인사는 본인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며 인사철마다 지역 토호세력, 권력자 등을 찾아가 아부하며 승진과 꿀 보직을 등에 업는다.언제부턴가 나이만 먹으면 6개월짜리 4급 서기관(퇴직자 3명), 5급 사무관(퇴직자 포함 2명) 승진이 이어져 왔다. 이번 인사에는 과연 몇명의 6개월 4급 서기관이 탄생할지를 놓고 직원들은 수군거리고 있다.평소 근무는 내팽개치고 근무평정이나 관리하며 ‘줄 서기만 잘하면 자동 빵’이라는 농담 아닌 진담이 나돌면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은 매번 힘이 빠진다.항상 철처하게 배제되는 일 잘하는 직원들은 터무니없는 구설수로 아무리 열심히 근무해도 자칭 시장 최측근들의 말 한마디에 모든 인사 바뀐다고 불만을 토로한다.이번 경주시 인사는 지역 토호세력과의 철저한 단절이 필요하다. 연공서열이 아닌 근무 성적 등 인사기준 원칙에 따른 공정한 인사가 선행돼야 한다.더욱이 지금의 경주시는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라는 경주 발전의 역사적인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성공 개최에 최선의 준비를 다 할 수 있도록 일 잘하는 공무원이 대접받는 인사가 단행되길 기대한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24-06-30

양보와 배려가 실종된 사회

홍석봉 언론인 헌정 사상 최초로 야당이 단독 개원하고, 국회의장도 단독 선출했다. 입법 권력을 독점한 더불어민주당은 수사 검사를 특검과 탄핵으로 압박하고 있다. 판·검사 법 왜곡죄, 수사기관 무고죄 등을 만들겠다고 엄포 놓는다. 특검과 국정조사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거대 야당은 쪽수를 앞세워 입법권을 전횡하고 사법부를 겁박하며 행정부를 마비시킨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이 위협받고 있다.민주당은 이재명 사당이 돼 국회를 쥐고 흔든다. 관례는 무시한다.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지적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언론을 개 취급하고 반 언론적 입법을 쏟아낸다.지금 정치권에는 투쟁과 대립만 있다. 야당 탓이 크다.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다. 혼자만 살겠다고 상대를 배척한다. 정치의 요체는 대화와 타협이다. 소수당의 입장을 배려하고 양보하지 않고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협치는 불가능하다.의사 휴진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정부도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의정갈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은 싸늘해져갔다.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존중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것을 희망했다. 의사는 본분과 사명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포기했다. 의정 치킨게임에 환자와 가족들은 절망했다. 의사만 바라보는 환자와 가족들을 생각했어야 했다. 대화와 타협으로 가야 했다. 그것이 환자에 대한 배려다.우리 사회에서 배려와 양보가 실종됐다. 얼마 전 한 택배기사가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욕설 낙서’ 테러를 당했다. 주민이 엘리베이터를 오래 잡아두는 택배 기사에 앙심을 품고 ‘엘베 적당히 잡아 XXX야’라는 낙서를 했다. 2020년엔 전남 영광의 한 아파트에서 몇몇 입주민이 택배 기사 부부가 물건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승강기를 오래 잡아둔다는 이유로 사용을 아예 금지해 ‘갑질 논란’이 일었다. 택배 기사와 입주민 사이의 분쟁은 종종 있었다. 택배 문화가 생활 깊숙이 스며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주민은 택배의 편리함과 엘리베이터 이용의 불편함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택배기사도 주민 불편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층간소음 갈등, 보복 운전,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등 모두 양보와 배려가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서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양보하지 않고는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다. 양보는 타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수단이다. 채근담에는 ‘길이 좁은 곳에서는 한 걸음 머물러 남에게 양보하여 먼저 지나가게 하라. 그리고 맛이 좋고 진한 음식은 10분의 3을 덜어 남에게 주어 먹게 하라. 이렇게 하는 것이 세상을 지극히 즐겁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파했다. ‘명심보감’에 ‘남의 흉한 일을 민망히 여기고, 남의 좋은 일은 기쁘게 여기며, 남이 위급할 때는 건져주고, 남의 위태함을 구해주는 것’을 배려라고 정의하고 있다.무한경쟁 사회에서 양보와 배려가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으며 밀려나고 있다. 정치실종과 의정갈등, 경제 양극화, 사회 갈등 등 퇴보의 늪에 빠져드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하나.

2024-06-27

식인상어의 동해안 출현

우정구 논설위원 영화 ‘죠스’로 잘 알려진 식인상어가 동해안에 자주 출몰할 것이란 예측이 나와 눈길이 간다.여름철 해수욕장 개장을 앞둔 가운데 국립수산과학원이 밝힌 동해안 상어 출현 소식은 다소 충격적이다. 공격성이 강한 상어의 출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해수욕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찝찝한 소식이다.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한반도 주변 바다 수면온도가 상승하면서 상어의 주 먹이인 난류성 어종인 고등어, 방어 등이 동해로 유입되고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상어들도 동해로 찾아들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작년 6월 28일 경북 울진군 망양정해수욕장 인근 해상에서 2m 크기의 청상아리가 자망그물에 산채로 잡혀 화제가 됐다. 지난해 동해안에서는 발견되거나 잡힌 상어가 모두 25건에 이른다. 직전 해인 2022년 1건과 비교하면 폭증한 수준이다.상어 중 백상아리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다. 세계에서 가장 큰 포식성 물고기로 보통 크기가 4.6∼5m에 이른다. 몸무게도 900∼1300kg이다. 암컷 중 가장 큰 상아리는 6.1m에 몸무게가 2t이나 나가는 것도 있다고 한다.국내서는 그동안 많지는 않았지만 상어로 인한 인명피해는 주로 서해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동해에서의 상어 출현이 예고되면서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개인이 해수욕을 하다 상어를 만나면 상어를 자극하지 않고 침착하게 조용히 밖으로 나오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동해안 상어 출현에 대비한 관계당국의 대응책도 있어야겠지만 개인도 상어 공격에 대응할 예방책 정도는 익혀두어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6-27

김치를 담그다

피귀자 수필가 ‘쩍’ 배추의 단말마. 배추를 가르던 손이 멈칫한다. 칼날아래 꽉 찬 속살이 환하다. 뽀얀 줄기 끝에 오글오글 노란 잎들이 아기손가락처럼 꼬물거린다.자른 배추를 씻긴다. 갓난아기를 다루듯 연한 잎사귀가 부서지지 않도록 살살 달랜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문지르고 다리와 발가락까지 꼼꼼히 헹군다. 흐르는 수돗물에 샤워를 하듯 여러 번 헹구자 반짝반짝 빛이 난다. 속살이 달작지근한 통배추는 어디에서 자라다가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을까. 어느 하늘 아래의 정겨운 바람과 따뜻한 대지의 숨결을 마셨을까.부모님 보호아래 곱게 자라다가 시집온 새댁처럼 뿌리가 뽑힐 때의 아픔 또한 다르지 않았으리. 옮겨 앉은 자리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살이 찢기는 해산의 고통을 맞이한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땅에서 한번 뽑힐 때 까무러치고 속이 갈라질 때 두 번째 기절한 것까지도.커다란 다라에 물을 받고 굵은 소금을 녹인다. 음식에 간을 맞추듯 조심조심 휘저어 간을 본다.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배추가 세 번째 기절할 순간이다. 갈라놓은 배추를 소금물에 풍덩 넣었다가 한 잎씩 들춰가며 굵은 소금을 뿌린다. 소금물에 빠져서 재채기에 콧물까지 정신이 없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얀 소금을 뒤집어쓰니 닿는 자리마다 속살이 따끔거린다. 시댁 식구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금을 뒤집어 쓰 듯 불편했던 새댁처럼. 소금이 들어앉은 켜켜이 퍼덕거리던 교만이 고개를 떨군다.소금 세례를 마친 배추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지그시 누른다. 원망과 불평이 함께 소금물 속에 잠긴다. 절인 배추는 하룻밤을 자고나면 알맞게 숨이 죽을 것이다. 소금을 더 뒤집어쓰기 싫으면 욱하는 성질을 죽이고 외고집도 줄여야하리. 외롭지 않으려면 옆 지기와 살갑게 지내고 내편도 만들어야 할 게다.되직하게 쑨 찹쌀 풀에 멸치액젓과 고추 가루를 함께 섞는다. 걸쭉한 빨간 옷이 마련되었다. 무채를 썰고 갈아놓은 마늘과 생강도 함께 섞어 준다. 바싹 마른 청각은 따뜻한 물에 불려 종종 썰고 싱싱한 보리새우로 옷맵시를 가다듬는다. 매실 액기스로 분단장도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알맞게 숨죽은 배추를 말간 물에 헹구어 엎어 놓는다. 얌전히 엎드려 있어야 물기가 잘 빠진다. 네 번째 기절할 순간을 기다리며 약간의 체념도 배운다. 드디어 뽀얀 속살에 빨간 옷을 입힌다. 고명도 사이사이 배부르게 넣어준다. 빨간 양념이 고루 베지 않으면 김치가 제대로 맛을 낼 수 없으니 새 옷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리. 화목한 가정을 위하여!개성마저 잃어버리면 고유의 맛이 사라질지니 이성의 눈을 말갛게 뜨고 감성을 다스리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신 줄을 굳게 잡고. 짠 젓갈과 매운 고추 양념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고 터지는 기침에 콧물까지 범벅이 되더라도.양념이 골고루 베인 배추를 사각의 김치 통에 꼭꼭 눌러 담는다. 겉잎으로 치마를 두르듯 감싸 안은 자태가 얌전하다.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거짓 없이 진실 된 마음으로 침묵에 익숙해지면 서서히 성숙해지리라. 자칫 게으름을 피우면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되리니 성실하게 기다리면 금상첨화일 터.아버지는 신 김치를 싫어하셨다. 가장의 영향인지 식구모두 신 김치를 꺼려 김치가 시어지면 어머니는 옆집으로 퍼 나르셨다. 아버지는 우리가 먹지 않는 걸 남에게 준다고 역정을 내시고 좋아하는 집에 보내는 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며 엷은 다툼을 벌이시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배추 한 쪽으로서는 감칠맛을 낼 수가 없다. 여러 쪽이 함께 손잡고 환경의 변화에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김치 냉장고에서 얌전히 기다린다면 숙성된 인격으로 완성되리라. 모두가 입맛 다실 김치로. 제 맛을 내려면 배추는 다섯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로 태어나는 법. 여러 번 기절했던 새댁도 잘 익은 김치처럼 서서히 동화되어 배추김치처럼 푹 익어 가리라. 우리네 인생처럼 시큼하게!

2024-06-26

소서(小暑)와 명리 이야기

24절기 가운데 열한 번째가 소서(小暑)다. 태양의 황경이 10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7월 6일(음력 6월 1일)이다. 음력으로는 6월의 절기다. 소서는 하지와 대서(大暑) 사이에 있다.소서(小暑)라는 말은 ‘작은 더위’라는 뜻이다. 태양이 가장 높게 오래 떠 있는 절기는 하지다. 일반적으로 하지가 가장 무더울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날씨가 본격적으로 뜨거워지는 때는 소서와 대서 사이다. 태양의 복사열이 지구를 데우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여름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소서와 대서에 이르러야 진정한 무더위를 느낄 수 있다.소서는 장마와 관련이 매우 깊다. 소서를 전후해서 우리나라에 장마전선이 머문다. 이 무렵부터는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하천이 넘치고 논이 잠수돼 종종 피해가 발생한다. 소서는 밭매기로 분주한 시기다. 하지 때 보리를 수확한 밭에 팥이나 콩, 조와 수수를 심었기 때문에 밭의 김을 매어야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소서 때 논매기를 했지만, 요즘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의 김을 매지 않는다.소서의 속담은 ‘소서가 넘으면서 새 각시도 모 심는다’, ‘소서의 모는 지나가는 행인도 달려든다’ 등 모내기와 관련이 많다. 왜냐하면 소서인 7월이 되면 모내기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다. 아직 모내기를 하지 못한 농가가 있으면 마을 전체가 힘을 모아 모내기를 했다.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좋은 전통에서 생겨난 관습이다.소서(小暑)는 미월(未月)이 시작되는 절기다. 미월(未月)의 미(未), 한자를 풀이하면 가지가 무성하게 자란 나무의 형상을 본뜬 글자다. 나무가 성장을 다한 상태, 이제 더 이상 자랄 일이 없는 나무이기에 ‘아니다’라는 뜻이 나왔다. 이와 함께 미래, 장래의 뜻도 있다.명리학에서 미(未)는 오행으로 토(土)에 해당하므로 미토(未土)라고 부른다. 미(未)를 어두울 매(昧)로 보기도 한다. 미월(未月)의 양기가 더 자라지 않고, 음의 기운이 자라서 만물이 쇠해 가는 어두운 시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한창인 미월(양력 7월)이지만, 계절 순환의 이치로 이미 가을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다. 음양 교차의 미묘함을 느낄 수 있다.미(未)는 동물로 양(羊)이다. 양은 평화를 상징하고, 무리를 지어서 살고, 온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적응해 살아가는 동물이다. 양(羊)은 무리지어 살아가기에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기보다 무리에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이해심이 많고 마음도 여리다. 우울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기도 한다. 은근히 고집이 있어 한 번 마음먹으면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토(土)의 성질로 대인관계가 무난하며, 중재하고 화해모드를 조성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계하(季夏)의 달, 즉 6월(음력)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미(未) 방향을 가리킨다. 이 달의 방위는 중앙이며, 미(未)는 오행상 토(土)에 해당한다. 색깔은 황색이며, 숫자로는 5다. 맛은 단맛이며, 냄새는 향내다.천자는 누런 옷을 입고, 누런 말을 타며, 누런 옥을 차고, 누런 깃발을 세운다. 천자는 후토(后土) 즉, 토지 신에 제사를 지내며, 제물은 심장(心腸)을 먼저 바친다. 이 달의 오행인 토(土)를 생하는 것은 화(火)다. 화는 심장을 나타내므로 제물로 바치는 이유다.이 달에는 나무가 바야흐로 무성하게 자라는 시기다. 벌목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제후들을 모아 토목공사를 일으켜서도 안 된다. 백성들을 동원하고, 군대를 일으키면 반드시 하늘의 재앙을 받는다고 믿었다. 이때는 흙이 축축하고 날씨는 찌는 듯이 더우며 때때로 큰비가 내리니,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어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다.여름에는 상대적으로 화(火) 기운이 성하고, 수(水) 기운이 약해지기에 몸의 균형이 무너져 잦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소서와 대서 사이에 삼복더위가 있다. 삼복(三伏)은 초복과 중복, 말복을 말한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7월 15일), 네 번째 경일이 중복(7월 25일),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이 말복(8월 14일)이다. 삼복은 24절기는 아니지만 오랜 풍습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복날에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지면 사람의 기력이 쇠하기에 보양식으로 주로 삼계탕을 즐겼다.경일(庚日)을 복날로 정한 이유는 경(庚)은 음양오행으로 볼 때 차가운 금(金)에 해당하며, 계절로는 가을이다.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품은 경일(庚日)을 복날로 정해 더위를 극복하자는 생활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음양오행 사상이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소서 때는 온갖 과일과 채소가 풍성해지는 시기다. 생선 종류는 민어가 제철이다. 민어는 조림, 구이, 찜으로 먹는데 애호박을 넣어 끓여 먹으면 맛이 있다. 애호박에는 단물이 나고, 민어는 기름이 한창 오를 때여서 첫 여름의 입맛을 상금하게 돋워주는 최고의 보양식이다. 또 밀을 수확한 뒤여서 국수와 수제비도 즐겨 먹었다.인간의 생명은 형(形), 기(氣), 신(神)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형(形)은 생명이 머무는 곳이며, 기(氣)는 생명을 채우는 것이며, 신(神)은 생명을 통솔하는 것이다. 이들 중 하나라도 제자리를 잃으면 세 가지 모두 손상이 된다. 즉, 몸에서 형기신이 각각 제자리에 머물고 상호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의 삶이 온전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올 여름은 극심한 폭염과 집중호우가 예상된다. 각자 건강과 안전에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2024-06-26

위기관리는 아무 일도 없을 때 해야 한다

장규열 고문 비행기를 타면 예외없이 이륙과 함께 비상시 대피요령 등을 안내한다. 멀쩡하게 비행할 터이지만, 만에 하나 있을 지도 모르는 위급상황을 미리 상정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위기를 만나 급하게 대처하려면 이미 늦는다. 위기를 관리한다지만, 위기를 정작 만나면 모든 상황이 헝클어져 그 무엇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위기는 평소에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위기에 맞닥뜨려 위기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재난의 규모나 강도가 점증하고 있어 적절한 위기관리의 필요가 심대하게 증대되었다.화성에서 또 큰 사고가 있었다. 정부는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하였다. 고용부는 사고 인지 후 범부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을 설치하고 범정부TF를 구성한다고 한다. 중앙산업대책본부(중산본)와 지역산업재해수습본부(지산본)를 두고 대응한다고 한다. 늘 이런 모습이다. 사고가 터져야 대책본부를 꾸리고 회의를 한다. 미리미리 해당 업계의 안전설비 규정과 사고예방 대책 등을 상시적으로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점검했다면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사람들도 사고에 대비한 주변정리와 대피요령 등을 세심하게 살펴 대비했다면 아까운 인명손실은 없지도 않았을까. 우리는 언제까지 소잃고 외양간만 고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미국은 지난 2001년의 9·11 테러사태와 2005년 뉴올리언즈 대홍수사건을 겪으면서 전 국민의 각성이 일어나 정부 독립조직인 연방재단관리기구(FEMA·Federal Em ergency Management Agency)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강화하였다. FEMA는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준비상황과 대비태세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재난이 일어났을 적에 대국민 경보시스템을 관리하고 재난의 형태에 따른 대응전략을 수립하며 피해국민 보호와 현장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확립한다. 또한 재난발생 이후에 회복과 복구에 만전을 기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다. 무엇보다 중요한 가닥은 재난방지를 위한 조직을 상시적으로 설치하여 발생가능한 모든 환경에 미리 예방하고 대책을 준비한다는 점이다.발생한 위기상황에는 즉각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발생하기 전에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을 확보하여 단단하게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위기예방과 재난대비를 소관업무로 하는 정부조직을 상설화하기를 제안한다. 지진과 산불 등 자연재해와 화재와 홍수 등 안전사고, 테러와 강력범죄는 예고없이 발생한다. 발생한 즉시 대응한다고 해도 일반인이 예고없이 위기상황을 만나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각급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각종 안전시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여야 한다. 다양한 위기상황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대비하기 위하여 상설 정부조직이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극심한 인명손상 등 안타까운 재난을 당하고 나서 안전불감증 등을 되뇌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정부는 재난예방대책기구를 상설화하여야 한다.재난은 평소에 대비해야 한다. 위기는 평소에 관리해야 한다.

2024-06-26

위기에 빠진 해병정신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국민에겐 봉사하는 양이 되고, 적과 맞설 때는 사나운 사자가 돼라.” 해병대 초대 사령관 신현준의 말이다. 이게 바로 세칭 ‘해병정신’의 골자.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해병대가 보여준 용맹과 견인불발(堅忍不拔)은 여타 군(軍)을 압도했다. 오죽하면 미군 정보장교가 “한국 해병대는 귀신도 잡아낼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을까.전투에서 보여준 ‘사나운 사자’와 같은 해병정신은 창설 직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발군(拔群)이었다. 이에 이견을 낼 이들은 많지 않다.지난해 물난리로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을 때 갓 스물을 넘긴 어린 해병 한 명이 75년 전 자신이 몸담은 부대를 만든 최고 지휘관의 슬로건 중 또 다른 하나를 실천하다 숨졌다.2023년 7월 19일. 수해가 난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찾던 해병1사단 소속 채수근 일병이 급작스레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고통 받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양’이 되고자 했던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전쟁 때는 사나운 사자로, 수난을 겪는 국민을 위해선 봉사하는 양으로 위국헌신을 몸과 마음에 새겼던 해병대원들. ‘해병정신’을 실천하다 숨진 이들 모두는 귀하디귀한 우리 아들들이다. 전투 중에 산화했건, 대민봉사 현장에서 생명을 잃었건.그런데 이상하다. 군대는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 그럼에도 숨진 채수근 해병을 ‘국민에게 봉사하는 양이 되라’고 명령한 사람이 불분명하다.임성근 해병1사단장은 “지휘가 아닌 지도를 했다”하고, 그 아래 여단장은 “임 사단장이 지시했다”고 말한다. 유치한 말장난 같다. 묻고 싶다. 어린 해병의 죽음 앞에 고위급 장교가 책임을 전가하는 것도 해병정신 중 하나인가?/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6-26

달리기와 뇌건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건강하게 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3가지를 꼽으라면 첫째 식이조절, 둘째 적절한 운동, 셋째 충분한 수면이다. 식이조절과 운동은 내가 능동적으로 개선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수면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수면 조절과 이로 인한 부수적인 효과는 운동을 통해서 개선 시킬 수가 있다. 내가 직접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건강의 조건 중 운동은 제일 하기 싫고 힘들기도 하다. 특히 달리기는 더욱 힘들다. 그러나 매일 조금씩 달리기를 하다보면 늘게 되고 달리기를 하면 심폐 지구력과 혈액순환 뿐 아니라 뇌건강과 정신과적 부분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달릴 때 우리 몸의 심장과 폐 뇌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한다. 뇌는 뛰는 것 때문에 바빠지기 때문에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즉 뛰는 것에만 집중을 하게 되고 많은 잡생각이 사라진다. 현대인들은 쉴 때도 뇌가 쉬지를 못하고 그날 있었던 일이나 미래의 일을 생각하느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 그러나 달리기를 할 때 우리 뇌는 달리기에만 집중하여 일처리를 하게 되고 그동안 복잡했던 머리에 머물던 생각들은 가라앉게 된다. 평소에 받던 스트레스가 뛰는 순간에는 모두 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반복되고 누적되면 스트레스 지수가 감소하고 이에 우울이나 불안감 같은 정신적 문제도 많이 개선이 된다. 잡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에 주의 집중력이 높아지게 된다. 당연히 학생들은 공부가, 직장인은 업무효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도 줄어들기 때문에 효율적인 일과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그리고 달리게 되면 새로운 뇌신경 세포들의 생성이 촉진된다. 성인이 되고 나선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죽는 뇌세포가 조금 많아지는데 이것이 방지 된다. 새로운 신경세포가 조금이라도 더 생기면 뇌세포간의 연결이 더 다양해지고 견고해진다. 주의력 집중력 학습력이 올라가고 인지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학습이 어렵고 깜빡하는 것이 많아진다면 밖에 나가서 조금씩이라도 뛰는 것은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러닝머신을 해도 좋지만 당연히 야외에서 뛰는 것이 다양한 환경을 접하기 때문에 더 좋다. 10분 정도 약간 숨이 찰 정도로 뛰어 주면 되고 이보다 더 뛰다 보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가 된다. 엔돌핀이 분비 되면 행복감이 충만해지고 자신감이 상승한다. 우울과 불안 등의 정신과적 문제가 개선이 된다. 엔도르핀만 분비되는 것이 아니고 안정감과 진통효과를 주는 물질들도 분비가 된다. 즉 달리면서 일정한계를 넘게 되면 행복감과 안정감, 몸의 통증도 개선이 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흔히 달리기는 심폐기능 위주로 좋아진다고 생각을 하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신에 관련된 부분도 많이 좋아진다. 육체와 정신이 같이 좋아지는 전신 운동이다. 달리기가 힘들면 나가서 걸어도 된다. 걷다가 1분 달리고 다시 걷고 1분 달리고 힘들면 중단한다. 이것이 쌓이다 보면 나중에는 10분을 뛰게 되고 20분을 뛸 수 있게 된다. 건강을 위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걷고 뛰어 보자. 그곳에서 내가 뛰면 자연이 주는 전신 치료를 공짜로 즐길 수 있다.

2024-06-26

“만져봐야 알지” 독일여행기(中)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외사촌이 사는 튀빙겐에 거처를 정해두고 인근 도시를 다니면서 늘 기차를 탔다. 낮의 기찻길 차창 밖은 전형적인 독일 시골 풍경이었다. 멀리 비스듬하게 야트막한 언덕은 모두 포도밭이라고 동생이 얘기해 주었다. 가까운 둔덕도 온통 푸르렀다. 남편이 저기 있는 건 무엇이냐고 물었고 동생은 들판, 초원, 평원이라고 대답했다. 남편의 물음은 거기 푸른 들판에 심은 작물을 묻는 것이었고, 동생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남편의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났다. 슈트트가르트에서 튀빙겐으로 오는 길이었다. 셋이 서로 마주앉아 한창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느 역에선가 웬 남성이 양해를 구하더니 남편 옆 빈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한국어로 얘기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가 어디서 왔느냐며 불쑥 영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이라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단다. 놀라는 우리에게 남편의 휴대폰을 슬쩍 봤더니 한글이 보여서였다며 웃었다.이참에 남편은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지 차창 밖의 푸른 들판을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물었고, 동생이 유창한 독일어로 묻고 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주먹 진 왼손의 새끼손가락부터 차례로 펼쳐가며 열심히 설명하고 동생은 들으면서 크게 웃었다. 아마도 몇 가지의 작물 후보를 꼽는가보다 생각하며 동생의 통역을 기다렸다. “밀인지, 보리인지, 귀리인지 모른다. 만져보면 알 수 있는데…. 잘 모르겠다.” 맞는 말이긴 하다. 가까이 가서 보거나 직접 만져봐 알 수 있다는 그의 대답은 지극히 정확했다. 우리는 그의 말에 크게 동의하면서도 그 말이 왠지 몹시도 우스웠다. 그렇게 얘기의 물꼬를 튼 김에 우리는 튀빙겐에 도착할 때까지 유쾌한 수다를 나눴다. 그와 헤어진 후에도 우리는 그의 대답을 곱씹고 흉내내며 웃고 또 웃었다.며칠 후 비오는 저녁이었다. 동생이 평소 자주 가는 산책길 옆에 저런 밭이 있다며 가서 직접 만져보자고 했다. 엄청나게 크게 펼쳐져 있는 밭엔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두 가지 작물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만져 봐도 별무소득이었다. 농촌에 산 적이 없는 우리였다. 네이버 렌즈로 사진을 찍어 검색했더니 보리라고 했다. 그 옆 밭도 보리란다. 아직도 정확한 답을 못 찾은 우리는, 만져봐도 모르겠다며 깔깔댔다. 마침 거대한 트랙터를 몰고 오는 농부가 있었다. 동생은 손짓으로 차를 세웠다. 트랙터의 굉음까지 멈추고 얘기를 나누는 동생을 지켜보면서 나는 궁금증에 조바심이 났다. 그와 헤어진 후 동생은 나를 밭 가까이 데려갔다. 이건 밀이고 저건 보리래. 그런데 왜 웃었느냐는 내 물음에 동생은 대답했다. “밀은 빵을 만드는 거고, 보리는 맥주를 만드는 거래. 저기 보리밭은 자기 건데, 맥주를 만드는 게 아니고, 소를 먹이는 거래. 그렇다고 소가 취하지는 않는대. 아마도 우리가 밀과 보리를 구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나 봐.” 드디어 농부를 만나 우리의 의문을 풀었고, 남편에게 밀과 보리라는 명쾌한 답을 전했다. 독일에서 만난 두 명의 남성은 독일인답게 진지해서 유쾌했다.그 후 여행 내내 셋 중 누군가가 무엇에 대해 물으면 먼저 이렇게 대답했다. “만져봐야 알지….”

2024-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