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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미신

등록일 2025-01-15 19:35 게재일 2025-01-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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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에서 보내온 달력을 받아본다. 집안 어딘가의 빈 벽에 붙여둔다. 달력으로서의 효용성보다 그림이나 사진에 눈길을 줄 때가 더 많아 달이 바뀌어도 미처 넘기지 못할 때가 많다. 작년 말 거의 비슷한 시기에 청계사의 절 달력과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달력을 얻었다.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발행처별로 달력에 기재돼 있는 날들이 다르기도 하려니와 흥미로워 나란히 걸어두고 비교해 봤다.

절의 달력에서 을사년, 서기 2025년인 올해가 불기로는 2569년, 단기 4358년임을 알 수 있었다. 매일의 날짜 아래 육십갑자가 띠 동물 그림 옆에 쓰여 있다. 제삿날에 제문 쓰기에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처님성도일’, ‘관음재일’, ‘지장재일’, ‘약사재일’과 같은 날을 연꽃그림으로 표시해 두었는데, 이들 재일은 매월 재를 올리는 날인가 보았다. 불교의 기념일은 가톨릭교의 기념일에 비하면 크게 많지 않은 편이다. 예를 들면 1월 한 달 중에서 6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념일이어서 솔직히 놀랐다.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일은 ‘성 대 비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3일부터 12일까지는 5일의 ‘주님 공현 대축일’ 전후에 치르는 의식의 날인 듯 보였다. 다른 달에도 기념일들이 빼곡했는데 가톨릭 역사의 그 수많은 성인들을 모두 섬기는 듯했다. 그 모든 날을 기억하려면 달력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두 달력을 유심히 관찰하고 읽으면 보통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종종 오늘은 무슨 날이지? 들여다 보곤 한다.

며칠 전, 휴대폰에서 “달력 구하러 오픈런”이란 기사에 눈길이 가서 읽었다. 은행 달력을 얻으러 은행 앞에서 줄을 서서 번호표를 뽑고,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은행 달력을 사겠다는 글이 올라온다는 기사였다. 스마트폰이 달력과 시계의 기능을 다하는 21세기에 웬 레트로 감성인가 했는데 그 내막을 알고 보니 헛웃음이 난다. 달력미신이란다. 은행 달력은 돈을 부르고, 병원이나 약국, 제약사의 달력은 건강하게 한다며, 소방서 달력은 화재를 예방하고 보험사 달력을 걸어 두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이 만들어지고 미신이 되어 이와 같은 달력 품귀라는 사회적 현상이 생겼단다. 대전의 유명한 빵집 성심당의 달력을 얻어 걸어두면 행운과 먹을 복이 들어온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도 했다.

그래? 우리 집에 있는 저 달력은 어떤 복을 줄까? 절의 달력은 부처님의 보살핌이니 좋다. 가톨릭달력은 병원 달력이니 건강은 확보되었다 치고 한글박물관과 국학진흥원의 달력은 공부를 잘하게 한다고 소문내 볼까?

재물복까지 욕심이 났다. 서울에서 하나은행지점장으로 있는 이질녀에게 메시지를 넣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기사 얘기를 했더니 이모 달력 필요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지. 며칠 후 도착했다. 오픈런으로도 못 구한다던 바로 그 은행 달력이었다. 한 장에 3달이 펼쳐진 달력, 절이나 성당의 기념일이 없는 대신 24절기와 음력이 공손하게 새겨진 유난히 희고 깨끗한 달력에 나의 이벤트를 빼곡하게 채워 넣어 우리 집만의 달력을 만들어 볼까 한다. 이질녀 덕에 재물복까지 확보했으니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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