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Bullshit’라는 수필이 있다. 미국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가 20년 전에 쓴 책이다. 우리나라에선 ‘개소리에 대하여’로 번역되었다. Bullshit은 헛소리, 허튼소리로 점잖게 번역이 되는데 이 책은 조금 과격하게 ‘개소리’로 번역하고 있다. 이 책에 요지는 거짓말쟁이(liar)와 개소리쟁이(bullshitter)를 구분한다. 거짓말은 진실을 알고 상대를 속이는 것이고 개소리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소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조차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말로 ‘아니면 말고’식이다.
종이신문과 몇 안 되는 공중파 방송에 의해 정보를 전달받던 시절에 우리는 참과 거짓을 언론에서 표현한 그대로를 믿었었다. “신문에 났어.”라는 이 한마디로 모든 논쟁은 종결됐다. 따라서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사명감이 있었고 불의에 항거하는 기개가 남달랐다. 그게 기자정신이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 결과물을 기사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타협이란 것이 없었다.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기자가 쓴 기사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권력의 감시자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였다. 언론이 입법, 사법, 행정의 뒤를 이은 제4의 권력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은 변하고 언론도 변했다. 권력과 타협하기 시작했고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쏟아내고 권력을 향한 용비어천가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린 언론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잘 예로 드는 것이 나폴레옹 이야기다. 유폐돼 있던 코르시카를 탈출해서 시시각각 파리로 진격해 오는 상황에 따라 그를 지칭하는 단어가 식인귀, 괴물, 폭군에서 나중에는 ‘황제 보나파르트 폐하’라는 극존칭으로 변하는 아부 근성을 말한다. 권력의 입맛에 맞춰주는 속칭 ‘빨아주는 기사’를 생성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런 거짓 기사에 놀아났다.
“당신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보가 없는 사람이다. 당신이 신문을 읽는다면, 당신은 잘못된 정보를 얻는 사람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자 정보는 메이저 언론만 가질 순 없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정보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사건의 사진이 몇 분도 되지 않아 사진으로 전송되어 버리고 주요 메이저언론만 장악하면 국민의 생각도 바꿀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은 군사정권 종식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그 한 예가 이번 계엄에서도 볼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계엄군의 행동을 안방에서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건을 입맛에 맞게 덮으려야 덮을 수가 없게 됐다.
그럼에도 왜곡 보도는 여전하며 점점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사, 선동과 날조,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사용한 기사 등 질이 낮거나 자극적인 기사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유튜브 같은 매체도 언론 역할을 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방송을 해댄다. 일부는 돈을 벌기 위해 자극적인 것을, 화면을 만들어 송출한다. 사람들의 관심도를 높여 돈을 벌기 위해 거짓 뉴스가 판을 친다. 이런 잘못된 기사나 방송에 현혹되어 자칫 어설픈 정치 논단까지 일삼게 되고 만다. 정말 주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